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옛날 이야기들은 힘이 세다. 오래된 이야기들은 긴긴 세월의 파도를 버텨냈다. 오래될수록 끈질긴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가진 끈질김은 사람들의 공감과 해석에서 비롯한다. 이야기들이 시간의 물결 위를 타고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의 입이 필요했다. 입에서 입으로 거치면서 이야기는 점점 깊이를 얻었고 입을 타고 내려온 이야기가 자기 자리를 종이 위로 옮긴 후에도 그 깊이는 계속되었다. 옛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그래서 참 신기하다. 이 이야기가 기원한 몇 백년, 몇 천 년 전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가 삶의 양식이나 심지어 가치관까지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공유하는 뭔가가 있다는 걸 체감하기 때문이다.

 

신동흔 저자가 지은 [옛이야기의 힘]은 55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책이다. 중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등 세계 각국의 민담을 모아 엮은 책이다. 민담을 채집하여 엮은 저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민담이 들려주는 삶과 사람을 읽어내 책에 함께 담았다.

 

 <개구리 왕자> 같은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굴뚝새> 처럼 생소한 이야기도 있다. 동서양의 옛이야기들은 서로 닮은 구석도 있고 전혀 다른 구석도 있다. 한국인에게는 무척 생소한 성격의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와 되게 우리나라 옛날이야기같다'라고 느끼는 민담도 있다.

 

어쨌건 민담이 담고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간됨의 법칙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인가? 인간의 감정을 인간은 어떻게 써야할까? 이 삶은 어디로 달려가는 걸까? 이런 물음은 답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답을 구할 순 없지만 일정한 규칙을 세워두고 살아갈 순 있다. 이런 일정한 규칙은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한다. 민담은 이런 규칙을 제안한다. 성공, 홀로서기, 사랑, 성장, 인내, 구원 등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화두들을 나보다 먼저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민담에 담겨 있다.

 

신동흔 저자는 이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정리했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책으로 냈다. 옛이야기들인만큼 구술자료를 정리한 내용도 적지않았을텐데 그 많은 자료를 이토록 흥미로운 책으로 정리해낸 것에 박수를 보낸다.

추위가 빨리 온 덕분으로 긴긴 겨울밤, 담요를 덮어 쓰고 책 읽기가 즐거워졌다. [옛이야기의 힘]이 그런 즐거움에 함께하고 있어 더욱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요슈 선집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요슈란 일본 고대의 노래 가사들을 모은 겁니다. 4천여개 이상의 가사를 모은 만요슈는 시간을 뛰어넘어 일본 고대 민생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가사가 아닌,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내용 역시 천황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고루 담고 있어 특별합니다.

 

고대의 기록이나 유물들은 시간을 초월해서 여전히 그 시대의 면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기이하고 각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골동품 수집가들의 마음과 비슷한 마음일까요? 우리나라에도 고대 가사로 유명한 백제 가요 [정읍사]가 있죠. 달하 노피곰 도드샤~ 이렇게 입으로 되뇌어 보는 것만으로도 옛사람의 시대를 공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만요슈]를 읽는 것도 마치 그런 느낌이에요. 과연 1500년도 더 된 옛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은 어땠을지 들여다보게 되네요.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라는 부제를 걸고 [만요슈 선집] 을 펴냈습니다. 저는 AK커뮤니케이션즈의 교양서들은 믿고 봐요. 한번쯤 읽어볼만한 좋은 책들을 꼼꼼하게 다듬고 만들어서 펴내는 출판사이니만큼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어도 후회가 없습니다. 특히 인문교양서, 역사교양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곳이죠. 이번에 [만요슈 선집]도 좋습니다. 사실 하이쿠 같은 일본의 고전 문학에 저는 별 취미가 없어요. 그나름의 재미와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제 취향이 아니어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쪽인데 이번에 [만요슈 선집]을 읽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문학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광범위하지만 '시집'을 읽는다고 하면 훨씬 구체적이지요. 고대인들이 남긴 싯구들을 호흡해본다는 게 [만요슈 선집]을 읽고 난 감상입니다.

