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위한 권일용의 범죄심리 수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9
권일용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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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어머니께서 보이스피싱을 당하신 적이 있다.


대출 안내 문자인 줄 알고 링크를 클릭하시고 친절하게 전화 너머에서 유도하는 모든 단계를 차곡차곡 밟으신 끝에 어머니는 500만원 정도를 사기 당하신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어머니께 신신당부를 했다. 제발 휴대폰으로 어떤 링크가 오면 그걸 보낸 기관이 어디더라도 나한테 꼭 먼저 물어보고 클릭하시라고.


 내가 당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돈 500만원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신고를 했어도 그걸 찾을 수 없는 현실도 아니다.  다음에 다른 내용으로, 다른 번호로부터 미끼가 던져졌을 때 어머니는 또 당하실 수 있다는 것. 그때는 지금보다 금액이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이 당시에 가장 두려웠고 실은 지금도 무척이나 염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모르는 사람이나 걸리는 거지. 순진한 사람이나 당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안 당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1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즉, 무척이나 순진무구하고 무지한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히 '내가 조심하고 내가 주의하고 내가 신중하게' 살아간다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얼마 전 대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난데없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나 텔레그램 채팅창을 통해 몰카나 개인신상 유출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주의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니까. 그런 사건사고의 뉴스를 읽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저런 사건사고들의 피해자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도 저런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려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범죄 역시 복잡해졌고 요즘은 특히나 온라인이나 휴대폰 상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2000년대 이전의 범죄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이었다면 요즘의 범죄는 간접적이고 심리적이다. 그래서일까. 알아차리고 대응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까다롭고 곤혹스러워졌다.


 그래서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와 같은 도서가 반갑다. 대한민국 경찰청 제1호 프로파일링 마스터를 지내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 범죄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내고 있는 권일용 저자는 30여 년간 강력사건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대한민국 범죄분석에 잔뼈가 굵은, 현장감각이 혁혁하게 살아 있는 노장이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범죄심리에 대하여 했던 강연을 모아 다듬어 책으로 엮었다. 왜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사람은 저지르지 않는가? 범죄자는 어떤 자극을 받아 비로소 범죄를 저지르는가?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하여 저자는 심리학과 사회학의 여러 연구와 이론들을 바탕으로 범죄심리를 해석하려 노력했다. 이 책은 30여 년 현장에서 그가 보고 듣고 연구해온 내용들의 집합이다.

 

 미래의 범죄 유형은 어떻게 변할까? 지금도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향후에는 정서적 학대와 심리적 고통을 가하는 범죄가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교묘한 가스라이팅이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루밍,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 등이 더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성착취 범죄는 지금부터라도 강력하게 차단해야 한다.76쪽

 

 

 


  이 책을 단 하룻밤 만에 완독했다. 일단 주제와 내용이 나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고 문체와 내용이 원만하여 어떤 독자가 읽어도 무리 없이 읽힌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심리적, 사회적 배경을 가능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뿐 아니라 최근 몇 십년 간의 범죄 유형 변화, 그 변화의 원인,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이 겪는 최근의 특이점들, 확증편향이나 고립감 등에 대한 염려도 언급한다. 이 책을 차분히 읽어가다 보면 결국 '범죄'란 어느 개인의 돌발행동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 개개인이 함께 인지하고 범죄를 낳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저자는 경찰들이 수사를 할 뿐 아니라 법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끈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체험하는 분야 중 하나가 경찰이다. 분명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일인데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없거나 그 처벌이 미미한 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대면해야 하는 이들이 경찰이다. 일이 일어난 후에 호들갑스럽게 대책을 논의한다면서 누구의 책임이네를 따지지 말고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이 문제점을 적극 개진해야 한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개인화가 점차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에 지나치리 만큼 집중한다. 이러한 변화들이 범죄를 점점 더 우리의 삶 가까이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159-160쪽

 

