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스트리트
제니 잭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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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인애플이지?

이 책 표지를 볼 때부터 그게 궁금했다.

00 스트리트라고 지명된 미국 주소지 중에 파인애플 스트리트가 있던가? 너무 생소했다.


소설의 배경도 그랬다. 금수저 가문의 장녀와 차녀 그리고 며느리인 여자들의 이야기는 나한테는 낯설다. 드라마 [상속자들]이나 [꽃보다 남자] 같은 류는 굳이 안 찾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진저리를 내며 멀리하는 취향이라 그렇다. 근데 이건 내 취향이 고상해서가 아니라 금수저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어떤 프레임이나 고정된 이미지가 나한테 있어서다. 저런 소재로는 결국 저런 뻔한 이야기를 하겠지, 라는 짐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짐작이라는 건 사실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은 안 된다. 오히려 버리는 편이 더 낫다.

소설 [파인애플 스트리트]는 누구나 하는 이 짐작,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고정된 이미지가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어렵고 불편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준다.


부동산 재벌인 스톡턴 가문의 장녀 달리는 미국계 한인 2세인 맬컴 김과 결혼했다. 맬컴의 집요하다싶을 정도의 분석력과 명석함, 다정함과 성실함에 그녀의 인생을 걸었다. 달리는 결혼과 함께 집안의 재산을 포기하고, 출산과 함께 그녀의 커리어도 포기했다. 그게 맬컴을 사랑하는 자신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공가도를 달리던 맬컴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달리는 생각을 고쳐먹는다. '인종과 인맥으로 내 남자의 앞길이 가로막혔을 때, 내가 그걸 물리쳐낼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훌륭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를 봐줄 백인 아빠가 없어서 타인의 실책까지 뒤집어 써야 하는 동양인이 겪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유리 천장을 포착하고 고발하는 게 부유한 재벌가의 백인 여성이라니. 아, 이 소설이 재미는 여기에 있다. 온통 백인들에 둘러싸여 무엇이 프레임이고, 무엇이 차별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던 상류층 백인 여성은 동양인과의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깨달아간다. 여성이,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어려움과 벽에 부딪히는지를 느끼고 동양인이 미국 사회 내에서 암묵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첫째를 낳았을 때까지는 직장에 다녔지만 연년생 둘째를 낳으면서 도저히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던 달리는 결국 두 아이를 기르는 데에 전념하기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런 선택 이후에도 그녀는 내내 수많은 돈을 들여 대학원까지 나온 자기 자신이 결국 주부가 되었다는 자괴감을 떨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부끄러워했다. 그랬던 그녀가 맬컴이 회사에서 해고되면서 각성한다. 맬컴이 받는 차별에, 혼혈아인 그들의 아이들이 받는 시선에 진저리를 낸다. 그리고 결국 맬컴이 이전보다 더 영향력 있는 위치로 올라서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다. 달리, 멋지다!!!

이 소설에는 달리와 함께 스톡턴 가문의 막내인 조지애나, 며느리인 사샤가 등장하는데 이 세 인물 중에 나의 베스트는 달리다. 소설을 읽는 내내 진짜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맬컴이 하루아침에 업계의 명망을 다 잃고 백수가 되었을 때, 그들이 누리던 부유한 생활이 지속될 수 없는 위기에 놓였을 때, 남편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가 당한 부당한 처우에 억울해하고 저항한다. 맬컴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그녀가 가진 자산을 모두 동원하여 기회를 만든다. 무엇보다 가장 멋졌던 부분이 맬컴의 해고 이후 달리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장면이었다.


'바꾸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멜컴에게 혼전합의서 서명을 받아낼걸 그랬다. 부모님에게 파인애플 스트리트의 집을 갖고 싶다고 말할걸. 여동생을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볼걸. 해처를 임신했을 때 일을 그만두지 않고 커낼 스트리트 지하철역의 쓰레기에 매일 아침 토해버릴걸. 동료들이 암소 울음소리를 흉내 내든 말든 모유 보냉 가방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갈걸. 경력을 쌓고 그녀만의 소득을 올려, 어느 멍청한 애송이의 실수로 남편의 앞길을 막아버린 인종차별적이고 족벌주의적인 시스템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성공할걸.

