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세 영어 말문을 트는 결정적 순간 - 아이와 교감하는 영어 그림책 학습법
오로리맘 지음 / 넥서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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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영어유치원이 있다. 금발의 외국인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건물 입구를 드나드는 모습을 종종 본다. 아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부모님과 함께 등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리곤 금발의 선생님 앞에선 영어로 인사를 한다. 퇴원하는 길에도 마찬가지겠지. 방금 전까지 영어로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퇴원을 하는 그 길부터는 한국어로 말한다. 나로서는 아이들이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미취학 아동의 나이서부터 생활의 일부로 영어를 받아들인다면 아무래도 당연히 영어라는 기술을 보다 수월하게 습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물론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전체가 영어라면 당연히 영어를 깨치는 속도도 빠를 터이나 그러려면 정말 영어권 국가로 이민이라도 가야 한다. 그러기가 어려우니 사정이 허락하는 부모님들은 수백만원의 비용을 대서라도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과연 그 길 밖에 없을까? 최초의 언어인 제1언어를 깨우치기 시작하는 나이, 그러니까 0~3세 나이의 영유아라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이중언어'의 사례가 얼마든지 존재하니까. 그러나 한국인 부모의 자녀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면서 한국어와 영어를 이중언어로 사용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부모의 무리한 욕심은 아닌가? 아이에게 부작용은 없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답하는 이 책 [0~3세 영어 말문을 트는 결정적 순간]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 책은 오로리를 낳고 돌보는 엄마이자 영어 교육에 몸담았던 교육자이자 학자로서의 저자의 도전을 담은 기록, 이중언어 습득에 대한 실험이자 경험을 오롯이 기술한 보고서다.


0~3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관심만 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읽어보면 유익하기까지 할 것이다. (워킹맘이라면 아마 유익하다는 말로는 모자랄 수도 있다. 빠듯한 시간을 내어 일하면서도 아이와 끈끈한 소통을 유지해가는 노하우가 들어 있다) 그러나 영어 습득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유익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좋은 영어그림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풀어놓고 그에 따라 선별한 그림책까지 소개하니, 영어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좋겠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몸이 자라고 나이에 따라 소속과 행동 양상이 바뀌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아이는 끝없는 소통을 통해서 성장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태어난 이후부터 계속 주변 사람과 사물을 통하여 자신이 처한 환경 즉 가정과 사회와 나라 전체의 사람과 문화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 한다. 소통이 없으면 습득도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정 개월수가 지나면 어떤 아이라도 자연스럽게 제1언어를 내뱉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양육자들과의 소통, 긴밀한 교감이 없으면 언어는 쉽게 트이지 않는다.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소통의 도구를 체득하고 그 기술을 익혀가는 시간이자 그 언어에 담겨 있는 해당 사회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제 막 한국어를 깨치기 시작한 오로리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되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다. 나의 말에 상대가 반응을 보이고 상대의 말에 내가 반응이 있어야 살아있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한국어든, 영어든 양육자와의 규칙적이고 따듯한 소통은 아이가 효과적으로 언어를 익히도록 해준다. 또한 언어는 문화의 일부다. 아이가 교과서에 나오는 경직된 언어가 아니라 또래의 영어권 아이들과 같이 살아 있는 영어를 익히려면 아이에게 영어권 문화를 경험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도입에서 '마더구스'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출발한다. 그리고 이에 기반하여 왜 영상이나 다른 매체가 아니라 그림책으로 영어를 가르쳤는지도 이야기한다. 사람의 뇌는 연상을 하고 상상을 한다. 그림책 앞에서 아이는 눈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엄마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받아들인 시청각의 자극은 아이의 머릿속에 남아 연상과 상상으로 이어진다. 이 연상과 상상의 작용은 아이가 그림책을 보지 않을 때에도,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에도 계속 힘을 발휘한다. 엄마와 함께 읽은 그림책 속의 일들이 아이가 혼자 노는 동안 아이에게 장난감이 되어주고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는 아이와 엄마 사이의 긴밀한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이러한 그림책의 역할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 그림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림책 활용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겠으나 아이가 영상에 익숙해지기 전에 그림책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유아들에게 영어를 교육했던 경험과 저자 본인의 탐구, 실제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서 엄마로서 체험한 실전 육아의 경험치가 한데 어우러져 이 책이 나왔다. 손에 쉽게 잡히고 편하게 읽히는 책 한 권이지만 이 내용이 완성되기까지 저자의 평생에 걸친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처음 영어를 접했던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체험한 것들이 오로리에게 영어 그림책을 가르치는 노하우가 되었고 오로리는 지금 자연스럽게 영어가 되는 아이로 성장하는 중이다. 어려운 도전에 나서서 그 도전에서 얻은 것들을 아낌없이 공유해준 저자에게 박수를, 오로리에게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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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의 국어책 - 글쓰기가 쉬워지는 문법 공부!
이재성 지음, 이형진 그림 / 들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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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국어를 '공부'한다는 게 마뜩치 않았다. 이미 읽고 듣고 말하고 쓰고 있는데 여기서 뭘 더 공부를 해야 한단 말인가? 의사도 충분히 소통하고 있고 읽지 못하는 책도 없고 쓰지 못하는 것도 없는데 도대체 국어를 뭘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그래서 국어 수업 시간은 늘 지루했고 국어 시험은 꽤나 만만했다. 하아.... 그렇지. 뭘 모르니까 이런 생각을 했다. 다들 이런 철없고 멍청한 시기를 한번쯤 보내면서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국어를 이토록 만만하게 보던 잼민이는 그래서 언제 어른이 되었냐고? "세상에, 맙소사! 국어가 진짜 어려운 거구나!"하고 화들짝 놀라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아니, 국어를 대충 쓰면서 어른 흉내를 내다가 형편없는 자기 자신의 국어 능력을 마주하곤 황급히 겸손해졌다고 해야 맞겠다.


