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복제권, 배포권, 공연권, 방송권 등 여러 권리들의 다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복제권’은 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이다. 영어로 저작권은 Copy Right 아닌가. 그런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복제’의 범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에서도 미국은 ‘일시적 복제’를 저작권법 상 복제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어떤 사이트에 접속을 하게 되면, 그 사이트 서버의 데이터가 내 PC로 전송이 되어 브라우저를 통해 보여지게 된다. 이 때 별도로 그 데이터를 파일로 저장하지 않는 한, 데이터는 램(RAM)에 잠시 저장되어 있다가 다른 명령이 실행되거나 컴퓨터 전원이 꺼지는 경우 사라지게 된다. 하드디스크 등에 영속적으로 저장되는 것과 대비하여, 이를 ‘일시적 복제(temporary reproduction)’라고 부른다. 일시적 복제는 이 외에 여러 상황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PC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하드디스크에서 램으로 프로그램의 일부가 복제되어야 한다. 효율적인 인터넷 이용을 위해 PC나 서버의 ‘캐쉬 메모리’에 데이터를 저장해놓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복제’가 수행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용자 입장에서는 전혀 ‘복제’의 행위가 아니다. 그저 어떤 저작물에 ‘접근’해서, 그것을 ‘읽거나 듣는’ 행위일 뿐이다. 오프라인 환경에서는, 예를 들어 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과 ‘복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였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책을 ‘읽기’ 위해서 ‘복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사실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복제’없이 어떠한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일시적 복제’를 저작권법상 복제로 인정하라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인터넷을 통해 어떤 사이트에 접근할 때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말로 터무니없는 요구가 아닌가!  

저작권은 권리자에게 ‘읽을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즉, 우리가 어떤 책을 읽기 위해서 (직접 사서 읽든, 서점에서 읽든, 빌려서 읽든, 도서관에서 읽든 상관없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아야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환경에서 ‘일시적 복제’를 복제로 인정하는 것은 저작권자에게 ‘읽을 권리’라는 새로운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어떠한 저작물에 접근할 것인지, 어떠한 저작물을 읽고 들을 것인지에 대한 통제권을 저작권자에게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혹자는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호주의 사례와 같이, 일시적 복제를 인정하되 면책을 광범위하게 허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통상적인 인터넷 이용은 저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저작권자에게 ‘저작물에 대한 접근과 읽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 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예외를 둔다고 하더라도 현재 예측하기 힘든 다양한 상황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 오히려 일시적 복제가 발생하는, 그러나 저작권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면, 이를 예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저작권조약(WCT) 논의 과정에서 일시적 복제를 조약 내에 넣으려다 실패하였다. 그리고 (다른 요구 사항과 마찬가지로) 이를 양자간 FTA를 통해 타국에 강요하고 있다. 일시적 복제에 대한 권리 요구는 저작권자들의 욕심과 오만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antiropy@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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