책 298쪽


강한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이 장면에서 나는 그걸 정확하게 느꼈다. 달리는 그저 감성적이고 느슨한 사람이어서 멜컴에게 혼전합의서(결혼 이후 그녀 가문의 재산 처리에 관한 합의서. 쉽게 말해 예비 배우자는 그들의 재산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는 내용을 명문화 한거라고 나는 이해했다.)에 서명을 요구하지 않은 게 아니다. 사랑이 너무나 중요해서 그녀의 재산과 커리어를 포기한 게 아니다. 살아온 나날 동안, 그녀는 어떤 일이든 날을 세우고 달려들지 않아도 되었다. 수모와 모욕을 견뎌야 할 일이 없었다. 달리는 더 중요한 것들을 위하여 다른 것들은 미련 없이 놓아주는 걸 배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두 아이를 굳이 혼혈아라 구별하여 취급하는 일은 낯설었고, 맬컴이 당하는 일은 모욕적이었다. 수모와 모욕의 사건들이 이어지자 그녀는 알게된 것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뻔뻔하고 대담하게 쟁취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이후에 그녀는 깨달은 대로 움직였다.


또 다른 주인공인 사샤는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에서 자랐다. 유쾌하고 소탈한 코드를 우연히 알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되었고, 결혼까지 했다. 문제는 코드가 엄청난 재산을 가진 스톡턴 가문의 장남이라는 데에 있었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스톡턴 가문의 변호사라는 사람이 찾아와 혼전합의서에 서명해야 한다며 문서를 안기고 갔다면? 내 예비 신랑은 이 개떡같은 혼전합의서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다면? 그래놓고 '그거 그냥 아무 변호사한테 맡기고 너는 서명만 하면 돼'라는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나 같아도 분기탱천하여 한 달 내내 싸웠을 거다. 사샤가 코드와 혼전합의서를 두고 말다툼하는 장면에서, 코드가 혼전합의서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으레 딸려오는 것이며 별 것도 아니라고 하자 사샤가 '너가 사는 세상에서나 그렇지.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니야! 우리 엄마 아빠가 혼전합의서 같은 걸 주고 받았을 거 같어?!'라고 일갈하는데 내속이 다 후련. 그니까!! 그건 너네들 세상에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이후에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면, 이 갈등은 서로 다른 세계와 세계가 만난 충돌음이다. 코드의 세상이 기이하고 사샤의 세상이 옳다는 분별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가치판단이 아니라, 서로 다름의 문제.

처음에는 작가가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사샤가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보여주며 재벌가의 이상한 관행을 꼬집고 싶은 거였나?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샤는 사샤대로, 코드와 결혼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세계를 고집한다. 사샤는 스톡턴 가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파인애플 스트리트의 저택을 처음부터 싫어했다.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그곳을 조금씩 조금씩 자신만의 입맛대로 뜯어고치고 싶어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그걸 언짢아하는 코드의 가족들을 언짢아했다. 코드 그리고 코드의 가족들과도 갈등이 극에 달한 그 때, 자신의 고향집으로 내려간 사샤는 거기서 깨닫는다. 가족이란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엮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열 때 비로소 거기가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

사실 아무리 소설이긴 해도 코드와 사샤가 너무 이상적인 커플이라, 이 둘의 이야기는 좀 심심하게 읽었다. 일단 코드가 너무 유니콘이라. 아무리 소설이어도 이 정도 유니콘이면 몰입이 안 된다. 사샤는, 처음에는 정말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읽다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나름 빚 없이 사는 가족들인데다 사샤 본인의 능력이 무척 출중하다. 아, 이 정도 여자니까 스톡턴 가문의 일원이 되면서 그렇게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거였겠지. 아, 이렇게 쓰면 스톡턴 가문이 사샤를 엄청나게 괄시를 하고 못되게 군 것 같지만, 소설 초반까지는 그렇게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들은 단언컨대 악의가 없었다. 그들도, 사샤도 정말로 서로를 몰라서 그런 상황들이 생겨난 것뿐.