누구나 자신의 모국어를 깊이 공부해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언어는 곧 그 사람 자신이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곧 그 사람의 영혼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언어는 영적인 것이라,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규모가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크기가 되는 것이다. 언어를 열 평 정도 밖에 못 쓴다면 그 사람 즉, 그의 정신과 영혼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도 열 평 정도이겠고 만 평 규모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크기대로 넓고 깊은 세계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난 이후에, 그러니까 더 이상 국어교과서가 없는 나이가 된 이후에는 무엇으로 국어를 공부할까?


서점에는 국어를 더 잘 하고 싶어하는 성인들을 위한 다양한 책들이 있다. 특히 글쓰기 안내서는 정말 정말 말도 못하게 많다. 최근에는 특히 글쓰기 관련한 책들이 더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다. 개인이 SNS에 자기 매체를 한 두개 이상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한 시대이니, 자기표현 즉 글쓰기를 효과적으로 잘 하고 싶어하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 그러다보니 별의별 글쓰기 비법들이 다 등장하고 이 중에 진짜 괜찮은 책을 찾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맛집 중 최고는 원조다. 2006년 초판 1쇄를 출간한 후 국어 문법책으로서의 최고 입지를 다져온 [4천만의 국어책]이 이번에 전면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다. [5천만의 국어책]이 바로 그 책이다.


글을 잘 쓰려면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기본은 문장이다. 문장은 글을 이루는 최소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문장을 잘 쓰기 위해서 문법에 집중한다. 좀더 정확한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단어와 소리에 관한 규칙도 다룬다. 저자가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할 때,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어떻게 하면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흐름과 예시 등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재처럼 쉽고 직관적이다.



360페이지가 넘는 도톰한 책이지만 무척 속도감 있게 읽힌다. 일단 정말 재밌다. 문법을 주제로 한 책이기에 다소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 독자의 발목을 잡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문법을 세밀히 안내하는 내용은 친절하고 일러스트는 유쾌하다. 문법 설명이 이어지는 문단을 징검다리처럼 밟아가다 감초같이 나타나는 일러스트들을 보면 이해도 더 잘된다. 내 경우에는 띄어쓰기를 설명하는 부분을 특히 정독했는데,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열어 볼 예정이다.


