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정일의 독서일기 2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2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2권은 1권에 비해 독후감 한 편당 분량이 늘었다. 덕분에 한 권의 책에 대해 좀더 풍부해진 해석과 감상을 맛볼 수 있었다.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승옥의 〈무진기행〉, 린 챈서의 〈일상의 권력과 새도매저키즘〉,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와 〈물의 가족〉, 김인숙의 〈칼날과 사랑〉, 김주영의 〈아들의 겨울〉, 호영송의 〈흐름 속의 집〉, 신경숙의 〈외딴방〉 편이 특히 인상 깊었다.
며칠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1〉을 읽고 독후감을 올렸는데, 오늘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다. 리뷰를 살펴보니 예상과는 달리 리뷰는 4~5편 밖에 없고, 부정적인 평가가 절반이다. 헐!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르니 감상평도 다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내가 저자도 아닌데 변명하고 싶은 기분이었다.(오지랖)
같은 책이라 해도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읽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볼 것인지,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讀者)의 몫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리즈를 어떤 관점에서 읽고 있으며, 무엇을 얻을 속셈인가? 물론 처음부터 숨은 목적(?)을 가지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다 보니 어떤 점을 중심으로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
먼저, 책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평가 방식.
내가 읽지 못했고, 이젠 구할 수 없는 책이라 해도 상관 없다. 저자가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무엇을 근거로 어떤 해석을 내놓고,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정히 언급된 책이 어떤 내용인가(줄거리)가 궁금하다면 우리에게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으니 검색하면 된다.
두 번째는 한정적이긴 하지만(저자의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영화, 연극, 희곡, 음악에 대한 감상평도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희곡집에 대한 평은 내가 평소 안보는 것이라 신선했다. 관심이 많아서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나 음악(음악에 관한 책),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세 번째는 역사적인(?) 것. 20년이면 짧은 것 같지만, 사회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그 시절(20년 전)과 달라진 점이 많다('응사'를 보면 알 것이다). 책에 언급된 작품들과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 저자가 자주 쓰는 단어 등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민주화 이후 운동권 출신(학출?)에 대한 반성,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빚어진 가정의 붕괴, 개인화, 물신화,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보면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앞으로는 어떨지 등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 잘 몰랐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절판된 책도 많아 구하기 힘들지만 중고장터와 도서관을 적절히 이용하면 된다.(그래도 못 구하면 어쩔 수 없다) 책에서 언급된 작가와 작품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나에게 끼친 중요한 영향이다. 2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요즘은 어떤 주제를 많이 택할까, 작가론 소설론 시론 같은 건 어떤 것일까, 비평집을 좀 읽어야겠다 등등. 실로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 새로운 발견은, 장정일의 아내가 소설가 신이현이라는 것!(까무러칠 정도로 놀라진 않았지만) 책에 “《FBI 심리분석관》은, 원래 내가 읽으려고 샀던 책이 아니라 아내가 자기 소설을 쓰는 데 참고하고 싶다면서 보고 싶어했던 책.”(45쪽)이란 문장이 있기에 검색해서 알게 되었다.
2권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 〈에로티시즘〉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부분(121~124쪽), 정화진의 시 51편을 민음사에 보내며(출간 부탁) 쓴 편지(나중에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라는 시집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211~213쪽), 저자가 쓴 단막극 〈이디푸스와의 여행〉(원제: 〈긴 여행〉)에 대한 작가의 말(259~260쪽), 최현묵의 연극(〈끽다거〉) 책자에 실은 작가 초상(269~270쪽) 등의 글도 실려 있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체제에 비판적인 체하는 작가들이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111쪽)
기껏 자기가 체험하거나 어깨 너머로 목격한 인상적인 사건을 몇 명의 꼭두각시 같은 화자의 입을 빌려 나열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믿고 있는 작가에게 어떻게 소설을 가르칠 것인가? 막막하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을 책으로 묶으면 열 권, 스무 권은 될 거다`고 마음속 깊이 벼르면서도, 결국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 간 노인네들의 절망만이 소설이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노인네들은 생각했다. `내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비교되거나 교환될 수 없을 만큼 유일무이한 것이다. 하므로 내 삶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똑같이 유일무이한 글쓰기가 고안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안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삶을 표현할 수 없다. 유일무이한 내 삶을 어떻게, 누구나 해왔던 글쓰기의 방식으로 담아낸단 말인가!` 노인네들을 절망하게 하고, 절필하게 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절필을 요구하지 않지만, 작가에겐 절필에까지 이르는 절망이 필요하다.(199쪽)
고통은 인간 존재의 출발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으로 절을 짓는다.(25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