조지아나는 할말하않. 소설을 읽으면서 발암캐릭터라고 느끼는 인물은 적지 않은데 보통은 어느 기점에서 그들의 선택과 행동이 이해가 가는 상황이 생겨 그렇게 밉지는 않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조지아나는 끝까지 밉상이다. 나한테는 그렇다. 얘는 낼 모레 서른이면서 왜 이렇게 철이 없을까. 무엇보다 작가가 이 인물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데 쓴 요소들에 정말 공감이 1도 안 간다. 불륜에 사별 그리고 느닷없이 자선사업에 뛰어든다고? 브래디가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그의 침대로 뛰어든 선택에 뜨악했던 나라, 그 이후에 전개되는 조지아나의 이야기는 너무 괴롭고 불편했다. 특히 사별의 아픔을 주체하지 못해서 방황하던 조지아나가 사샤의 젠더리빌 파티에서 갑자기 분노의 화살을 사샤에게 돌리면서, 꽃뱀이니 어쩌니 하는 장면은 정말 경악스러웠다. 이 정도로 철이 없는 인간으로 묘사한다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소설은 재밌다. 달리에 대해서는 더 쓸말이 남았을 정도로 너무 좋고, 천재와 사이코패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틸다(달리의 엄마)도 흥미롭고, 무엇보다 맬컴의 엄마인 순자!!!!! 순자가 정말 궁금하다. 소설의 결말에는 라임스톤 저택에 달리와 맬컴 가족 그리고 맬컴의 부모님들이 함께 살게 되는데,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도 너무 궁금하다. 과연 김씨 부부와 스톡턴 부부 사이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작가가 이걸 후속으로 써주면 좋겠다.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성차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통과 선입견, 그리고 편견과 무례함에 대하여 [파인애플 스트리트]에 담아냈던 것처럼 경쾌하고 재미있게, 그 다음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참, 파인애플 스트리트가 왜 파인애플이냐고? 파인애플은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에게 바치려고 브라질에서 가져온 과일이었다. 파인애플의 등장 자체가 최고 엘리트층을 위한 특급 과일이었던 셈이다. 별스런 모양으로, 환영과 환대를 상징하는 과일로 알려졌지만 파인애플은 사실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이라고, 이 책은 귀뜸해준다.



력을 쌓고 그녀만의 소득을 올려, 어느 멍청한 애송이의 실수로 남편의 앞길을 막아버린 인종차별적이고 족벌주의적인 시스템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성공할걸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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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백 년의 지혜 - 105세 철학자가 전하는 세기의 인생론
김형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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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무엇일까? 매 초가 쉼없이 흘러가는 일생에서, 그렇게 부지런히 시간이 흘러간 후에 남은 빈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는 걸까?


1920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과 전쟁, 대한민국의 험난한 탄생과 발전을 모두 겪어 낸 철학자는 시간의 빈 자리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다듬어 묶어 낸 것이다. 저자 김형석은 이 책 <김형석, 백 년의 지혜>의 머리글에서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두고 '백 년 동안의 인생 경험을 통해 현대인들과 나누고 싶은 문제를 제시해본다' 고 했다. 백 년치의 인생 경험 그리고 그것이 2024년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현재의 무엇을 "문제"라고 발견할 것인지를 두고 45편의 에세이가 독자에게 질문을 건넨다.


