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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내 말을 오해하는 걸까?
야마구치 아키오 지음, 오민혜 옮김 / 알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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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피라미드 화법 ' 그게 이 책의 주제이고 전부다.

 

시간이 곧 돈이라서 문장의 경제성이 필수적인 '뉴스'의 화법을 업무와 일상의 영역으로 끌고 왔다.

뉴스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내용만 넣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내용은 모두 잘라버린다. 그러면서도 시청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먼저 이야기해서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오해와 억측과 기타 여러가지 불통의 상황들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굉장히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독자들이 보다 효율적인 화법을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은 참 좋다. 다만 그 사례들이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서 친밀함도 적고 이해도 쉽게 되지 않는 점이 있다.

 

 

 

책을 다 읽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귀여운 아이콘과 일러스트를 적극 활용한데다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한 두시간 정도 후후룩~ 읽게 된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책의 앞뒤표지와 날개를 살펴보자니..... 책 겉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넣어 놨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면 책 겉면에 써 놓은 이야기와 본문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여서. 특히 책 뒤로 갈수록 꼭지 타이틀과 소제목들을 솔깃한데 정작 읽어보면 밍숭맹숭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근데 이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수도 있다.

 

나처럼, 전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 제일 먼저 입에서 나가는 타입들은 이 책이 별로 흥미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오해를 줄이고 대화 시간도 줄이고 싶어서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은 충분히 유익하고 흥미롭겠다. 평소에 '네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 듣겠다' 라든지 '그럼 그걸 먼저 말해줬어야지!' 라는 핀잔 때문에 힘들었던 사람이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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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상인들 - 프란치스코 교황 vs 부패한 바티칸
잔루이지 누치 지음, 소하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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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백성들은 열렬하게 예수를 반겼다.

그러나 성전은 그에게 냉랭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번제물을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뒤엎었을 때, 냉랭함은 살기로 바뀌었다.

예수는 '여기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호통쳤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꾀하게 되었다. (11:15~18)

 

프란치스코 교황은 벌써 3년째 바티칸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바티칸시국에 어울리는 표현이 종교성지에서 종교상권으로 바뀐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임기 내내 강도의 굴혈이 된 바티칸을 고쳐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성범죄라든지 도덕성이라든지 다양한 부분에서 문제가 만연해 있지만 [성전의 상인들]이 주목한 것은 재정문제다. 바티칸 은행과 베드로 성금 등 바티칸으로 흘러들어온 돈이 어떻게 바티칸을 무너뜨리고 있는지 집중했다.

 

저자는 기밀문서와 녹취록 등 내밀한 증거자료들을 총동원하여 이 책에 담았다. '종교'라는 아이템으로 바티칸이 얼마나 철저하게 장사를 해 왔는지를 까발린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요인은 바로 현 교황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현 교황의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개혁 의지는 바티칸 내부의 자세한 비리들이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게 할 정도다. 그래서 저자는 바티칸 교황청의 비리는 철저하게 공격적으로 기술하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책과 활동은 교황청과 구분한다. 이 책에서 개혁파 교황과 반개혁파 교황청은 서로 패를 갈라 암투를 벌이고 있다.

 

책을 끝내며 저자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과연 교황은 개혁을 달성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만든 성금이 오히려 바티칸의 마이너스 재정을 메꾸는 데 사용된다는 부분을 읽으며, 종교 집단이란 어디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종교 집단에 회의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러하니까.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는데 왜 역대 교황들은 그리도 화려한 의복과 아파트와 고급 세단을 누리며 살았을까?

바울조차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이것을 사모하면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고 경고했는데 왜 이런 가르침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믿음을 증명하는 기독교인들이 그리도 적을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생각할수록 간디는 참 옳은 말을 남겼다.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계속 얘기했다간 여러분들을 너무 걱정스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교회의 선을 위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제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나이 많은 소교구 사제 한 명이 있습니다. 그 분은 돈 문제에 관해서는 지극히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돈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신자들의 보이지 않는 영혼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38쪽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 중에서

