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 - 김 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항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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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김수영의 '봄밤'을 읽고 있습니다. 나를 몰아세우는 많은 욕심들과 그 때문에 괴로운 마음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주고 있습니다. 감정의 과잉을 보이는 내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가 많은 요즘입니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니 차가운 얼음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은 느낌입니다. 조금 춥지만 정신만은 또렷해지고 소름이 오소소 돋는. (아시죠? 그 느낌.) 이것저것 핑계대며 피했던 일들(요 며칠간은 정말 책읽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을 이제야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둘지 마라...서둘지 마라...라는 김수영의 시를 보면서 '서둘러 시작하자! 더 늦기 전에..'라고 지독한 오독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습지만 그의 시 덕분에 차가워진 머리는 아마 제대로 굴러갈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