'남의 일'로 여겨 신경을 꺼야 할 것은 남의 흉잡기, 다른 사람의 SNS, 온갖 가십거리 정도가 아닐까. 옆집에 사는 내 또래 여자가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면, 같은 직장 동료가 뜻하지 않게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면 그건 신경꺼야 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음에 같이 아파해야 하는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이 책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에서 경제 발전과 함께 새로운 양상의 범죄가 등장하고 동시에 범죄율이 높아지면서 피해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이야기했는데(192~201쪽) 이 부분에 큰 공감을 했다. 경제 발전이라는 달콤함, 생활이 윤택하고 편리해졌다는 호사는 다양한 반작용, 부작용을 불러왔고 그게 우리 사회의 지금 얼굴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했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일정 부분 대가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세금을 내고 국가의 보호를 받듯,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문제를 인지할 때 우리의 안전 역시 그만큼 보장되는 것 아닐까.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개인화가 점차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에 지나치리 만큼 집중한다. 이러한 변화들이 범죄를 점점 더 우리의 삶 가까이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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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격차를 줄이는 수업 레시피 -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차이를 넘어 함께 성장하기
박명선.정유진 지음 / 아이스크림(i-Scream)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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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우리 손자가 학교를 8번인가 그것 뿐이 못 갔어. 근데 야가 1학년인데, 학교를 8번 갔다 오니 2학년에 되뿌렀네."

아는 분이 자기 손자 이야기를 하시다가 기가 찬다는 듯 손사레를 치셨다. 어디 이 뿐이랴.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충격적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까닭에 아예 자녀들 등교를 시키지 않는 부모님들이며, 아이들이 비대면 수업을 하긴 하는데 이건 뭐 수업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라며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닌 부모님들까지. 급격히 찾아온 비대면 시대에 과연 우리 아이들의 학습 상황은 안녕할까? 어차피 학교 수업 제대로 못 받아도 학원에 가든, 과외를 받든 하면 되니 괜찮은 걸까? 공교육에서 채우지 못한 학습의 빈틈을 사교육이 채우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공교육은 대충 구색만 맞추면 그뿐일까?

이런 이야기들은 이 비대면 시대에 아이들의 학습을 어떻게든 끌고 가보려고 교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에게는 너무 서운하고 서러운 말들이다. 갑자기 바뀐 학습 상황에 아이들만큼이나 선생님들 역시 쌩고생 중이니까. 특히 학습 격차가 더욱 커진 교실을 책임지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필요한 학습 환경을 제공하려 애쓰는 선생님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무척 많다.

 

 [학습 격차를 줄이는 수업 레시피]는 코로나19가 빚은 교실 풍경 속에서 현직 교사들이 어떤 노력을 쏟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명선 선생님과 정유진 선생님은 초등학생들의 의미 있는 배움을 위하여 수년 간 애써오신 분들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단연 코로나19로 촉발된 '학습 격차'의 문제를 가장 먼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 책을 읽는 독자 역시 분명히 알게 된다. 교실 속 일상 즉, '교사가 아이들의 학습 상태를 확인하고 격려하고, 아이들이 함께 대화하고 서로 가르쳐주는 것이 학습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책 6-7쪽)'

 

그 소중한 일상의 조각을 잃은 우리들은 그럼 잃어버린 부분을 무엇으로 채워넣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배움의 속도가 다른 아이들 각각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 방법과 도구들을 제안한다. 학습 격차를 진단할 수 있는 방법, 난독 진단 및 개선 방법, 학습 저해 요인 진단 검사 등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의 상태를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자료들과 해당 자료들이 있는 홈페이지들을 자세히 안내한다.

또한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멀어진 학생들과 화상으로 유대를 형성하는 방법, 학습동기가 없는 아이를 위한 동기유발 지도법, 그림책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법 등 흥미로운 학급 활동을 제안한다. 저학년과 고학년 교실로 나누어 학습 격차를 극복하는 방법도 안내하고 있는데, 특히 저학년 부분에서 아이들의 한글교육과 문해력 공부법을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이미 몇몇 다큐멘터리 등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룬 적이 있지만 요즘 아이들의 국어 능력은 무척 심각한 상황이다. 글자는 읽어도 그를 해득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정확하게 읽고 말하는 능력,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런 면에서 이 책 [학습 격차를 줄이는 수업 레시피]는 현직 교사 뿐 아니라 초등학생을 키우는 가정에서도 한번쯤 꼭 읽어보실만한 책이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은 아이의 공부 습관, 학습 태도의 기반이 마련되는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아이가 배우고 익혀야 할 공부 습관을 익히지 못하면 이후 성장하는 동안 아이의 답답함과 불안, 불편함 역시 함께 커질 것이다. 단순히 성적이 부진하다는 문제가 아니다. 교실에서, 학습의 시간과 공간에서 주체로 서지 못하는 아이들은 점점 소외되고 밀려나게 된다. 보편적인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속하는 가장 큰 조직인 '학교'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건 아이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너무나 큰 손실이 아닌가.

