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모여 운명이 된다 - 인생을 살아가는 힘에 대하여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유윤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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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그동안 자신의 욕망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머리를 써서 오늘날의 풍요로운 물질문명 사회를 이루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이런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많은 것을 만들고, 많은 것을 소비하고, 많은 것을 폐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아까운 일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현재 경제 시스템은 그래야만 규모가 커지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책 [마음이 모여 운명이 된다] 66쪽, 제2장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중에서


과연 이러한 욕망으로 굴러가는 전차가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욕망에서 기인한 발전과 발달의 한계는 언제일까? 우리의 생각보다 그 한계가 빨리 오게 된다면, 인류에게 아니 지금의 문명에게 미래는 있을까?


전설적인 교세라 창립과 경영으로 유명한 이나모리 가즈오가 대학 및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나모리 아카데미 심포지엄의 강연자로서 전한 내용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 [마음이 모여 운명이 된다]는 감성적인 책 이름 탓에 얼핏 잔잔하고 보드라운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책인듯 보이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네 마음을 스스로 굳게 다스리고 수련하면서 너의 인생을 경영해가라'고 하는, 속된 말로 dog빡센 내용이 이 예쁜 책 안에 담겨 있다.


젊은이들에게 성심을 담아 전하는 저자의 조언이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된다. 책 첫 페이지부터 지금의 풍요 혹은 풍요에 지나쳐 낭비가 만연한 세태에 도전이 되는 말들이 가득하다. 부족한 것이 없어 안주하는 세대, 역경에 도전하고 장애를 뛰어넘으려는 기풍이 비교적 부족한 시대, 편안함에 안주하는 사람들. 1932년생인 저자가 직장생활을 하고 창업을 하던 그 때에는 오히려 모든 것이 부족하기에 투쟁심과 창의력과 활력이 생겨났다는 경험담이 펼쳐진다. 이쯤되면 책의 서두부터 '꼰대의 고리타분한 이야기'인가 싶지만 전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증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말대로 이루어진 실제가 있는 진짜배기다. 실제는 없이 말만 가득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란 뜻이다. 투쟁심을 발휘할 상황, 어려운 일에 도전하겠다는 결의에 찬 행동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우선 책을 읽어서라도 헝그리정신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익히길 권하는 저자의 말이 진정성 있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마음에 품은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결과가 쌓여 오늘의 여러분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의 발전도 그렇습니다. 모두 인간의 요망을 토대로 좀 더 편리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결과 탄생한 것들입니다.

책 79쪽


인류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이기심에만 끌려다닌다면 현대 문명은 아마 반세기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책 83쪽


내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이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사고방식'을 의미합니다. 즉, '일과 경영에 왜 사고방식이 중요한가'를 이해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중략)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날마다 깨닫는 것은, 역시 인생이란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121-122쪽


'생각하는 대로 살게 마련이니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성공 생각을 하며 살아라.'는 그런 뻔한 책이었다면 나는 책을 중간에 덮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냥 생각이 아니라 인생 전반의 기본 축이 되는 철학을 가질 것을 말한다. 이때의 철학은 이타심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나 남이 해를 입든 말든 가리지 않는 비열한 마음과 태도는 개인의 인생 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강연자(저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강연 내내 나 자신의 안위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안목과 이타심,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은 철학은 설령 어느 한 지점까지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몰락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지금 이나모리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현대 문명의 한계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을 가르치고 확산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의 말미에 현재 이나모리 연구센터의 방향성과 추진하는 일들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이 내용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타심'으로 충만하고 '족함을 아는' 사람들을 양성하기 위도한 센터라니, 그 목표와 활동 내용에 공감과 지지를 보낸다.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들과 비슷한 내용이 많고, 저자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매우 동질감을 느끼다보니 거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번씩 인덱스 스티커를 붙여놓게 되었다. 형형색색 날개가 달린 듯한 모양이 된 이 책. 휴가 때 꼭 다시 꺼내서 차근차근 또 읽어야겠다.

