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에 주의하라 - Keep Up Your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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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직관이나 감성이
이성보다 더 이성적이라는 말을 건넬 때가 있다.

언젠가부터 인식도 못 하고 있던 부분을, 나름의 틀을 보게 된 순간부터,

그리고 내가 어떤 선택의 길에 있을 때, 

난 위의 말을 내 스스로에게도 하고 있었다.

장뤽고다르의 4기를 대표한다는 이번 작품은
최근 스위스 영화제가 진행중인 필름포럼에서 만났다.

노을진 풍경, 창밖 구름이 낀 하늘과 조금 열려 있는 창문, 한 배우의 에로틱한 상상과 그 이미지들의 반복..수갑이 채워져 있는 배우의 팔의 클로즈업, 한 밴드의 곡 구상 과정에서의 여러 모습들..

영화는 서사를 배제시키려는 감독의 의도 속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이미지들과 사운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인물들이나 감독 자신이기도 한 나레이터의 대사들 속에는
그냥 흘러가기에는 커다란 말들이 의식의 흐름처럼 흘러간다. 
(역으로 이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쏟아지는 인물들의 대사가 결국은 우습고, 실체가 없는 것 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제목 속, '주의하라'의 대상인 '오른쪽'은 인간의 언어 창조와 합리성 등을 만들어내는 이성이라는 놈일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이미지와 인물들의 행동들 속에는 코믹하고 부조리하다 여겨지는 여러 설정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의 나열과 부조리한 상황 설정들은 강한 제목의 어조와 함께 더욱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앞에서 얘기했듯, 이 영화에서 장뤽고다르는 그가 끊임없이 추구했던 부분, 영상을 통해,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내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고, 그것은 언어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변하고 있는 우리의 진실이 있고, 이는 언어나, 인과적 서사,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본질을 잡을 수는 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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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 Family Ti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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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이라는 제목 속에 놓여있는 화려, 다양한 배우들의 모습, 표정은

이들 모두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다는 건지.. 싶은 호기심을 처음부터 불러 일으켰다.

 

한 편으로는 너무 강한 제목이다 싶으면서도, 그만큼,
말하고 싶은 게 있는 영화일거라는 예상도 가능했다.

영화는 크게 세가지의 이야기를 보여주었고,,
이들은 각각의 이야기마다 주된 '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먼저 첫번째 이야기는 분식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미라(문소리), 그리고, 제대후 5년만에 불쑥 나타난 그의 남동생 형철(엄태웅), 그리고 미라에게 더욱 불쑥 나타난 남동생의 어머니뻘 연상 연인인 무신(고두심)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이어 두번째 이야기는 혼자 관광가이드를 하며 살아가는 선경(공효진)과 그녀의 자취집에 불쑥 나타나는 엄마 매지(김혜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이야기는 만인의 연인처럼 모두에게 착하고 살갑게 구는 채현(정유미)과 그녀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은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을 중심에 두고 있다. (경석이가 그저 착한 채현에게 보이는 반응들이 과장돼 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경석이 자체가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부재 속에 성장해 왔음을 볼 때, 이는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불만이라고 볼 수 있다.)

그저, 이렇게 거칠게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그저 그런 옴니버스 이야기들의 묶음에 불과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세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각각의 위상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인물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는 특히 마지막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는데, 그 전까지 독립적으로 제시되었던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결국은 다르지만, 같은 얘기를 감독이 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즉, 이 영화는 다름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가족'은 정말 뭘까, 어떤 사람들을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단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나왔던 진부한 휴머니즘, 가족중심주의의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을 보여준다
 
즉, 국내에서 개봉되었던 전통적 가족에 대한  모습들과 그 안에서 휴머니즘을 반복, 강조함이 하나의 공식처럼 영화들 내에 자리잡아 왔고,

영화 밖, 현실에서도 역시 사람들은 기존의 이런 선을 넘어선 '관계'들은 남녀사이면, '불륜'으로, 동성 사이면 '비정상'으로 느끼는데,

<가족의 탄생>은 바로 이런 우리들 영화 안팎의 틀거리에 대한 유쾌한 물음이자, 경쾌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 어떤 관계들이 태어났을까

