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평화 - 진짜 핵심 진짜 재미 진짜 이해, 단어로 논술까지 짜짜짜 101개 단어로 배우는 짜짜짜
서의동.이지선 지음 / 푸른들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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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관련한 101개의 키워드를 엮은 책이 나왔다. 평화에 대한 개념적인 정리보다는 평화와 관련한 정치적, 사회적 현상, 상황 등을 모아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평화는 참 아이러니하다.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평화는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데 평소 우리는 그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잃어봐야 느끼는 소중함이랄까. 어떤 위협이나 위험이 닥쳤을 때, 그 혼돈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야 비로소 평화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몸으로 배워야 아는 거겠지.



이 책의 표지에는 '단어로 논술까지'라는 부제도 적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확실히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권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물론 전쟁과 평화에 대한 현세를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책 한 권으로 손쉽게 알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나 좋다. 중학생 이상 나이의 아이들과 독서 토론을 한다면 이 책의 한 꼭지에서 주제를 골라 함께 읽고 관련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등 함께 공부한 다음에 토론을 나눠도 엄청 재미있겠다. (이걸 쓰면서 그런 토론 모임을 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다)



책의 꼭지는 총 101개로 흥미로운 키워드가 여러 개 눈에 띈다. 겨레말큰사전, 그린데탕트, 능라도경기장 등 남북이 공존과 번영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 (혹은 노력해 온) 것들도 있고 메카시즘, 청일/러일전쟁, 베르사유조약 등 전쟁의 세계사 주제도 여럿이 있다. 아무래도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빈번한 무력 위협 등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돈주, 삐라 등 북한과 관련한 주제가 무척 많다. 무력 전쟁 뿐 아니라 혐오 정서 역시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이 책의 100번째 주제로 '헤이트 스피치'는 다른 주제들 이상으로 깊이 생각해볼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평화는 뭘까? 아무런 위협이나 위험이 없는 상황, 그러니까 안정 혹은 안전의 상태를 평화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력 충돌이 없는, 정치적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혐오 발언이나 환경 파괴, 인권 문제 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란 근본적으로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의식과 마음에 존중과 존엄이 올바르게 잡혀 있는 때 완성되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평화는 국가가 주도하거나 정치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 병행될 때 비로소 피부로 와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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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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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다. '깨진 유리창 이론',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탠포드 대학교의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교도소 실험이나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 실험 등의 내용은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리에 트렁크가 열린 채 방치된 자동차가 있을 때, 누구도 그 자동차를 훔치거나 부수지는 않지만 방치된 자동차의 유리가 깨져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자동차의 물건을 훔쳐갔고 훔쳐갈 게 없어지자 마침내는 차를 부수기까지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이 정해져 있거나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선과 악 중 한 가지 편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선택을 하게 된다. 자기 안의 악을 꺼내서 사용할 지 말지, 선을 넘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그런 선택의 순간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때문에 촉발되는 게 아니다. 상황이다. 그 상황에 처해보기 전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아주 솔직하고 직관적인 제목의 책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은 필립 짐바르도와 스탠포드 역사학회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제목만큼 내용도 솔직하다. 짐바르도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악명 높은 실험의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 자신의 생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그는 그의 연구와 실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가 했던 실수들도 이야기하는데, 이런 실수마저도 집단 내부의 역학 관계, 집단 즉 3명 이상이 모인 상황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관계에 따라 각 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대한 그의 이론의 당위성을 증명한다.



밀그램은 제가 자신감 없는 남학생에서 자신감 넘치는 남학생으로 변한 건지, 아니면 상황이 바뀐 건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상황이 바뀐 거라는 데 동의했죠.

신기한 것은 그때가 1948년이었다는 거예요. 밀그램이 ‘상황이 개인적 성향에 미치는 힘’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초반이었고요. 몇 년 뒤 저도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죠. 밀그램과 달리 제 실험은 개인의 권위보다 개인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에 더 주목했지만요. 상황에서 비롯된 힘을 지배적이고 물리적이고 학대적으로 쓰게 된다는 내용이었죠.

32-33쪽


이 과정에서 제가 큰 실수를 하나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조사관에서 교도소 감독관으로 역할을 바꿔버린 거예요. 또 다른 실수도 있었는데, 사무실에 ‘교도소 감독관’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거죠. 수감자를 면회 온 부모는 항상 교도소장을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돌아가기 전에는 감독관을 만나야 했고요. 그래서 그들은 저를 교도소 감독관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고, 저 역시 교도소 감독관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죠.