인생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사랑이 있는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정의란 어떤 것인가


긴 에세이의 호흡을 정리하면 이 세 가지로 105세 철학자의 메시지가 정리되는 듯하다. 인생, 사랑과 교육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


몸이 약하게 태어나 장수는 커녕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도 어려워보였던 아이는, 대한민국 최고령 철학자가 되었다. 유약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위험천만한 탈북, 닥치는대로 일했던 청중년기를 지나 교육과 선한 영향력에 매진하며 살아온 노년기에 이르는 김형석 저자의 생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면으로 관통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주권을 잃은 나라의 설움, 전쟁의 참혹함, 사상 갈등의 냉혹함과 치열함, 개발도상국의 혼란스러움을 차례로 지나 그는 그리고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면 한 인간, 철학자 김형석 개인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지독히도 험하고 독한 세월을 지나왔다. 그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도 질기고 억세고 독한 것들이 남았다. 지금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모두 그런 것들로부터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저자 김형석은 이 책을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나은, 선한 개인들이 자유롭고 행복하며 사회와 국가는 품격과 휴머니즘을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한다. 그가 평생의 푯대로 삼았던 사랑과 교육을 바탕으로 바라볼 때, 우리들 개인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사회와 국가가 되찾아야 할 것은 또 무엇인지를 진단한다.


무엇이 해결책인가. 인간성의 회복이다. 인격과 삶의 가치를 복구시켜야 한다. 양심의 자유와 인간애의 질서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유와 정신문화를 말살하는 정치력을 배격하고 인문학과 인간주의를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선결과제다. 책 128쪽 - 사라지는 인류의 유산, 인간애가 필요한 때


일의 가치란 무엇인가. 나에게 주어진 일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이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는 일은 사회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는 일을 통해 국가와 국민이 번영과 행복이 증대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면서 진리이다. 책 58쪽 -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주는 인생의 길


내 철학과 친구들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위기는 '가치관의 상실'이라고 걱정한다. 정치, 경제, 과학 문명, 기계 과학의 미래 등 문제는 산적해 오는데 건설적이고 영구한 가치관은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철학 부재에서 오는 결과다. 책 133쪽 - 철학과 함께한 70년,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어느 개인의 말이 이 사회의 기준이나 진리가 될 순 없다. 그러나 100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함께 써온 입장에 있는 동시에,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배운 가치를 평생에 걸쳐 실행해온 주인공의 이야기라면 들어봄직하지 않을까.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어야 박수를 받고, 공동체보다 개인의 가치와 필요를 앞세워야 인정을 받는 시대 속에서 일의 보람, 공동체의 귀함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를 만나, 나는 진심으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 <김형석, 백 년의 지혜>를 읽었다.

유형의 것, 물질, 돈, 다 좋지만 그 속에 무형의 것, 정신, 가치관이 부재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를 우리는 지금 체험하고 있다. 이 체험 속에서 이런 책과 같은 에세이를 읽고 백 년의 시간이 남긴 지혜에 조금 더 귀기울여본다면 그리고 그것을 우리 삶의 태도와 방향에 반영해본다면 내일이라도 우리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100살이 넘은 철학자가 여전히 '희망'을 찾는다고 썼듯, 우리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지금도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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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 역경을 성공으로 뒤바꾼 평범한 영웅들
세라 테이트.애나 보트 지음, 김경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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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다. 워낙 어릴 때의 일이기도 하고, 수영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난 이후의 즐거웠던 순간들이 그 전의 어려움들을 다 덮어버려서다. '내가 처음에 어땠더라?' 회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똑똑히 기억나는 한 가지는 물을 정말 많이 먹었다는 것. 처음에는 수영을 배우러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수영장 물 먹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물 밖에서 숨을 제대로 못 쉬니 물 속에서 코와 입으로 얼마나 물이 들어오던지, 물 속에서 켁켁 거리는 내가 뱉어내던 물거품이 수경 위로 부글부글 올라가던 모양은 아직도 기억난다. 하도 물을 먹고 나오니 수영장 밖으로 나오면 그렇게 지칠 수가 없었다. 수영장 셔틀버스 좌석에 늘어져서 앉아있다가 집에 가까워질 때는 거의 곯아떨어져 있기 일수였다. 재미는 하나도 없고, 음파음파는 느는 것 같지도 않아서 힘만 들었던 시간들, 아마 그때 힘들다고 그대로 수영 배우는 걸 그만두었다면 수영이 주는 재미를 지금처럼 즐길 수가 없었겠지.


