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들어온다. 아직 자리잡히지 않은 직장 생활속에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업무를 가르치고 그들과 다시 정을 쌓고 하는 것이 점점 피곤하게 느껴지고 있다. 오늘(어제라고 해야겠지..)은 그토록 믿고 있던 사람하나가 또다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며 인사를 꾸벅하는 것을 보았다.

5월부터 그렇게 보낸 사람이 벌써 몇 명이던가? (셋 이상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인연이 아니다..라는 말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는 것도 세 명을 넘어서니까 약발이 통하지 않더란 말씀..)

이번에 떠나는 사람의 경우는 거의 내가 일을 가르치다시피 했었는데, 그런 과정중에서 "자신의 몸값은 스스로 올려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 나가면서 계속 꿈꾸어 왔던 자신의 모습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니 힘들어도 그런 마음 잊지 말라. 생소한 업무라도 함께 도우며 함께 크도록 하자.."라고 말했었다.  잘 따라 주었고 성실히 일했으나 그 과정 중에서 직장 생활을 한지 1달도 되지 않아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제가 생각하는 것과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이 다르고 제 꿈과는 뭔가 맞지 않는 거 같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는 "왜..조금만 더 참아주지 못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몇 명의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해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에게 그렇게 비치는 것은 아니다. 나랑 함께 하는 일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나랑 연계되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일에서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는 부분적인 성공만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뚫고 갈 수 있는 무기를 얻은 듯 느낀 모양이다. 그러나 나와 함께 했던 일은 부차적인 캐리어일 뿐, 그녀의 주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데 작은 성공에 취해서 전체적인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더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나도 냉정한 면이 있어서 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조언도 충고도 아끼는 편이라서..)

"직장생활 함께 하면서  얻은 것으로 어디 가서든 성공하길 빈다." 라는 인사로 그녀를 보내면서도 그녀의 성급함에 대한 안타까움과 또다시 다른 이를 가르쳐서 그녀가 맡았던 직무를 대신할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숙제의 무게로  가슴이 무거워지는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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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26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이미지 바꿨군요.
맞아요. 직장생활에서 떠난 사람은 그만이지만 그 사람이 하던 일을 넘겨 받아서
내가, 또는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할당을 분양해야 하는 일에는 적잖은
스트레스가 쌓이죠. 바쁘신 가운데도 글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클레어 2005-06-2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도 이미지를 바꾸셨군요. 더 귀여워지셨습니다. 흐흐~
 

 

중·일은 “동양은 하나다”라고 말해선 안돼
[한겨레 2005-05-31 19:03]

[한겨레] ⑥ 가라타니 고진 vs 황종연

-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

고려대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일본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긴키대 교수를 황종연 동국대 국문학 교수가 만났다. 황 교수는 <문학동네> 편집위원을 겸하면서 ‘민주화 이후의 정치와 문학’ 등을 주제로 삼은 활발한 문학평론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라타니와 황 교수는 동아시아의 근대와 탈근대, 한·일 민족주의 극복 등에 관해 대담했다.

세계시민적 이상, 국가·민족 부정않는데서 출발

네셔널리즘 비판은 상대보다 자기 들여다봐야

황종연= 동아시아론이 유력한 지역주의 담론이 됐다. 이런 지역주의 유행은 ‘중화 체제’ 붕괴 이후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한다. 어떤 중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라타니= 세계사 전체에서 역사의 반복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120년 전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1880년대의 동아시아를 살펴보면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현재 중국은 제3세계 사회주의 국가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청나라 말기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로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제국주의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유럽의 공동체 형성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지역적 공동체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동아시아는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갖고 있는 동시에, 중동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놓여 있다.

황종연= 동아시아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기 이전부터 나름의 교역 체제를 갖고 있었다. 핵심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조공 체제다. 여기서 유래한 국제적 교역 공동체가 현재 동아시아 경제의 강력한 통합 고리를 이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동아시아 경제 통합의 움직임과 관련해 과거 중화 제국 체제와는 다른 어떤 초국민국가적 질서가 가능한가.

가라타니= 조공은 구 제국의 세계적 모습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두루 존재했다. 이때 구 제국주의는 국민국가를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다른 국민국가를 지배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유럽 지배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각지의 국민국가 형성을 (저해한 게 아니라) 촉발시켰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제국주의는 각 국민국가들이 민족 자결을 주장하게 만들었다. 그 시기 한국, 중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독립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때의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경계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런 제국주의를 파괴하면서 현대의 국민국가가 성립됐다.

유럽의 경우에는 제국의 이념이 유럽 통합의 이념 아래 계속됐다.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분쟁하지 말자는 형태로 유럽연합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유럽은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을 형성했다. 나는 제국주의가 아닌 지역 공동체를 제국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동아시아에서 그런 제국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다. 1880년대에도 여러 선택의 길이 있었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결합했다. 일본은 현재 중국 공산당과 북한에 의한 군사적 위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종류의 위협은 없다. 그 위협은 외부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위협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또는 동아시아 제국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황종연= 근대 동아시아 정치사에서는 국민국가 이념과 함께 지역 정치공동체의 이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근대 일본에는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담론 전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일본의 아시아주의나 동양론은 제국주의와 얽혀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 공동체 주장을 들을 때면 역사의 악몽이 떠오른다.