136쪽



탁월한 학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고 (특히 4번이나 다른 인종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이야기. 유대인, 흑인, 시칠리아인, 프에르토리코인. 근데 나도 이 인종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스탠리 밀그램과의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환경, 유산을 받아 지금의 놀라운 성과를 이룬 연구자가 된 게 아니라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으로 사회심리학계의 장인이 되었다는 비하인드가 놀랍다. 빈곤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느끼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순간과 상황들 속에서 그는 남다른 시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했다. 단순히 관찰력이 좋다기 보단 메타인지가 뛰어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어린 필립 짐바르도는 상황 속에서 그 상황과 자기 자신의 입장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이 영화를 들여다보듯 상황 전체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힘이 정말 대단했다. 이것은 필요에 의하여 생긴 능력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만약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도 본인이 이것을 학구적으로 발전시켜 뛰어난 연구가로 인생의 노선을 정하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거나 쓸데 없는 곳에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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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위협 -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
누리엘 루비니 지음, 박슬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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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은 쓰다. 분야와 맥락, 주제에 상관없이 항상 그렇다. 듣기에 좋지 않은 말이 모두 약이 되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들어서 약이 되는 말 중에 쓰지 않은 말은 없다. 왜냐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재의 내 처지와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주봐야하기 때문이다.

[초거대위협]은 책 표지와 띠지가 한결같이 무섭다. 아마 여느 때 같았다면 이런 무서운 책은 연초에, 그것도 이것저것으로 한창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에는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파른 물가 상승과 반비례하여 곤두박질하는 소비지수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 와중에 국내 정치에나 국제면에서도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는 정말 암울한 시기라는 걸 함께 감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다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또한 겪어 나가야 하는 이 위기에 대하여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왜냐면 지금 우리를 덮친 위협과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미 가까이에서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는 위협들은 개인의 선택이나 한두 국가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집단 대응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이라면 어려운 책이다. 2006년 미국 부동산붕괴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채무불이행 등 여러가지 국제적인 경제이슈의 인과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위기를 진단 및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평소 이 분야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경제 분야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만한 이야기들이라 어렵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많은 양을 한 책에 다 넣어 현재를 진단하다보니 독자가 소화해야 할 양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은 무척 좋다. 번역자의 감각 덕분일수도 있고 저자의 박식하면서도 명석한 전개 덕분일수도 있다. 여튼 어려운 내용이나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점.


실은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전달하는 책이라고 해도, 아마 감기약 먹듯이 꾸역꾸역 읽어냈을 것이다. 지금 지구촌을 사는 사람 특히 고물가, 부채, 인구감소, 기후위기 등 묵직한 이슈들을 실생활에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다. 세계 소득증가율이 하락하면서 대부분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서 국가과 기업, 은행과 가계가 상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27쪽


성장을 달성하기 어려운 오늘날, 우리는 사회보장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미적립 청구서의 무게에 무참히 짓눌리는 중이다.

78쪽


국민 소득 중 점점 더 큰 비율이 젊은 노동자가 아닌 은퇴자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급여와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노령 연금이 급증하면서 이 편향 현상은 매년 더 심화되고 있다. 만일 청년 노동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이 문제에 아직 분개하지 않고 있다면,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84쪽


[초거대 위협]은 그도안 평범한 개인이 여러 기사와 지표들을 통하여 막연하게 느꼈던 불안함, 이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을 명확한 분석으로 구체화한다. 이게 불안한데 왜 불안한 지 알수 없었던 문제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답을 얻는다. 가계와 국가가 지고 있는 상환 능력을 뛰어 넘는 부채의 문제라든가 당장 오늘도 기사가 났던 출산율 폭락의 문제 등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위기가 될 것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준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더더 불안해진다. 저자가 예측한 우리의 미래는 아주 아주 좋지 않다. 이 비관적 예측은 그냥 대충 두드려 본 눈대중이 아니라 수많은 낙관적 전문가들로부터 조롱과 지탄을 받으면서도 비관적인 예측을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가 최근 100년 동안 지구촌에서 벌어진 국제 경제와 정치, 미국의 정책 등 굵직한 이슈에 대한 폭넓은 데이터, 그에 관한 자신의 식견과 경험을 총망라한 결과이기 때문에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다소 슬프고 원통하기도 했다. 아이고, 우리가 어쩌다 모두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리라 기대했던 핑크빛 미래, 지난 75년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촌의 국가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고 번영할 것이라는 낙관, 흥청망청 쓰고 버리고 두려움 없이 투자하고 소유했던 지난 나날들에 대한 향수.