인류가 이 사실을 무시하고 이기심에만 끌려다닌다면 현대 문명은 아마 반세기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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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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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작동하는 자연의 섭리를 지켜보노라면, '완벽'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어떤 쓰레기도 남기지 않으면서, 어느 한 군데 어그러짐 없이, 최고의 효율과 최대의 효용을 보여주면서 자연은 움직인다. 저자의 말처럼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언제나 일을 해낸다(책 47쪽). 화재로 잿더미가 된 들판은 누가 애쓰지 않아도 어느 새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곤충과 새들이 찾아든다. 용암이 들끓어 생명체들이 사라졌던 바다에도, 아주 작은 미생물부터 거대한 포식자들까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돌아온다. 이 '자연'이라는 말이 얼마나 크고 기적같은 말인지 이 책을 읽으며 실감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환경보호 운동가인 엔리크 살라가 쓴 책이다. 환경 운동계에서는 무척 유명한 인물이지만 나는 이런 유명한 인물을 잘 알지 못한다. 자연과학에도 꽤 무지한 편이라, 동물이니 식물이니 생태계니 하는 주제들에 대해 읽는 것은 좋아 하지만 굳이 찾아 읽는 편은 못된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계기는 순전히 이 책의 표지 때문이다. 바다짐승, 산짐승, 나비, 꽃, 온갖 식물들이 모여 있는, 마치 휴양지에서 봤던 열대의 셔츠 무늬같이 화려한 표지 한 구석에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나는 이 질문이야말로, 지금 지구촌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인류가 같이 고민해봐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할까? 지구상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 900만 종의 생물들, 아직 채 발견되지도 않은 미생물들과 균들, 온갖 풀들, 나무들,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새와 짐승들 그리고 이들이 사는 숲과 산과 바다와 강과 사막과 도시. 인간이 길들여 곁에 두는 반려 식물이나 동물 혹은 식용으로 키우는 가축 외에 사람의 손길을 타지않은 이 야생의 존재들은 과연 인간에게 무슨 가치가 있나? 이 야생의 삶과 인간의 삶은 과연 어떤 영향을 주고 받나? 인간이 굳이 수고를 해서 이 야생을 보존하고 보호해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한다.


(보르네오의) 기름야자는 전 세계 도시에서 식용으로 소비되겠지만, 인간은 그 대가로 생태계에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책 64쪽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내 친구 대니얼 폴리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마치 폰지 사기꾼처럼 지구를 운영하고 있다. 폰지사기꾼은 <투자자2>의 자본을 <투자자1>에게 지불하고 수익금을 지불한 것처럼 가장한 다음, <투자자2>에게 수익금을 지불하기 위해 <투자자3>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폰지 사기는 <속아 넘어갈 새로운 투자자>가 존재하는 동안에만 작동한다. (중략) <파괴할 숲>과 <고갈될 어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기반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마지막 자원까지 탕진할 필요는 없다. 소비는 계속 증가하지만, 지구와 그 안의 다른 생물들의 개체 수는 그렇지 않다.

책 199쪽


자연 생태계의 경이로움을 알려주는 책은 무척 많다. 당장 자연과 생물, 과학을 주제로 집필된 혹은 그 분야의 저자들이 집필한 책을 검색하면 아마 검색 결과의 끝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저자의 표현대로 '지구 생태계의 압도적인 기적'에 대해 서술하는 책은 맞지만. 그것 뿐이라면 이 책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과 비슷한 감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자연의 경이로움, 그 정확하고 틀림없는 작동 방식과 결과에 대해 저자가 전 생애에 걸쳐 경험하고 연구해온 내용이 이 책에 실려 있는 것은 맞으나, 저자는 자연의 경이를 이야기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경이로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가 마법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책 86쪽)'는 저자의 말을 빌려야 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군데를 메모해 두었는데 그 중 단연 인상적인 문장은 이 말이었다. 생태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문명을 이루어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발달시켜온 인간이라 해도 생태계의 한 켠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상, 그 영향을 받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자연의 작동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자연을 다스리고 이용하고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명체 역시 그 생태계의 일부로서 함께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논문과 연구 결과, 갖가지 이슈와 사례를 통하여 자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독자에게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주지시킨다. 생태계의 작동 방식을 거울 삼아 인간이 현재 직면한 문제를 비춰보기도 하고, 생태계의 어떤 현상이 인간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자연을 신성시하지 않는 동시에 야생을 폄하하고 멸시하지 않으면서, 기적 그 자체인 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동화된 저자의 통찰과 철학이 이 책에 녹아 있다.


저자는 지난15년 동안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상주탐험가로활동하면서, 온전하고 완벽하게 기능하는 생태계를 엿보았다고 했다. 극지방에서부터 온대 바다, 열대 지방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곳을 탐험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그는 '우리 주변에 이 모든 종들이 왜 필요한지'를 지극히 이성적인 수준에서 최고의 영적 수준까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과연 이 영적 수준에서 이해한 내용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한 가지 질문에 이끌려 읽기를 시작한 책인데, 다 읽고 난 후에 더 많은 질문을 해보게 되는 책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다.



