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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1984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 단연 최고이다.
조지오웰이 1948년에 탈고한 이유로 뒤에 숫자 두 자리를 뒤집어 제목이 1984가 되었다는 이 작품은 얼마 전에 미해결된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아마존의 전자책 뷰어 '킨들'에서 강제 삭제 당하는 스캔들까지 있어 더욱 유명해진 소설이다.
나에겐 데일 오델의 '빅 브라더'를 표지로 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제77권 '1984'가 있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인기에 편승하여 급조된 느낌인데, 매끄러움이 오래 전에 출시된 민세문집에 비해 장점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오랜 관찰을 통해 내 취향은 오타가 많고 매력 없는 민음사의 허술함 보다 완벽에 가까운 꼼꼼함의 문학동네의 편집 능력을 선호한다.
지난 번 문학동네에서 나온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번역에 크게 실망한 나는 이 책을 통해 기본 번역 인프라는 아무래도 문학동네가 민음사에게 많이 뒤쳐지는 건 아닌지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다음과 같은 구호성 번역은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문학동네 것 보다 민음사 방식을 더 선호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민음사)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문학동네)
미래를 향해, 과거를 향해, 사고가 자유롭고 저마다의 개성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혼자 고독하게 살지 않는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고 일단 이루어진 것은 없어질 수 없는 시대를 향해.
획일적인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빅 브라더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ㅡ 축복이 있기를! (민음사)
미래에게 혹은 과거에게, 사상이 자유롭고 인간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고 서로 고립되어 살지 않는 시대에게ㅡ 그리고 진실이 죽지 않고, 이루어진 것은 짓밟혀 없어질 수 없는 시대에게.
획일성의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빅 브라더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ㅡ 축복이 있기를! (문학동네)
이러한 내 느낌은 상업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극대화된 개인적인 편견으로 두기로 하고...
문학동네의 발빠른 동작 덕분에 나는 조지오웰의 1984를 다시 음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
"말을 없애버린다는 건 멋진 일이야. (중략) 어떤 한 낱말이 단순히 어떤 말의 반대만을 의미한다면 무엇 때문에 그 말이 있어야 하냔 말이야. 한 낱말은 그 낱말 자체에 반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네. 가령 '좋은(good)'이란 말을 예로 들어보세. '좋은'이란 낱말이 있으면 '나쁜(bad)'이란 낱말이 무엇 때문에 따로 필요하단 말인가? 그건 '안 좋은(ungood)'이란 말로 충분하다네. 이게 오히려 다른 낱말이 가질 수 없는 정확성이 있어서 더 낫지.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좋은'이란 말을 더 강하게 쓰고 싶을 때 '썩 좋은(excellent)'이나 '훌륭한(splendid)' 등등 다른 희미하고 쓸모없는 낱말이 한 두름 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더 좋은(plusgood)'이란 말이면 넉넉히 의미가 전달되고, 더욱 강조하고 싶으면 '배로 더 좋은(doubleplusgood)'이라 하면 되는 거야. (중략) 신어(新語)의 완전한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려는 데 있다는 걸 자넨 모르겠나? 결국에 가서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해놓자는 걸세. 왜냐하면 그걸 나타낼 낱말이 없으니까 말이야."(67쪽~69쪽)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 자유가 허락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여기에 따른다. (103쪽)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모든 신념, 습관, 취미, 감정 및 정신자세 등은 실로 당의 비밀을 알 수 없게 하고 현대 사회의 참된 성격을 알지 못하게 한다. 눈에 보이는 반란이나 반란을 하려는 사전 준비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은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둬도 그들은 몇 대가 지나도록, 몇 세기가 지나도록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것도 파악할 힘이 없이 일하고 자식을 키우며 죽어가는 것이다. 단지 산업 기술이 발달해서 그들이 더욱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될 때가 위험하다. 그러나 군사적, 상업적 경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교육 수준은 사실상 떨어지게 마련이다. 대중이야 어떤 의견을 갖든 말든 그것은 관심 밖의 일로 취급된다. 그들에게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자유를 허가해도 괜찮은 것이다. (256쪽)
현대인들은 60년 전에 출시된 이 암울한 소설에 열광하면서도 신자유주의가 장악한 현실에 너무도 무감각한 것 같다. 일각에서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1984의 예언이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은 것을 두고 지나치 비약의 소설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앨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이 소설을 버무려 본다면 미디어와 그림자 정부에 장악된 공포의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달을 수 있을텐데... 죽도록 즐기기에 바쁜 현실이 가슴 아픈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