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그루의 나무 - 다시, 지구를 푸르게
프레드 피어스 지음, 마르코 김 옮김 / 노엔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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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어제, 밤잠을 설쳤다. 밤이 늦도록 인터넷을 뒤지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뉴스나 sns를 새로고침 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이 재난이 언제 사그러들지 마음을 졸였다. 산불이 경상북도를 집어 삼켰다. 정말 문자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 산천초목 속에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 가축들 그리고 사람들. 엄청난 수의 이재민과 그들의 삶의 터전. 신라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역사, 그 시간들을 증명해온 우리의 문화재들을 집어 삼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불길이 잡혔다. 149시간 만에 산불을 잡았다고 했다. 새까맣게 재만 남은 산 둔덕 사진이 처참하다. 그래도. 너무나 슬픈 마음이지만 우리에게는 땅이 남아 있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우거지고 온갖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그 땅. 그렇다. 땅만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땅만 있다면 자연은 어떻게든 다시 그 위에 숲을 건설한다. 인간을 위해서? 아니.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이다. 자연 스스로의 의지로,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불타버린 산림을 재건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계획과 실행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계획과 실행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마어마한 자생력을 가졌지만 인간이 보기엔 느린 자연의 호흡을, 인간이 어떻게 맞추어갈 것인지 아닐까. 3월의 끝자락에서 [1조 그루의 나무]라는 책을 읽게 된 건 참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1조 그루의 나무]라는 책은 프레드 피어스라는 영국의 저명한 환경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다. 저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환경 분야를 직접 취재하고 연구하며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써왔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이라는 상당한 시간 동안 몸으로 부딪혀 직접 보고 듣고 겪어온 지구촌의 환경 문제들에 대한 연구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해결 방안으로 산림 조성(책 속에서는 조림이라고 한다)이 꼽히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사람이 아무데나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드는 행위'가 과연 정말 지구와 자연 그리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를 묻는다.


벌목은 부유한 국가들의 열대림 훼손 공모 스토리의 일부분일 뿐이다. 벌채의 많은 부분이 주로 대두, 팜오일, 고무, 코코아와 같은 작물을 기르기 위한 플렌테이션이나 혹은 쇠고기 육우를 기르기 위한 땅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작물들은 일반적으로 급속하게 확장하는 글로벌 마켓 공급을 위해 재배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햄버거로 열대림을 먹고, 신발로 열대림을 누비며, 우리가 사용하는 프린터 속으로 열대림을 공급하고, 열대림 비누로 몸을 씻고, 빵을 만들어 열대림을 뿌려대고, 고무를 채취해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대규모 상업적 농업을 위한 토지 수요는 열대지역에서의 산림훼손 중 적어도 2/3의 원인이 된다.

132쪽 [1조 그루의 나무]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의 대부분은 산림 훼손에 큰 지분이 있다. 내가 뭐 특별히 산림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먹는 것, 내가 쓰는 것, 내가 신고 입는 것들이 산림훼손의 결과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행위로 산불이 이토록 크게 나서 경북 일대가 전쟁터가 된 지금의 사건은 꿈속에서조차 복장이 터지고 슬프다.) 저자는 나무 심기에 대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인간의 산림 약탈의 실상을 알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이 아직도 나무와 숲과 산림에 대해, 그것들이 지구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1조 그루의 나무] 초반부에서는 공중 수맥(책 속에서는 플라잉 리버라고 부른다)이나 바람의 발원 등 숲과 산의 역량에 대해 설명하는데, 정말이지 이 부분들은 진짜 재밌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재밌다. 왜냐면 저자는 그간 지구과학, 기후학 등에서 보편적으로 정설이라고 알려진 내용에 도전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책의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숲과 산에 대해 경외감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대단한 숲과 산림을 인간이 어떻게 약탈하고 파괴하고 있는지, 얼마나 함부로 막 다루고 있는지, 저자 본인이 지구촌 모든 대륙을 두루 다니며 취재한 내용이 이어진 후에는 저자가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가 아직도 원시림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이 조림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고대 세쿼이어 숲 역시 그렇다. 캘리포니아 화재 연구원인 리 클링어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크며, 오래된 나무들은 ‘지역 주민들이 키우고 보살핀 것’이라고 말한다.