우리는 지능이 더 높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생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우리의 지성과 공감을 사용하여, 다른 모든 생물의 존재할 권리를 보호해야 할 때다. 그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금전이 아니라, 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경외감과 경이로움이어야 한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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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그루의 나무 - 다시, 지구를 푸르게
프레드 피어스 지음, 마르코 김 옮김 / 노엔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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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어제, 밤잠을 설쳤다. 밤이 늦도록 인터넷을 뒤지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뉴스나 sns를 새로고침 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이 재난이 언제 사그러들지 마음을 졸였다. 산불이 경상북도를 집어 삼켰다. 정말 문자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 산천초목 속에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 가축들 그리고 사람들. 엄청난 수의 이재민과 그들의 삶의 터전. 신라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역사, 그 시간들을 증명해온 우리의 문화재들을 집어 삼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불길이 잡혔다. 149시간 만에 산불을 잡았다고 했다. 새까맣게 재만 남은 산 둔덕 사진이 처참하다. 그래도. 너무나 슬픈 마음이지만 우리에게는 땅이 남아 있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우거지고 온갖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그 땅. 그렇다. 땅만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땅만 있다면 자연은 어떻게든 다시 그 위에 숲을 건설한다. 인간을 위해서? 아니.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이다. 자연 스스로의 의지로,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불타버린 산림을 재건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계획과 실행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계획과 실행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마어마한 자생력을 가졌지만 인간이 보기엔 느린 자연의 호흡을, 인간이 어떻게 맞추어갈 것인지 아닐까. 3월의 끝자락에서 [1조 그루의 나무]라는 책을 읽게 된 건 참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1조 그루의 나무]라는 책은 프레드 피어스라는 영국의 저명한 환경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다. 저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환경 분야를 직접 취재하고 연구하며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써왔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이라는 상당한 시간 동안 몸으로 부딪혀 직접 보고 듣고 겪어온 지구촌의 환경 문제들에 대한 연구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해결 방안으로 산림 조성(책 속에서는 조림이라고 한다)이 꼽히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사람이 아무데나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드는 행위'가 과연 정말 지구와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를 묻는다.


벌목은 부유한 국가들의 열대림 훼손 공모 스토리의 일부분일 뿐이다. 벌채의 많은 부분이 주로 대두, 팜오일, 고무, 코코아와 같은 작물을 기르기 위한 플렌테이션이나 혹은 쇠고기 육우를 기르기 위한 땅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작물들은 일반적으로 급속하게 확장하는 글로벌 마켓 공급을 위해 재배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햄버거로 열대림을 먹고, 신발로 열대림을 누비며, 우리가 사용하는 프린터 속으로 열대림을 공급하고, 열대림 비누로 몸을 씻고, 빵을 만들어 열대림을 뿌려대고, 고무를 채취해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대규모 상업적 농업을 위한 토지 수요는 열대지역에서의 산림훼손 중 적어도 2/3의 원인이 된다.

132쪽 [1조 그루의 나무]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의 대부분은 산림 훼손에 큰 지분이 있다. 내가 뭐 특별히 산림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먹는 것, 내가 쓰는 것, 내가 신고 입는 것들이 산림훼손의 결과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행위로 산불이 이토록 크게 나서 경북 일대가 전쟁터가 된 지금의 사건은 꿈속에서조차 복장이 터지고 슬프다.) 저자는 나무 심기에 대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인간의 산림 약탈의 실상을 알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이 아직도 나무와 숲과 산림에 대해, 그것들이 지구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1조 그루의 나무] 초반부에서는 공중 수맥(책 속에서는 플라잉 리버라고 부른다)이나 바람의 발원 등 숲과 산의 역량에 대해 설명하는데, 정말이지 이 부분들은 진짜 재밌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재밌다. 왜냐면 저자는 그간 지구과학, 기후학 등에서 보편적으로 정설이라고 알려진 내용에 도전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책의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숲과 산에 대해 경외감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대단한 숲과 산림을 인간이 어떻게 약탈하고 파괴하고 있는지, 얼마나 함부로 막 다루고 있는지, 저자 본인이 지구촌 모든 대륙을 두루 다니며 취재한 내용이 이어진 후에는 저자가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가 아직도 원시림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이 조림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고대 세쿼이어 숲 역시 그렇다. 캘리포니아 화재 연구원인 리 클링어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크며, 오래된 나무들은 ‘지역 주민들이 키우고 보살핀 것’이라고 말한다.