 

이 책이 많은 선생님들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초등학교 현직 교사뿐 아니라 공부방, 학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형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이 책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의 혼란한 시기에 아이들의 공부 습관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동시에 무척이나 귀한 일이다. 귀한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이 책에서 많은 팁을 얻고,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들을 아이들과 함께 풀어나가며 즐거운 교실을 만들어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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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 9살 제윤이가 쓴 동시집
최제윤 지음 / 읽고싶은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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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한 이후 습관이 하나 늘었다. 바로 #동시집을 자주 찾아보게 된 것. 어른이 쓴 동시집도 있고 아이들이 쓴 글을 엮어 시집으로 낸 경우도 있는데 확실히 아이들이 쓴 작품의 경우 직관적이고 발랄하고 순진한 동시의 정서가 살아있어 읽는 내내 즐겁다.

 

아홉살 제윤이가 쓴 작품들을 엮어 낸 시집 [괜찮아]도 그렇게 찾아보게 된 책들 중 하나다.

 

제윤이는 2012년 부산에서 태어난 초등학생. 책날개에 적힌 제윤이 소개는 사뭇 명랑유쾌하다. 제윤이는 취미가 꽤 많은데 그중 하나가 시 쓰기. 요즘엔 보통의 초등학생들이 자기 취미를 '독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독서하기 뿐 아니라 시 쓰기 취미이신 12년생이라. 이 별난 초등학생은 이 시집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펼쳐놓았을까?

 

 

개인적으로 '시'의 가장 커다란 매력은 비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날카로운 주제 의식이나 참신한 소재 등등 뭐 다 좋지만 비유로 날렵하게 벼린 시의 가닥가닥은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감동하고 깊이 공감하게 되곤 한다. 어린이들이 쓴 동시집에서 이런 비유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그 시가 무척이나 대견하고 시를 쓴 이가 무척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제윤이가 쓴 <타지 않는 불>은 그런 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다.

