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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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오랜만에 태극기를 주섬주섬 꺼내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체감했다. 76주년을 맞은 광복절에 우리는 여전히 마무리가 되지 못한 역사의 부채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골목에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예전보다 현저히 줄고 사람들의 관심이 해방과 역사 보다는 대체공휴일과 휴가로 기울고 있는 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채가 감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누가 지나가는 말로 그러더라. "어떻게 되찾은 나라인데..." 그래, 어떻게 되찾은 나라냐고, 이 나라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핏값이 아닌가. 그렇다면 죽은 사람들만 피, , 눈물을 흘렸던가. 그건 또 아니지. 죽을 각오로 몸을 던진 사람도 있었고 죽을 수 없어서 이를 악문 사람도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이라는 말이 너무나 촌스럽게 들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 때 그 시절은 모두가 참혹하게 살아갔던 나날이었다.

 

 

이금의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1900년대 하와이를 개척한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소설로 구성한 작품이다. '사진 신부'라고 부리는 조선 여성들, 그러니까 해외 이민 1세대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들이 남긴 유산은 무엇인지를 그린 이야기다. '알로하'라는 말이 낭만적인데다 소설 표지 삽화가 마치 휴양지에서 읽어야 할 것 같은 평온한 색채여서 나는 이 작품이 이렇게 생생한 고생사를 닮고 있을 줄 몰랐다.

 

이야기는 어진말에서 시작한다. 버들이와 홍주는 어진말에서 함께 자란 친구로 포와(하와이)로 함께 시집을 간다. 포와에서 보내온 사진 속 남자들은 다들 훤칠하고 부유해보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 숨죽이며 살아가야 하는 조선, 유교의 강박에 갇힌 채로 삶아야 하는 조선을 벗어나 포와에 가면, 공부도 하고 원하는 일도 실컷 하고 잘생기고 훤칠하고 부유한 남편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무당의 딸로 돌팔매를 맞으며 컸던 송화까지, 어진말 출신 셋은 함께 부산을 지나 일본을 거쳐 포와에 도착한다. 그러나 포와에 도착해서 만난 남편들은 사진에 보이는 것 보다 10살 이상 많은 중년의 남성들이었다. 땡볕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해서 깡 마르고 볼품 없는데다 농장 노동자로 일하는 형편들이라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사기나 다름없는 환경에 사진 신부들은 모두 울며 불며 난리가 났지만 차마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낸다. 소설은 버들이를 주축으로 버들이와 홍주와 송화의 하와이 정착기 나아가 이 세 친구가 만나고 겪은 여러 조선 이민자들의 삶을 촘촘하게 그린다.

 

 

 

조선 독립도 중요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다 아입니꺼.

- 버들

 

 

 

조국의 독립을 이루는 거이 자식을 위한 일 아니갔어. 내레 나 위해서 이러간?

- 버들의 남편, 태완

 

 

 

나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해야 할지,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불쌍하게 생각해야 할지 늘 헷갈렸다.

- 태완이 무장독립투쟁을 하는 동안 버들이 홀로 낳은 딸,

 

 

 

1세대 이민자 사회는 혼란했다. 지켜주는 나라가 없어서 그러했고, 이승만 파와 박용만 파와 갈려 서로 다투느라 그러했다. 일제에게 아버지를 잃고 오빠도 잃었던 버들은 힘이 없어 당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았다. 아마 그래서 남편 태완이 어린 정호와 버들만 두고 무장독립투쟁을 하러 떠나겠다고 했을 때 차마 막아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열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버들은 자신과 다른 태완의 가치관이나 이승만 파에 속한 친한 지인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모습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대적하지 않는다. 그들을 사랑하고 아낀 자신의 마음은 고요히 접어두고 자신이 할일을 찾아 부지런히 살아간다. 조선과 모든 것이 다른 하와이에서 적응해야 했던 이민 1세대의 대부분이 그러했으리라. 어떻게든 정붙이고 살아가 보는 것. 그렇게 살다보면 살아지고 그렇게 살아지다보면 어느 새 황혼에 이르는 법이다. 이해하지 못할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자세는 버들의 딸인 펄에게 계승된다. 마치 보낸 이를 알수 없는 택배처럼 버들의 몫으로 속속 들이닥친 삶의 고비들, 그 고된 시간들을 버들이 묵묵히 버티며 감당해온 것처럼, 이야기의 끝에서 펄이 '해안에 부딪힌 파도가 사정없이 부서질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듯 나도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엄마인 버들과 갈등이 깊었던 펄이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쉽지 않았다. 버들과 펄에 대한 여러 반전은 소설 후반부에 숨어 있는데 이 반전 덕에 소설 중반을 넘어서며 조금 느슨해졌던 읽는 재미의 텐션이 다시 바짝 올라간다.