이를 제목과 관련지어 본다면,

즉, 가족의 탄생은 포스터의 글귀처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종국에는 처음 연인 사이였던 형철과 무신이 아니라, 미라와 무신이 한솥밥을 먹으며 형님과 동생으로 자매의 모습으로 '가족의 탄생'을 보여주며,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엄마가 불륜을 한다고 생각하고, 맘 속 깊이 엄마를 부정하고, 그 엄마와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애(경석)를 쥐어박고 미워하던 선경이가 엄마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경석과 진짜 남매 지간이 되는 '가족의 탄생'을,

마지막에서는 채현과 경석이 그저 다른 현실 속의 커플들처럼 성격차로 헤어지지만, 채현의 고향집에 갔을 때, 불쑥, 미라와 무신이 나타나서 경석을 반기면서, 서로 한 지붕 밑에 모이는 최종적 '가족의 탄생'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무신과 미라, 채현과 경석이 모두 김장을 담그며 가족의 분위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다시 몇년 전처럼, 형철이가 임신한 여자를 데리고 이들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라는 그런 동생에게 더 이상 그저 착하고 참기만 하는 누나가 아니다. 

미라는 마치무책임하고 무능하고 허풍만 떠는 남자는, 썩~ 꺼져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히려 혈육인데도- 형철이를 모두가 모인 한 지붕 아래로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아 버린다. 

이 장면에서의 유쾌함과 통쾌함은 굳이 전통적 가부장제에 대한 모계 사회의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까지 등장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신나는 씬이다.)

 
무엇보다, 이런 관계에 대한 모습들이 영화에서는 차분하게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발칙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데서 때론 풋.. 하고 놀라움을, 때론 하나의 장면에서도 쿵.. 하고 슬픔이 차오르는 경험이 오갔다는 것을 짚고 싶다.

 
여전 생생한 아름다운 장면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각각의 이야기마다 하나씩 꼽는다면,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어린 채현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미라와 무신이 마루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녀들이 침묵한 채 밥을 먹는 장면 뒤로, 채현이 마당에서 뛰고 춤추며 노는 장면이 거친 필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분은 미학적이며 그 자쳬로 여러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병때문에 모자를 눌러쓰고, 어린 경석이를 앞에 두고 엄마 매지가 밥을 먹다가, 창밖을 보면서 지나가던 말로, '난 눈오는 게 좋은데..'라고 말하고, 이를 선경이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암시로 느끼고 화를 내던 장면.

(물론, 두번째 이야기 전체로 보면, 사족이였겠지만, 선경과 그의 옛 남자친구(류승범)가 그녀의 집에서 싸우던 장면 역시 둘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기억에 남는다.)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얼떨결에 채현의 고향집에 들어간 경석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밥을 먹다가 채현이 무신과 미라를 향해 '엄마들, 나 밥 좀 더 줘'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던 장면.

다시 말해, 이 영화가 남다른 것은, 관객에게 '가족의 탄생'을 강요하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는 것과, 그 표현에서 섬세함이 소소한 장면들마다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더 큰 생각의 자리를 관객들에게 조용히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이다.

사족이지만,

주말에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갔더니,
열개 가까운 스크린 수 중 한 두 상영관을 빼고는 모두 헐리웃 영화가 몇개 관씩 차지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경우는 더 심해서,
종일 상영이 아니라, 특정 시간에만 상영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 역시 이날 이 영화를 '운이 좋아' 볼 수 있었다.

순간,
이제 곧 한 달 후면, 스크린 쿼터는 축소되는 게 불보듯 뻔한 일이라는데,
우리 감독들이 공들여 찍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겠구나라는 생각.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일상에서 보는 관객들의 불편함과 씁쓸함, 획일화를 낳게 될 거라는 생각이 번져갔다.
여전, 박스 오피스에서는 '다빈치 코드'와 '미션 임파서블'이 '매진'이라는 글자가 가득했다.

마치 어쩔 수 없는 큰 힘이 있어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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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서 - Betwe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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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시작..

