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포털 사이트를 떼어 놓고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네이버의 1일 방문자수가 1,000만 명이 넘고, 네이버에는 130여만 개의 카페가 있으며, 싸이월드의 하루 페이지뷰는 8억이 넘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종합 포털의 한달간 순방문자수는 3,000만명에 달한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국민들 중 포털 사이트에 들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포털 사이트는 여론 형성의 장이요, 정보 교환의 장이다. 게시판이나 수백만개에 달하는 카페는 물론이고, 개인미디어 시대를 연 미니홈피나 블로그가 이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표현 매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19세기나 20세기엔 ‘집회, 시위, 결사,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면, 오늘날은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등과 같은 새로운 정보통신매체에서의 ‘표현의 자유’인, ‘쓸 자유, 읽을 자유, 게시할 자유’가 관건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시민단체들이 블로거의 표현의 자유를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정보통신매체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테러나 사이버 범죄에 대응한다는 명분 아래 정보통신매체에 대한 감시와 규제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저작권 침해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정보통신매체의 감시와 규제가 점점 도를 더해가고 있다. 미국의 전미음반제작자협회(RIAA)나 전미영화제작자협회(MPAA)를 필두로 한 저작권자들의 공세는 전 지구적 차원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2005년까지 17개국에서 약 20,000건의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에서 약 6,000건의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05년에 미국을 필두로, 호주, 한국, 일본, 대만, 스페인, 러시아, 중국에서 법원으로부터 P2P 사이트의 사실상의 폐쇄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들의 공격의 칼날은 하나는 P2P 사이트로 향하고, 또 다른 하나는 포털 사이트로 향하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을 옹호하고 촉진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들(통신회선, 설비제공사업자, P2P 서비스 사업자, 검색 서비스 사업자 등)에게 해당 서비스 이용자들이 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제적인 합의이다. 이것은 마치 통신회선 제공사업자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그 통신회선을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가입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 가입자들의 행위에 조금이라도 위법의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일단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아예 해당 가입자를 탈퇴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조치는 인터넷의 활기를 빼앗아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문화의 창달과 더 많은 교육의 기회 제공, 문화 수준의 향상, 전자상거래의 활성화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에 대한 규정이다. 미국의 1998년의 저작권법 개정, 유럽연합의 2000년의 전자상거래 지침의 제정을 필두로, 우리나라도 2004년에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미국의 모델이 소위 ‘통지와 중단’(notice and take down) 정책이다. 즉, 저작권자가 누군가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정보를 전송하고 있음을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통지하면,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해당 게시물을 내려야 책임을 면한다. 통지할 때는 자신이 저작권자임을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야 하고, 자료를 받은 서비스 제공자는 통지가 있었음을 정보 전송자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저작권자는 해당 정보전송자의 가입자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이것은 나름대로 저작권자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이해를 적절히 조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인데, 법 시행 7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 법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호하여 결과적으로 인터넷의 정보의 교류를 지나치게 막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7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연구원들이 1869년에 쓰여진 ‘존 스튜어트 밀’의 (중고등학교에서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자유론’을 미국과 영국의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연구원들은 그 글이 이미 150년 전에 출간된 것이어서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중의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나서 연구원들은 ‘존 스튜어트 밀 헤리티지 재단’이라는 유령단체의 이름으로 미국과 영국의 포털사이트에 편지를 보내, 그 글의 저작권자인데, 그 글은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게시된 것이므로 즉각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자세히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내용인데, 영국의 포털사이트는 24시간도 되지 않아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것과 비슷한 실험을 네덜란드에서도 했었는데, 결과는 비슷했다. 이번에는 아예 가짜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통고서에 넣어서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보냈는데, 포털사이트들은 가짜 이메일 주소로 회신해서 더 물어보지도 않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러한 예들은 어떻게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사적인 검열관으로 기능하면서, 과잉 검열들을 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저작권자들은 삭제 요청을 너무 남발하고 있으며(한 연구에 의하면 약 30%의 정보 전송 중단 요청이 적법한 저작권 이용에 대해 요청되고 있다고 한다. RIAA의 대리인인 미디어포스라는 곳은 무려 16,700개의 통지를 보냈다고 한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잘 검토해 보지도 않고 삭제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삭제 요청의 남용에 대해서는 적절한 구제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캐나다는 4년 동안의 오랜 논의를 거쳐, 저작권자가 저작권 침해가 있다고 통지(notice)를 하면 삭제나 전송중단(take down)을 해야 하는 현재의 법체계를 수정하여, ‘통지-중단’이 아닌 ‘통지-통지’ 방식을 도입하자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그래서 저작권자가 저작권 침해가 있다고 ‘통지’를 할 경우, 바로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전송중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정보게시자에게 그 통지를 전달해 주면되는 것으로 개정안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중단 통지의 남용을 막고, 정보의 활발한 교류를 촉진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면책규정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때가 되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도입하려고 법개정안을 만든 통지-통지 정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은 캐나다의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하고 있으며, 미국 방식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 면책규정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낼 경우 미국의 반응이 어떨지는 안봐도 훤하다. 미국은 나아가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저작권자에게 통지를 할 때 팩스나 우편으로 저작권자임을 증명하는 서면등을 보내도록 한 것을 전자우편으로도 가능하도록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저작권자의 통지의 남발을 막는 의미가 있는 조항이므로,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지금은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규정에 대한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미국은 FTA 협상을 하면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규정을 저작권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도록 강요할 것이다. 이는 부당하다.
이은우 (변호사, 진보네트워크센터 운영위원) ewlee@horizo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