167쪽



지구상에는 더 이상 인간의 발길이 완전히 닿지 않은 원시림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원시림이라고 여기는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숲조차 인간이 키우고 보살핀 숲이다.그럼 인간이 모든 숲에 간섭해야 하는가? 그러기엔 이 책은 인간이 인간의 필요대로 숲에 간섭하고 숲을 통제하려는 시도(대표적으로 중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무얼 전하고 싶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비로소 알 것 같다. 저자는 숲은 숲의 역할, 인간은 인간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시간이 주어지면 손실된 많은 부분은 복원될 수 있다. 그것이 기후변화와 싸우고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정말 중요한 점이다. 이러한 ‘황폐한’ 토지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것을 지구를 다시 녹화하는 1순위의 방법으로 삼는 전 지구적 캠페인이 요구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회가 있으면 자연은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147쪽


독일은 조림 사업계획을 내세우는 한편 산림의 5%는 자연 스스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완벽하게 천연적인 상태로 되돌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니더작센 뤼네부르그 히쓰의 야생 지역은 냉전 시대에 탱크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영국 군인들이 떠난 이후에 천연화되었다. 정부는 1992년 까지 러시아 군대 훈련장이었던 드레스덴 북부 코니히스브뤼크 히쓰에 5천 헥타르가 넘는 지역에 모든 사람의 접근을 제한했다. 풍화작용에 의해 막사와 콘크리트 벙커, 연병장이 붕괴하고 자작나무, 사시나무, 소나무 숲이 쾨니히스브뤼크 히쓰를 점령했다. 최소한 한 무리의 늑대 떼도 나타났다.

164쪽



원시림이 사라진 지구에 필요한 건 천연림이다. 독일의 사례처럼 모든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고 자연이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그 시간의 작용에 따라 회복된 숲과 산이 그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숲을 조성하는 것이 지구 온난화에 도리어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소개한다. 숲을 만드는 것만이 모든 환경 문제 해결에 있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인간은 숲과 산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이런 인간이 숲을 조성한다? 어불성설이다. 저자는 그래서 자연이 자연의 힘으로 복원하는 환경을 제안한다. 시간만 있다면 자연은 스스로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독립적인 '시간'을 자연이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식에 맞지 않는 애꿎은 수종을 심는 것도 문제도, 인간에게 유용한 나무만 골라 심는 것도 문제고, 나무고 숲이고 뭐고 심을 곳도 없이 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며 숲이 들어설 자리를 뺏는 것도 문제다. 자연이 자연의 일을 할 동안 인간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독일 히쓰에 늑대 떼가 사는 천연림이 조성된 것과 같은 사례가 지구촌 전체에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천연림들의 등장으로 우리는 숲과 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해내는 지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어쩌면 한국의 독자들을 영영 만나지 못할 뻔 했다. 산림 분야의 전문 지식을 얻으려 이 책을 찾아낸 역자(마르코 킴)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이 책은 한국어로 읽힐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사들에게 출간을 거부당하고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 책 한권을 출간하기 위해 스스로 번역 뿐 아니라 출판사까지 설립하며 각고의 노력을 들인 역자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한국은 이 책이 꼭 필요한 시기에, 진주처럼 귀한 내용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역자 분, 정말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좋은 책 고맙습니다.)


산불은 꺼졌다. 이제, 나무를 심어야 한다. 저자 프레드 피어스는 이 책 서두에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국이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잃어버린 숲을 복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것에 감탄을 보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잿더미가 된 산을 복원한 경력이 있다. 약 120억 그루의 나무를 우리들의 손으로 이 땅에 심었던 과거가 있다. 경력직이 왜 경력직인가? 신입보다 일을 잘하니까 경력직이다. 한 번 해내었던 일을 두 번은 못할 리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조금 더 잘 심어보자. 자연의 호흡에 귀기울이고 식생과 생태계에 발맞추며, 접근을 끊어야 할 때와 보살펴야 할 때를 적절히 살피며. 이제,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한다.

