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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험한 과학책 - 지구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허를 찌르는 일상 속 과학 원리들 ㅣ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20년 1월
평점 :
삶은 과학이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살면서 단 1초라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 손 들어보세요?" 우리의 삶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등 과학이 명명한 온갖 법칙에 둘러싸여 흘러간다. 무엇을 '본다'는 행위, '먹고 삼켜 소화'하는 행위, 귀로 듣고 입으로 소리 내는 행위. 이 행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것 역시 과학이다. 그러나 평소에 '원래 내 걸음은 시속 2km야. 그런데 지금은 지각했으니 시속 5km로 이동 속도를 높여야 해. 아! 조금이라도 힘을 덜 들이려면 공기 저항을 줄여야겠네. 내 몸무게로 시속 5km로 움직일 때 받는 공기 저항은 얼마일까?'라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만약 어딘가 이런 사람이 생존하고 있다면 머리에 공상만 가득한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고 있을 확률이 97%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인식을 뒤집는 사건이나 사람이 없다면 사는 재미도 없을 거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프로가 장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여기 ‘그런 사람은 없어.’라는 말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이 구역의 반전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더 위험한 과학책]을 쓴 랜들 먼로는 위에 쓴 97%의 인물과 한 끗 차이로 3%에 속하는 인물이다.
나는 물리학에 ‘고속도로에서 우리 집의 연비는 얼마나 될까?’와 같은 어이없는 질문을 하고, 물리학은 여기에 답을 주는 것이 너무 좋아요.
책 119쪽
랜들 먼로는 ‘망원경으로 셀카 찍는 법’ 같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소위 안물안궁한 질문들을 수시로 던지는 사람이다. 대체 어느 누가 강을 건너기 위해서 주전자로 강물을 몽땅 끓여 수증기로 만들어 보자든지 시끄러운 이웃들과 꼬마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집 둘레에 용암 해자를 설치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산단 말인가? 이 사람이 한다. 랜들 먼로가 한다. 그런데 그의 공상은 무쓸모 판정을 가볍게 벗어난다. 저런 현실 가능성 1도 없는 질문들이 어디에 쓸모가 있냐고 반문하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누군가에게 랜들 먼로는 반문한다. 주전자로 강물을 끓여 수증기로 날려버리는 게 왜 안 될 일인데?! [더 위험한 과학책]은 안 되는 거 빼고 다 되는 ‘과학’의 세계다. 스낵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앉아 읽다보면 내가 유투브를 건지 과학책을 읽는 건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큭큭거리며 발을 구르게 만드는 책이다. 3%의 소금이 바다를 짜게 하듯 랜들 먼로가 쓴 과학책은 무맛 무취 무색의 과학을 감자칩마냥 짭조롬하게 만들어준다.
[더 위험한 과학책]의 가장 큰 미덕은 ‘유머’다. 아직 이 책을 안 읽은 수십억 독자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과학을 흥미롭게 풀어준다는 점도 아니요, 기상천외하지만 말이 되는 훌륭한 논리도 아니요, 양장 제본에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데다 만듦새까지 좋아 책값이 아깝지 않게 해주는 썩 괜찮은 가성비도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유머’다. (두 번 강조한다.) ‘유머는 자비 다음 가는 미덕’이라는 속담이 영국에서 왔는지, 프랑스에서 왔는지 의견은 분분하나 저 말대로 유머가 훌륭한 미덕이란 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다. 자비리스한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유머’가 절실하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절과 스트레스 그리고 코로나19로 파생된 혹은 작년부터 누적되어온 경제적, 사회적 위기 속에 우리는 지금 안팎으로 너무나 시끄럽고 혼란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작년 여름은 평범했고 무료했고 지루했고 그냥 그저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 작년을 돌이켜보니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꿈같다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꿈이라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고. 당장 다음 달을 살아갈 일조차 혼란스럽고, 막막해진 우리에게 ‘다 잘 될거야’라는 희망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부질없고 ‘힘내’라는 격려는 (지금도 힘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힘을 내나 싶어서) 짜증난다. 이 혼란의 시대에 유머는 다른 응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웃음이 주는 편안함, 웃음이 주는 몰입. 웃음이 주는 상상력. 그런데 말입니다.... 개그콘서트가 이틀 전에 사실상 종영 방송을 한 마당에 무슨 유머를 찾고 있냐고? 그러니까! 이제 유머는 거기서 찾지 말고 여기서 찾으라고. [더 위험한 과학책]을 열 장만 읽어보셔도 이 책이 과학책이 아닌 ‘유머’과학책이라고 이렇게 마르고 닳도록 자랑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니까.
이 책에서는 일상적인 일들을 흔하지 않은 방법으로 접근하여 시도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 시도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유를 알아보면 재미있고 얻는 것도 많으며 가끔은 놀라운 결과가 나오기도 할 겁니다. 나쁜 아이디어도 나오겠지만 왜 나쁜지 정확하게 알아낸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이후에는 더 나은 접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설사 당신이 이 모든 것에 대한 올바른 방법을 이미 안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도움이 될지 몰라요. 어른이면 ‘누구나 아는’ 무엇이 존재하더라도, 미국에서만 매일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것을 처음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9쪽 저자의 들어가며 중에서
랜들 먼로는 [더 위험한 과학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전작들을 통해서도) 보통의 사람이 평소에는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을 문제들에 접근한다. 코끼리가 들을 수 있는 음역대의 피아노를 만든다든지, 밖에서 휴대전화 배터리가 1%일 때 태양빛에서 에너지를 모으거나 땅속 지열을 이용해서 휴대전화를 충전한다든지 하는 문제들이다. 그가 이런 어이없는 문제들에 접근하는 이유는 하나다. ‘흔하지 않은 방법’으로 접근하면 ‘흔하지 않은 해결법’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는 어려운 게 아니다. 단순해질수록 더 큰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변화의 핵심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물과 현상을 아주 낯설고 생소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변화의 첫걸음이다. 랜들 먼로는 이 눈의 위력을 아는 작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황당한 질문인 줄 알면서도 온갖 질문을 만들어본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 물리와 화학과 지구과학 등등 온갖 분야를 동원해서 문제의 해결 과정을 그려본다. 그걸 통해서 저자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과학 하기’를 실현한다.
