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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로쟈의 <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내친 김에 <아주 사적인 독서>를 읽었다.
그 두 권은 같은 날 주문한 책으로, 내 나름 로쟈 컬렉션이다.(민망하지만)
우선 <책을 읽을 자유>를 읽을 때 속도가 더디었던 반면 이 책은 수월한 편이다.
둘은 내용이나 분량 자체도 다르지만 책장을 넘길 때 종이 두께도 다르다.
먼저 읽었던 책은 종이가 얇아서 두 장씩 넘어가곤 했는데 이 책은 종이가 두껍다.
별로 안 읽었는데 상당히 읽은 것 같은 두께감 때문에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는 줄 알면 출판사 직원들이 더 섬세해지려나.
일곱 편의 고전 문학작품을 저자가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주는 게 책의 주내용이다.
원래는 강의한 내용인데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처음 제목을 보고서 '그럼 공적인 독서는 뭐지? 공적으로 기여하는 독서인가?' 생각했다.
나처럼 제목에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많았을까.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적인'이란 말이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남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독서'라는 의미로 쓰고자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교양으로서의 독서는 '읽은 척 매뉴얼'을 참고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주 사적인 독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를 가리킵니다. 나의 관심과 열망, 그리고 성찰을 위한 독서입니다."(6쪽)
마치 공적인 독서와 사적인 독서가 흑과 백처럼 확연히 다른 듯이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념 설정을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독서는 남에게 뽐내기 위한 독서와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독서 그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대화를 나누고(논의의 토대) 소통하기 위해 읽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기도 하니까. 그 둘이 분명하게 나뉘는 것 같지는 않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마담 보바리>, <주홍 글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 손님> 7편이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 봐서(<석상 손님>은 빼고) 마치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저자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란 표현을 쓴다.)
나도 한 두 권은 확실히 읽었는데 나머지는 긴가민가하다. 어린이 시절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중요하지도 않은데 왠지 세어보게 된다는…)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읽은 책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마담 보바리>와 <주홍 글자>, <햄릿>이 그랬다.(확실히 읽은 책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니, 엠마가 저런 짓을 한 걸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였어?!'
'헐, 저런 게 있었나?'
속으로 이 비슷한 말을 주절거리며 읽게 된다. 결국 내가 읽은 책이 진짜 저 책이 맞는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만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바쁜 유형이다.
드라마를 보며 등장인물의 대사나 행동, 사건에 일일이 흥분하고, 마치 자기 일인 듯이 온갖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잘 안 본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도 읽고 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좋게 말하면 몰입도가 뛰어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거다.
그런데 성찰이라니?! 내가 문학작품을 읽고 과연 성찰할 수 있을까?! 내가 '아주 사적인 독서'를 할 수 있을까?!! 로쟈사마처럼 저런 해석을 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다.
로쟈가 펼쳐 보이는 고전 작품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물론 저자의 훌륭한 해석과 빼어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나도 이제 고전 작품을 로쟈처럼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로쟈사마에게도 몰입하다니, 난 진짜 몰입능력이 좋은 것 같다)
그러한 흥분을 가라앉히기 싫어서(열정은 좋으니까) 책을 다시 훑어 보는데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나온다.
"(…) 저는 고전을 최대한 우리 가까이에 갖다놓고 싶었습니다. (…) 작품이 갖는 보편성을 발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발견은 자기 발견의 구문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라는 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질 때, 고전 독서는 시간이 남아돌 때나 가능한 독서가 아니라 필수적인 독서로서 의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7~8쪽)
난 저 부분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처음 읽을 땐 왜 몰랐을까?) 난 이미 저자가 말하는 독자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 ……
날카롭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읽을 때 난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주인공(또는 꽂히는 인물)인데.
문제는 내가 작품 속 인물과 완전 합체(?)되던가 아니면 아예 따로 놀던가 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내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달까.
포인트는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지'도록 하는 것에 있다. 아, 소중한 깨달음.
이야기, 해석, 정보 게다가 깨달음까지 빼곡하게 담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도 읽고 싶어졌고, 이미 읽었던 책들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책에 나온 저자의 가르침(?)이 도움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