낙관주의자들은 아직도 기술 혁신을 통해 긍정적인 총공급 충격을 촉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 완화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선진경제에 관한 데이터에서 기술 변화가 총 생산성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불분명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생산성 성장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172쪽


내가 그보다 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초거대 위협은 경제, 금융, 정치, 지정학, 무역, 첨단기술, 건강, 기후 등 광범위한 문제들이다. 지정학적 위협처럼 그중 일부는 냉전을 거쳐 종내에는 열전, 즉 본격적인 무력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매우 긴급하고 거대한 규모의 10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확한 비전을 갖고 미래를 예측하고, 이런 위협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11쪽


하나같이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이 초거대 위협들이 한 점으로 수렴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정도로 파괴적이리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상 모든 사람을 위한 세세한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다음번 변곡점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410-411쪽


저자는 '가공할 만한' '끔찍한'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의 분석과 예측에서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끝까지 읽어나간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필요한 건 낙관주의도, 희망도, 호재도, 긍정적인 지표도 아니고 냉철한 현실주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초거대 위협]의 저자 누리엘 루비니가 불안을 야기하는 비관론자로 보이겠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저자는 냉철하다 못해 냉혹한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길을 찾으려면 냉혹하더라도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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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여성들 - 그들이 써 내려간 세계 환경운동의 역사
오애리.구정은 지음 / 들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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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Nature라는 말을 성차별 단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 대자연에 성별을 붙이는가? 자연은 무성인데 어째서 굳이 여성 그것도 어머니라는 역할을 부여하는가? 그랬는데 지금은, 이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지를 한 결, 한 결 깊이 체감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연에 굳이 성별은 필요없으나 어머니라는 역할로 이름을 짓는 건 타당하지 않은가. 자녀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고 필요한 정서적 양분을 공급하고 자녀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라는 역할. 지금 자연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이다. 사람의 신체도 자연에서 출발하고 사람의 정서적 양분도 자연에서 얻는다. 사람의 생존도, 성장도 자연에 달려 있는데 문제는 자연에 교감하지도, 소통하지도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숲으로 간 여성들]의 저자들은 여성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자연이 사람을 먹이고 돌보듯 '땅에서 키워낸 먹거리로 가족을 먹이고 돌봐온 여성들의 일상이야말로 오늘날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썼다. 같은 역할을 오랜 시간 해온 존재들이 서로의 위치와 입장을 공감하고 나아가 소통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타자와 교감하는 일이 좀더 능숙한 여성들이기에 그랬을까? 암튼 이 책은 여성들이 시작했던 생태학과 환경 보호 그리고 녹색 투쟁에 이르는 세계 환경운동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멀리는 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환경운동의 역사 속에서 환경운동에 나섰던 여성들의 생은 하나같이 험난했다. 살충제로 인한 환경 피해를 고발하면서 화학 업계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던 레이첼 카슨을 비롯하여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환경운동에 나섰던 많은 여성들은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여성들의 환경운동은 진행 중이다. 도리어 환경운동에 나선 여성들의 연령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학자나 연구가, 교사 등 사회 활동을 하는 성인 여성들만 아니라 성인이 되지 않은 툰베리나 우홍이와 같은 어린 운동가들의 활동은 '기특하다'가 아니라 '경이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고향의 울창한 숲이 벌목으로 잘려 나가자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여자들이 나무를 끌어안고 싸웠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개발과 성장 신화를 버리고, 보전과 공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기 위한 나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또 칩코 운동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적어도 환경운동만큼은 남자가 아닌 여자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 150-151쪽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


알레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은 투쟁을 이끌면서 가장 심각한 핍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넘어 점점 '기후 정의'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거기에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 삶과 공동체에서 대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권력에 맞서 새로운 상상을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결국 지구 환경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책159쪽


