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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 랜드 - 쓰레기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평점 :
"앞으로 30년 동안은 옷을 더 만들 필요가 없어요. 만들어진 옷은 이미 충분하거든요."
- 책 [웨이스트 랜드] 198쪽
나는 중고거래 앱으로 쇼핑을 자주 한다. 거긴 마치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 같은 곳이다. 화장품, 의류, 신발, 가방 등 몇 번 사용하지 않아 거의 새 거나 다름 없는 중고품 뿐 아니라 새 제품도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나는 필요하다 싶은 물건들을 키워드로 걸어두었다가 '00~' 하고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들여다본다. 앱으로 들어갈 때마다 같은 물건은 없다. 날마다는 물론, 매 시간, 매 분마다 새로운 물건들이 나타난다. 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건들이 다 어디서 온 걸까.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까지만 판매하고, 안 팔리면 정리 예정입니다.' 라는 설명이 달린 온갖 물건들. 거래가 되지 않은 물건들은 아마 내년 이맘때 쯤엔 쓰레기장에 가 있으려나. 정말 황당한 건,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버리고 나서 우리는 또 그 만큼 혹은 그보다 많은 양의 물건들을 사들인다는 사실. 누군가는 자본주의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살아갈수록 나는 느낀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는데, 그걸 고칠 수가 없다는 것. 인간은 다들 미친 것 같다.
자본주의 속에서 4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이제야 나는 자본주의의 끝이 뭔지 알 것 같다. 막대한 부, 빛나는 풍요, 윤택한 삶, 이런 건 자본주의의 끝에 없다. 거기 있는 건 오직 쓰레기뿐. 썩지 않은 채로 지구의 물과 흙과 공기, 나아가 사람의 근육과 피와 지방 속에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있는 쓰레기만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언제나 쓰레기를 버려왔지만, 이 정도로 많은 양을 버린 적은 없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확보된 가장 최근인 2016년에 전 세계적으로 20억 1천만 톤의 고형 페기물이 버려졌다. (중략) 나라가 부유할수록 더 많이 버리며, 개발도상국이 더 부유해질수록 문제는 가속화된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쓰레기 배출량이 13억 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남반구의 저개발국이 여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책 15~16쪽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잘근 잘근 분해되어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있다. 빛도 들어가지 않는 해저 깊은 곳에도 비닐봉지가 나뒹굴고, 다른 것들이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우리의 혈액 속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떠다닌다.
지구 인구의 10%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지만, 가격 상한선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부러 멀쩡한 농작물을 버린다. 그걸 아는 기업과 개인들은 침묵한다. 그래야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산업 폐기물과 핵폐기물, 중금속.....이건 아주 암울한 SF 영화보다 훨씬 더 무섭고 침울한 이야기다. 과연 우리는, 2024년의 지구를 살고 있는 이 70억 명이나 되는 인간들은 그동안 저질러 놓은 난장판을 치워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이 책 [웨이스트 랜드]의 저자의 말대로 우리 후손들에게 이 난장판 처리를 맡길 것인가? (책 390쪽)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들에게조차 이 난장판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방법도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웨이스트 랜드]는 쓰레기의 시작과 끝을 추적한 책이다. 아니, 끝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쓰레기엔 끝이 없다. 오직 시작만 있으니. 저자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생활 쓰레기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페트병과 같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현실은 어떤지, 의류를 비롯한 중고품은 어디로 가는지를 취재했다. 방구석에서 키보드로 두드린 게 아니라 인도, 가나, 미국 등 각종 쓰레기가 처리되고 있는 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거기 사람들로부터 듣고 자신의 눈으로 본 것들을 썼다. 쓰레기를 이렇게 총망라해서 추적한 책은 처음이거니와 쓰레기 처리의 진짜 현실, 정말 우리가 처해 있는 사실 그 자체를 생생하게 보여준 책도 [웨이스트 랜드]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삶의 그림자 속에서만 있었던 쓰레기가 결국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삶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는지, 처절하고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개인의 삶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의 양도 많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 산업 쓰레기로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활 쓰레기를 묻을 수 없어 쓰레기가 산이 되어버린 인도의 실상만 봐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는데, 산업 쓰레기는 심지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다는 게 우리의 현재다.
저자는 쓰레기에 대해서 취재하고 난 이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 플라스틱은 가능한 적게 사고 적게 쓰고, 재활용품을 씻고 분류하고, 개인 컵과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사용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개인으로서의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한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희망이 아니라 무력감, 내지는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 들었다. 쓰레기를 줄이려는 개인의 노력은, 어쩌면 우주의 먼지보다 더 작은, 아무런 효과도 성과도 내지 못하는 아주 미미하고 미비한 것 아닌가.
전 세계적으로 산업 폐기물이 정확히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진실은, 우리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추정치에 대해서는 모든 폐기물의 97퍼센트가 가정이 아닌 산업에서 배출한 것이라고 한다. (중략)
이것이 쓰레기에 관한 현실이자, 반드시 알려져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가정의 재활용률에 집중하고, 요거트통을 닦고 병을 수거하는 데 모든 노력을 들인다 하더라도 폐기물은 대부분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도 전인 '상류'에서 생겨난다.
책 380-381쪽
나는 지구가 아주 큰 별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나라, 드넓은 땅,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땅 속. 그런데 곳곳에 쓰레기를 파묻고 있는 인간들의 현실을 보고 나니, 이젠 지구가 아주 비좁게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파묻은 쓰레기 위를 딛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지 추산도 못하면서. 시간도, 공간도 무한한 자산이 아니다. 시공은 재활용이 안된다. 시간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고 공간은 무엇을 채우면 그걸로 끝이다. 썩지 않는 쓰레기가 1년에 20만 톤이 넘게 지구를 차지해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시공이 쓰레기로 꽉 차서 인류가 더이상 사용할 시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저께, 유튜브에서 어떤 환경운동가의 영상을 봤다. 그는 기후위기가 심각한데 그 어떤 정부와 기업도 적극 나서서 현재의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책망했다. 기존의 체제를 깨부수고 먼저 진보하는 권력은 없다. 그래서 시대를 바꾸고 세상의 틀을 부수는 건 시민들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바닥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갠지스 강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공동의 의지로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 책 330쪽
재활용, 리필, 순환경제까지 마케팅 전술로 활용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개인의 노력은 정말 미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저 한 문장이야 말로 이 책 속의 탁하고 압도적인 어두움 속을 가르는 단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의 의지로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쓰레기 문화를 바꿔가자는 공동의 의지, 그 의지로부터 시작되는 인식의 변화. 재활용을 철저하게 하고, 플라스틱을 덜 쓰는 우리들이 해나가는 일의 가장 본질은 이 의지를 다지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리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앞으로 30년 동안은 옷을 더 만들 필요가 없어요. 만들어진 옷은 이미 충분하거든요.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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