기회가 있으면 자연은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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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인텔리전스
로랑 알렉상드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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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법보다 강하기 때문에, 권력의 무게 중심이 은밀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정말 인상적인 말들이 많았는데, 그중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뇌리에 남는 건 저 말이다. 권력의 무게 중심이 은밀히 이동하고 있다. 무기, , 정치는 이제 권력의 왕좌에서 차례로 내려오고 있다. 인공 지능의 등장과 함께 이젠 기술이 권력의 왕관을 쓰게 되었다. 기술이 집권하는 시대가 진정 무서운 건, 치리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 권력의 손에 틀어잡혀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창시자들은 이 네트워크가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의 주요 도구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사이버 유토피아론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1996년에 민족 국가들은 인터넷에 의해 뒤흔들 것이며, 미래에는 민족주의가 천연두만큼이나 설 자리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우리는 기술에 따스한 판타지를 투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기대했던 정치적 혁명을 가져오지 못햇다. 기술 애호가들이 순진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228-229

 

우리의 문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NBIC 혁명은 태평양 연안에서, 미국의 디지털 거대 기업과 BATX 전략을 이끄는 중국 지도자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국가는 기술과 그 사상가가 사회를 구조화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기술이 법보다 강하기 때문에, 권력의 무게 중심이 은밀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131-132

 

NBIC는 나노, 바이오, 정보통신, 인지과학의 머릿글자를 딴 단어다. 미세 단위로 물질을 제어하고 조작하는 나노기술, 유전자 해석으로 시작된 바이오기술, 정보기술과 인간의 뇌에 다가가는 인지기술의 융합으로 인류는 그야말로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려 한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이 되려는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의 발달을 날개삼아 하늘로 오르고 있다. [넥스트 인텔리전스]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는 현재와 미래를 다룬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비전과 이상 그리고 그를 훼방하거나 혹은 그에 장애가 되는 여러 세력 및 관점들을 함께 이야기한다.

새로운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겐 동경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AI의 등장은 고작 1~2년만에 우리 생활의 많은 것을 바꿨다. 조만간 감정과 감성까지 탑재한 인공지능이 등장하리라 예고된 지금, 우린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그 변화에는 분명 득실이 있을텐데, 과연 우리가 지금 무엇을 알아야 그 득실을 미리 따져보고 준비할 수 있을까? [넥스트 인텔레전스]를 읽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였다.

 

-호모 데우스는 공상 과학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트랜스휴먼이 되어 간다.

무어의 법칙으로 인해 우리는 신에 가까이 가는 게 아니라,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 이것이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믿음이다. 연산 능력의 엄청난 발전 덕분에 우리는 거의 무한한 능력을 지닌 인간-신이 될 것이다. 모든 힘의 근원인 컴퓨터 파워에 매혹된 실리콘 밸리의 궁극적인 희망은 죽음마저 정복하는 것이다.

새로운 혁명은 어떤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다.

99

 

[넥스트 인텔리전스]의 저자는 프랑스의 의사이다. 그는 작가와 기업가이기도 하며 미래학자로 프랑스 최다 회원을 보유한 건강 포털 사이트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책 날개에서 유럽에서 문제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는 소개를 읽어보니 남들과 비슷한 의견을 피력하는 학자는 아닌 걸로 보인다. '많은 반론과 비판을 듣는 학자인가?' 싶었는데 책 내용을 읽어갈수록 왜 그가 문제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지 이해가 된다. 저자인 로랑 알렉상드르는 이 책에서 기술의 초고속 발달에 맞춰 정치, 사회, 교육 등을 개선하고 변화시켜가야 할 프랑스의 사회 지도층들이 눈이 멀어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꼬집는다.