167쪽



지구상에는 더 이상 인간의 발길이 완전히 닿지 않은 원시림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원시림이라고 여기는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숲조차 인간이 키우고 보살핀 숲이다.그럼 인간이 모든 숲에 간섭해야 하는가? 그러기엔 이 책은 인간이 인간의 필요대로 숲에 간섭하고 숲을 통제하려는 시도(대표적으로 중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무얼 전하고 싶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비로소 알 것 같다. 저자는 숲은 숲의 역할, 인간은 인간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시간이 주어지면 손실된 많은 부분은 복원될 수 있다. 그것이 기후변화와 싸우고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정말 중요한 점이다. 이러한 ‘황폐한’ 토지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것을 지구를 다시 녹화하는 1순위의 방법으로 삼는 전 지구적 캠페인이 요구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회가 있으면 자연은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147쪽


독일은 조림 사업계획을 내세우는 한편 산림의 5%는 자연 스스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완벽하게 천연적인 상태로 되돌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니더작센 뤼네부르그 히쓰의 야생 지역은 냉전 시대에 탱크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영국 군인들이 떠난 이후에 천연화되었다. 정부는 1992년 까지 러시아 군대 훈련장이었던 드레스덴 북부 코니히스브뤼크 히쓰에 5천 헥타르가 넘는 지역에 모든 사람의 접근을 제한했다. 풍화작용에 의해 막사와 콘크리트 벙커, 연병장이 붕괴하고 자작나무, 사시나무, 소나무 숲이 쾨니히스브뤼크 히쓰를 점령했다. 최소한 한 무리의 늑대 떼도 나타났다.

164쪽



원시림이 사라진 지구에 필요한 건 천연림이다. 독일의 사례처럼 모든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고 자연이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그 시간의 작용에 따라 회복된 숲과 산이 그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숲을 조성하는 것이 지구 온난화에 도리어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소개한다. 숲을 만드는 것만이 모든 환경 문제 해결에 있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인간은 숲과 산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이런 인간이 숲을 조성한다?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그래서 자연이 자연의 힘으로 복원하는 환경을 제안한다. 시간만 있다면 자연은 스스로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독립적인 '시간'을 자연이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식에 맞지 않는 애꿎은 수종을 심는 것도 문제도, 인간에게 유용한 나무만 골라 심는 것도 문제고, 나무고 숲이고 뭐고 심을 곳도 없이 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며 숲이 들어설 자리를 뺏는 것도 문제다. 자연이 자연의 일을 할 동안 인간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독일 히쓰에 늑대 떼가 사는 천연림이 조성된 것과 같은 사례가 지구촌 전체에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천연림들의 등장으로 우리는 숲과 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해내는 지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어쩌면 한국의 독자들을 영영 만나지 못할 뻔 했다. 산림 분야의 전문 지식을 얻으려 이 책을 찾아낸 역자(마르코 킴)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이 책은 한국어로 읽힐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사들에게 출간을 거부당하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 책 한권을 출간하기 위해 스스로 번역 뿐 아니라 출판사까지 설립하며 각고의 노력을 들인 역자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한국은 이 책이 꼭 필요한 시기에, 진주처럼 귀한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역자 분, 정말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좋은 책 고맙습니다.)


산불은 꺼졌다. 이제, 나무를 심어야 한다. 저자 프레드 피어스는 이 책 서두에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국이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잃어버린 숲을 복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에 감탄을 보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잿더미가 된 산을 복원한 경력이 있다. 약 120억 그루의 나무를 우리들의 손으로 이 땅에 심었던 과거가 있다. 경력직이 왜 경력직인가? 신입보다 일을 잘하니까 경력직이다. 한 번 해내었던 일을 두 번은 못할 리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더 잘 심어보자. 자연의 호흡에 귀기울이고 식생과 생태계에 발맞추며, 접근을 끊어야 할 때와 보살펴야 할 때를 적절히 살피며. 이제,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