사실상 지금까지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금된 돈은 검은 구멍으로 줄줄 새고 있다.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절대적인 비밀이며 단지 얼마큼의 돈이 들어왔는지에 대한 항목만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공식적인 재무 회계 보고서가 갖춰야 할 요건을 살짝 피해 간다.
‘상부 지시’라 함은 다시 말해 국무원장이나 전임 교황의 결정이라는 말이다. 왜 그렇게 모든 것을 숨기려는 걸까? 그 돈이 대체 무슨 일에 사용되었을까?
104쪽

지금까지 프란치스코가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관성과 스캔들, 절도, 부정, 불투명한 이해관계로 혼란스러운 교황청의 모습을 살펴봤다. 교황청의 무책임함 때문에 베네딕토 16세는 사임했고, 교회는 다수의 신앙인을 잃었다. 이를 바꾸기 위해 프란치스코는 유능한 인재들을 버티칸에 투입했고, 외부의 전문가들을 고용해 수백만 유로를 지출하며 교황청의 회계를 조사하게 했다. 이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렇게 해야만 냉전시대에 뿌리를 두고 수십년 동안 몸집을 키워온 구세력의 중심을 해체할 수 있다. 또한 종교적 소명과 신자들 등에서 만성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교회가 완전한 신뢰와 미래를 되찾을 수 있다.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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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 감정여행 - 자기소통상담가 윤정의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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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우울, 수치심과 연민. 때로 분노, 의심, 슬픔, 동정 등....

 

사람의 감정이란 참 다양하다. 하지만 이 수많은 감정의 가지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언제나 좋은 것, 환대를 받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숨기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 나쁜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의 많은 순간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기쁨, 재미, 즐거움, 감동, 뿌듯함.. 그렇지만 감정의 수많은 가지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감정은 흐름이지 섬이 아니다. 기대가 불안을 불러오기도 하고 즐거움이 분노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나도 몰랐던 짜증이라든지, 나의 의지에 반하는 우울함이 올라와 나를 뒤덮을 때면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 자체에 지치고 그런 감정들을 내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러나 정말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불안과 우울함이, 여기서 파생되는 수치심과 연민과 분노와 슬픔이 인생에 없어야만 행복한 것일까.

자기소통상담가 윤정이 정리한 상담 사례들을 읽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답을 얻는다.

 

[45일 감정여행]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내 안에 사는 나를 만나는 과정을 정리한 사례집이다.

저자는 불안과 우울을 감정의 핵으로 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불러온 관계의 어려움 (때로는 관계의 어려움이 불러오는 감정들)을 내밀하게 살펴본다.

 

각 사례가 시작될 때마다 상담을 받는 사람들의 이력(성별, 나이, 직업, 가정환경 등등)을 먼저 제시하고 각각이 일상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1인칭 시점에서 풀어가는 흐름이 흥미롭다. 이런 흐름 덕에 이 책에 실린 서로 다른 사례들을 읽으며 각각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쉽게 찾게 된다. 때문에 단순히 타인의 심리상담과 극복 사례들을 살펴보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자리한 여러 감정과 그 변화, 흐름들까지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나이도 직업도 환경도 다들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의 유일한 교집합은 솔직함이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찌할 줄 모른다. 숨기거나 포장하거나 왜곡하거나 그대로 드러내어 자기는 물론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저자의 상담형식 중에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내담자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힌 사람과 내담자가 상처를 준 사람이 같음을 발견하고 그 대상에게 들려줄 고백서를 쓰게 하는 점이다. 무엇이 아팠는지, 그래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털어놓는 진솔한 자기 고백서의 결말은 애틋하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모습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대상을 껴안음으로써 내 안에서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나 자신도 함께 껴안는 총체적인 화해. 이 책에는 이 화해의 시작과 과정이 잘 담겨있다.

 

소금을 뿌린 수박은 더 달다.

부정적인 감정들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가고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 삶이 어렵겠지만.

오늘 내가 느낀 고통스런 감정들의 근원은 무엇인지 직시하기 위해서라도 부정 감정들은 필요하다.