 

 

프랑스 엘리트들의 현실 괴리는 불행히도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그들은 NBIC로 인한 기술 혁명과 완전히 괴리되어 있다.

136

 

NBIC2050년 전에 세계 문명 전체를 뒤흔들 것인데, 우리의 정치 엘리트들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른다는 것, 이게 바로 진실이다.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어렵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역사의 승자이며, 문명의 진보에 있어서 필연적인 종착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민주주의는 뜻밖에도 후퇴하고 있다. 이를 제때 막지 못하면 민주주의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

137

 

이건 국가만 바꿔서 넣는다면 한국도 마찬가지인 처지아닌가. 바로 옆나라에서 온갖 기술로 우리나라의 사회 모든 분야에 깊숙이 파고 들어 있는데도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인사들은 무엇에 눈이 멀었는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저자는 이와 함께 기술 혁명의 이점을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여러 단체와 세력들에 대해서도 경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생태주의자들이다. 내가 잘 모르는 건지, 우리나라에는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유럽에선 아닌 모양이다. 특히 프랑스에선 그레나 툰베리와 같이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의 활동이 활발한 모양. 저자는 그런 세력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종말론적 생태주의자들은 자원과 에너지 고갈이 우리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략) NIBC 기술에서 비롯된 기술 혁신은 갈수록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그것들은 점점 더 놀라워지고 모든 경계를 넘어서고 있지만, 사회는 갈수록 쉽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인류는 혁신의 비탈길에 올라선 것이다.

144

 

녹색의 길은 출구 없는 골목이다.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내흔들며 우리의 진정한 도전 과제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지도 못하고, 인류에 대해 열광하지도 못하는 우리들은 미래를 위한 전장에서 탈영하고 있다. 유럽이 산업과 과학의 쇠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이 시점에, 이러한 망상에 가까운 담론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역사에서 밀려나게 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유럽은 챗GPT가 가속화하는 이 인지 혁명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182

 

기본적으로 저자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이야기에 매우 동조한다. 이미 불기시작한 기술혁명의 바람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고, 또 이미 너무나 많은 기술이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GPT만 해도 그렇다. 이 요망한 물건은 단 1~2년 만에 개인 비서로서의 자기 자리를 톡톡히 차지하고 있다. 업무도, 공부도 심지어 여가도 챗GPT와 함께하고 있을 정도다.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고도로 발달한 미래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인공지능이 완전히 우리 자신과 밀착된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를 이 책[넥스트 인젤리전스]에서 공들여 묘사했다. 저자가 그려낸 미래는 그렇게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비극적이지도 않다. 저자의 말대로 챗GPT가 가속화하는 이 인지혁명은 놓쳐서는 안되는 대단한 기회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나 자신은 사물 인터넷에게 정보의 밥이나 주는 바보 멍텅구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저자가 경계하는 인공 지능의 부작용은 여럿이지만 그중에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극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을 꼽아본다.

 

민주주의 국가의 인공 지능은 인터넷상에 온갖 조작과 불안을 조성하는 가짜 뉴스를 가능케 하여 히스테릭한 논쟁을 야기한다. 정치적 폭력도 증가시킨다. 미국 상원 청문회의 질문을 받은 트리트탄 해리스는 트위터에서 분노에 찬 단어를 하나 추가할 때마다 리트윗률이 17퍼센트 증가한다고 털어놓았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소셜 미디어들의 비즈니스 모델의 일부인 셈이다.

121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발달시킨다고, 과연? 정말 그런가? GPT가 사람을 지금 보다 명석하게 만든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천만에.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인터넷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편향된 정보 혹은 조작된 정보를 건네기 쉬운 챗GPT 역시 그렇다. GPT가 당신에게 정확한 정보와 사실만을 전달할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인공 지능은 모두 이전에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에게 최적화된 답변을 제시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기계들일 뿐이다. 인공 지능을 통해서만 정보와 의견을 수집한다면, 인공 지능을 조작하여 대중의 인지와 의견을 조작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부분이 제일 두렵다.