 

 

 

⁠⁠ 얼마 전 끝난 도쿄올림픽의 서핑 종목 해설이 그야말로 명품이었다. 서핑 국가대표 감독인 송민 해설위원이 남긴 여러 해설 멘트 중에서 내 뇌리에 남은 건 이 한 부분이었다. 선수가 경기를 잘 했든 못 했든, 가진 기술을 다 보여주었든 그렇지 못했든 지금 선수가 탄 파도는 '본인이 선택한 파도' 서핑을 인생과 견주는 여러 멘트가 등장했는데 인생과 서핑의 결정적 교집합을 짚어내자면 바로 저 멘트가 아닐까.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사건 사고에 부딪힌다. 때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라며 억울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원망이 드는 상황도 있다. 그러나 결국 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내가 타고 있는 물결은 내가 선택한 파도다.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되도 어쩔 수 없다. 펄의 말처럼 파도는 부딪혀 부서질 걸 알면서도 기꺼이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진다. 그리곤 무지개를 남긴다. 모든 파도는 결국 부서지고 저마다 무지개가 된다.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했더라도 무지개 같은 위로 덕에 생은 그 다음 파도로 다시 이어진다. 부서질 걸 알면서도, 기꺼이 부딪히겠다는 펄의 용기의 근간은 그녀를 키운 엄마들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 이어진, 지금의 우리에게도 간절한 이 용기의 유산이야말로 역사를 가장 빛나게 기록할 수 있는 자양분이리라.

 

 

 

 

 

 

 

 

내 딸은 좋은 시상에서 내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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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의 이동 - 모빌리티 혁명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존 로산트.스티븐 베이커 지음, 이진원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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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 수단의 변화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바꾼다. 백 년 전이나, 천 년 전이나 시간의 흐름은 동일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의 부피 역시 동일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이 체감하는 시공과 현재의 우리가 체감하는 시공은 무척 다르다. 마을 밖으로 이동하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희소한 일이었던 시절에 체감할 수 있는 시공이란 나의 마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채워진 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선명하게 느끼고 구분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정도. 초는 커녕 분 단위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에 무딘 시절은 가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마을 밖은 물론이고 단 하루 만에 나라에서 나라로 또 그 옆 나라로, 그 옆 옆 나라로,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로 이동 할 수 있는 현재에 우리가 체감하는 시공은 아주 세밀하고 선명하다. 우리의 공간은 시는 물론 분 단위로, 때로는 초 단위로 바뀐다. 그러나 생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시공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우리의 이동을 돕는 모빌리티의 혁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의 클리오를 몰고 꽉 막힌 외곽순환도로에 들어선 파리의 통근자는 거북이운행을 각오해야 한다. 그가 출퇴근할 때 각각 30분씩 1주일에 총 다섯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서비스나 앱이 있다고 하자. 그는 그렇게 아낀 시간과 거리를 위해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을까?

이것이 급성장하는 시간과 공간 시장이다. 이런 시장은 대부분 최근까지 우리의 접근 범위 밖에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이제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많은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12-13쪽 서문-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중에서

 

 시공은 더이상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자원이 아니다. 옷을 쇼핑하고 좋아하는 색으로 염색을 하고 직업을 고르고 취미를 찾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내 마음대로, 내 취향대로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꽉 막힌 출근길 도로 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꼼짝없이 잠과 따분함과 조급함과 다툴 것인지, 아니면 자율주행 차량 안에서 엄청난 집중력으로 밀린 업무나 과제를 해치워 버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 자율주행은 아직 시장 도입 전이지만 [바퀴의 이동]을 쓴 저자 존 로산트와 스티븐 베이커는 자율주행은 이미 성공적으로 완성된 기술이며 시장 도입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선택에는 비용이 든다. 그러나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안하는 업체들은 점점 많아지고 이 선택지에 매료되는 소비자들도 점점 많아지면서 시간과 공간의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이 새로운 시장에서 이익을 얻기를 바라는 투자자 혹은 개발자, 공급자라면 모빌리티의 혁명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고 그건 소비자라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택지가 펼쳐질지를 안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스트리밍이 '서비스로서의 음악'이라면, 헤이킬라가 꿈꾸는 앱은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를 제공해줄 것이었다. 이 개념은 다른 곳에서도 퍼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헬싱키에 특화된 앱을 개발했다.

