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상 '꽃보다 먹는 것'을 부르짖던 내가 오늘은 왠일로 퇴근길에 소국(小菊) 한다발을 사고 말았습니다.  함지박 웃음을 짓는 꽃집 아주머니는 소국을 많이 들여와 꽃을 싸게 판다고 하시며 넉넉히 한다발을 투명 비닐에 싸 주시더군요.

소국(小菊)..

제가 참 좋아하는 꽃입니다. 한 송이 꽃을 살펴보면 작은 꽃들이 빼곡히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루고 있는 꽃이지요. 분홍빛과 진분홍이 섞여 있는 꽃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길에 서 있었습니다. 

퇴근길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친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길 속에 저도 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기다리던 지하철이 도착하고, 각자의 삶의 향기가 뒤범벅되고 수많은 얼굴들이 지하철 창너머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몸을 지하철에 실었습니다. 모두가 조금씩은 구겨진 모습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지하철 안에서 소국 한 다발을 든 저는 서 있기가 불편했었습니다.

 '꽃이 망가지면 어쩌지?'

 지하철 내부로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더 그 꽃다발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꽃과 꽃이 부딪히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속에서 소국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꽃의 생채기에선 꽃향기가 나나 봅니다. 사람의 생채기에서도 꽃향기가 나면 좋을텐데...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으나 털어 버렸습니다.

 집 근처 역에 겨우 내려 한숨을 돌리며 다시 소국 다발을 보았습니다. 별로 다친 거 같지 않았습니다. 녀석들을 활짝 핀 모습으로, 또는 아직은 수줍게 봉오리를 닫고 있는 모습으로 내 손에 들려 말없이 내 품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투명 플라스틱 꽃병에다 물을 가득 붓고 녀석들을 꽂아 주었더니 집 안 향기가 달라집니다. 존재(存在)는 그렇게 없던 향기를 불러 일으키는군요. 녀석들을 바라보며 나도 말없이 커피를 끓였습니다. 보글보글... 커피향이 소국향과 어우러져 조금은 차가워진 바깥 공기를 데워줍니다.

 

2.

동결된 영혼을 위해 꽃을 헌사하다.

아름다움은 순간.

그 순간이 주는 靈의 스파크에 잠시 몸을 데운다.

 Lisa Ono- Prett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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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한 새 집 마당은 황량하여 국화 한 송이 없군요
전에 살던 집 마당이 요즘 자주 그리워집니다.
다양한 국화. 은행나무.가을이 풍성했는데...
님의 스파크가 영의 스파크라고 한다면 간지럽다고 하실테죠? 호호

클레어 2005-11-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내골의 가을도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던데요. 새 터전에서도 바지런한 파란여우님의 손길을 입은 꽃들이 피어나겠지요. ^^ 여우님의 말씀 속에 달콤함이 숨어있군요. 간지럽다고 해야하나? 하하~ 그런 달콤함, 간지러움을 좋아합니다. 여우님의 덧글도 저에게 즐거운 스파크를 내려주고 있다는 거 아시나요? (알게 모르게 사랑고백이 되어버리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