해서, 결국 나는 이런 책들을 읽어보며 인공 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을 대비하는 수밖에. 저자가 썼듯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어렵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기술이 인간을 편하게 해준다고 어느 광고에서 그랬나? 순 거짓말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불편해진다. 끊임없이 이해하고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프랑스의 지식인들을 꼬집으며 목소리를 냈는지 십분 동감이 되는 요즘이다.

 

극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어렵고,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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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 역사 3 - 고대·고려사 사물궁이
최승이 지음, 사물궁이 잡학지식 기획 / arte(아르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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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궁이 시리즈의 역사 편을 드디어 읽어봤다. sns 카드뉴스에서 시작하여 유투브로 넘어와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채널은 이제 출판계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일명 사물궁이 시리즈가 과학 분야에 이어 역사 분야가 출간되었는데, 근현대사, 조선, 고대 및 고려사 등 시대별로 나누어 3권의 시리즈가 나왔다.


사물궁이 책 시리즈의 가장 큰 특이점은 '질문'이다.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라는 채널명이자 책 제목에 맞게, 이 책의 질문들은 무척이나 사소하고 때로는 하찮을 정도로 소소하다. 3번째 역사 시리즈인 고대 및 고려사의 목차에는 마치 카톡으로 친구와 주고 받았던 내 대화창에서 길어온 듯한 질문들이 들어있다. 질문들을 차례로 읽다보면 친구가 전 남친을 '고조선 시절에도 안 팔렸을 남자'라며 속터져 했던 날이나 할머니가 하셨던 '조선시대에나 썼을 것 같은 기묘한 욕'의 뜻을 엄마한테 물어봤던 날의 기억이 소환된다. 그만큼 이 책의 질문들이 현재의 삶에서 길어온 아주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일들에 대한 내용이라는 의미다. 역사에 대한 질문을 현재의 일상과 일반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역사의 의미와 재미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는 다른 별에 사는 외계인들의 시간이 아니다. 시간만 다를 뿐, 몇 백년 전에 혹은 몇 십년 전에 지금의 우리처럼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이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과 일반이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는 역사가 곧 삶인 이 지점을 명확하게 캐치한다. 역사는 위엄 가득한 관복을 입고 국가 정사를 논의하던 사람들의 시간 뿐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험한 말을 주고 받거나 시시덕 대던 평범한 사람들, 아무렇게나 편한 대로 걸치고 양푼에 밥 비벼 먹던 나 같은 사람들의 하루하루도 함께 쌓여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역사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려면 사소한 질문들이 필요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했을까?, 삼국시대에도 투표가 있었을까?, 고려시대에도 고소할 수 있었을까?, 고려 사람들은 어떤 욕을 했을까?' 등과 같이 사소하지만 재치 있고, 나도 한번쯤 이걸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나는 그런 질문들이 미처 몰랐던 역사의 새로운 매력을 깨닫게 한다.


'연개소문의 이름은 개소문일까, 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개소문은 연씨 성을 가진 '개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연개소문의 아들과 손자들의 묘지명에는 그들의 성이 천씨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삼국사기도 연개소문 가문을 천씨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개소문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며, 왜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어 있을까요?

책 79쪽 중에서


처음에 이 질문을 읽고 나는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설마 이름이 개소문이겠어? 그런데 아뿔싸. 고구려의 장수, 연개소문의 이름이 소문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 손 들어보세요. 네, 바로 접니다. 나는 정말이지 성이 '연개'인줄로만 알았다. 이름이 '개소문'이었을 줄이야. 그런데 심지어 중국에 남아있는 묘지명에는 이름이 다르단다. 왜? 무슨 이유로 연개소문이 천개소문으로 개명된 것인가? (궁금한 사람은 꼭 책을 읽어보시길)

좋은 질문은 허를 찌른다. 좋은 질문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좋은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질문과 질문을 연이어 타고 가다보면 어느덧 당시의 정세와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이러한 이해는 마침내 오늘날의 세계와 사람으로 이어진다. 연개소문의 이름에서 출발한 이 꼭지는 당시 당나라와 고구려의 정치적 상황, 연개소문 집안의 사건들, 후대가 평가하는 연개소문과 그 아들들로 이어져 역사를 읽는 재미와 의미가 특히 더한 부분이다.


