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위한 권일용의 범죄심리 수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9
권일용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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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어머니께서 보이스피싱을 당하신 적이 있다.


대출 안내 문자인 줄 알고 링크를 클릭하시고 친절하게 전화 너머에서 유도하는 모든 단계를 차곡차곡 밟으신 끝에 어머니는 500만원 정도를 사기 당하신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어머니께 신신당부를 했다. 제발 휴대폰으로 어떤 링크가 오면 그걸 보낸 기관이 어디더라도 나한테 꼭 먼저 물어보고 클릭하시라고.


 내가 당시 가장 두려웠던 것은 돈 500만원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보이스피싱으로 신고를 했어도 그걸 찾을 수 없는 현실도 아니다.  다음에 다른 내용으로, 다른 번호로부터 미끼가 던져졌을 때 어머니는 또 당하실 수 있다는 것. 그때는 지금보다 금액이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이 당시에 가장 두려웠고 실은 지금도 무척이나 염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모르는 사람이나 걸리는 거지. 순진한 사람이나 당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안 당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1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즉, 무척이나 순진무구하고 무지한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히 '내가 조심하고 내가 주의하고 내가 신중하게' 살아간다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얼마 전 대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난데없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나 텔레그램 채팅창을 통해 몰카나 개인신상 유출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주의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게 아니니까. 그런 사건사고의 뉴스를 읽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저런 사건사고들의 피해자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도 저런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려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범죄 역시 복잡해졌고 요즘은 특히나 온라인이나 휴대폰 상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2000년대 이전의 범죄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이었다면 요즘의 범죄는 간접적이고 심리적이다. 그래서일까. 알아차리고 대응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까다롭고 곤혹스러워졌다.


 그래서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와 같은 도서가 반갑다. 대한민국 경찰청 제1호 프로파일링 마스터를 지내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 범죄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내고 있는 권일용 저자는 30여 년간 강력사건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대한민국 범죄분석에 잔뼈가 굵은, 현장감각이 혁혁하게 살아 있는 노장이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범죄심리에 대하여 했던 강연을 모아 다듬어 책으로 엮었다. 왜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사람은 저지르지 않는가? 범죄자는 어떤 자극을 받아 비로소 범죄를 저지르는가?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하여 저자는 심리학과 사회학의 여러 연구와 이론들을 바탕으로 범죄심리를 해석하려 노력했다. 이 책은 30여 년 현장에서 그가 보고 듣고 연구해온 내용들의 집합이다.

 

 미래의 범죄 유형은 어떻게 변할까? 지금도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향후에는 정서적 학대와 심리적 고통을 가하는 범죄가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교묘한 가스라이팅이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루밍,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 등이 더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성착취 범죄는 지금부터라도 강력하게 차단해야 한다.76쪽

 

 

 


  이 책을 단 하룻밤 만에 완독했다. 일단 주제와 내용이 나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고 문체와 내용이 원만하여 어떤 독자가 읽어도 무리 없이 읽힌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심리적, 사회적 배경을 가능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뿐 아니라 최근 몇 십년 간의 범죄 유형 변화, 그 변화의 원인,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이 겪는 최근의 특이점들, 확증편향이나 고립감 등에 대한 염려도 언급한다. 이 책을 차분히 읽어가다 보면 결국 '범죄'란 어느 개인의 돌발행동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 개개인이 함께 인지하고 범죄를 낳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저자는 경찰들이 수사를 할 뿐 아니라 법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끈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체험하는 분야 중 하나가 경찰이다. 분명 해서는 안 되는 나쁜 일인데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없거나 그 처벌이 미미한 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대면해야 하는 이들이 경찰이다. 일이 일어난 후에 호들갑스럽게 대책을 논의한다면서 누구의 책임이네를 따지지 말고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이 문제점을 적극 개진해야 한다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개인화가 점차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에 지나치리 만큼 집중한다. 이러한 변화들이 범죄를 점점 더 우리의 삶 가까이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159-160쪽

 

'남의 일'로 여겨 신경을 꺼야 할 것은 남의 흉잡기, 다른 사람의 SNS, 온갖 가십거리 정도가 아닐까. 옆집에 사는 내 또래 여자가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면, 같은 직장 동료가 뜻하지 않게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면 그건 신경꺼야 하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음에 같이 아파해야 하는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이 책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에서 경제 발전과 함께 새로운 양상의 범죄가 등장하고 동시에 범죄율이 높아지면서 피해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이야기했는데(192~201쪽) 이 부분에 큰 공감을 했다. 경제 발전이라는 달콤함, 생활이 윤택하고 편리해졌다는 호사는 다양한 반작용, 부작용을 불러왔고 그게 우리 사회의 지금 얼굴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했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일정 부분 대가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세금을 내고 국가의 보호를 받듯,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문제를 인지할 때 우리의 안전 역시 그만큼 보장되는 것 아닐까.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개인화가 점차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에 지나치리 만큼 집중한다. 이러한 변화들이 범죄를 점점 더 우리의 삶 가까이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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