우리는 세상을 사는 법을 거의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났고, 우리가 배우고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 실패하는 것이다. 자밀은 실패는 성공의 할부금이라고 믿는다. “성공의 대가는 언제나 전액 선불로 치러야 하는 고통입니다.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면 반드시 실패와 성공을 긍정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거듭해서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발전과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책 164쪽, 9장 모든 길은 실패를 거쳐간다.



사람이란 이미 익숙해진 일에선 실패를 할 수 없다. 내가 이미 능숙하게 혹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원만하게 해내는 일들을 하다가 벌어지는 건 실패가 아닌 실수다. 실패는 낯선 일을 시도할 때 일어난다.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려 할 때, 늘 해왔던 방식이 아니라 처음 해 보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할 때, 우리는 실패한다. 어쩌다 운이 나쁜 사람만 실패하는 것도, 운이 좋은 사람은 실패 없이 바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성공은 반드시 실패를 거쳐간다.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 실패를 겪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린 실패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실패했다는 것, 내가 뭔갈 망쳤다는 것, 내가 오늘도 오답을 찍었다는 건 내가 이대로 영원히 실패자로, 오답자로 남을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반대다. 오늘 실패한 만큼 나는 성공에 가까워졌다는 것.


책 [리빌더]는 우리가 실패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뿌리부터 전환시킨다. 이 책은 우리가 실패라고 부르는 상태, 나도 모르게 찾아온 슬럼프의 진짜 정체를 밝히고 그런 압박감과 우울감의 상태에서 시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멘탈관리법을 제안한다.

사실 한 두번의 실패는 큰 타격이 없다. 문제는 실패가 연이을 때 나타난다. 5번을 실패하고 나면 급격히 소심해지는 자신을 보게된다. 10번을 실패하고 나면 이제 우울감에 빠지고 그 상태로 50번 정도 실패하고 나면 내가 나 자신에게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 된다. 남모르게 눈물을 삼키기도 하고, 남탓을 하며 마구 원망을 해보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로 집 안에 처박혀 은둔하기도 한다. 이미 마음은 폐허가 되어 있고 빛나던 의지와 기세는 화석이 된지 오래. 그때 그 슬럼프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행동해야 할까?

이 책 [리빌더]가 그 질문에 정답이 될 순 없다. 내 인생에서 정답은 결국 내가 찾는 거니까.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정답을 찾을 수 있는지를 제안하는 나침반 역할은 톡톡히 할 수 있으리라 싶다. 광고업계의 거물이라고 소개된 저자 두 명은 좌절을 딛고 일어난 경영자, 리더, 학자 등 사회 지도층이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담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경험담으로부터 우리가 실패와 슬럼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과 '진실'을 가려내고, 그들이 성공적으로 다시 일어서는 데에 도움을 준 실제적인 실천 도구들을 정리해 이 책에 실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미국 대법관이 말한 것처럼 어떤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당시에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진짜 영향은 대개 훨씬 더 나중에 드러난다. 때로 계획에서 틀어진 일이 나중에는 제 방향을 찾고 더 많은 결실을 안겨주기도 한다.

책 18-19쪽


뻔한 책인줄 알고 읽었는데, 이 책을 읽기 전과 다 읽고 난 지금, 나 자신부터가 내가 해온 실패와 현재 빠져 있는 슬럼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서지 않았는데도 몇 주가 나를 지치게 해던 우울함이 가셨다. 그렇다고 '그래, 내일부터는 잘 될거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리빌더]는 창의성을 가로 막는 비관주의도 경계하지만 답없는 낙관주의 역시 비관주의 만큼이나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다만, 현재 내가 서 있는 지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나에게 필요한 자세를 이 책의 내용을 빌어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책이 가진 진짜 유익함은 실패와 슬럼프를 바라보는 시야를 교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변화와 성장, 성공에 대하여 하게 되는 여러가지 오해와 착각들을 전략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바꾸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에너지가 가득찬 시간이어야 능률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리빌딩은 한 두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인생 전체에 걸친 기나긴 여정이라는 사실 등 잊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는 사실들을 일깨워준다. 언젠가 슬럼프로 지쳐 있을 때 다시 한 번 꺼내보고 싶은 멋진 책이다.