역사를 안다는 건 어떤 사건이 언제 일어났다든가, 어떤 인물이 어떤 흥망성쇠를 겪었다는 걸 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오늘날에 그 사건 혹은 인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건과 인물이 있었는지 정보를 모른다면 의견을 낼 수 없겠지만 설령 연혁과 계보 등을 모두 꿰고 있다고 해도 그 사건과 인물의 의미를 오늘날에 비춰 생각하지 못한다면 자기 의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 3편 고대 및 고려사 편은 책 중간 중간, 이러한 생각을 돕는 내용들이 많다. 정몽주의 피가 실제로 선죽교에 남아 있는가를 이야기하며,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이 조선 건국 후 정몽주를 충신으로 추켜 세운 사실을 언급할 때나 삼국통일을 이룬 후 200년이 지난 뒤에도, 정치적 주류가 되지 못한 고구려와 백제 출신 인물들이 후고구려와 후백제를 세운 역사적 흐름을 보여준 부분은 오늘날 이 시대의 사회와 정치에 비춰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질문은 사소해보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사소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 책을 읽으며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며 들인 많은 정성이 느껴진다. 책 뒤에는 각 꼭지별로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실어두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서를 집필한 분들의 열의를 볼 수 있다.


세상엔 재미있는 역사책이 많다. 어디 책 뿐인가. 역사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각종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나 역사 콘텐츠에 실린 정보들은 반드시 검증된 팩트여야 한다. 역사를 다룬 콘텐츠에서 재미는 그 다음이어야 한다. 그런데 검증된 사실을 재밌게 다루기까지 했다면 10점 만점에 10점 아닌가.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 2편 조선사, 1편 근현대사까지, 이대로 주욱 역주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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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로 책쓰기 - 책 쓰기를 위한 나만의 현명한 AI 활용 비법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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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비서'.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제목이 아니다. 책쓰기에 완벽한 파트너가 되는 클로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바야흐로 AI시대가 도래했다. 대화도, 휴식도, 놀이도, 업무도 AI와 같이 하는 시대. PC가 보급되기 시작한 그 때의 충격과 놀라움이 지금과 비슷했을까? 매일 매일, 자고 일어나면 'AI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싶게 만드는 것들을 날마다 마주하는 요즘이다. 그 놀라움 중 하나가 글을 쓰는 일이다. 잔뜩 엉켜서 도저히 풀어지지 않던 글타래가 AI라는 파트너의 도움으로 술술 풀리는 걸 경험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대박이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AI의 일처리란 얼마나 스마트하고 깔끔한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안을 물어보면 그에 맞는 결과를 기가막히게 제안한다. 그러나 AI는 신이 아니다. 램프의 지니를 생각해야 한다. 지니는 실수도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주기도 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나 자신이 아니다. 100%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는 나의 완벽한 글쓰기 비서. 모순인 듯한 이 말을 이해하려면 황준연 작가가 최근 펴낸 [클로드로 책쓰기]를 읽어 보자.

 

지인이 작년에 책을 냈다. 제목부터 내 마음에 쏙 드는 에세이였는데, 나는 원고를 두고 매번 고전하던 그가 예상 밖으로 일찍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판까지 속행되는 걸 보고 놀랐다. 글쓰기 비결은, 물론 저자 본인의 남다른 노력이 가장 큰 비결이고, 2등 공신은 AI였다. 그는 방향성, 구성, 전개, 표현까지 AI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귀뜸해주었다. 나도 뭔가를 쓰다가 갑자기 꽉 막힐 때, GPT에게 물어 물어 팁을 얻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불현듯 같은 걱정에 도달했다. 너도나도 다 AI에게 자문을 구할테고, AI는 모두에게 같은 결과를 내어줄텐데,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인, 대동소이한 원고를 낳게 되는 게 아닐까? 성형이 보편화되면서 성형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이 서로 비슷해지는 걸 이미 우리는 충분히 목격하지 않았나. 출판 시장도 결국 이렇게 되는 게 아닐까, 이런 걱정이 진지하게 깊어지기 시작한 올해 초, 마치 AI가 나의 걱정까지 다 알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적확한 타이밍에 나는 이 책을 만났다. [클로드로 책쓰기]