[더 위험한 과학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부분은 <인공 용암을 만들어서 해자에 가두는 방법>이었다. 주말 농장에 심어놓은 완두콩이니 가지, 상추, 고추 따위 들을 자꾸 누가 들어와서 따가는 터라 복장이 터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텃밭 둘레에다 고랑을 넓고 깊게 파서 염산이라도 부어 놔야 도둑을 막을 수 있겠다 싶어서 ‘흙은 염산을 부으면 녹나? 녹으면 뭐 시멘트라도 포장을 치고 염산을 부어야 되나?’ 이런 고민을 하던 차였다. 그랬는데 세상마상 랜들 먼로 저자는 확실히 고수다. 염산 같은 걸로 되겠냐며? 해자를 파고 용암을 만들어두는 걸로! 진짜 해볼까 싶어서 무척 진지하게 정독했다. 폭 1미터 정도만 되어도 용암 해자 부근에 ‘빠른 고통을 주는 경계선’이 생긴다는 내용에 좋아서 헤죽거리며 말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텃밭 둘레에 용암 해자는 포기하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한 용암 귀뚜라미가 출현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용암의 열이 텃밭으로 방출되어 그 안에 채소들이 타죽기 십상이고 그걸 식히려 통풍관을 설치하면 분명 그 끈질기고 독한 완두콩 도둑은 랜들 먼로의 말대로 영화처럼 통풍관을 타고 텃밭 안으로 침입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말 언젠가는 현실에서 벌어질 일이 분명해서 정독한 부분도 있다. 우주비행사인 크리스 헤드필드와의 Q&A를 엮은 <농장, 항동모항, 기차 등에 비상착륙 하는 방법>편이다. 이 부분은 진짜 웃기기도 너무너무 웃기고 대박적 아이디어도 한 두개가 아니라서 완전 각 잡고 정독. 특히 ‘배달용 드론을 착륙시키는 법(이라고 읽고 배달용 드론에서 탈출하는 법이라고 읽는다)’은 분명 가까운 미래에 뉴스에서 보게 될 일이다. (이 글은 이렇게 성지가 됩니다.) 코로나19로 강화된 배달문화로 배달 오토바이 사고가 무척이나 많아졌다. 드론이 보편화된 이 마당에 언제까지 오토바이만 떡볶이를 배달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곧 드론이 오토바이를 대신할 텐데 그때 분명 ‘어쩌다보니 배달용 드론의 운반용 팔에 옷이 걸려’ 음식과 함께 사람이 배달되는 사고가 터질 것이다. 사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드론이 배송지에 나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겠지. 하지만 중간에 드론이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할 수도 있고 어디 고층 아파트에 유리벽에 내가 크게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러니 배달용 드론에서 나는 가능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내려와야 한다. 어떻게? 방법이 궁금하면 [더 위험한 과학책]에서 확인하시길.
이 책에는 ‘이 책의 내용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이 들어있다. 마치 레고를 사면 딸려오는 사용설명서 주의사항에 ‘이 레고를 삼키면 위험하다’는 말이 있듯이. 정말 특별한 아이들은 그걸 삼키지만 대부분은 안다.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랜들 먼로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쁜 아이디어와 좋은 아이디어를 구분하게 되고 나쁜 아이디어가 왜 나쁜지 알아서 더 나은 접근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책을 다 읽은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은 저자의 바람이 실현되는 놀라운 책이라고 응답하고 싶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생각을 바꿔야 삶이 바뀐다는 얘기다. 많은 이들이 삶을 바꾸기 위하여 철학책을 읽고 자기계발서를 읽고 위로와 동감의 에세이들을 읽는다. 물론 그런 책들은 저마다가 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독자에게 준다. 그러나 진짜로 삶을 바꾸는 ‘생각’을 하고 싶다면 과학책이야말로 그 목적에 적합한, 무척 혁신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과학보다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온 것이 또 있을까? 과학만큼 우리 삶을 치밀하게 채우고 있는 게 또 있을까? 사물과 현상을 과학적인 상상력과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바라보게 되면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의 많은 부분들이 저절로 바뀐다. 페니실린이 곰팡이에서 약이 된 것처럼. 이렇게 유익한 과학책이 심지어 막강한 ‘유머’까지 탑재하고 있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이야기해본다.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다. ‘유머’과학책이다. ‘과학책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코웃음치시는 분은 그 코웃음은 태양으로 쏘아 보내고 서둘러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재미가 없다며 저를 태양으로 쏘아 보내는 건 그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를 어떻게 태양으로 쏠지는 이 책에 계획이 다 있습니다.)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최근 SF소설 붐인데 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취향에도 이 책은 정말 찰떡콩떡찹쌀떡이다. SF소설 작가를 꿈꾸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 영감 꺼리가 한 가득하다는 걸 귀뜸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