사람이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의 갈래들은 어쩌면 사람의 관계가 더 아름답고 견고해지기 위한 장치일지 모른다. 어둠이 있을 때 빛이 더 밝아지고 겨울 뒤에 봄이 더 따듯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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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전쟁 - 사람을 움직이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51가지 말의 기술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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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로 하루아침에 왕대접을 받거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비단 요즘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이 말로 흥하거나 망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아마 거의 없겠지. 하지만 sns가 세상의 중심이 된 요즘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의 권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단순히 인스타그램이나 페북에 올라가는 짧은 말 한 두마디가 널리 퍼지게 되어서라는 의미는 아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순식간에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며 이때 지지는 곧 권력이 된다.

 

입담의 제왕이라거나 논객이라거나 뭐 이런 류의 수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의문이었다. 대체 뭘 두고 그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하는가? 듣기에 유려한 단어들로,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로 막힘없이 말을 하면 그게 언변이 좋은 게 되나? 내 얘기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사람 혹은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사람(여러가지 의미로)이나 소위 큰 소리 치는 사람이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싸움의 기술이지 말의 기술은 아닌 듯 하다. 싸움이라면 밀어붙이고 우기고 들이대면 끝날 일. 그러나 말은 그런 게 아니다. 말은 나에게서 나갔더라도 그걸 받아주는 상대가 있어야 말이고 상대에게서 나에게로 왔을 때 나의 반응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도 말이다. 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말을 잘 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몇 년 동안 내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몇 주 전에 [스피치에센스]라는 연설대회 우승자들의 사례 분석집을 읽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말의 전쟁]은 이런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던 내가 꽤 오랫동안 공들여 읽은 책이다. 다른 인문학서적이나 실용서적류에 비해 꼼꼼하게, 글 속의 저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쉼없이 질문하여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 구절 덕택이다.

 

논쟁 과정에서 다양한 반론이 제시될 수 있다. 반론에 의해 자신의 근거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참인 것과 좋은 것이 설득력을 얻는다면, 부끄럽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나는 열을 올리며 토론하다가 상대편이 약해서 승리할 때의 쾌감보다도, 상대편의 올바른 이론 앞에 내가 굴복했을 때의 나 자신에 대해 얻는 승리감에 훨씬 더 큰 자존심을 갖는다라고 한다.

 

몽테뉴에 의하면, 논쟁 과정에서 자기 견해의 약점이나 오류를 드러내는 공격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된다. 더 설득력이 있고 증명에 합당한 말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웃는 얼굴로 반론을 맞이한 것도 토론을 통해 결국은 올바름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론을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다.

     15쪽 프롤로그

 

누군가와 토론을 하다 상대가 나의 논리적 약점을 찌르면 나는 감정적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토론은 이내 싸움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올바름이 승리'하도록 이끄는 것이 토론이고 그래서 나를 굴복시킬 정도로 힘이 있는 상대의 반론은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 이건 내가 그동안 말에 대해 가졌던 여러 의문들에 실마리를 주었다.

 

토론의 기술, 연설의 기술 이 두 가지로 크게 양분된 이 책은 단순히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말의 목적, 상황 그리고 결과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정리했다. 동서고금의 사례들을 각 상황별로 적절하게 끌어와 이해를 높였다. [말의 전쟁]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유명한 토론이나 연설들의 장점을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분석을 싣고 그와 함께 연설 전문을 꼭지별 부록으로 넣었다는 점이다. 특히 연역/귀납 화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연역토론을 귀납화법으로 치환해 이해를 높인 부분(111) 에서는 저자가 얼마나 세심하게 고민해서 이 책의 원고를 준비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저자가 토론의 기술에서 제시한 논거들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연설의 기술에서 챕터를 너무 세분화한 것 아닌가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아쉬운 부분들이지만 그렇다고 책 전체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의문(논리성에 대한 고민)이 들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일방적으로 읽고 마는 책이 아닌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유기적인 책이라는 방증 아닌가.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금 드는 생각은, '말이란 참 좋다'.

 

세상에는 험한 말, 악한 말, 기분 나쁜 말, 슬픈 말... 참 다양한 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참 좋은 것이다.

 

몽테뉴가 그랬듯,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그리고 [말의 전쟁]의 저자가 그리 썼듯이 우리는 말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나고 주고 받고 교감하고 마침내 올바름이라는 궁극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말의 전쟁]처럼 토론이나 화법에 대한 책들이 몇 권 출간되었는데 대부분 '싸움'이라는 행위가 연상되는 제목들이 많아 좀 아쉽다. 지지 않는 말이라든지, 이기는 00 이라든지...

