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보호조치를 법 위의 법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 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분별한 강화는 저작권법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어 

 

기술적 보호조치(technological protection measure)란 ‘암호화 등의 기술적인 방법을 통해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통제하기 위한 기술이나 장치’를 의미한다. 기술적 보호조치는 보통 ‘접근통제적 조치’와 ‘침해방지적 조치’(이용통제적 조치라고도 한다)로 나뉜다.  

저작권법은 권리자에게 복제권, 공연권, 방송권, 전송권, 전시권 등 특정한 형태의 권리를 부여한다. 침해방지적 조치는 권리자의 허락없이 이러한 이용을 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 파일을 개인 컴퓨터에서는 재생이 가능하지만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전송을 막는 기술을 적용한다면 이는 방송권을 보호하는 침해방지적 조치가 될 것이다. 전자책 파일을 자신의 컴퓨터에서 특정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볼 수는 있지만 다른 파일 형태로 저장하거나 다른 컴퓨터로 옮기거나 또는 종이 문서로 출력하는 것을 막는다면 이는 복제권을 보호하는 침해방지적 조치이다. 

접근통제적 조치는 미국이 핵심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에는 도입되어 있지 않은 개념이다. 개념적으로는 저작물의 접근을 통제하는 암호 또는 접근 코드 등의 기술적 조치를 말한다. 앞의 전자책의 예를 든다면, 전자책을 보기위해서 암호를 넣어야만 파일이 열린다면 이때 암호가 접근통제적 조치다. 외국에서 사온 DVD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CD를 우리나라에서 산 재생기나 게임기에 넣고 재생 또는 실행을 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는 지역코드라는 것이 들어 있어 같은 지역에서 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아니면 재생이나 실행이 되지 않는다. 이때 이 지역코드 시스템이 앞에서 말한 접근 코드의 예이며 접근통제적 조치가 된다. 이와는 좀 다른 형태의 접근통제 조치로는 DVD를 재생할 때 보면 예고편 등을 건너뛰고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이를 “건너뛸 수 없는 구간(non-skippable zone)“이라고 부르는데 미국에서는 건너뛸 수 없는 구간을 건너뛰게 할 수 있는 DVD 재생 소프트웨어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도 접근통제적 조치로 구분한다. 

 

기술적 보호조치의 저작권법 등에의 도입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동일한 이유에서 출발하였다. 즉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관장하는 저작권 조약(WCT)과 실연음반조약(WPPT)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8년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 이하 DMCA)”에서 관련 조항이 추가되었으며, 우리나라는 2003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기술적 보호조치 관련 조항이 도입되었다. 미국 법은 접근통제적 조치와 침해방지적 조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침해방지적 조치만을 포함하고 있다. 즉, 접근통제적 조치를 무력화하는 행위는 국내 저작권법에서는 규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통해 자국의 DMCA에 준하거나 이를 넘어선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지적재산권연맹(International Intellectual Property Alliance, IIPA)이 작성한 2006년 ‘스페셜 301조 보고서’의 한국편을 보면, ▲ 접근 통제(access control)를 명문화할 것, ▲ 반 해킹 법령을 통해 네트워크 환경 및 오프라인 환경에서 접근 통제를 기술적 보호조치로 보호할 것, 그리고 ▲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 방법의 제공만이 아니라 우회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우회’란 암호화와 같은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DMCA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우리 저작권법에도 적용함과 동시에 그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를 네트워크 환경과 오프라인 환경까지 확대하는 것은 DMCA에도 없는 내용이며, 미국이 체결한 기존 FTA에도 들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만약 한미 FTA가 체결되어 위와 같은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현재 우리 저작권법에 따르면 지역 코드와 상관없이 재생할 수 있는 DVD 재생 소프트웨어를 만들거나 이를 이용하는 두 가지 행위 모두 합법이다. 하지만 만약 미국의 저작권법을 따르게 된다면 지역 코드는 접근 코드에 해당하는 접근통제적 조치로서 보호 대상이 되어 재생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무력화)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행위로 침해가 된다. 덧붙여 우회 도구의 제공만이 아니라 우회 행위 자체도 불법이 된다면(우리 저작권법은 “도구 제공”에 해당하는 행위만 침해로 본다) 이 소프트웨어를 쓰는 이용자도 침해의 당사자가 된다. 따라서 예를 들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DVD라 할지라도, 한국에서 위의 재생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용한다면 불법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DMCA가 통과된 지 7년이 지난 미국의 사정을 보면 위와 같은 사례만이 아니라, 기술적 보호조치가 시장의 경쟁을 제한할 목적으로 악용되거나 표현의 자유와 학술연구를 위축시킨 사례가 많다.  

