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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1 ㅣ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1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 이건 꼭 읽어볼 책이라는 말을 먼저 하자.
그리고 독후감.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달력에 표시된 각종 기념일과 행사를 체크하다가 문득 스승의 날에 눈길이 머물렀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이건 순수한 의미에서다) 국어선생님이 있었다. 난 가끔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곤 했다. 뭔가 그 나이 때 아이다운 허세 같은 거였다. 그저 내 얘기를 듣기만 하셨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어 보렴."
당장 책을 샀는데(허세였다), 무려 다섯 권이었다.(당시 5권까지 출간)
학생이 가진 돈으로 장만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수능공부에 필요하다는 둥 온갖 구실로 엄마의 주머니를 털었던 듯하다. 열심히 읽었고, 내 기억 속에 장정일은 '책을 많이 읽는 똑똑한 아저씨' 로 남았다. 그 시절 독후감 공책을 찾아 보면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대한 글도 있을지 모르겠다. 보나마나 민망한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읽다니?
몇 개월 전에 알라딘 중고 매장에 책을 잔뜩 들고 갔는데(팔려고), 그 속에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다섯 권도 끼어있었다. 놀랍게도 "밑줄 그은 부분이 5페이지가 넘어서" 팔지 못했다.(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기준이다.)
그때 팔 수 있었다면, 그래서 팔았으면 지금 난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을 것 같다.
국어선생님…. 스승의 날에 찾아뵙지는 못할 것 같고, 대신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다시 펼쳤다. 읽다가 이따금씩 선생님이 떠올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나한테 왜 이 책을 읽으라고 하신 건지 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 것 같아서. 아마도 내 허세가 우스꽝스러우셨던 거 아닐까 싶다.
그땐 아마 대충 읽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니 사회주의니 마르크스니 그런 것도 몰랐을 때고, 에로티시즘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백지상태였으니까.(지금이라고 눈에 띄게 나아진 것 같진 않지만.)
그런데 이게 정말 20년 전에 나온 책이야? 등장하는 책의 제목이나 출간년도, 상영 영화, 김영삼, 새마을호(지금 같으면 KTX를 탔겠지) 얘기가 나오는 걸 봐서는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선 책 참말로 많이 봤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핵심을 쉽게 전달(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닌데도)하는 글솜씨에 놀라고, 저자만의 명쾌한 해석에 또 놀란다. 놀람의 연속이다.
얼추 계산해 보니, 이 글을 쓸 무렵 저자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엇비슷하다. 근데 난 왜 이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 살짝 심각해졌지만, 대신 나는 저자보다 술을 더 열정적으로 마셨을 거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본다.(ㅠㅠ)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아, 나도 독서와 글쓰기에 더욱 매진해야겠어!'라고 마음을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그걸 바라셨을까?) 애석하다.
졸업한 지 10년도 넘은 제자에게 여전히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를 다시 읽어야겠다.
6, 7권도 중고로 구입했으니 부지런히 읽자.
* 그런데 이거 시리즈인데, 한 권씩 독후감을 올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