 

[클로드로 책쓰기]는 일반적인 글쓰기보다 좀더 규모도 크고 조직화된 글쓰기인 책쓰기 방법을 안내한다. 그런데 저자는 책을 쓰려는 자가 혼자 맹투하길 권하지 않는다. 클로드라는 똑똑한 보조작가를 페이스메이커로 삼아 책쓰기라는 쉽지 않은 마라톤을 완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은 12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어볼 수 있을 정도로 콤팩트하다. 분량이 '적다' 혹은 '많지 않다'는 표현 대신 콤팩트하다고 적은 이유는 원고량은 적은데 오밀조밀 알찬 구성으로 있을 건 다 있으면서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정도 거듭 읽으면서 나는 클로드에게 어떤 질문을 어떻게 던지면 좋겠다고 장마다 메모까지 하게 되는 책이다. 저자는 일단, 클로드의 장점을 소개하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GPT와는 다른 클로드만의 쓸모가 무엇인지, 특히 책을 쓰려고 기획하고 구성을 짜고 내용을 써나갈 때 클로드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 본인의 경험과 더불어, 다른 저자들의 사례 혹은 용례를 가져와 이 책에 담으니, 클로드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면 좋을지가 더 명확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책이 정말 좋은 점은 AI시대에 작가의 할 일을 단호하게 결론 짓는다는 점이다.

 

AI를 전적으로 의존하지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 것. AI의 장점을 활용하되, 작가로서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나와 클로드가 찾아낸 최적의 협업 방식이었다. 25

 

기계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전에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은 할 수 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다. 이 지점이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영역이다. AI를 활용한 글쓰기 시대에는 그래서 '나의 생각' , 주체성이 가히 작가의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사상과 주장, 나의 가치관이 원석이 되고, 이 원석을 AI와 함께 갈고 닦아 빛을 내는 과정이 이 시대의 책쓰기가 된다. AI를 잘 활용하면 과정이 좀더 수월하고 시간이 절약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원석이 없다면 갈고 닦을 게 없는 것이다. [클로드로 책쓰기]는 책 중간 중간, 책을 쓰려는 자의 주체성을 지켜야 할 것을 꾸준히 강조한다. 클로드가 대단히 좋은 제안이나 결과물을 보여주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복사하여 내 원고로 가져오는 것은 금물이다. '나의 생각'이라는 필터를 거쳐야만 오롯이 내 원고가 되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클로드는 어디까지나 AI. 클로드는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이것저것을 길어와 나에게 보여줄 뿐, 그것의 진위는 확인하지 않는다. 클로드가 가져온 정보 중에 거짓이 섞여 있는지는 반드시 내 손으로 확인해야 뒤탈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도구를 얼마나 현명하게 사용하느냐다. 당신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당신만의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길 바란다. 127

 

창작의 진정성, AI의 도움을 받아 원고를 완성했다면 과연 그 책은 저자의 책인가. 이 문제는 쉽게 정리되거나 답이 내려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클로드로 책쓰기] 저자가 책 표지에 클로드를 보조작가로 기재하고 이 책 말미에도 AI 활용의 투명성에 대하여 언급했듯이, 책을 쓰면서 AI를 활용한 모든 저자는 앞으로 저 윤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의 좋은 본보기를 이 책 [클로드로 책쓰기]가 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챗GPT에 익숙했던 나는 이제 클로드하고도 많은 시간을 보내봐야겠다.