"성공의 대가는 언제나 전액 선불로 치러야 하는 고통입니다.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면 반드시 실패와 성공을 긍정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거듭해서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발전과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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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 랜드 - 쓰레기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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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0년 동안은 옷을 더 만들 필요가 없어요. 만들어진 옷은 이미 충분하거든요."

- 책 [웨이스트 랜드] 198쪽


나는 중고거래 앱으로 쇼핑을 자주 한다. 거긴 마치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 같은 곳이다. 화장품, 의류, 신발, 가방 등 몇 번 사용하지 않아 거의 새 거나 다름 없는 중고품 뿐 아니라 새 제품도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나는 필요하다 싶은 물건들을 키워드로 걸어두었다가 '00~' 하고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들여다본다. 앱으로 들어갈 때마다 같은 물건은 없다. 날마다는 물론, 매 시간, 매 분마다 새로운 물건들이 나타난다. 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건들이 다 어디서 온 걸까.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까지만 판매하고, 안 팔리면 정리 예정입니다.' 라는 설명이 달린 온갖 물건들. 거래가 되지 않은 물건들은 아마 내년 이맘때 쯤엔 쓰레기장에 가 있으려나. 정말 황당한 건,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버리고 나서 우리는 또 그 만큼 혹은 그보다 많은 양의 물건들을 사들인다는 사실. 누군가는 자본주의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살아갈수록 나는 느낀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는데, 그걸 고칠 수가 없다는 것. 인간은 다들 미친 것 같다.


자본주의 속에서 4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이제야 나는 자본주의의 끝이 뭔지 알 것 같다. 막대한 부, 빛나는 풍요, 윤택한 삶, 이런 건 자본주의의 끝에 없다. 거기 있는 건 오직 쓰레기뿐. 썩지 않은 채로 지구의 물과 흙과 공기, 나아가 사람의 근육과 피와 지방 속에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있는 쓰레기만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언제나 쓰레기를 버려왔지만, 이 정도로 많은 양을 버린 적은 없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확보된 가장 최근인 2016년에 전 세계적으로 20억 1천만 톤의 고형 페기물이 버려졌다. (중략) 나라가 부유할수록 더 많이 버리며, 개발도상국이 더 부유해질수록 문제는 가속화된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쓰레기 배출량이 13억 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남반구의 저개발국이 여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책 15~16쪽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잘근 잘근 분해되어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있다. 빛도 들어가지 않는 해저 깊은 곳에도 비닐봉지가 나뒹굴고, 다른 것들이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우리의 혈액 속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떠다닌다.

지구 인구의 10%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지만, 가격 상한선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부러 멀쩡한 농작물을 버린다. 그걸 아는 기업과 개인들은 침묵한다. 그래야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산업 폐기물과 핵폐기물, 중금속.....이건 아주 암울한 SF 영화보다 훨씬 더 무섭고 침울한 이야기다. 과연 우리는, 2024년의 지구를 살고 있는 이 70억 명이나 되는 인간들은 그동안 저질러 놓은 난장판을 치워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이 책 [웨이스트 랜드]의 저자의 말대로 우리 후손들에게 이 난장판 처리를 맡길 것인가? (책 390쪽)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들에게조차 이 난장판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방법도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웨이스트 랜드]는 쓰레기의 시작과 끝을 추적한 책이다. 아니, 끝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쓰레기엔 끝이 없다. 오직 시작만 있으니. 저자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생활 쓰레기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페트병과 같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현실은 어떤지, 의류를 비롯한 중고품은 어디로 가는지를 취재했다. 방구석에서 키보드로 두드린 게 아니라 인도, 가나, 미국 등 각종 쓰레기가 처리되고 있는 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거기 사람들로부터 듣고 자신의 눈으로 본 것들을 썼다. 쓰레기를 이렇게 총망라해서 추적한 책은 처음이거니와 쓰레기 처리의 진짜 현실, 정말 우리가 처해 있는 사실 그 자체를 생생하게 보여준 책도 [웨이스트 랜드]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삶의 그림자 속에서만 있었던 쓰레기가 결국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삶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는지, 처절하고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개인의 삶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의 양도 많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 산업 쓰레기로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활 쓰레기를 묻을 수 없어 쓰레기가 산이 되어버린 인도의 실상만 봐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는데, 산업 쓰레기는 심지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다는 게 우리의 현재다.