본래 만요슈는 4500여 수가 수록되어 있지만 이번에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펴낸 [만요슈 선집]에서는 그중에서도 만요슈 입문자들에게 추천할만한 작품들을 엄선해서 실었습니다. 고대 기록이라는 게, 현재의 문학적 관점에서 읽었을 때 역사적, 상황적 맥락이 맞지 않아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잖아요. [만요슈 선집]은 그런 독자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하여 간결하고 이해가 쉬운 역사적, 상황적 설명을 곁들여 만요슈를 들려줍니다.

문학 특히 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추합니다. 아주 색다른 맛과 멋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가사들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기 쉽고 보기에도 깔끔하게 디자인된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좋아지는 책이 있다. 특히 인문학 교양서적류에 매년 책을 출간하는, 그래서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자들이 많은데 그런 저자들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다보면 알게 된다. 저자의 밑천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어떤 저자는 작년에 출간한 책에서 한 이야기를 올해의 신간에서 했는데 그게 실은 몇 년 전에 낸 책에서 했던 얘기를 표현만 조금 바꿔서 책을 내곤 한다. 재탕, 삼탕, 곰탕으로 끓인 그런 책들은 읽다보면 결국 '아, 이제 이 저자의 책은 더는 찾고 싶지 않다'는 데에까지 이른다. 반면 매해 혹은 2년에 한 권 정도 부지런히 책을 내는 어떤 저자의 책들은 매해 기대가 된다.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저자가 최근에 언론과 한 인터뷰들을 먼저 찾아 읽게 되고 손꼽아 그의 책을 기다린다. 이전에 그가 자신의 책에 실었던 담론들이 과연 어디까지 깊어졌고 확장되었을지를 가늠하며 책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그렇게 받아 읽은 신간을 다 읽은 후에 마음과 생각에 차곡차곡 쌓이는 성찰들은 그 이후의 일상을 윤택하게 한다. 아, 정말 이런 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왜 독자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지를 시장의 축소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사유의 축소 차원에서 접근하는 저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유현준 저자는 후자 쪽이다. 과연 우리는 '건축'으로 어디까지를, 인류의 어떤 부분까지를 해석할 수 있을까. 유현준 저자는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이와 같은 도전을 벌이는 듯하다. 글을 쓰는 저자로서 이런 도전은 당연히 골치 아프고 때로 아주, 무척 고되고 재미가 없기도 하겠지만 독자에게 이런 도전을 바라보는 일, 그 도전에 슬그머니 수저를 얹어보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얼마 전 아주 정독, 탐독을 했던 [어디서 살 것인가]에 다시 수저를 얹어보면서 나는 유현준 저자의 밥상에 여러차례 수저를 올린 일을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고 있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자신에 대한 기특함이다.

 

 

근데 솔직히 이건 좀 민망한 이야기다.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명저를 알아보곤 '아, 기특해'라고 칭찬하면 말이 되지만 이번 경우는 말이 안 되니까. [어디서 살 것인가]는 이미 좋은 책, 정말 아주 괜찮은 책으로 수많은 매체와 독자들에게 자리매김한 책이다. 2020년이 이제 1분기 정도밖에 남지 않은 이 계절에 [어디서 살 것인가]를 두고 좋은 책이니 어쩌니 운운하는 건 뒷북 중의 뒷북. 그래도 꼭 내 독서록에 남기고 싶었다. 이 좋은 책, 우리 모두 같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라고.

 

 

책은 무서운 매체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저자의 생각이 영글어진 배경 등이 종이 위로 두둥실 우러난다. 저자 스스로도 의도하지 않은 그 무형의 빛깔 속을 독자는 거침없이 해부한다. 그 빛깔에 반사된 혹은 그 빛에 고무된 독자의 내부에서는 역시 독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독자의 생각이 영근 배경 등이 저자에 호응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 이상한 세계 속에서 수백 년을 뛰어넘어 저자와 독자가 같은 경험을 가지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마치 한 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견고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는 동안 이 얇지 않은 책의 곳곳에서 나는 연거푸 저자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아!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네요.' '완전!! 나도 그런 생각했는데, 그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군요!' '맞아요, 그때 그런 감정이 막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와요.' 도시의 변두리, 골목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주택가, 도심 속 구석에 파묻힌 공원, 모든 것이 네모난 학교 등 도시에서의 삶을 이토록 넓은 공감대로 해석한 책이 과연 또 있을까. [어디서 살 것인가]를 그토록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와 건축과 그 속에서의 인간 존재를 해석하는 저자의 탁월한 시선 뿐 아니라 도시 라이프가 현재 풀지 못하는 수많은 난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도시도 그렇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그러하기에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책을 만들고 (독자가 책을 읽는 행위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도시,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그래서 질문이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싶냐고, 그래서 그런 공간을 그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묻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미터 그리고 48시간 낮은산 키큰나무 17
유은실 지음 / 낮은산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은 건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살이 몰라볼 만큼 빠진다는데 나는 그런 적도 없었고 목이 튀어나온다는데 그런 증상도 없었다. 다만 정말 미쳐버릴 만큼 피곤하고 고단해서 어딜 제대로 다니지 못했을 뿐이다.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업무를 멈추고 집에 콕 박혀서 지낸 시간이 도리어 나에게는 행운이었을까? 아마 작년과 같은 업무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면 진즉에 실려갔을 수도 있다.