환경운동은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는 일은 아니다. 환경운동은 약자의 입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헤아리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마침내 개선책을 실행해나가는 것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자연은 크고 광대하기에 우리가 애써 그의 병든 곳을 관찰하고 교감하고 소통해야만 그의 아픔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회적 약자가 그렇듯이,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민주주의와도 닿아있고 평등과 존엄, 정의라는 가치에도 연결되어 있다. 환경운동은 우리의 터전을 지키고 생존 가능한 지구,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지구를 만들어가는 일일 뿐 아니라 평등, 자유, 정의 마침내는 평화를 이루는 운동인 것이다. 반다나 시바가 환경운동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 인터뷰는 이런 맥락에서의 뜻이 아니었을까.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분리수거와 비닐 적게 사용하기다. 처음에는 미세플라스틱, 그러니까 내가 나도 모르게 흡입하고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인간이란 정말 답이 없다. 왜 이런 것들을 일부러 만들어서 날마다 날마다 엄청난 량의 그것도 썩지 않는 쓰레기로 자기 자신은 물론 지구 전체를 망쳐놓는 걸까.'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정말이지 비닐백을 너무 쉽게, 대충 막 써버리니까 그게 너무 문제인거야.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노력만으로 지구를 지키기에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다. 너무 무서운 것은 이번 세기 안에 지구 평균기온이 1.5도가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는 지구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걸 쓰고 있는 지금도 당장이라도 지구의 파국을 내 생애 동안 맞게 될까봐 너무 무섭다. 툰베리가 눈을 부릅뜨고 경제를 빌미로 지구를 대책없이 오염시킨 어른들이라며 따지고 드는 심정이 지금 내 심정이다. 제발 그만 좀 만들고 그만 좀 쓰고 그만 좀 파괴하고 그만 좀 오염시켜! 제발 그만!!


지질학적인 시간에 비하면 찰나를 사는 인간이지만 그 찰나의 삶이 스스로 택한 잘못된 경로 때문에, 혹은 힘 있는 이들이 멋대로 결정한 경로 때문에 피폐해지고 괴로워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토착민들은 싸움을 계속하고, 환경운동가들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기후 대응 체제를 만들었고, 기업들도 녹색으로 향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생산과 관리 방식을 차츰 바꾸고 있다. (중략)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보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분야와 관점에서 접근하든, 그 출발점은 미래 세대의 절박함을 받아들여 지금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296-297쪽



알레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들은 투쟁을 이끌면서 가장 심각한 핍박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싸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심의 초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넘어 점점 ‘기후 정의‘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거기에는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 삶과 공동체에서 대안적인 해결책을 만드는 것, 기득권 남성들의 정치권력에 맞서 새로운 상상을 실천하는 것이 포함된다.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결국 지구 환경을 지키는 가장 큰 무기인 것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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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캉디드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7
볼테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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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일이 안 되도 이렇게 안 될 수 있나? 마치 온 우주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작정한 게 아닌가 싶은 그런 나날들 말이다. 단순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 선이 아니라 갑자기 창고 천정이 무너져서 비품을 모두 버려야 하는 일이 생긴다든가 옆 사무실에서 난 불이 우리 작업장까지 번져서 어제까지만해도 멀쩡했던 공간을 태워버렸다든가 하는 천재지변까지 거들고 나서면 정말 눈앞이 깜깜해진다. 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런 상황에 18세기 낙관주의자들은 '괜찮아, 결국에는 최선의 상태로 나아가게 될거야.'라고, 오늘 우리 시대 방식으로 치자면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미안하게도 현실은 상당히 빡세다. 21세기라서 빡센 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18세기에도 저런 낙관주의자들을 비웃는, '현실이 이렇게 빡센데 최선이니 어쩌니 하는 공상만으로 정말 괜찮을 것 같냐'며 채찍을 휘두르는 소설이 있었기 때문이지.



볼테르의 풍자소설 [캉디드]는 이 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 볼테르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시대 상황과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 읽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 전개나 반전을 중요하게 다룬 작품이 아니기에 볼테르에 대하여 혹은 이 작품 자체에 대하여 약간의 정보를 갖춘 후에 소설을 읽어나가면 왜 이 소설이 이렇게 여러 지역을 종횡무진하며 주인공을 개고생시키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 않고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볼테르는 18세기 중반에 유럽 도처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와 참극, 전쟁 등을 보고 듣고 겪은 후에 이 작품을 썼다. 볼테르의 작품과 가치관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볼테르가 전통적인 기독교 정신을 무너뜨린다고 비난했지만 볼테르는 종교적 광신주의, 당시의 지배층인 가톨릭과 봉건주의에 맞섰던 지식인이었다. 볼테르는 [캉디드]에서 주인공 캉디드를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게 하며 갖가지 사건 사고를 겪게 하는데 이 때에 당시 자신이 목격한 불합리한 현실의 사건사고들을 빗대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런 저자의 입장을 알고 [캉디드]를 읽다보면 저자인 볼테르가 그의 작품과 그 주인공 캉디드를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보다 분명하게 다가온다.