책 맨 뒤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랑말랑하고 쓸모 많은 국어 문법책'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문구에 100% 동의가 된다. 이렇게 쓸모 많은 국어 문법책을 이제야 만났다니!!! 4년 전에 교원자격증 과정을 공부했는데, 그 때 이책을 곁에 두고 공부했다면 당시에 느꼈던 문법 이해의 어려움을 이 책이 많이 덜어주었을텐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만나 얼마나 다행인가.

글이 짧을수록 문장은 더 중요하다. 정확하고 정교한 문장,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오늘이라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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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1
정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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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라고?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나는 어차피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안 할거라 출산율이 마이너스를 찍어도 별 상관 없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이 책을 적어도 3번 이상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와 아무런 연관이 없이 살고 있지만 초저출산율을 걱정 하고 있는 사람 역시 이 책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출산율이 왜 공포인지, 이 출산율이 알려주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부실과 실패를 이 책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은 대한민국이 마주한 이 위기를 기회라고 말한다. 정부의 태도, 복지 정책, 사회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변혁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기회인 것이다. 복지, 교육, 노동 등 개인의 일생의 변곡점마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없다면 출산율 반등도 없다. 0.6 출산율은 단순히 청년들의 결혼, 출산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개인이 만족하고 안심하며 살아가기에 부적합한 나라라는, 사회 전반의 총체적 부실의 결과가 출산율 0.6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초저출산의 원인들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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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전 시대에서 아이는 자산이었다.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건 경사였고, 여성이 목숨을 걸고 낳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사회에서 아이는 투자의 대상이다. 이제 부모는 아이의 양육 부담을 지지만 아이는 노인이 된 부모의 여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아이를 기르는 데에 필요한 비용은 크게 늘었는데 그 비용은 회수가 안 된다. 여기서 돈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돈 하나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 건 아니다.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기를 수가 없다. 정확히는 부모가 맞벌이로 일을 하고 있을 동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다. 여기서 교육(돌봄)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매우 긴 나라다. 무려 OECD 주요국 중 1위다. 일하는 시간이 제일 긴 나라. 그러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는 현실이 더욱 치명적이다. 엄마의 독박육아를 해결하고 아빠의 정당한 육아휴직이 사회의 당연한 문화가 되려면 노동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그간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은 더이상 정부를 신뢰하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정부가 '출산은 좋은 일이니 이렇게 하시오.'라고 이끈다고 해서 개인이 정부의 리드에 따르는 시대는 갔다. 개인은 개인의 행복이 최우선이다. 정부가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 체제를 펼쳐놓지 않으면 개인은 절대로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도전도 할 수가 없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비용, 교육, 노동문제가 절대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다.


근데 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비용 부담이, 교육 과정이, 노동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도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출산의 주체는 여성이다. 여성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감당할 만한 일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을 불리하게 만드는 현재의 인식이 계속된다면 제아무리 제도와 정책 지원이 쏟아져도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남성들의 주도권이 여성들에게 넘어갔다는 의미에서 신모계제를 언급한다.