가라타니= 어떤 슬로건이건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오카쿠라 덴싱(개화기 ‘탈아입구’를 주창한 사상가)이 말한 ‘동양’이라는 이상은 대단히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동양’은 그가 일본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인도의 독립을 지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 시기의) 동양 또는 아시아는 하나라는 말은 오카쿠라라는 사람을 내쫓은 ‘국가’의 말이다. 그러니 말 자체가 아니라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동양이 하나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그런 말을 하는 게 적절하지 못하다.

한국이나 대만이 아시아 공동체를 말하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장래에 형성이 된다면 그 열쇠를 쥔 것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다. 북한과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5개 나라 가운데 스스로 시민운동을 일으킨 것은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종연 - 동아시아 초국민국가적 질서 가능?

가라타니 - 유럽공동체 같은 ‘제국’은 글쎄…

황종연= 선생님은 80년대 이후 일본에 출현한 포스트모던한 상황에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나는 ‘백치의 천국’이 될 가능성, 다른 하나는 광신적 내셔널리즘으로 나아갈 가능성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가라타니= 당시 내 예언이 맞은 것 같다.(웃음) 1980년대 일본인들의 행동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백치들의 천국’은 세계적 현상이 돼버렸다. 미국의 경우 한편으론 백치 천국이 되고 있고, 한편으론 기독교나 유대교의 근본주의가 퍼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것이다. 세계 근대 시스템 전체를 모더니즘이라 본다면, 이를 뛰어넘는 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지금 (서구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안에 국한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를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황종연= 지금 우리는 상호연관성이 전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여러 문화가 중첩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런 만큼 확고한 소속감과 충성심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다중적 소속감과 다면적 충성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코스모폴리턴한 관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언젠가 한일작가회의에 참석해 칸트의 코스모폴리턴한 이상에 대해 말했었다.

가라타니= 작가회의에서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웃음) 칸트가 말한 ‘공공(public)’이라는 개념은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흔히 공공을 국가나 민족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칸트는 반대로 매우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칸트는 한 개인이 가족이나 국가에 속해 살아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공공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공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코스모폴리턴이다. 그래서 코스모폴리터니즘은 민족적·지역적인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부정하면 오히려 진정한 코스모폴리터니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국민국가를 극복한다고 해서 이를 부정하게 된다면, 오히려 보다 국가적·민족적인 흐름에 빠질 수 있다. 코스모폴리터니즘은 자기가 처한 위치를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이다.

황종연= 최근 한일 양국의 대중 언론은 일제히 내셔널리즘으로 복귀하고 있는 듯하다. 한일 양국의 민간에서는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내셔널리즘을 넘어선 연합이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라타니=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각 국가 안에서 해결돼야 한다. 한국인이 일본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일본인이 한국 내셔널리즘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굉장히 모순된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대의 내셔널리즘을 강화하고 있다.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난 2000년 한일 작가회의에 참석한 뒤에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한국을 비판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통해 일본에도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이런 신뢰 속에서 ‘연합’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정리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문학비평가 ‘일본의 양심’]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문학비평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 교수는 1941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영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69년 <나쓰메 소세키론>,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등을 펴내면서 1970년대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자리잡았다. 현재 일본 긴키대 문예학부 교수와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다. 주요 저서로 <의미라는 병>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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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만은 그 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나는 절대로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몇차례 마리화나를 피운 적은 있지만, 그래도 열 살이란 나이는 아직 어른들로부터 이것저것 배워야 할 나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게 좋다. 행복이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짜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 쓴다. 나는 아직 정치를 잘 모르지만, 그것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고 들었다. 행복을 찾는답시고 천치짓을 하는 녀석들을 막을 법은 있어야 할 거 같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주절거리는 것 뿐이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자고 주사를 맞는 짓 따위는 안 할거다. 빌어먹을. 나는 이제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그러다가 또 발작을 일으키면 큰일이니까. 그런데 하밀 할아버지는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을 찾아야 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 바로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겪어본 후에야 그놈의 행복이란 걸 겪어볼 생각이다.

==============================================================================================

여우님의 리뷰를 보고 '로맹가리'의 또다른 필명인 '에밀 아자르'의 대표작 '자기 앞의 생'을 읽다.

10살짜리 모모 녀석의 말을 통해 '로맹가리'의 의지가 느껴진다.

빌어먹을..

행복하지 못한 녀석이지만 당장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겪어본 후에야 그놈의 행복을 겪어볼 생각이란 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10살짜리보다 못한 모습으로 댕그라니 서있는 내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_-;;

그래, 인생의 쓴물, 괴로운 모습을 모두 맛보고 난 후 행복이란 녀석도 한 번 맛보자꾸나.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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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5-3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어요.
똑똑한 10살짜리를 만나고 싶어서요..

클레어 2005-06-0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라는 이름의 소년, 소녀..모두 저에게 많은 것을 건네준 인물이었어요. 이 책 속의 모모가 여우님께도 많은 것을 건네주길 빌며..
 

 

 

으흐흐흐~

써프라이즈 시츄에이션~

즐거운 하루

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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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5-2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놀랬어유...히히

클레어 2005-05-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솔직히 넘 강도가 약했죠? 안 놀라실 줄 알았어요.~ ^^

딸기 2005-05-2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다시 에오스가 됐구나!
 


야기라 유야.

1990년 3월 26일생.

칸의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

 

'리버 피닉스' 이후로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리게 만들었던 미소년은 없었다.

(무슨 광고 멘트같군..-_-;;)

 

애늙은이 같은 이 미소년을 좋아하기로 했다. (오늘은 유야 꿈 꿔야쥐~ 알라뷰  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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