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피쉬 19 - 완결
요시다 아키미 지음, 류임정 옮김 / 시공사(만화)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1. 생과 사.

영어 사전을 뒤적이다 "womb"이란 단어와 "tomb"이란 단어를 만난 적이 있다. 참 비슷하게 생긴 단어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사전적인 의미로 살펴보면 전자는 '자궁'이란 뜻을 지니고 있고, 후자는 '무덤'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단어임에도 비슷한 꼴이다. 생과 사...자궁에서 태어나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 고대인들의 소박한 생사에 대한 생각은 죽음을 단순한 '끝'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후세계로의 탄생과 맞물려 있었나 보다. 그런 고대인의 생각은 우리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풍수사상'이라는 것이 따지고 들면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지만, 알고 보면 여성의 자궁과 같은 편안한 지형에다 자신의 뉠 자리를 찾고, 그런 편안함을 후대에까지 영향 미치게 하고 싶은 바램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인생'의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인 "자궁"과 "무덤"은 어떤 인간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진다. 그리고, 그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내내 욕망에 휘둘리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 자고 싸는 것시작해서 새끼를 낳아 내 유전자를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자신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싶어하는 욕망''행복하고자 하는 욕망' 등등 수만가지 욕망들이 '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동안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으로,삶을 파괴하는 동력으로도 작용을 하게 된다.

'바나나 피쉬'라는 만화를 두고 너무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만화를 보는 동안 내 머리속에 맴돌았던 생각인 "womb"과 "tomb"에 대해 나도 이야기 하고 싶은 욕망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2. 바나나 피쉬, 욕망이라는 이름의 물고기.  

 '바나나 피쉬'는 이 만화 속에서  마약의 일종 소개되고 있다.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주인공인 '애쉬 랭크스'의 17세, 짧은 삶에 폭풍처럼 휘몰아 치게될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만들어 주는 역활을 한다.  왜 나는 굳이 '바나나 피쉬'를 욕망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라고 부르고 싶은 걸까?  J.D.샐린저의 작품 '바나나 피쉬'는 눈 앞에 보이는 '바나나'라는 미끼에 빠져서 자신이 끝내는 '바나나' 때문에 배터져 죽을 지 모르는 어리석은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 또한 '돈'과 '명예'와 같은 거창한 바나나에서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2-1 어른들..

이 만화 속에 나오는 어른들은 3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8살된 '애쉬'가 어린이 포르노광에게 잡혀 강간 당했을 때에도 "그럴 때는 꼭 돈을 받거라."라고 말하며 '약자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애쉬의 아버지'나 '자신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며 살해하는 법과 무기 사용법을 가르쳐준 그의 스승처럼 '애쉬'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보다는 더러운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어른과 '바나나 피쉬'와 얽힌 모종의 사건들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도 손쓸 수 없는 무력한 경찰들..그리고,적극적으로 '부와 명예'로 '애쉬'를 유혹하는 '디노 고르치네'의 모습이 그것이다.

 '디노 고르치네'는 자본주의 사회 중에서도 가장 선두를 선 '미국 마피아 보스'로 '애쉬'에게 '놈은 내가 만들어낸 악마다. 녀석은 반드시 내 후계자가 되어서 세계를 지배해야해!' 라는 말을 하면서 유난히 집착을 보이는 매력적인 악인이다. '디노 고르치네'는 신종마약인 '바나나 피쉬'를 베트남 전쟁 중 남몰래 임상실험 하였고, 그 실험 과정을 통해 얻어진 데이타들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마약'의 수준까지 '바나나 피쉬'의 효능을 끌어올리게 된다. 이를 통해 '디노 고르치네'는  미 정부와의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게 된다. 즉, '바나나 피쉬'를 이용해서 혼란스러운 제3세계에 군사쿠데타를 발생시키고 그 대가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약속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부와 권력'의 정점이 될 '바나나 피쉬'를 가진 '디노 고르치네'가 왜 그렇게나 '애쉬'에게 집착하는지 만화를 보는 내내 나는 궁금했었다. 그러나, 결국 알게 되었다. '부와 명예'로도 얻지 못하는 '그 무엇'을 '애쉬'에게 발견했다는 것을..

2-2 소년들..

'애쉬 랭크스'라는 소년은 뉴욕의 할렘가의 폭력조직의 중간 보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년으로 그 이름에 걸맞게 '살쾡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자본과 폭력의 먹이 사슬 중에 '애쉬'가 위치하고 있는 자리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애쉬'라는 이름 또한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써 다른 이들에게는 '잿빛 또는 회색'으로 인식될 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허무한, 사라져 버릴'이란 뜻으로 와닿았다. '애쉬'는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두뇌, 놀라운 지식욕, 뛰어난 해커, 그리고, 부하들을 압도하면서도 무리없이 이끄는 리더쉽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지만, 사실상  태어나면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8살때  어린이 포르노광에게 강간을 당하다가 그를 쏘아서 살인을 한 이후 뉴욕으로 와서 떠돌다 '바나나 피쉬' 때문에 폐인이 된 형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디노 고르치네' 에게 몸을 팔고 사교계의 기교를 배우고, '스승'을 통해 살인기술과 총기 사용법등을 배웠던 인물이다. 그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별로 없다. 그저 뉴욕 할렘가의 폭력조직의 보스로 사라져 버릴 운명의 그...그런 그가 또다른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에이지'라는 일본 소년은 전직 높이 뛰기 선수로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 아는 사진작가와 들어오게 된 소년인데, '에이지'와 '애쉬'의 첫만남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모두가 무서워 하는 애쉬에게 '에이지'는 스스럼없이 다가가 '권총'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런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애쉬'는 할렘가에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그의 권총을 넘겨주게 되는데, 이 장면은 만화를 통해 이어지는 '애쉬'와 '에이지'의 관계의 복선으로 자리잡게 된다. '살쾡이'와 같이 살아남기 위해선 남을 해치는 것에도 꺼리낌이 없으며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던 '애쉬''토끼'처럼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고 폭력앞에선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약한 자이며,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해대는 '에이지' ...그런데, '에이지'는 '애쉬'에게 다른 어떤 누구보다 달랐다. 모두들 '애쉬'에게 명령만 기다리거나, 아니면 그의 몸을 요구하거나  그의 빠른 판단력과 지식, 일처리능력을 요구하고 돈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 뿐이었는데, 이 '에이지'란 소년은 '애쉬'의 아픈 기억들을 이해해주고 10대 또래들의 평범한 재잘거림과 웃음을 가르쳐 주면서도 살아가기 위해 상대를 죽여대는 그의 모습에 대해 어른들도 가르쳐주지 않은 죄책감을 일깨워준 소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모습이 어떻든 살아주기를 바라는 소년이었고....