  처음에 인희가 바다를 마주하고, 신의 기운을 느끼며 이를 눈물로 거부하는 장면,
그리고 옆에서 이해경 선생님의 그 안타까운 시선과 표정을 만나던 순간부터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화는 스물 여덟의 인희가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집안에 계속 불행이 찾아오고, 여러 일들을 예언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이해경 선생님을 찾아가 신내림굿을 받고, 무녀의 삶을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 내러티브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 주변으로, 마당에서 자주 장군을 보며 신기를 갖고 있는 한 남자 아이의 운명이라든지, 자신의 신기를 젊은 시절 인지했지만, 어머니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어서 수십년간 무병을 키워오던 한 중년의 여성이 내림굿을 통해 중병에서 완쾌되는 등, 이해경 선생님을 중심으로, 그녀에게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는 남녀노소를 넘어서, 평범하게,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수용하는 모습들이며, 그 과정에서 본인 뿐만 아니라 그들 가족들의 눈물까지도 신비화시키거나 극적으로 과도하게 보여주지 않고, 다큐멘터리의 장르에 맞게 덤덤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덤덤한 카메라의 시선은, 결국, 오리엔탈리즘을 최대한 배재시키려고한 감독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이고,

이에, 오히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네들의 삶에 대한 뜨거움과 눈물을 감정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샤머니즘이란 소재는 자칫하면 흥미 위주로 전달될 수 있고, 또 신비화해서 그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영화를 예매하고서도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난 하나의 관점을 놓칠 뻔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재미'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사람의 인생과 이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눈물과 진심으로 보여준 영화였기 때문이다.


PLUS)

 영화 상영이 끝나자,

 이창재 감독과 이해경 선생님, 관객들간의 질의응답시간이 주어졌다.

 이해경선생님은 이미 <혼의 소리>, <몸의 소리>라는 책을 쓰셨을만큼

막연한 예상과 달리, 굉장히 논리적인 분이셨다.

(우리는 흔히 무당하면, 화려한 화장과 범상치 않은, 눈빛 등을 떠올리지 않는가)

 
'직업'이 아닌 '운명'이기에 이 길을 가고 있다는 이해경 선생님은

이창재 감독의 영화 촬영 제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샤머니즘>이나 무당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특히 오늘날 젊은 사람들-을 깨고 함께

소통하고 싶은 생각에서 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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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 Brokeback Mounta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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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스의 'I swear'라는 말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을때,

내 마음 속에서는 진한 슬픔이 올라오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해, 이 영화는 내가 오랫동안 기억해 둘만한 영화이다.

미국에서 워낙 호들갑을 떨 정도로 호평이 이어졌고,
 거기에 아카데미상 8개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것까지,
영화보기 이전부터, 이 영화에 쏟아지는 관심은,
오히려 이 영화보기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부분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봐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행히, 여전 씨네큐브에서는 이 영화가 상영중이였다.
그리고 보미와 함께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한철 방목 일꾼으로 서로 만나, 사랑하는 감정까지 나누게 되는 두 카우보이, 에니스(히스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홀)의 러브스토리이다.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동성애 영화라며, 이러저러 언급들을 하고 있지만,
난 이 부분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예민하게 다룬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성적인 두 카우보이에게, 낭만적인 브로크백 마운틴을 배경으로 싹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브로크백 마운틴과, 두 남자만의 비밀로 (물론 중간에 에니스의 부인이 알게 되지만, 이 역시 사회적으로 알려지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고, 이혼이라는 결과로만 주어질 뿐이다.)
20여년동안 이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잭은 영화 후반부에서 '넌 나를 잠깐 만나는 친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난 너를 20년동안 기다려왔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에니스와의 사랑을 현실에서도 이루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에니스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잭을 만난 후, 새로운 감정을 느끼지만, 방목일을 끝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때, 이전 약혼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에니스가 잭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현실에 두려 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장면 - 함께 지내던 두 남자 중 한 명이 성기가 뽑힌채 그 주검을 보여주었던 경험-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어쨌든 결과적으로 에니스는 그저 평범한 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지내려던 꿈이 깨지게 되고, 잭과의 사랑 역시 거부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중심을 잃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잭에게 보낸 엽서가 '수취인 사망'이라는 도장이 찍혀 반송되었을때, 그는 충격과 함께, 그동안 현실의 편견에 눌려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잭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낱낱이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건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야. 모든 게 거기서 시작된 거야'

잭은 자신들의 비밀을 유일하게 수용해 주는 공간이자,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공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그리고 에니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에니스는 끝까지, 잭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할 용기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누군가에게 들통날까봐 노심초사해한다.
(이는 잭이, 가족들에게 언제나, 에니스를 얘기하고, 그와 함께 사는 삶을 상상하며 말해왔다는 사실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에니스의 침묵은 더 많은 대사보다 더 큰 상실감을 전달해주고 있고,
전체 이야기 전개에서,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는, 감독의 절제력 역시도,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들 사이의 관계와, 그들의 심리를 차분히 좇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사실, 영화에서는
잭이 어떻게해서 죽었는지조차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에니스가 그의 부인과의 통화를 통해, 상상할 뿐인 것.