기회가 있으면 자연은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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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인텔리전스
로랑 알렉상드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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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법보다 강하기 때문에, 권력의 무게 중심이 은밀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정말 인상적인 말들이 많았는데, 그중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뇌리에 남는 건 저 말이다. 권력의 무게 중심이 은밀히 이동하고 있다. 무기, , 정치는 이제 권력의 왕좌에서 차례로 내려오고 있다. 인공 지능의 등장과 함께 이젠 기술이 권력의 왕관을 쓰게 되었다. 기술이 집권하는 시대가 진정 무서운 건, 치리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 권력의 손에 틀어잡혀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창시자들은 이 네트워크가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의 주요 도구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사이버 유토피아론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1996년에 민족 국가들은 인터넷에 의해 뒤흔들 것이며, 미래에는 민족주의가 천연두만큼이나 설 자리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우리는 기술에 따스한 판타지를 투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기대했던 정치적 혁명을 가져오지 못햇다. 기술 애호가들이 순진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228-229

 

우리의 문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NBIC 혁명은 태평양 연안에서, 미국의 디지털 거대 기업과 BATX 전략을 이끄는 중국 지도자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국가는 기술과 그 사상가가 사회를 구조화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기술이 법보다 강하기 때문에, 권력의 무게 중심이 은밀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131-132

 

NBIC는 나노, 바이오, 정보통신, 인지과학의 머릿글자를 딴 단어다. 미세 단위로 물질을 제어하고 조작하는 나노기술, 유전자 해석으로 시작된 바이오기술, 정보기술과 인간의 뇌에 다가가는 인지기술의 융합으로 인류는 그야말로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려 한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이 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의 발달을 날개삼아 하늘로 오르고 있다. [넥스트 인텔리전스]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는 현재와 미래를 다룬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비전과 이상 그리고 그를 훼방하거나 혹은 그에 장애가 되는 여러 세력 및 관점들을 함께 이야기한다.

새로운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겐 동경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AI의 등장은 고작 1~2년만에 우리 생활의 많은 것을 바꿨다. 조만간 감정과 감성까지 탑재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리라 예고된 지금, 우린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그 변화에는 분명 득실이 있을텐데, 과연 우리가 지금 무엇을 알아야 그 득실을 미리 따져보고 준비할 수 있을까? [넥스트 인텔레전스]를 읽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였다.

 

-호모 데우스는 공상 과학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트랜스휴먼이 되어 간다.

무어의 법칙으로 인해 우리는 신에 가까이 가는 게 아니라,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 이것이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믿음이다. 연산 능력의 엄청난 발전 덕분에 우리는 거의 무한한 능력을 지닌 인간-신이 될 것이다. 모든 힘의 근원인 컴퓨터 파워에 매혹된 실리콘 밸리의 궁극적인 희망은 죽음마저 정복하는 것이다.

새로운 혁명은 어떤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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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인텔리전스]의 저자는 프랑스의 의사이다. 그는 작가와 기업가이기도 하며 미래학자로 프랑스 최다 회원을 보유한 건강 포털 사이트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책 날개에서 유럽에서 문제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는 소개를 읽어보니 남들과 비슷한 의견을 피력하는 학자는 아닌 걸로 보인다. '많은 반론과 비판을 듣는 학자인가?' 싶었는데 책 내용을 읽어갈수록 왜 그가 문제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지 이해가 된다. 저자인 로랑 알렉상드르는 이 책에서 기술의 초고속 발달에 맞춰 정치, 사회, 교육 등을 개선하고 변화시켜가야 할 프랑스의 사회 지도층들이 눈이 멀어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꼬집는다.

 

 