욕망은 항상 결핍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애쉬'의 욕망은 '이해받고 사랑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10대의 삶'었는지 모르겠다. '디노 고르치네'의 '부와 명예'의 끈질긴 유혹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래, 밟아라~ 내가 질 줄 아느냐!"라며 파란 독기를 뿜어대던 '애쉬'가  '이해과 구원'을 '에이지'를 통해 얻은 후 그 작은 행복이 도망갈까봐 '에이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더럽히면서도 살아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쩌면 돈과 명예의 가치보다는 이해와 사랑과 같은 이상적인 가치를 욕망하였던 '애쉬'의 선택에 대해서 할말이 있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애쉬는 10대였다.'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명되지 않을지...

3. 번외편, 그리고 아슬란..

'바나나 피쉬'라는 작품에 대해서 내가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생과 사' ' 소년과 어른' ' 부, 명예와 이해,사랑' 에 대해서 첨예한 대립의 모습을 띄면서도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10대 소년의 삶을 통해 그 모든 것을 포괄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번외편으로 나와 있는 부분마져도 매력적인 '애쉬'의 삶과 죽음에 더욱 의미를 부여해주는 작가의 꼼꼼한 배려 때문이다.

번외편의 내용을 보면 '애쉬'의 죽음 이후 수년이 지나고 '에이지의 사촌 여동생'이 뉴욕으로 오게 된다. 뉴욕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에이지'는 아킬레스의 뒤꿈치처럼 '애쉬'의 치명적인 약점이었으며, 자신의 편지로 '애쉬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 -'바나나 피쉬'의 모든 음모가 밝혀지고 '디노 고르치네'가 자신의 욕망속에서 붕괴되어버린 어느 날,  일본으로 가는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애쉬'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편지를 받아들고 '애쉬'는 '바나나 피쉬'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전설에는 예외가 없다는 듯  다른 폭력조직에게 칼을 맞아 죽게 된다.-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학생인 '에이지의 사촌 여동생'은 '에이지'의 사진첩에서 '애쉬'란 사람의 사진이 모두 빠져 있음을 발견하고는 '에이지'에게 묻게 되는데 '에이지'는 별 신통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에이지의 사촌 여동생'은 '애쉬'에 대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많은 사람들이 '에이지'가 사랑했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는 하지만, 모두들  대답들이 신통치 않아서 '에이지 삼촌이 사랑했던 여자'정도로 상상을 하면서 소녀다운 질투를 한다.

그런 '사촌 여동생'를 보며 '에이지'는 마음속에  '애쉬' 를 묻어두기 보다는 자신에게 애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에서였는지 그의 사진전에서 '애쉬'의 사진을 공개한다. 새벽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사진에는 창가에 앉아서 이른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애쉬의 아름다운 미소가 들어있었다.

이 장면도 만화 속 장면중의 명장면으로 뽑는 장면 중 하나인데, '애쉬'의 도망간 어머니가 원래 '애쉬'에게 준 이름은 '아슬란(새벽)'이란 이름이었단다. 생을 선물하고는 책임져주지 못했으나 '새벽'과 같이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랬던 어머니의 염원이 완성되는 장면이면서, '에이지'의 마음 속의 '애쉬'의 모습이며, '애쉬'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애쉬는 이제 영원히 '새벽(아슬란)'으로 기억되게 된 것이다. '에이지'를 통해서 '애쉬'에서 '아슬란'으로 다시 태어난 '애쉬'를 보면서 'womb'과 'tomb'이 정반대의 말이면서도 서로 닮을 수 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만든 작가의 힘...역시 대단하다.

누군가 그랬다. 영원히 살게 하는 법은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라고....  자궁에서 밀려나와 생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으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 지 아무도 알 지 못한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삶의 물결에 밀려 무덤으로 들어가게 될 때,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 속에서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삶이란 사는 과정 중에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와 같은 생각이 옳은지는 꾸준히 살아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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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2-24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로군요. 추천합니다.

2005-02-24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구두 2005-03-0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지안님! 거 보세요, 제가 뭐라 그랬어요. 훌륭한 리뷰라고 그랬잖아요.
이주의 마이리뷰에 뽑히셨네요, 흐흐. 추카추카드려요. 그런데 리뷰에 뽑하면 부수입도 있는 걸로 아는데, 어케 입학 선물 해주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하하...

클레어 2005-03-0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학 선물, 어떤 것이 좋으신가요? 코멘트 날려 주십시오. ^^ ( 바람구두님의 안목에 괜찮은 글을 썼다는 자체가 무척 기쁘네요. )

딸기짱구 2005-03-0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 않은 만화인데.. 꼭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