그러나 신모계사회는 독박 육아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 선택하는 현실적 대안일 뿐 부계 혈통주의의 변화가 아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부계혈통주의는 공고하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 내 성을 주지 못하는 이 생활을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것, 그만큼 가부장적 사회, 남자 중심 사회, 부계혈통주의가 우리 의식 속에 그대로 있으면서 여성의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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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을 불러온 여러가지 원인 중에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것을 '비용 문제''성평등'을 짚어낸 저자는 이 책에서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다. 저출산율을 우리보다 먼저 경험하고 사회 전반의 개혁과 변혁을 통하여 출산율 반등을 달성한 서유럽 국가들의 선행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는 복지 지원을 혼인 중심 가족이 아닌 아이 중심 가족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결혼한 부부를 기준으로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이미 있는 집, 아이가 몇 개월 뒤에 태어날 집 등 아이를 기준으로 복지 지원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아와 초등학생 돌봄을 통합하는 일이나 아빠의 돌봄 참여 확대 등도 함께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국가들은 짧게는 70여 년, 길게는 10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서야 막, 문제 해결에 나선 입장이다. 어떤 뉴스들은 '저출산 해결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자극적인 기사로 정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뭐 대단하게 쏟아부은 건 또 아니라고 실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진짜 쏟아부어야 하는 건 지금부터인 것이다. 복지 정책에, 교육과 노동 환경 개선에, 성평등 인식 개선에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들여야 하는 건 이제부터다. 그리고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쏟아야 하는 것은 정부와 공공 기관만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개개인도 저마다 투자와 지원에 나서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꼽은 가장 시급한 두 가지 중 하나인 '성평등'은 정부의 시책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한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혼이자 미혼인 내가, 출산과 육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가 이 책을 굳이 애써 읽고 공부하는 이유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대한민국의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전체의 일이다. 저출산 문제는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일터와 사회, 내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를 바꿔놓을 일이다. 그러니 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려면 구성원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맞다.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공공기관은 공공기관의 역할을, 기업은 기업의 역할을, 개인은 개인의 역할을 다하면 바꿀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그 역할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한다.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2006년부터 시행하였다. 기본계획에 기반하여 도입한 정책들이 소용없다는 속단은 금물이다. 가족정책 영역을 돈, 시간, 서비스로 나눠 세 영역에서 모두 예전에는 없던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러한 복지제도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서유럽 복지국가가 짧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길게는 19세기 말 산업혁명기부터 100여 년 넘게 구축해온 복지제도를 우리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20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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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케이크 - 일상을 특별하게
이채리(쳐리) 지음 / 경향BP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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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단 몇 년 사이의 변화인 것 같다. 눈으로만 봐도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케이크샵들이 부쩍 늘었다. 어릴 때 미국이나 유럽을 배경으로 한 동화책에서나 등장했던 사랑스러운 컬러와 장식의 케이크들을 한국의 케이크샵에서 보게 되다니.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케이크 위에 크림으로 그림을 그리는 레터링케이크나 크림으로 꽃을 짜 만든 케이크도 예쁘지만 그래도 제일 내 취향은 빈티지케이크 쪽이다. 다양한 모양의 깍지로 갖가지 장식을 짜 넣은 것도 예쁘고 과일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을 올린 것도 넘 예쁘다. 빈티지케이크는 특히 드레스에서 옮겨온 것 같은 리본이나 프릴 장식을 케이크에 넣어 여성스럽고 화려해보인다. 아마 이런 포인트가 빈티지케이크 매니아를 만드는 게 아닐지.


빈티지케이크의 제작 기법이나 디자인을 참고하고 싶다면 보기 좋을 책이 나왔다. [일상을 특별하게, 러블리케이크]는 14만 팔로워의 인플루언서, 쳐리의 케이크 레시피 및 디자인북이다. 유튜브와 인스타에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문구브랜드 런칭, 케이크 팝업 운영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콘텐츠 제작을 넘어서 온오프에서 복합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저자와 같은 이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주인공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고 의미있다. 문구와 케이크라니, 너무 신선하잖아.




러블리케이크 책 안에는 기본적인 베이킹 안내와 크림 제조와 장식짜기, 케이크 완성 디자인까지가 안내되어 있다. 케이크 시트 제조법이나 크림 깍지 모양 안내, 케이크 제작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나 팁과 저자만의 노하우 등이 들어있으니 예쁘고 완성도 높은 케이크를 제작하길 원한다면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과일케이크는 뭐든지 다 맛있겠지만 멜론케이크는 너무 기대가 되는거지. 멜론은 위에 장식으로 얹어진 것만 먹어봤지 속에 멜론만 채운 케이크는 아직 먹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멜론케이크를 봤을 때 예쁘기도 예쁘지만 무엇보다 맛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로투스케이크나 라즈베리케이크도 언젠가 꼭 한 번 만들어서 맛을 봐야지 싶었다. 라즈베리잼은 원래도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생크림하고 같이 먹으면 훨씬 더 맛있어지더라고. 라즈베리케이크 색이 워낙 예쁘기도 예뻐서 친구 생일선물로 찜해두었다.