146쪽

 

 헤이킬라는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었다"고 설명했다. 헤이킬라는 아직 차가 없고 삼포 히에테난의 모빌리티 앱의 윔에 가입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앱에 아직 큰 허점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 허점은 당분간 자동차만이 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는 가족과 해변으로 휴가를 떠날 때나 운동 장비를 갖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할 때 차가 필요하다. 자동차는 단점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 가고 물건을 나를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67쪽

 

 

 자동차가 처음으로 등장한 지 약 150년이 지났다. 첫 등장 이후 자동차는 새로운 문명을 형성하고 사람의 삶은 물론 도시와 국가의 모양까지 바꿨다.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든 것만큼 자동차가 없는 세상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당장 자동차가 없어지면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지, 오후에 거래처 물건 가지러 가야 하는데 그 무거운 걸 어떻게 옮기지, 배달도 해야 하는데.... 등등등 갑자기 삶의 흐름이 일순간 멈출 것이다, 만일 자동차가 없다면 말이지. 하지만 안심하자. 자동차는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바뀔 뿐이다. 운전자가 바뀌고 형태가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어 간다. 자동차가 바뀌면서 우리 삶의 시공도 함께 바뀐다. 익숙한 모빌리티에 안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런 변화는 불편한 소식일 수 있다. 익숙한 시스템에 계속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 역시 누구보다 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특히 [바퀴의 이동]을 읽은 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파도가 밀려오는 걸 멈출 순 없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파도를 잘 타는 법을 가능한 빨리 익히는 수밖에.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변화 중인 모빌리티에 대한 정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에 대한 힌트가 공존하는 [바퀴의 이동]은 모빌리티의 혁명을 불안이나 불편이 아닌 반가운 가능성으로 맞이하게 해준다.

 

모빌리티 분야의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앉아 그것을 목격하는 동시에 미래의 모빌리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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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기분파 제과제빵기능사 필기 (통합) - NCS학습모듈 기반으로 새롭게 변경된 출제기준 반영 + 핵심요약 족집게 160선 수록
에듀웨이 R&D 연구소 엮음 / 에듀웨이(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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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 시험은 통과하기 만만치 않은 국가고시 자격증시험입니다. 제과 혹은 제빵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접수해보신 분들은 아시지만 시험 접수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실기시험 접수는 빛의 속도로 클릭해야만 시험 접수가 가능할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ㅜ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과제빵기능사시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당연히 필기시험 패스가 먼저죠. 필기 그까이꺼 뭐 기출만 몇 번 보고 가면 어렵지 않게 패스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필기시험 역시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고배를 마시기 마련이죠.

제과제빵기능사 필기시험 대비 교재는 서점에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느 시험이나 그렇듯 가장 최근에 나온 교재가 제일 좋습니다. 그 교재가 기출문제 수록은 기본이고 핵심요약 족집게 신공까지 발휘한다면 더더욱 좋죠.

 

 

필기시험은 이론 전체를 빠삭하게 알고 있다면 물론 쉽게 패스할 수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거나 이론에 대한 이해가 적은 사람이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교재에 수록된 이론 역시 꼼꼼하게 공부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때문에 잘 정리된 이론이 요점을 확인하기 좋게 수록되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듀웨이에서 펴낸 2021기분파 제과제빵필기 교재는 이 모든 장점을 잘 갖춘 책입니다. 시험을 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보게 된 건 아니고, 순전히 제과제빵 이론의 핵심만 정리된 책을 보고 싶다는 목표로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수험생이 된 것처럼 진지하게 이 책을 공부해버리게 되어버렸죠.

제과제빵필기 시험 수험생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보기 좋게 수록하고 있는데다 출제포인트와 학습팁까지 수록되어 있어 제과제빵필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완전 강추입니다. 무엇보다 독자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문이나 삽화 등을 전략적으로 수록하고 있어서 더 좋구요.

 

올해도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을텐데요(작년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 모두 한번에 턱턱 합격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합격을위해 에듀웨이의 제과제빵기능사 필기 교재로 공부하시면서 화이팅하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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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인지, 생각의 기술 - AI 시대, 직원부터 CEO까지 메타인지로 승부하라
오봉근 지음 / 원앤원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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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의 기술' 이런 제목이 이제는 식상해진 2021이다. 그런 책들을 제아무리 열심히 읽어봐야 그 기술이 현실에서 빛을 보기는 어렵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기술이 빛을 보려면 개인 뿐 아니라 개인이 구성원으로 있는 집단 전체가 그 기술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기술은 아무리 잘나봐야 태풍 속의 산들바람일뿐이다. 집단의 힘은 개인이 어찌해서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이 발휘할 수 있는 기술에 접근했다는 면에서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식상함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메타인지, 메타인지... 이런 저런 책이나 기사 혹은 각종 미디어에서 메타인지를 다루고 있지만 대부분 개인으로 발휘하는 메타인지에 대한 내용이다.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은 집단, 보다 정확히는 회사가 발휘할 수 있는 메타인지를 다루는 책이다.