"불은 아주 뜨거워. 하지만 이 불은 그런 불이 아니야. 덮으면 포근포근 따뜻하고.."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아재 개그의 일종 같지만 초등학생이 그 본연의 순진하고 따듯한 정서를 시에 담뿍 담아내고 있어서 읽는 내내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이 시집에는 제윤이가 그린 그림과 미술 작품도 함께 실려 있다. 제윤이는 '시로 쓰는 것도 재미있지만 만들어서 표현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며 '여러분도 같이 해보자'고 썼다. 제윤이가 쓴 대로 이 시집이 단순히 읽히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시집을 읽고 공감하고 동감한 많은 유년기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상과 재미를 시로 쓰거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좋은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동심에게 시 쓰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지 모른다. 시를 쓰는 그 첫 걸음, 첫 문장, 처음의 순간은 물론 어렵겠지만 제윤이처럼 자신의 일상을 흐르는 감상과 생각들, 여러가지 느낌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시로 풀어내보면 어떨까.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시집을 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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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 - 동과 서, 과거와 현재를 횡단하는 건축 교양 강의
전봉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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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사갈 집을 알아보러 동네 여기저기 신축 빌라들을 보러다녔다. 비슷한 형태에 비슷한 마감재. 집 구조와 창문 스타일마저 똑같다 싶을 정도로 흡사해서 기억 속에서 집들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어떤 집은 무엇이 특별히 좋고, 어떤 집은 이런 점이 무척 꺼려졌다는 걸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나중에는 결국 한 가지만 관찰하게 되었다.
'고'가 어떠한가?
내가 기존에 살던 주택은 지은 지 오래된 집이다. 당시의 주택 건축 유행이란 게 그랬던 모양인지 어쨌는지 잘 모르지만 이 집은 천정이 높다. 장농 위에 공간이 한참 남아서 잡다한 걸 이것저것 올려두고 창고처럼 사용했던 집이다. 집 평수는 넓지 않아도 고가 높아서 나는 이 집이 좁은 줄 모르고 살았다. 아주 작은 방이 한 칸 있었는데 거기에 누워 천정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어도 갑갑한 느낌이 든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의 건축 유행은 좀 달라졌나보다. 천정이 낮다. "지금 살고 계신 집보다 평수가 넓어서 수납도 편하고 괜찮으실거예요~"라는 공인중개사의 말이 무색하게도 가는 곳곳마다 갑갑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가는 곳마다 답답하다는 느낌을 주는 지를 알지 못했다. 깔끔한 마감재에 새로 지어 윤이 나는 내부인데도 '좁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유를 찾던 나는 우연히 우리집 장농 위를 보고 깨달았다. 아, 집은 평수도 중요하지만 높이도 중요하구나. 신축을 포기하고 지은지 몇 년이 지난 빌라들을 살펴보러 다니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건축은 나를 둘러싼 공간을 결정한다. 내가 어떤 높이의 공간에서 일상을 살아갈 것인지, 내가 어떤 너비의 공간에서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건 사실 나 자신은 아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선택할 뿐이다. 그걸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너비는 타협할 수 있어도 높이는 타협할 수 없는 나라서 구축 빌라로 찾아간 것을 두고 '결정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다. 선택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고, 그 선택지를 만들어가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이런 소시민의 입장에 대하여 [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의 저자인 전봉희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상품의 수준은 소비자가 결정한다. 안목과 구매력이 기준이다. 경제 수준만 보면 우리는 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를 넘어섰으니 구매력을 핑계 댈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안목인데, 단지 경제력만이 아니라 교양과 경험이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먹고살 만해져 좋은 건축을 소비하기 시작한 우리로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중략) 건축은 음악이나 미술처럼 골라서 소비하는 상품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신체를 둘러싸는 강제적 소비재라는 점에서 건축 교양 교육이 더욱 절박하다. - 머리말 <우리를 둘러싼 건축> 20-21쪽

 

 무엇이 좋은 건축인가, 왜 그것이 좋은 건축인가, 나는 어떤 건축물을 선호하는가. 왜 그러한 건축물을 선호하는가.
앞에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하기 어렵지만 뒤에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비교적 쉽게 답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집,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공간을 말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 아닐까. 내가 살아가는 문제와 직결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과 건축 문명 전반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대답이 서로 점차로 가까워지면 어느사이엔가는 앞에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 나만이 할 수 있는 대답도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건축'을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 교양 정도로만 취급하기에는 건축이 만든 '공간'의 영향은 너무나 압도적이다. 전봉희 교수의 말대로 상품의 수준은 소비자가 결정하는데, 건축을 소비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소비자들이 언제까지 건축에 무지한 채로 있어야만 할까.

 

 [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은 사람의 정상적인 삶에 반드시 필요한 의, 식, 주 중에서 '주'의 문명을 주제로 했다. 건축이라는 매우 커다란 주제 안에서도 '한국 건축'이라는 특정한 주제에 주목했다. 한국의 건축 문명이라고 하니 경복궁이나 오래된 사찰, 석탑 이런 것들만 이야기할 것 같지만 천만에, 전혀 아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건축의 궤적을 살펴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것이 저자와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다. 저자는 가공하기 쉽지만 내구력이 약한 나무, 썩지도 무르지도 않지만 가공하기 어려운 돌. 이 두 가지 소재로 양분되어 온 동과 서의 건축 문명을 살펴보고 한국 건축의 전통적 특징과 형태, 한옥과 주택과 아파트, 마침내는 도시 건축까지 한반도의 토지 위에 건설되어온 다양한 건축물의 역사와 흐름을 이야기한다.