 항진증 치료약을 먹기 시작한지 두 달째에 접어들면서 몸 컨디션은 많이 나아졌다. 치료되어 가는 과정인지 살도 오르기 시작하고. 만성피로가 나를 짓누를 때는 우울감도 심했는데 확실히 요즘은 마음도 가벼워졌다.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져서 병이 드는 게 순서겠지만, 마음이 약해지면 몸도 약해져서 병이 들고 병이 나아가면 즉 몸이 건강해지면서 다시 마음도 강해지는 신체와 정신의 밀접한 관계를 이번에 톡톡하게 체감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  병증과 함께 하면서 병자로 산다는 것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사회적 약자로 산다는 문제와는 아주 차원이 다른,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2미터 그리고 48시간]은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은 정음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병자로 보내면서 느끼는 걸 그린 소설이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 엄마와 아빠는 따로 살고 엄마와 함께 사는 정음이는 그나마도 마음이 편치 않다. 정음이는 엄마와 살면서 한번도 병자로서 엄마에게 기대본 적이 없다. 속깊은 정음이에게 보이는 엄마의 생활고는 정음이로 하여금 주변사람에게 의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병자인 정음이 속을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친구들이란 어차피 그 또래, 고만고만한 아이들일 뿐이다. 어른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그 외로움과 슬픔, 억울함과 화를 어떻게 알겠어. 같은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2미터 그리고 48시간]의 저자는 주인공 정음이처럼 갑상선 항진증을 오래도록 앓아온 소설가다. 병원에 갔을 때 함께 대기실에 앉아 있던 청소년 환자를 보고 이 소설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이 병증, 병자에 대해 무심하고 혹독하기까지한 이 사회의 냉혹함을 어린 환자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같은 입장이기에 조근조근 그 아이의 속내를 헤아려보는 것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2미터 그리고 48시간]은 '병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벗'이라는 판타지를 등장시킨다. 정음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같은 반 아이 인애 그리고 정음이의 할머니는 오랜 병증으로 얼어버린 정음이의 마음을 녹여준다. 그리고 정음이는 항진증과도, 그 병증이 가져온 외로움과 괴로움과도 작별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내 새끼,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아무도 모른다. 아파 보기 전에는 몰라.”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멍해졌다. 엉덩이뼈가 부서진 채 누워서, 6인실의 소음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단단히 잠겼던 빗장을 열고 내 마음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144쪽

 

 

 정음이의 항진증이 차도가 보이지 않자 결국 병원에서는 방사선 약물 투여를 결정한다. 방사선 약을 삼킨 뒤 48시간 동안 그 어떤 인간도 정음이의 2미터 이내로 들어와선 안 된다. 정음이가 먹은 약에 피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년을 앓아온 항진증보다도, 병이 주는 경제적 그리고 정서적 어려움 보다도 정음이가 두려워한 건 그 '2미터 그리고 48시간'이었다. 약을 먹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친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정음이는 필사적으로 사람들과 2미터 이상 떨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2미터를 떨어지기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 정음이는 '우리가 이렇게 가까웠구나'를 새삼스럽게 느끼며 갖은 고생 끝에 친할머니의 집에 도착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병원에 홀로 다녀오시다가 큰일을 당했던 할머니가 있어 혼자 병원에 다녀오는 정음이가 남같지 않은 인애, 엉덩이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채로 정음이를 위로하는 정음이의 친할머니, 말은 무심하게 해도 정음이가 먹을 수 있는 저요오드식으로 냉장고를 꽉 채워둔 아빠를 차례로 등장시킨다. 아파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병자의 마음은 누구라도 따듯하게 헤아려 줄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난 타인조차도 아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감하게 되고 연민하게 된다. 이 동감과 연민은 병자를 치료하는 또다른 약이자 힘이다. 정음이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로부터 동감과 연민을 받으며 마음을 연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실 우리는 알고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그 아픔에 동감하고, 그 고통을 연민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작가는 숭늉처럼 고소한 필치로 정음이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려냈다.