경쟁 제한의 예를 들면, 디지털 카메라 제조사로 유명한 니콘(Nikon)의 경우 자신들의 카메라에서 만들어지는 RAW 이미지 파일 포맷의 일부분을 암호화해서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이 이 포맷의 이미지 파일을 편집할 수 있게 하려면 니콘사로부터 이용허락(라이선스)을 받도록 하였다.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대형 업체인 어도비(Adobe)사는 니콘사와의 합의를 통해 해결했지만, 소형 소프트웨어 제조사들에게는 분명 시장에 참여하는데 장애물이 생긴 것이다. 암호화된 일부분을 허락 없이 풀어서 이용이 가능하게 한다면, 이는 접근통제적 조치를 우회하는 행위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어 DMCA 아래에서 소송의 위험에 노출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 내 레이저프린터 제조사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렉스마크(Lexmark)사가 스테틱콘트롤컴포넌트(Static Control Components, SCC)사를 고소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렉스마크는 자사의 프린터와 레이저 토너 카트리지 사이에 승인 프로그램을 붙여서 다른 업체가 재생 토너 카트리지를 파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SCC는 역분석을 통해 이 승인 프로그램을 무력화하는 스마트텍(Smartek)칩을 만들었는데, 렉스마크는 이를 기술적 보호조치 위반으로 고소했고, 법원으로부터 가처분을 얻어 시장에서 SCC의 제품을 팔수 없도록 했다. SCC가 항소심에서 가처분을 뒤집을 수는 있었지만, 19개월의 소송에 많은 비용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술적 보호조치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사례도 많이 있다. Sony-BMG는 CD 복제 방지 기술인 “루트킷(Rootkit)”의 외부 해킹에 대한 취약점을 발견한 프린스턴 대학의 대학원생이 이를 발표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술적 보호조치 조항 저촉 여부를 제기하였다. 또 다른 사례는 정보통신 전문 뉴스 사이트인 CNET의 기자가 미국 ‘교통 보안청’의 문서를 입수하였으나, 기술적 보호조치 조항 때문에 열어 보지조차 못한 사례가 있다. 이 문서들이 암호로 보호되고 있었고 정보원을 통해 암호를 입수했지만, 이를 열어보는 것이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하는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 보호조치의 도입은 권리자의 권리 보호와 공정 이용 보장의 균형을 통해 사회 전체의 문화 발전을 도모하는 저작권법의 목적에 위협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법률이 규정한 ‘균형’을 넘어서, 권리자가 임의적으로 저작물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과도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 균형의 회복을 위해서는 기술적 보호조치의 과도한 적용에 대한 제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DMCA는 분명 우리 저작권법 등과 비교하였을 때, 기술적 보호조치의 유형, 사법적 조치의 강도, 예외의 범위 등에서 권리자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이러한 광범위성은 표현의 자유와 과학 연구의 위축, 기존의 공정 이용의 무력화, 시장에서의 경쟁과 혁신의 제한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들이 다양한 형태로 법정 소송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부 의원들이 DMCA의 개혁을 위한 입법에 나서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Boucher 하원의원 등이 제출한 “디지털 미디어 소비자 권리법안(Digital Media Consumers’ Rights Act of 2003, HR 107)”이다. 이 법안 외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여러 차례 제출되었다. DMCA는 이미 1998년부터 약 7년간의 시행을 거치며 이제 미국의 산업계, 의회, 학계 등에서 그 문제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DMCA를 기준으로 하는 미국의 요구를 협상의 대상으로 하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FTA는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김지성 (민주노동당 정책위원,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community@kdl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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