프랑스 엘리트들의 현실 괴리는 불행히도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그들은 NBIC로 인한 기술 혁명과 완전히 괴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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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IC2050년 전에 세계 문명 전체를 뒤흔들 것인데, 우리의 정치 엘리트들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른다는 것, 이게 바로 진실이다.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어렵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역사의 승자이며, 문명의 진보에 있어서 필연적인 종착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민주주의는 뜻밖에도 후퇴하고 있다. 이를 제때 막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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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가만 바꿔서 넣는다면 한국도 마찬가지인 처지아닌가. 바로 옆나라에서 온갖 기술로 우리나라의 사회 모든 분야에 깊숙이 파고 들어 있는데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인사들은 무엇에 눈이 멀었는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저자는 이와 함께 기술 혁명의 이점을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여러 단체와 세력들에 대해서도 경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생태주의자들이다. 내가 잘 모르는 건지, 우리나라에는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유럽에선 아닌 모양이다. 특히 프랑스에선 그레나 툰베리와 같이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모양. 저자는 그런 세력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종말론적 생태주의자들은 자원과 에너지 고갈이 우리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략) NIBC 기술에서 비롯된 기술 혁신은 갈수록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그것들은 점점 더 놀라워지고 모든 경계를 넘어서고 있지만, 사회는 갈수록 쉽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인류는 혁신의 비탈길에 올라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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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길은 출구 없는 골목이다.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내흔들며 우리의 진정한 도전 과제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지도 못하고, 인류에 대해 열광하지도 못하는 우리들은 미래를 위한 전장에서 탈영하고 있다. 유럽이 산업과 과학의 쇠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이 시점에, 이러한 망상에 가까운 담론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역사에서 밀려나게 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유럽은 챗GPT가 가속화하는 이 인지 혁명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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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저자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이야기에 매우 동조한다. 이미 불기시작한 기술혁명의 바람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고, 또 이미 너무나 많은 기술이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GPT만 해도 그렇다. 이 요망한 물건은 단 1~2년 만에 개인 비서로서의 자기 자리를 톡톡히 차지하고 있다. 업무도, 공부도 심지어 여가도 챗GPT와 함께하고 있을 정도다.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고도로 발달한 미래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인공지능이 완전히 우리 자신과 밀착된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를 이 책[넥스트 인젤리전스]에서 공들여 묘사했다. 저자가 그려낸 미래는 그렇게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비극적이지도 않다. 저자의 말대로 챗GPT가 가속화하는 이 인지혁명은 놓쳐서는 안되는 대단한 기회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나 자신은 사물 인터넷에게 정보의 밥이나 주는 바보 멍텅구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저자가 경계하는 인공 지능의 부작용은 여럿이지만 그중에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극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을 꼽아본다.

 

민주주의 국가의 인공 지능은 인터넷상에 온갖 조작과 불안을 조성하는 가짜 뉴스를 가능케 하여 히스테릭한 논쟁을 야기한다. 정치적 폭력도 증가시킨다. 미국 상원 청문회의 질문을 받은 트리트탄 해리스는 트위터에서 분노에 찬 단어를 하나 추가할 때마다 리트윗률이 17퍼센트 증가한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소셜 미디어들의 비즈니스 모델의 일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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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민주주의를 발달시킨다고, 과연? 정말 그런가? GPT가 사람을 지금 보다 명석하게 만든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천만에.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인터넷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편향된 정보 혹은 조작된 정보를 건네기 쉬운 챗GPT 역시 그렇다. GPT가 당신에게 정확한 정보와 사실만을 전달할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인공 지능은 모두 이전에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에게 최적화된 답변을 제시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기계들일 뿐이다. 인공 지능을 통해서만 정보와 의견을 수집한다면, 인공 지능을 조작하여 대중의 인지와 의견을 조작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부분이 제일 두렵다.

해서, 결국 나는 이런 책들을 읽어보며 인공 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을 대비하는 수밖에. 저자가 썼듯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어렵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기술이 인간을 편하게 해준다고 어느 광고에서 그랬나? 순 거짓말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불편해진다. 끊임없이 이해하고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프랑스의 지식인들을 꼬집으며 목소리를 냈는지 십분 동감이 되는 요즘이다.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어렵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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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 역사 3 - 고대·고려사 사물궁이
최승이 지음, 사물궁이 잡학지식 기획 / arte(아르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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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궁이 시리즈의 역사 편을 드디어 읽어봤다. sns 카드뉴스에서 시작하여 유투브로 넘어와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채널은 이제 출판계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일명 사물궁이 시리즈가 과학 분야에 이어 역사 분야가 출간되었는데, 근현대사, 조선, 고대 및 고려사 등 시대별로 나누어 3권의 시리즈가 나왔다.