 하지만, 감독의 이러한 의도적 생략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침묵, 그 자체로,
감독의 장인다운 절제술을 경험하게한다.

 
그리고, 서사의 마지막에서도 에니스가 잭의 유언대로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을 행하고,
또 그 과정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회한에 잠기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는 없다.

 그저, 잭의 부모님 고향집에 찾아갔다가,
20여년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둘이 치고 받고 싸울때, 입고 있었던 그들의 셔츠가 함께, 잭의 방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쿡쿡거리는 슬픔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 장면은 에니스가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보다 더 슬프게 다가온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그 셔츠를 보며, 'I swear'라는 말-이 말 역시, 무엇을 맹세한다는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직접적으로 '잭,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아닌 '맹세해'라는 말임을 다시 기억해 보자'-만 남기는 마지막 장면은 더 큰 여운으로 다가온다.

 
'브로크백'은 불교 용어로 '회귀'라는 뜻도 갖고 있단다.
30여쪽에 불과한 애니 프루의 동명소설을, 원작자도 놀랄만큼 영화로 구현하고 있는 감독의 솜씨가 놀라울 뿐이다.

 사족이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산의 모습과, 음악들 역시, 이 영화를 서정적 로맨스로 만들어주고 있는 뛰어난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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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 Frid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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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책으로 접했던 프리다 칼로를 뒤늦게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훔쳐 보았다.

그녀에 대해서는 그녀의 고국인 멕시코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초현실주의 화가로, 또 페미니스트의 선구자로 이미 너무나 많은 팬이 존재한다.


기적이라 불릴만큼 끔찍했던 소녀시절의 교통사고,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과 결혼, 트로츠키와의 불륜,

동성애에 이어지는 이야기들까지....

이 모든 것 이상이 프리다였다.


'자유'를 뜻하는 그녀의 이름과

비합리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던 그녀의 삶..


그녀는 평생 두번의 큰 사고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한 번은 18살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당했던 교통사고..

(버스 난간은 그녀의 배를 뚫고 들어가 왼쪽 옆구리를 관통, 질을 통해 빠져 나왔다지..)



그리고 또 한 번은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

(영화에서도 프리다 자체의 삶 전반이 중심이긴 하지만,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라

당대 사람들이 평했던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상당부분에 흐르고 있다.

그녀의 삶에서 디에고와의 사랑과 그 안에서의 고통은 분리할 수 없는 자체였겠지.)


디에고는 대형벽화들을 통해 사회적, 민족적 주제를 다루었던 당대 거물 화가였지만,

그의 무절제한 여성 편력은 그의 세번째 부인이던 프리다에게 평생 고통의 짐이였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프리다는 디에고를 향해 절규한다...

첫번째의 사고보다 두번째 사고,, 당신을 만난 사고가 더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디에고는 그녀의 그림에 대해

'나는 외부 세계를 그릴 뿐이지만, 프리다는 마음의 세계를 그린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불행한 사고로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던 평생의 구속과

자신의 아이를 그토록 갖고 싶어했지만 세번의 유산을 통해

또 다른 자유마저 상상할 수 없던 그녀에게

비합리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외부세계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낯선 곳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도 많은 자화상을 그렸고,

이성의 세계를 넘어서 자신의 마음에서 형상화된 세계를 화폭에 옮겼을 것이다.



PLUS)

1.

프리다역에는 '셀마 헤이엑'이 맡았는데,

책에서 보던 실제 프리다와 너무도 흡사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내가 읽었던 책: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르 클레지오 지음, 다빈치


2.

좋은 영화에는 좋은 음악이 필수였겠지?

<벰파이어와의 인터뷰> <마이클 콜린스> <푸줏간 소년> 등의 음악을 담당했던

엘리어트 골덴탈의 축제성과 한맺힘, 기괴함이 뒤섞인 곡들 하나하나는

이 작품 전반에 그대로 묻어져 나오는 또 하나의 강한 메시지였다.


3.

요즘은 영화 음악을 하나 둘씩 찾게 된다.

예전에 보았던 기억에 남는 영화를 다시 보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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