 

 

 

혼자가 잘해서 잘나가는 회사는 이제 없다. 아니, 원래 없었다고 해야 할까. 회사는 조직이다. 구성원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나가느냐에 따라 회사의 흥망성쇠가 갈린다. 혼자가 뛰어나서 이리저리 날뛰면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마냥, 모난 돌이 정 맞는 형국이 될수밖에 없다. 개인의 메타인지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이 조직에 큰 무기가 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메타인지가 조직적으로 형성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동이 함께 발휘하는 메타인지의 힘은 혼란한 현재의 형국을 헤쳐나갈 동력이 될 수 있다.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을 쓴 오봉근 저자는 기업의 전략컨설팅 전문가다. 개인의 '일머리'를 기업 단위에 적용하기 위하여 저자는 지난 수년 간 자신의 커리어를 이 책에 정리했다고 한다. 메타인지라는 개념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거나 아직 메타인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에 관련한 모든 자료를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 지금, 이 책은 이 점을 명확히 한다. AI 시대에 인간만의 고유 영역으로 메타인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크지만 아직 메타인지의 메커니즘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고 이 책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에 담은 저자의 주장도 아직 가설에 근거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저자 스스로 밝히는 이 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흥미롭다. 개인의 메타인지와는 상당히 다른 조직적 메타인지의 현상과 효과는 대면 업무가 보편적이던 시절보다 비대면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주목할만하다. 비대면 업무는 구성원들이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 때에는 무척이나 힘들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하나의 그물망처럼 조직적인 메타인지를 발휘할 수 있다면 비대면 업무 시대에 조직력은 최고로 끌어올려지지 않을까.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기존의 질서 중 많은 것들이 바뀌면서 여러 전문가들은 언택트시대에 대해 저마다의 예측론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이든 이후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점검이 아닐까. 삶은 '이해'로부터 절대 분리될 수 없다. 나에 대한 이해는 객관화를 가능케 하고 이 객관화는 메타인지의 기본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 역시 조직적 메타인지의 기본이다. 메타인지를 발휘하려면 먼저는 나도, 상대의 의도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 이 기본 중의 기본으로부터 개인의 메타인지도, 조직적 메타인지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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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공부 - 혼란한 세상에 맞설 내공
김종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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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든 뭐든 유투브부터 찾아보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장강명 작가가 '그렇게 읽기가 싫은가?'라고 했단다. 인스타에서 스치듯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저거였다. 그렇게 읽기가 싫은가?

 

여기서 '읽기'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해독한다는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림도 읽고 감정도 읽고 온갖 신호와 사건과 분위기와 타이밍을 읽는다. 읽는다는 행위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지 않다. 읽으려는 주체에게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읽어야 할 대상이 도처에 만연해도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 그렇다. 읽어내는 일이 읽기의 본질이다. 읽기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일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먼지 한 톨도 그것을 읽어내는 자에 따라 시의 재료로 승화하기도 하고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기기가 아무것도 아닌 먼지보다 못한 무가치가 되기도 한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쓰고 무언가를 듣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무언가를 읽느냐가 아닌가 한다. 사람은 자신이 읽어내는 만큼의 생애만 살게 되는 탓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중요한 읽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글자를 읽고 쓰는 거야 기초 교육으로 배우지만 진짜로 읽어내는 일에 주목하여 이 행위를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학습한 적이 없는 것이다. 독서야말로 이 읽어내는 행위가 아닌가 다들 생각하지만 단순히 글자를 읽었다고 해서 그 책을 제대로 읽은 건 아니다. 나의 세계에 투영된 저자의 세계를 포착하여 이전에 없던 감상과 사유를 직조해내는 순간이 없다면 그 책을 읽어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제대로 읽어내는 기쁨은 정말 어마어마하고 그것의 유익함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이렇게 읽어내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여기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낫 놓고 기역자는 알지만 그 낫으로 뭘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세계를 읽어낼 수는 없는 사람들의 세상. 그런 우리들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분으로 [문해력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읽어내는 기술은 여러가지가 있다. 질문하며 읽기, 조합하여 읽기, 확장하며 읽기 등등. 이 기술은 책을 읽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음악, 미술 등 예술분야를 비롯하여 다양한 학문, 나아가 세상을 읽는 일에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 김종원 저자의 [문해력 공부]는 그런 읽기의 기술을 차근차근 정리해 놓은 책이다. 하나를 봐도 열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열을 봐도 하나를 읽어내기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김종원 저자는 문해력의 차이가 정보 흡수와 해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지적하며 문해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렇게 쓰면 자기계발서처럼 보이는 데 스피치 잘 하는 법, 화술 좋아지는 법 같은 책은 아니다. 읽기는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문해력 차이]는 차분하게 생각하며 읽어가기에 적합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저자가 주는 정보를 한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읽기의 차원을 달리 만드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적용점을 찾아가며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읽어내는 기술이 느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책읽기가 버겁거나 싫은 사람에게 이 책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보다 잘 읽고 싶은 사람, 단순한 읽기가 아닌 깊이 있는 읽기로 나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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