저자는 쓰레기에 대해서 취재하고 난 이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 플라스틱은 가능한 적게 사고 적게 쓰고, 재활용품을 씻고 분류하고, 개인 컵과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사용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개인으로서의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한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희망이 아니라 무력감, 내지는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 들었다. 쓰레기를 줄이려는 개인의 노력은, 어쩌면 우주의 먼지보다 더 작은, 아무런 효과도 성과도 내지 못하는 아주 미미하고 미비한 것 아닌가.


전 세계적으로 산업 폐기물이 정확히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진실은, 우리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추정치에 대해서는 모든 폐기물의 97퍼센트가 가정이 아닌 산업에서 배출한 것이라고 한다. (중략)

이것이 쓰레기에 관한 현실이자, 반드시 알려져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가정의 재활용률에 집중하고, 요거트통을 닦고 병을 수거하는 데 모든 노력을 들인다 하더라도 폐기물은 대부분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도 전인 '상류'에서 생겨난다.

책 380-381쪽


나는 지구가 아주 큰 별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나라, 드넓은 땅,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땅 속. 그런데 곳곳에 쓰레기를 파묻고 있는 인간들의 현실을 보고 나니, 이젠 지구가 아주 비좁게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파묻은 쓰레기 위를 딛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지 추산도 못하면서. 시간도, 공간도 무한한 자산이 아니다. 시공은 재활용이 안된다. 시간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고 공간은 무엇을 채우면 그걸로 끝이다. 썩지 않는 쓰레기가 1년에 20만 톤이 넘게 지구를 차지해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시공이 쓰레기로 꽉 차서 인류가 더이상 사용할 시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저께, 유튜브에서 어떤 환경운동가의 영상을 봤다. 그는 기후위기가 심각한데 그 어떤 정부와 기업도 적극 나서서 현재의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책망했다. 기존의 체제를 깨부수고 먼저 진보하는 권력은 없다. 그래서 시대를 바꾸고 세상의 틀을 부수는 건 시민들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바닥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갠지스 강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공동의 의지로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 책 330쪽


재활용, 리필, 순환경제까지 마케팅 전술로 활용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개인의 노력은 정말 미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저 한 문장이야 말로 이 책 속의 탁하고 압도적인 어두움 속을 가르는 단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의 의지로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쓰레기 문화를 바꿔가자는 공동의 의지, 그 의지로부터 시작되는 인식의 변화. 재활용을 철저하게 하고, 플라스틱을 덜 쓰는 우리들이 해나가는 일의 가장 본질은 이 의지를 다지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리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앞으로 30년 동안은 옷을 더 만들 필요가 없어요. 만들어진 옷은 이미 충분하거든요.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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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세 영어 말문을 트는 결정적 순간 - 아이와 교감하는 영어 그림책 학습법
오로리맘 지음 / 넥서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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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영어유치원이 있다. 금발의 외국인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건물 입구를 드나드는 모습을 종종 본다. 아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부모님과 함께 등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리곤 금발의 선생님 앞에선 영어로 인사를 한다. 퇴원하는 길에도 마찬가지겠지. 방금 전까지 영어로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퇴원을 하는 그 길부터는 한국어로 말한다. 나로서는 아이들이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미취학 아동의 나이서부터 생활의 일부로 영어를 받아들인다면 아무래도 당연히 영어라는 기술을 보다 수월하게 습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물론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전체가 영어라면 당연히 영어를 깨치는 속도도 빠를 터이나 그러려면 정말 영어권 국가로 이민이라도 가야 한다. 그러기가 어려우니 사정이 허락하는 부모님들은 수백만원의 비용을 대서라도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과연 그 길 밖에 없을까? 최초의 언어인 제1언어를 깨우치기 시작하는 나이, 그러니까 0~3세 나이의 영유아라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이중언어'의 사례가 얼마든지 존재하니까. 그러나 한국인 부모의 자녀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면서 한국어와 영어를 이중언어로 사용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부모의 무리한 욕심은 아닌가? 아이에게 부작용은 없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답하는 이 책 [0~3세 영어 말문을 트는 결정적 순간]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 책은 오로리를 낳고 돌보는 엄마이자 영어 교육에 몸담았던 교육자이자 학자로서의 저자의 도전을 담은 기록, 이중언어 습득에 대한 실험이자 경험을 오롯이 기술한 보고서다.


