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 Brokeback Mountai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에니스의 'I swear'라는 말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을때,

내 마음 속에서는 진한 슬픔이 올라오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해, 이 영화는 내가 오랫동안 기억해 둘만한 영화이다.

미국에서 워낙 호들갑을 떨 정도로 호평이 이어졌고,
 거기에 아카데미상 8개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것까지,
영화보기 이전부터, 이 영화에 쏟아지는 관심은,
오히려 이 영화보기를 조심스럽게 만드는 부분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봐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행히, 여전 씨네큐브에서는 이 영화가 상영중이였다.
그리고 보미와 함께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한철 방목 일꾼으로 서로 만나, 사랑하는 감정까지 나누게 되는 두 카우보이, 에니스(히스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홀)의 러브스토리이다.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동성애 영화라며, 이러저러 언급들을 하고 있지만,
난 이 부분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예민하게 다룬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성적인 두 카우보이에게, 낭만적인 브로크백 마운틴을 배경으로 싹트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브로크백 마운틴과, 두 남자만의 비밀로 (물론 중간에 에니스의 부인이 알게 되지만, 이 역시 사회적으로 알려지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고, 이혼이라는 결과로만 주어질 뿐이다.)
20여년동안 이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잭은 영화 후반부에서 '넌 나를 잠깐 만나는 친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난 너를 20년동안 기다려왔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에니스와의 사랑을 현실에서도 이루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에니스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잭을 만난 후, 새로운 감정을 느끼지만, 방목일을 끝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때, 이전 약혼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에니스가 잭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현실에 두려 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장면 - 함께 지내던 두 남자 중 한 명이 성기가 뽑힌채 그 주검을 보여주었던 경험-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어쨌든 결과적으로 에니스는 그저 평범한 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지내려던 꿈이 깨지게 되고, 잭과의 사랑 역시 거부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중심을 잃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잭에게 보낸 엽서가 '수취인 사망'이라는 도장이 찍혀 반송되었을때, 그는 충격과 함께, 그동안 현실의 편견에 눌려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잭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낱낱이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가진 건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야. 모든 게 거기서 시작된 거야'

잭은 자신들의 비밀을 유일하게 수용해 주는 공간이자,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공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그리고 에니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에니스는 끝까지, 잭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할 용기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누군가에게 들통날까봐 노심초사해한다.
(이는 잭이, 가족들에게 언제나, 에니스를 얘기하고, 그와 함께 사는 삶을 상상하며 말해왔다는 사실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에니스의 침묵은 더 많은 대사보다 더 큰 상실감을 전달해주고 있고,
전체 이야기 전개에서, 많은 부분을 침묵하고 있는, 감독의 절제력 역시도,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들 사이의 관계와, 그들의 심리를 차분히 좇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사실, 영화에서는
잭이 어떻게해서 죽었는지조차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에니스가 그의 부인과의 통화를 통해, 상상할 뿐인 것.

 하지만, 감독의 이러한 의도적 생략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침묵, 그 자체로,
감독의 장인다운 절제술을 경험하게한다.

 
그리고, 서사의 마지막에서도 에니스가 잭의 유언대로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을 행하고,
또 그 과정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회한에 잠기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는 없다.

 그저, 잭의 부모님 고향집에 찾아갔다가,
20여년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둘이 치고 받고 싸울때, 입고 있었던 그들의 셔츠가 함께, 잭의 방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쿡쿡거리는 슬픔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 장면은 에니스가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보다 더 슬프게 다가온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그 셔츠를 보며, 'I swear'라는 말-이 말 역시, 무엇을 맹세한다는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직접적으로 '잭, 너를 사랑해'라는 말이 아닌 '맹세해'라는 말임을 다시 기억해 보자'-만 남기는 마지막 장면은 더 큰 여운으로 다가온다.

 
'브로크백'은 불교 용어로 '회귀'라는 뜻도 갖고 있단다.
30여쪽에 불과한 애니 프루의 동명소설을, 원작자도 놀랄만큼 영화로 구현하고 있는 감독의 솜씨가 놀라울 뿐이다.

 사족이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산의 모습과, 음악들 역시, 이 영화를 서정적 로맨스로 만들어주고 있는 뛰어난 부분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