사물궁이 책 시리즈의 가장 큰 특이점은 '질문'이다.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라는 채널명이자 책 제목에 맞게, 이 책의 질문들은 무척이나 사소하고 때로는 하찮을 정도로 소소하다. 3번째 역사 시리즈인 고대 및 고려사의 목차에는 마치 카톡으로 친구와 주고 받았던 내 대화창에서 길어온 듯한 질문들이 들어있다. 질문들을 차례로 읽다보면 친구가 전 남친을 '고조선 시절에도 안 팔렸을 남자'라며 속터져 했던 날이나 할머니가 하셨던 '조선시대에나 썼을 것 같은 기묘한 욕'의 뜻을 엄마한테 물어봤던 날의 기억이 소환된다. 그만큼 이 책의 질문들이 현재의 삶에서 길어온 아주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일들에 대한 내용이라는 의미다. 역사에 대한 질문을 현재의 일상과 일반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역사의 의미와 재미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는 다른 별에 사는 외계인들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만 다를 뿐, 몇 백년 전에 혹은 몇 십년 전에 지금의 우리처럼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이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과 일반이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는 역사가 곧 삶인 이 지점을 명확하게 캐치한다. 역사는 위엄 가득한 관복을 입고 국가 정사를 논의하던 사람들의 시간 뿐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험한 말을 주고 받거나 시시덕 대던 평범한 사람들, 아무렇게나 편한 대로 걸치고 양푼에 밥 비벼 먹던 나 같은 사람들의 하루하루도 함께 쌓여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역사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려면 사소한 질문들이 필요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했을까?, 삼국시대에도 투표가 있었을까?, 고려시대에도 고소할 수 있었을까?, 고려 사람들은 어떤 욕을 했을까?' 등과 같이 사소하지만 재치 있고, 나도 한번쯤 이걸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나는 그런 질문들이 미처 몰랐던 역사의 새로운 매력을 깨닫게 한다.


'연개소문의 이름은 개소문일까, 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개소문은 연씨 성을 가진 '개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연개소문의 아들과 손자들의 묘지명에는 그들의 성이 천씨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삼국사기도 연개소문 가문을 천씨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개소문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며, 왜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어 있을까요?

책 79쪽 중에서


처음에 이 질문을 읽고 나는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설마 이름이 개소문이겠어? 그런데 아뿔싸. 고구려의 장수, 연개소문의 이름이 소문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 손 들어보세요. 네, 바로 접니다. 나는 정말이지 성이 '연개'인줄로만 알았다. 이름이 '개소문'이었을 줄이야. 그런데 심지어 중국에 남아있는 묘지명에는 이름이 다르단다. 왜? 무슨 이유로 연개소문이 천개소문으로 개명된 것인가? (궁금한 사람은 꼭 책을 읽어보시길)

좋은 질문은 허를 찌른다. 좋은 질문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좋은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질문과 질문을 연이어 타고 가다보면 어느덧 당시의 정세와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이러한 이해는 마침내 오늘날의 세계와 사람으로 이어진다. 연개소문의 이름에서 출발한 이 꼭지는 당시 당나라와 고구려의 정치적 상황, 연개소문 집안의 사건들, 후대가 평가하는 연개소문과 그 아들들로 이어져 역사를 읽는 재미와 의미가 특히 더한 부분이다.


역사를 안다는 건 어떤 사건이 언제 일어났다든가, 어떤 인물이 어떤 흥망성쇠를 겪었다는 걸 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오늘날에 그 사건 혹은 인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건과 인물이 있었는지 정보를 모른다면 의견을 낼 수 없겠지만 설령 연혁과 계보 등을 모두 꿰고 있다고 해도 그 사건과 인물의 의미를 오늘날에 비춰 생각하지 못한다면 자기 의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 3편 고대 및 고려사 편은 책 중간 중간, 이러한 생각을 돕는 내용들이 많다. 정몽주의 피가 실제로 선죽교에 남아 있는가를 이야기하며,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이 조선 건국 후 정몽주를 충신으로 추켜 세운 사실을 언급할 때나 삼국통일을 이룬 후 200년이 지난 뒤에도, 정치적 주류가 되지 못한 고구려와 백제 출신 인물들이 후고구려와 후백제를 세운 역사적 흐름을 보여준 부분은 오늘날 이 시대의 사회와 정치에 비춰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질문은 사소해보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사소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 책을 읽으며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며 들인 많은 정성이 느껴진다. 책 뒤에는 각 꼭지별로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실어두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서를 집필한 분들의 열의를 볼 수 있다.


세상엔 재미있는 역사책이 많다. 어디 책 뿐인가. 역사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각종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나 역사 콘텐츠에 실린 정보들은 반드시 검증된 팩트여야 한다. 역사를 다룬 콘텐츠에서 재미는 그 다음이어야 한다. 그런데 검증된 사실을 재밌게 다루기까지 했다면 10점 만점에 10점 아닌가.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 2편 조선사, 1편 근현대사까지, 이대로 주욱 역주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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