건축의 역사나 현대적 건축의 특징, 우리나라 도시 건축, 세계의 건축 등 건축에 대한 다양한 교양서들이 최근에 많이 출간되었고 나도 그 중 여러 권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은 그 동안 읽었던 건축 교양서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이음새였다. 건축을 기술로 보거나 예술로 보거나, 중요한 건 건축은 일상의 소비재라는 사실이다. 건축을 기술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교양서도 재미있었고, 예술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교양서도 좋았지만 이 책은 재미와 좋음을 떠나서 무척 실용적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자 '사람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문화'라는 시선을 기본으로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니 당연 나와 연결이 된 여러 내용들이 등장해서 그럴 수밖에. 저자가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가 마음으로 와 닿는다. 혹시 긴 추석 연휴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중인 사람이 있다면, 부동산이 아니라 건축으로 관심과 시선을 돌려보라며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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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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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손원평 작가는 책 맨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아이를 낳은 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허공에 팔다리를 저으며, 누군가가 먹여주고 돌보아주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그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너무나 작은 생명체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그런데 그 눈물이 뭐였는지는 모르겠다고. 본인도 모르겠다고 한 그 감정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불러야겠다. 생명에 대하여, 어떤 소중하고 애틋한 존재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느끼는 마음.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열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나머지 과연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마음. 윤재의 할머니는 사랑을 예쁨의 발견이라고 그랬고 윤재의 엄마는 사랑을 쉼없는 잔소리라고 했다. 그 둘로부터 사랑을 받던 때에는 도무지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했던 윤재가 더 이상 둘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어진 후에, 몇 년이 지나 어른에 가까워지고 여러가지 일을 보고 들은 후에 과연 사랑을 무어라고 정의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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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몬드]의 주인공인 윤재는 타고난 편도체 이상자다. 신생아때부터 유난히 웃지 않는 윤재를, 엄마는 이상하게 여겼다. 말을 못하거나 지능이 낮거나 어딘가 신체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데 편도체가 문제였다. 선천적으로 편도체가 아주 작아서 보통 사람처럼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당연히 욕망하는 것도 극히 적다. '기분이 안 좋으니 초코케이크나 퍼먹어야지.' 따위의 말은 윤재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해도 윤재가 그 기분과 의견에 동조하기도 어렵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보니 타인의 감정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일에도 불능. 병원에서는 윤재를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고 진단했다.

 

- 복잡한 것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 범주에 속할거야.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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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의 엄마는 어린 윤재를 소독약 내음 짙은 병원에서 키우기를 거부한다. 의사들의 진단이나 제안을 뒤로하고 윤재와 함께 무한 학습에 돌입한다. 말 그대로 감정을 학습하기로 한 것. 윤재의 엄마는 윤재에게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을 교육했다. 상대의 표정이나 말에 따라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메뉴얼을 만들어 윤재에게 암기하도록 했다. 지구상에 다시 없을 감정 표현 선행 학습은 꽤 괜찮은 결과를 거뒀다. 윤재는 그럭저럭, 편도체 크기가 티가 나지 않는 정상인처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문제는 고등학생이 되고 난 후에 벌어졌다.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162

 

감정과 표현이 복잡해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윤재의 머릿속도 함께 복잡해졌다. 엄마표 감정 표현 학습은 이제 약발이 떨어졌고 윤재에게 매달려 열혈 교육을 했던 엄마도, 할머니도 없어진 세상. 윤재는 홀로 생활을 하며 자신과는 결이 다른 의미의 또 다른 불능자인 곤이와 알게 된다. 곤이의 경우는 '감정 조절 불능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윤재는 자신도, 곤이도 모두 괴물이라고 불렀으니 이 정도 진단이면 적당할 듯하다. 감정 불감인 한 사람과 감정 과잉의 또 한 사람은 마치 만나서는 안 될 연인처럼 (주로 곤이가, 아니 거의, 아니 항상 곤이가) 치고 박고 싸우다 종내는 서로를 구원하는 특이점에 이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윤 교수는 곤이를 낳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까? 그랬더라면 그들 부부는 그 애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다. 아줌마는 죄책감에 병이 걸리지도 않았을 거고, 회한 속에 죽지도 않았을 거다. 곤이가 저지른 골치 아픈 짓들도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역시 곤이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애가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목적만 남는다. 앙상하게.