여름이라 빵인 케이크보다는 아이스크림케이크가 더 인기라고 하는 계절이지만, 차가운 아메리카노에 시원한 케이크 한 입을 같이 먹어본 사람들은 이 맛을 알지.


일상을 행복하게 하는 예쁜 케이크를 가득 담은 책 덕에 눈도, 마음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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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후드 -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캐스린 바워스 지음, 김은지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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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이 시를 배울 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나비는 과연 몇 살일까? 영아기, 유아기, 유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장년 그리고 노년으로. 모든 생물체의 생애 경로가 있다. 그렇다면 이 나비는? 수심을 모르는 바다를 청무우밭이라고 보고 뛰어든, 무모하고 무지하고 미숙한 이 나비야말로 '와일드후드' 그 자체구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청소년기를 종합해서 분석한 [와일드후드]라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청소년기 생물의 특징과 잠재력을 단 몇 개의 단어로 꿰뚫은 이 시를 떠올렸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다시 읽어도 너무 좋잖아. 누구도 흰나비에게 바다의 수심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를 배운 적이 없는 흰나비는 바다의 광포함을 직접 경험하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덕에 흰나비는 바다를 배웠다. 생존! 만약 흰나비가 날개가 물결에 절은 정도가 아니라 익사해버렸다면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을 얻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와일드후드]는 왜 청소년기의 생물들은 무모하고 저돌적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와, 위험해 보이는 곳에 냅다 뛰어드는 건 인간 청소년들만이 아니구나.


수백 마리의 백상아리가 헤엄치는 차갑고 삭막한 죽음의 삼각지대 안으로 돌진하는 위대한 멍청이는 바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해달이었다. 물론 무시무시한 상어 이빨이 순식간에 지나가면 피의 소용돌이와 함께 목숨을 잃는 해달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대개 스릴을 즐기는 ‘10대’ 해달들은 죽음의 삼각지대를 무사히 건너 피가 되고 살이 될 값진 경험과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다 물정에 밝은 독립적인 청년기 해달로 거듭났다.

13쪽


성인이 된 이후의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우리는 대부분 위험을 피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마치 고생을 사서하려 하는 건 미련하고 무모하고 무지한 태도라고 평가하는 것처럼. 그러나 [와일드후드]의 저자들은 10대 해달들이나 하는 죽음의 삼각지대로 돌진하는 멍청한 짓은, 생존하기만 한다면 성장과 성숙의 바탕이 된다는 걸 말한다. 그렇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어제와 다르기를 바라는 건 정신병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독설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큰 위험을 무릅쓰면 큰 결실을 얻는다는 사실을. 청소년 시기는 바로 이와 같은 정설과 이론을 체험으로 학습하는 시기인 것이다. 특히 그 전까지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가 난생 처음으로 혼자서 도전과 여정에 뛰어들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위험은 더욱 증가하고 청소년 본인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태에 놓이지만 생존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값진 결실을 얻는 시기이기도 하다.



청소년기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때까지 지속된다. 실제로 몸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 되려면 청소년기가 매우 중요하다. 자연에서 청소년기의 보편적인 목적은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다.

25쪽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단어는 흔히 같은 뜻으로 쓰인다. 물론 관련어이긴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다르다. 사춘기는 생물학적 과정을 뜻한다. 호르몬에 의해 시작되며 동물이 생식 능력을 갖추면서 끝이 난다. 사춘기는 신체적 발달만을 포함한다. (중략)


동물 종마다 세세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사춘기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순서는 놀랍도록 닮았다. 벌새와 타조, 큰개미핥기, 미니어처포니는 모두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달팽이와 민달팽이, 바닷가재와 굴 그리고 조개, 진주담치(홍합), 새우는 거의 똑같은 호르몬이 사춘기의 시작을 알린다.