 나는 어른이 된 정음이가 편의점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소박하게 즐겁기를 바란다.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와는 든든한 동지가 되고 인애가 정음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병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어여쁜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기를. 정음이의 친할머니가 정음이에게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고 위로했듯이 나 역시 그렇게 주변의 병자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거리두기와 시간두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이 동감과 연대를 체득할 수 있게 되기를, 그러기를 바란다.


 




내 새끼, 아픈 데 사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아무도 모른다. 아파 보기 전에는 몰라."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멍해졌다. 엉덩이뼈가 부서진 채 누워서, 6인실의 소음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 그 할머니가 단단히 잠겼던 빗장을 열고 내 마음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지붕 한 가족 1부 - 사연 없이 여기에 온 사람은 없다
황경호 지음 / 행복에너지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시계공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엘 가면 시계 밑판이라든지 자잘한 시계침이나 톱니라든지 하는 부속들이 굴러다니곤 했는데 젊은 할아버지의 청춘 시절을 듣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만주 시절을 좀더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할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돌아가신데다 할아버지는 만주 시절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도 시계공인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다고 하셨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의 만주란 나와 동떨어진 아득한 세계가 아니라 나와 긴밀하게 연결된 특별한 세계로 느껴진 일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러나 혈육으로 이어진 끈끈한 역사가 거기 깃들어 있는 것 같이 느꼈고, 지금도 그렇다. [네 지붕 한 가족]이라는 소설과 만나게 된 인연은 그 시절 만주에 대한 나의 향수와 환타지 덕분 아닌가 한다.

 

 [네 지붕 한 가족]은 고향을 떠나 각자의 궤적을 그리다 만주 봉천에서 해후한 범호와 범진 형제, 희망이 사라진 시절에 한가닥 지푸라기를 따라 만주 봉천에 흘러든 영덕 등 1930년대의 만주에 모인 여러 인물들의 생사고락을 그린 소설이다. 400여 장의 1부와 2부, 두 권으로 구성된 [네 지붕 한 가족]은 그야말로 만주의 조선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시다. 주인공인 인물들 외에 준길, 장밍, 호영, 은심 등 남녀노소 여러 인물 군상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서로 엮이고 연결되어 '만주의 조선인들'이라는 커다란 그림을 그린다.

 

 [네 지붕 한 가족]이 특별한 점은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시선으로 인물들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어느 시대의 어느 인생인들 고생스럽지 않은 자 있겠냐마는, 1930년대의 조선인들의 인생이란 기구하단 말로는 다 못할 인생들이 아니었겠나. 몇 달 전에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러시아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정착과 독립운동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그 여운이 무척이나 깊고 오래 갔던 기억이 난다. 힘을 잃은 나라의 백성에게 갈 곳은 없다. 살아갈 만한 곳도, 살 수 있는 곳도 없다. 그러니 조선 땅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만주에서도 우리 민초들의 삶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일 수밖에. [네 지붕 한 가족]은 그러한 민초들의 고군분투를 당시의 정세와 함께 세밀하게 그려냈다.

 

 [네 지붕 한 가족] 저자의 이력이 무척 특이하다. 99년부터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황경호 저자는 중국 CJ그룹과 오리온 그룹 등을 거치며 20 년 동안 근무해왔다고 한다. 영업 관리 업무를 해온 덕으로 중국의 동쪽 끝 러시아 접경 지역부터 서쪽 끝 우루무치까지 누볐다고 한다. 현재도 중국 북경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니 2000년 대의 저자가 발견한 1900년대의 역사가 [네 지붕 한 가족]을 빚은 바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들어서 느끼는 건, 우리나라 근대사의 지경을 보다 넓고 깊게 바라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만주와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에서의 조선인들의 역사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이 역사는 우리가 알든 모르든 거기 분명히 있고,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불완전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