새벽녘이 되도록 의식이 또렷했다.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234-235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45

 

첫 페이지부터 이 책은 어떤 걸림도 없이 술술 읽힌다. 국수로 치면 세계 최장 면발로 기네스북에 벌써 등재되고도 남았을 듯. 후기를 찾아보니 나뿐 아니라 벌써 여러 독자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본인은 웃지 않는 멀쩡한 얼굴로 남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사람이 진짜 웃기는 사람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가 그렇다. 본인은 희노애락 어떤 감정에도 무감각한 얼굴로 이야기하면서 그 이야기를 듣는 (읽는) 사람들을 희노애락의 오색창연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어쩌면 선천적으로 감정과 욕망을 느끼는 대신 성장하면서 쉴 새 없이 감정과 욕망을 학습한 사람이기에, 그런 윤재의 이야기라서 가능한 것 아닐까. 감정의 한 올, 한 올이 당연하고 쉬운 것이 아니어서 윤재는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움과 설렘, 불쾌함과 분노까지 하나씩 하나씩 감정의 조각을 낱낱이 성찰하고 마침내는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곤 깨닫는다. 보편적으로 삶의 어두움이라고 부르는 공포와 두려움, 죄책감과 회한 등 고통스러운 감정들은 기쁨과 즐거움 같은 감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편도체의 작용이든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시시각각 느끼는 감정은 타인에 공감하고 결국 행동하기 위한 도화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런 공감과 행동이 없다면 삶은 가짜가 되고 모든 것은 의미를 잃는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손을 조물거리며 덧붙였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 줘서 고마워. 어딘지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날들이 있는 거다.

59

 

이 책의 결말을 장식한 윤재의 변화를 본 후에 책의 앞부분을 다시 읽으면 그저 놀랍다. 엄마의 사랑 표현을 식상하지만 해야 하는 의례로 받아들이는 윤재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톡톡히 체험한 후의 윤재는 마치 윤재AI와 윤재 본체처럼 비슷한 듯 다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결말까지 다 읽은 후에 이 부분을 곱씹어 읽으면 윤재의 자세가 처음 읽을 때와는 사뭇 달리 보인다. 엄마의 사랑을 자신이 습득한 매뉴얼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던 윤재의 속에 사실은 엄마의 저런 말이 기쁘지만 쑥스러운 남자 아이의 쭈뼛거림이 있었던 거구나, 싶은 그런 뇌피셜이 생성되는 거다. 독자는 엄연히 감정이 있기 때문에(심지어 아주 풍부하기 때문에) 감정에 따라 윤재가 달리 보인다는 점, 참고해주시길.

 

***

윤재의 짧은 생애를 지켜본 후 '감정의 전이력'이라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감정은 아주 강력하게 전이된다. 짜증은 짜증을, 두려움은 두려움을, 분노는 분노를 전파한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는 속도는 감정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으로 침투하는 속도에 비하면 마치 달팽이와 전투기 차이랄까. 감정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전이된다. 그러므로 '사랑이 모든 걸 이긴다.'는 얼핏 황당해 보이는 이 말은 진리일 수밖에 없다. 사랑은 사랑을 전파하고 한 번 뿌리 내린 사랑은 그 어떤 감정보다 강력하게 사람의 생을 지배한다. 사랑이란 어떤 감정의 한 가닥이 아닌, 위에 썼듯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희열 등 여러 감정의 결로 짜 만든 감정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행동이 동반되지 않으면 가짜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진짜 감정이다.

 

감정의 본래 역할을 고려하면 감정 불감이나 감정 과잉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행동할 수 없거나,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의 차이이므로 그렇다. 정말 필요한 공감을, 정말 해야 할 행동을 적재적시에 할 수 있는 능력.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런 능력을 처음부터 다시 학습해야 하는 것 아닐까. , , 를 공책에 쓰며 언어를 깨우쳤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이 감정을 학습하고 꾸준한 반복과 체험을 통해 사랑이라는 만랩에 도달해보면 어떨까. 엄마의 사랑에 적절한 말 한마디 뱉지 못했던 윤재가 (외부로부터 주입된 학습이 아닌) 스스로 미안함을 느끼고 미안한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건 행동에 나서고 그 행동이 가져온 위험을 감수하고 난 후에 비로소 '느끼게' 되는, [아몬드]의 여정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사랑을 학습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비록 소설의 인물을 보며 느낀 점이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소설은 가장 예리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 아닌가.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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