0~3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관심만 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읽어보면 유익하기까지 할 것이다. (워킹맘이라면 아마 유익하다는 말로는 모자랄 수도 있다. 빠듯한 시간을 내어 일하면서도 아이와 끈끈한 소통을 유지해가는 노하우가 들어 있다) 그러나 영어 습득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유익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좋은 영어그림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풀어놓고 그에 따라 선별한 그림책까지 소개하니, 영어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좋겠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몸이 자라고 나이에 따라 소속과 행동 양상이 바뀌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아이는 끝없는 소통을 통해서 성장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태어난 이후부터 계속 주변 사람과 사물을 통하여 자신이 처한 환경 즉 가정과 사회와 나라 전체의 사람과 문화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 한다. 소통이 없으면 습득도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정 개월수가 지나면 어떤 아이라도 자연스럽게 제1언어를 내뱉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양육자들과의 소통, 긴밀한 교감이 없으면 언어는 쉽게 트이지 않는다.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소통의 도구를 체득하고 그 기술을 익혀가는 시간이자 그 언어에 담겨 있는 해당 사회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제 막 한국어를 깨치기 시작한 오로리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되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다. 나의 말에 상대가 반응을 보이고 상대의 말에 내가 반응이 있어야 살아있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한국어든, 영어든 양육자와의 규칙적이고 따듯한 소통은 아이가 효과적으로 언어를 익히도록 해준다. 또한 언어는 문화의 일부다. 아이가 교과서에 나오는 경직된 언어가 아니라 또래의 영어권 아이들과 같이 살아 있는 영어를 익히려면 아이에게 영어권 문화를 경험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도입에서 '마더구스'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출발한다. 그리고 이에 기반하여 왜 영상이나 다른 매체가 아니라 그림책으로 영어를 가르쳤는지도 이야기한다. 사람의 뇌는 연상을 하고 상상을 한다. 그림책 앞에서 아이는 눈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엄마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받아들인 시청각의 자극은 아이의 머릿속에 남아 연상과 상상으로 이어진다. 이 연상과 상상의 작용은 아이가 그림책을 보지 않을 때에도,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에도 계속 힘을 발휘한다. 엄마와 함께 읽은 그림책 속의 일들이 아이가 혼자 노는 동안 아이에게 장난감이 되어주고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는 아이와 엄마 사이의 긴밀한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이러한 그림책의 역할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 그림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림책 활용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겠으나 아이가 영상에 익숙해지기 전에 그림책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유아들에게 영어를 교육했던 경험과 저자 본인의 탐구, 실제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서 엄마로서 체험한 실전 육아의 경험치가 한데 어우러져 이 책이 나왔다. 손에 쉽게 잡히고 편하게 읽히는 책 한 권이지만 이 내용이 완성되기까지 저자의 평생에 걸친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처음 영어를 접했던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체험한 것들이 오로리에게 영어 그림책을 가르치는 노하우가 되었고 오로리는 지금 자연스럽게 영어가 되는 아이로 성장하는 중이다. 어려운 도전에 나서서 그 도전에서 얻은 것들을 아낌없이 공유해준 저자에게 박수를, 오로리에게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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