 

AI를 전적으로 의존하지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 것. AI의 장점을 활용하되, 작가로서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나와 클로드가 찾아낸 최적의 협업 방식이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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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발견 수학의 발명 - 세상을 설명하는 26가지 수학 이야기
앤 루니 지음, 최소영 옮김, 안계영 감수 / 베누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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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발견일까, 발명일까? 작년에 어떤 책을 읽다가, 나는 문득 이게 궁금해졌다. 수학은 원래 있던 걸 정립해낸 걸까, 아니면 없었는데 있게 만든 걸까? 반갑게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알게 됐다. 어떻게 이런 책을 안 읽어볼 수가 있을까.

[수학의 발견, 수학의 발명]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출간된 이 책 표지에는 '세상을 설명하는 26가지 수학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을 다 읽고 이 부제를 발견했는데, 이 책의 포인트를 잘 짚어낸 부제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영국 작가로, 청소년을 위한 과학입문서부터 성인을 위한 문학, 철학, 역사, 과학 서적 등을 집필했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복잡한 개념을 쉽게 전달하는 방식의 책을 펴내 독자들의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실제로 [수학의 발견, 수학의 발명]이라는 책은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수학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는 수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다소 복잡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정말 쉽게 풀어나간다. 수학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닌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추어, 일상이라는 범주 안에서 수학을 친근하고 낯익은 얼굴로 그렸다.



각종 미디어마다 다양한 통계가 넘쳐난다. 그리고 통계의 상당수는 대중이 특정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는 의도로 작성된다. 통계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치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이해하면 통계에 농락당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102쪽 


책에는 26가지 소주제가 실려 있는데, 이 중에 정말 재미있던 부분들은 현실에는 없던 음수의 등장,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무한대 개념, 통계에 대한 통찰, 계산과 측정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9. 통계는 순 엉터리에 사기일까' 는 이 챕터만 두 번 읽었을 정도로 재밌었다. 읽고 나면 왜 기사에서 연구 결과를 그렇게 실었는지, 왜 광고에서 그 수치를 그렇게 표현했는지, 왜 보험설계사가 그 내용을 그렇게 말했는지 등등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통계 수치가 새롭게 느껴진다. 동시에 왜 통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엉터리와 사기라는 과격한 단어까지 언급이 되었는지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저자는 통계를 설명하면서 통계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과 수치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이해하면 통계에 농락당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썼는데 이 말에 100% 동의한다. '내가 이 수를, 수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했는가'의 문제는 단순한 연산이 아니라 심리와도 무척 긴밀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수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계산을 잘 하는 사람에서 나아가 삶의 여러가지 문제를 보다 폭넓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연결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수치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백분율의 양면 중 어느 쪽을 부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이야기의 이면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특정한 기법으로 이런 효과를 강화한다.

-106쪽


수학은 수의 복잡한 계산에 그치지 않는다. 수학은 우리의 기분, 선택, 삶의 설계와 경영까지 영향을 준다. 예전에는 언어만이 이런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수학 역시 이런 광범위하고 치밀한 학문이라는 걸 느낀다. 그래서 [수학의 발견, 수학의 발명]의 저자도 수학을 언어에 비유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수학의 다양한 면을 끌어와 설명하면서, 동시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어떤 걸 선택해야 더 유리할지를 제안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별 고민없이 내렸던 선택들이, 이제 이 책을 읽은 영향으로 그 전과는 다른 선택을 내리게 될 것이다. 숫자는 정보다. 지금, 우리는 정보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숫자는 참이고 어떤 숫자는 거짓이다. 수많은 참 속에 몇 가지 거짓이 있어도 골라내기 어려운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수많은 거짓 속에 얼마 안 되는 참을 찾아야 하는 형국 속에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숫자는 남을 속이거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숫자와 정보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썼다. 크게 어렵지 않은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난세를 해쳐나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안목이 우리 모두에게 길러지길 바란다.



수치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백분율의 양면 중 어느 쪽을 부각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이야기의 이면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특정한 기법으로 이런 효과를 강화한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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