"인간은 본성을 타락시켜 온 게 분명해요. 늑대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늑대가 되고야 말았잖아요. 신은 인간에게 24구경 대포도 주지 않았고, 총검도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인간은 총검과 대포를 만들어냈고, 서로를 죽이고 있잖아요. 파산과 재판을 생각해보아도 결론은 똑같아요. 법원이 파산자의 재산을 탈취하는 바람에 채권자들은 더 힘들어지잖아요."

애꾸눈이 된 팡글라스가 대꾸했다.

"모든 건 필수불가결했던 겁니다. 각자의 불행은 대다수의 이익을 만들어내죠. 개인이 불행해질수록 전체적으로는 더 좋아지는 거랍니다."

25쪽



"오, 팡글로스 선생님! 선생님은 이런 참혹한 일은 상상도 못하셨겠죠? 이제는 끝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낙천주의는 포기해야겠습니다."

캉디드가 소리 질렀다.

"낙천주의가 뭔가요?"

카캄보가 물었다.

"낙천주의? 아, 그건 상황이 안 좋은데 모든 게 좋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집착 같은 것이지."

101쪽



[캉디드]의 첫 챕터에서, 주인공 캉디드와 그의 연인인 퀴네공드는 아주 순진하고 맑고 명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화에 자주 등장하는 천사들의 모습처럼, 그들은 세상의 악하고 처참하고 무서운 일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온갖 이상한 일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험난한 세파 속으로 던져진다. 순진한 시절에 캉디드와 퀴네공드는 숭배하듯 팡글로스 선생과 그의 낙천주의를 따랐지만 그들이 진짜 리얼한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 그들은 결국 깨닫고 만다. 낙천주의? 이제 그건 그만둬야지.


캉디드가 낙천주의를 결국 놓아버리기까지 겪는 파란만장한 사건 사고들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캉디드의 대화 속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무척 많은데 특히 볼테르가 프랑스와 파리를 비꼬아 놓은 부분이나 당시 관료, 성직자들의 부패를 꼬집은 부분들은 상당히 재밌다. 지금 읽어도 재밌으니 이 작품이 당시에는 얼마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을지 짐작이 된다.



"나는 그 어떤 종교법 전문가와 대신의 이름을 알았던 적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 사건에 대해서도 아는 게 전혀 없고요. (중략) 내가 농사짓는 밭에서 수확한 것들을 팔면 그걸로 된 거죠."

선량한 노인이 대답했다.

(중략)" 그 땅을 자식들과 함께 경작합니다. 노동은 우리를 세 가지 큰 불행,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죠."

180쪽



캉디드는 농가로 돌아오면서 노인이 했던 말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리고 팡글로스와 마르탱에게 말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도 함께 식사했던 여섯 명의 왕들보다 저 노인이 자신의 운명을 더욱 바람직하게 꾸리고 있는 것 같아요."

181쪽



이론과 사상, 학문, 정치 등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저런 거대한 것들인 것처럼 보이나 실상 개인의 삶이란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캉디드는 마침내 다시 퀴네공드를 만나고 결국 가정을 꾸린다. 퀴네공드 역시 세파 속에서 천진한 시절의 아름다움을 다 잃고 심지어 괴팍해졌지만 둘은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캉디드는 유식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노인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지속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땅을 경작하고 노동하며 그 노동의 결실을 신성한 삶의 양분으로 삼는 사람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은 결국 각자가 경작하고 노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의 땅을 경작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책181쪽)"라는 캉디드의 짧은 말에 이 작품 전체를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들어있다.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난제들이다. 누군가는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준다는 말이 가당키나 하냐고, 구닥다리 시절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은 부자가 되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가난을 면하게는 해준다. 나의 노동이 나를 먹고 살게 한다면 이 노동이란 얼마나 귀한 것이며 그렇게 내 삶을 내 손으로 경작해가는 일은 얼마나 신성한 것인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권태와 방탕에 빠져 자신의 생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는 걸 볼 때에 200여 년 전에 세상에 등장한 이 작품 [캉디드]는 지금도 여전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소설이다.더군다나! 지금 우리 시대에도 족보없는 낙천주의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작품을 읽다보면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정신 상태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꽤 나이가 많은 소설이라 21세기의 독자로서 도전하기 어려워보인다면 미래와사람 출판사의 시카고플랜 시리즈 중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캉디드를 읽기 시작하는 게 어떨지. 책 제일 앞부분에 인물 관계도가 있어 좋고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라 캉디드의 속도감과 파란만장함을 즐기기에도 좋다




노동은 우리를 세 가지 큰 불행, 즉 권태와 방탕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죠.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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