23쪽



지구의 청소년들이 걸어온 그리고 걷고 있는 성장의 역사를 추적한 두 저자는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개념을 분리하여 정리한다. 청소년기는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시기, 사춘기는 신체의 특정한 발달을 말한다.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동물들의 사춘기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이다. 동물들의 사춘기를 결정하는 호르몬이 서로 닮아있거나 같다는 건 지구의 동물들이 신체적으로 유사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여러 동물들의 사춘기, 그들 각기의 질풍노도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질풍노도를 보다 효율적이고 가치있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이 책의 시작이자 이 책이 품은 진주다.



와일드후드에 나타나는 4가지 주요 어려움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중략)


-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

- 어떻게 성적 소통을 할 것인가

-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28쪽



생물학자들은 생존하고 번식해 있는 새끼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펭귄, 하이에나, 고래, 늑대의 성숙을 측정한다. 이 기준을 인간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번식으로 성숙을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사회적 위계질서에 적응하고 성에 대해 정중하게 의사 소통하고 자립의 성취감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지다. 이와 같은 중요한 와일드후드 생존 기술 4가지를 습득하면 더욱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전문적, 일반적 성공은 물로 개인적, 사적 성공까지 이룰 수 있다.


모든 와일드후드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큰 가르침을 얻곤 한다. 그러나 수억년 동안 다양한 동물 종이 공통적인 4가지 어려움이 겪어온 만큼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는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인간이 마주한 난제의 해결책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분야를 ‘생물열감’이나 ‘생물모방’이라고 하는데, 진화의 세월 동안 지구상의 동물 종이 근본적으로 같은 압박을 받아왔다는 지식을 전제로 한다.

386-387쪽



이 책은 4종류의 청소년 동물들을 추적한다. 남극 사우스조지아섬에서 태어난 킹펭귄 우르술라, 탄자니아 응고롱고로산에서 살던 점박이하이에나 슈링크, 도미니카공화국 근처에서 태어난 북대서양혹등고래 솔트, 유럽 늑대 슬라브츠. 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대면한 적 없는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고 무리 내의 지위에 적응하고 원만한 성적 소통 기술을 익혀가며 청년이 된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저자들은 청소년 인간들이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겪는 각종 위험과 위협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 교차점에서 우리는 포식자로부터 벗어나 생존을 확보하는 법,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법, 이 사회에서 나의 역할과 몫을 확보하고 그를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법, 마침내는 진짜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책임져 나가는 법의 비결을 엿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들은 청소년기가 단순히 신체적인 발달에 따른 시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특히 인간, 번식으로 그 성숙을 가늠할 수 없는 동물종인 인간에게 있어 청소년기란 신체의 나이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한다. 무엇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 그것에 어느 정도 숙달해 나갈 때,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시작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를 때, 즉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과 위협이 밀려들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그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청소년기란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생존하고 성숙하기 위하여 애쓰는 동물들의 이야기들이 내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청소년기를 통하여 내가 얻을 수 있는 힌트들을 얻어보고자, 나는 이 책을 공들여 읽었다.

책 표지에는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데 이 말이 참 좋다. 날것들은 위험과 도전을 경험한 후에야 성장한다. 지금도 내 안의 어느 부분, 내 일상의 어느 부분인 청소년기가 이 책에서 얻은 비결 덕분에 그 성장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보다 원만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와일드후드의 보편성은 신체적, 정신적 발달 너머까지 적용된다. ‘청소년기’란 생명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는 탄생에서부터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 단계라는 게 있다. 이 시간 단계에서는 시작의 무한한 가능성이 성숙에 이르기 위해 현실과 책임으로 대체된다. 기업이나 창의적 프로젝트, 인간관계, 직장, 학업, 정치 운동, 정부, 국가도 모두 마찬가지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려우며 고통스럽고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시작이 제일 쉬운 단계다. 출생이나 출시,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와 새로운 성공을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다.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마라톤을 시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진짜 결과는 달리기를 시작한 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몸이 힘들어지거나 경쟁 상대를 가늠하고 앞서나가기 위해 다툴 때 결정된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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