 

토론()이 가진 가장 아름답고 긍적적인 측면 즉, 올바름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본질에 어울리는 더 멋진 제목들이 나올 수 있을텐데.

 

이를 테면 말의 승리 같은... , 그런 거 말이다.

 

근데, 그러면 책이 안 팔려서 안되는 건가?;;;;;

 

몽테뉴에 의하면, 논쟁 과정에서 자기 견해의 약점이나 오류를 드러내는 공격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된다. 더 설득력이 있고 증명에 합당한 말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웃는 얼굴로 반론을 맞이한 것도 토론을 통해 결국은 올바름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론을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다.

15쪽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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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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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잠시만 빌려야겠다.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

선택은 지구라는 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생명체 중 사람만이 가진 특권이다. 아니, 숙제 어쩌면 짐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에게 선택은 일상이다. 삶의 모습과 형태는 각자 너무나 다르겠지만 모두가 매일 수없이 많은 선택의 계단을 오른다. 다만, 선택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오늘 내가 빨간 옷을 입을까 파란 옷을 입을까 정도의 선택을 하는 동안 이 별 반대편의 누군가는 빨간 옷과 파란 옷 중 누구를 먼저 죽일까라는 선택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테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를 계획했고 실행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에 희생당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었다. 이 테러를 일으킨 사람들, 테러리스트와 그 조직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와 사람들에게 증오와 공포를 심는 데에 성공했다. 나아가 테러리스트들의 종교와 인종에 대한 혹독한 편견 역시 깊은 뿌리를 내렸다.

 

911테러가 일어나고 십여 년이 지난 후,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그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작은 책 한 권에서 그는 증오, 공포, 편견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시간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지난 시절에 대한 회고나 고백은 아니다. 그는 테러도, 종교도, 국가도 아닌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이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무엇이 아버지를 테러리즘으로 이끌었는지 이해하느라 인생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피가 내 혈관 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희망과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다. 광신의 불속에서 자랐으되 비폭력을 받아들인 젊은이의 초상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대단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저마다의 화두가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화두는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증오를 훈련받았어도 관용을 선택할 수 있다. 공감을 선택할 수 있다.

28

 

책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과 아버지가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서술하는 걸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는 상처 받은 여인을 여왕으로 만들었던 남자였고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품을 내줬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몇 번의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아버지는 이제껏 그가 걸어온 궤도와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선택해 나아간다.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증인으로서 저자는 이 시기의 아픔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제 열세 살이 되었고,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자존감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그칠 기미가 없었고, 늘 복통을 알았으며, 내 또래 여자애들이 칼로 자해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밤마다 침실 벽에 머리를 찧었다. 죽으면 얼마나 편안하고 평화로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끔찍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지는 나 말고 테러를 선택한 것이었다.

92

 

아버지의 선택, 그 시작과 끔찍한 결과까지 목격한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폭행과 편견과 외면으로 양육 받은 아이는 뜻밖에도 비폭력과 화해의 길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혈통적 공범이라는 괴로움, 성장기 내내 시달려야 했던 불안과 고통 속에서 그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내렸고 그의 선택이 옳음을 알려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사람이란 선택을 거듭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하지만 이 선택의 순간에 때로 편견이란 것이 눈앞을 흐리게 한다. ‘편견의 저주는 내가 죽이고 괴롭히려는 저이도 사람임을 잊게 하고 화해와 평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잊게 한다. 그렇게 테러리스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미니 롤러코스터를 탔던 그 반짝반짝하던 어린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결단코 두둔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은 명백히 살인이고 수치였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테러리스트인 아버지도 사람임을 말하고 싶었던 저자의 뜻을 이해한다. 테러를 자행하는 모든 이들은 사람이고 그들을 비난하는 편도 사람이고 그들에 희생된 모두 역시 사람이다, 공감은 증오보다 힘이 세다.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더 이상 편견의 덫에 희생되어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되는 사람도, 그들에게 희생되는 사람도 없을텐데.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을 비롯하여 편견과 증오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전하는 마지막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누군가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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