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 Family T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가족의 탄생'이라는 제목 속에 놓여있는 화려, 다양한 배우들의 모습, 표정은

이들 모두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다는 건지.. 싶은 호기심을 처음부터 불러 일으켰다.

 

한 편으로는 너무 강한 제목이다 싶으면서도, 그만큼,
말하고 싶은 게 있는 영화일거라는 예상도 가능했다.

영화는 크게 세가지의 이야기를 보여주었고,,
이들은 각각의 이야기마다 주된 '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먼저 첫번째 이야기는 분식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미라(문소리), 그리고, 제대후 5년만에 불쑥 나타난 그의 남동생 형철(엄태웅), 그리고 미라에게 더욱 불쑥 나타난 남동생의 어머니뻘 연상 연인인 무신(고두심)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이어 두번째 이야기는 혼자 관광가이드를 하며 살아가는 선경(공효진)과 그녀의 자취집에 불쑥 나타나는 엄마 매지(김혜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이야기는 만인의 연인처럼 모두에게 착하고 살갑게 구는 채현(정유미)과 그녀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은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을 중심에 두고 있다. (경석이가 그저 착한 채현에게 보이는 반응들이 과장돼 있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경석이 자체가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부재 속에 성장해 왔음을 볼 때, 이는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불만이라고 볼 수 있다.)

그저, 이렇게 거칠게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그저 그런 옴니버스 이야기들의 묶음에 불과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세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각각의 위상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인물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는 특히 마지막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는데, 그 전까지 독립적으로 제시되었던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결국은 다르지만, 같은 얘기를 감독이 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즉, 이 영화는 다름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가족'은 정말 뭘까, 어떤 사람들을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단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나왔던 진부한 휴머니즘, 가족중심주의의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을 보여준다
 
즉, 국내에서 개봉되었던 전통적 가족에 대한  모습들과 그 안에서 휴머니즘을 반복, 강조함이 하나의 공식처럼 영화들 내에 자리잡아 왔고,

영화 밖, 현실에서도 역시 사람들은 기존의 이런 선을 넘어선 '관계'들은 남녀사이면, '불륜'으로, 동성 사이면 '비정상'으로 느끼는데,

<가족의 탄생>은 바로 이런 우리들 영화 안팎의 틀거리에 대한 유쾌한 물음이자, 경쾌한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 어떤 관계들이 태어났을까

이를 제목과 관련지어 본다면,

즉, 가족의 탄생은 포스터의 글귀처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종국에는 처음 연인 사이였던 형철과 무신이 아니라, 미라와 무신이 한솥밥을 먹으며 형님과 동생으로 자매의 모습으로 '가족의 탄생'을 보여주며,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엄마가 불륜을 한다고 생각하고, 맘 속 깊이 엄마를 부정하고, 그 엄마와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애(경석)를 쥐어박고 미워하던 선경이가 엄마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경석과 진짜 남매 지간이 되는 '가족의 탄생'을,

마지막에서는 채현과 경석이 그저 다른 현실 속의 커플들처럼 성격차로 헤어지지만, 채현의 고향집에 갔을 때, 불쑥, 미라와 무신이 나타나서 경석을 반기면서, 서로 한 지붕 밑에 모이는 최종적 '가족의 탄생'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무신과 미라, 채현과 경석이 모두 김장을 담그며 가족의 분위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다시 몇년 전처럼, 형철이가 임신한 여자를 데리고 이들 앞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라는 그런 동생에게 더 이상 그저 착하고 참기만 하는 누나가 아니다. 

미라는 마치무책임하고 무능하고 허풍만 떠는 남자는, 썩~ 꺼져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히려 혈육인데도- 형철이를 모두가 모인 한 지붕 아래로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아 버린다. 

이 장면에서의 유쾌함과 통쾌함은 굳이 전통적 가부장제에 대한 모계 사회의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까지 등장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신나는 씬이다.)

 
무엇보다, 이런 관계에 대한 모습들이 영화에서는 차분하게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발칙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데서 때론 풋.. 하고 놀라움을, 때론 하나의 장면에서도 쿵.. 하고 슬픔이 차오르는 경험이 오갔다는 것을 짚고 싶다.

 
여전 생생한 아름다운 장면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각각의 이야기마다 하나씩 꼽는다면,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어린 채현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미라와 무신이 마루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녀들이 침묵한 채 밥을 먹는 장면 뒤로, 채현이 마당에서 뛰고 춤추며 노는 장면이 거친 필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분은 미학적이며 그 자쳬로 여러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병때문에 모자를 눌러쓰고, 어린 경석이를 앞에 두고 엄마 매지가 밥을 먹다가, 창밖을 보면서 지나가던 말로, '난 눈오는 게 좋은데..'라고 말하고, 이를 선경이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암시로 느끼고 화를 내던 장면.

(물론, 두번째 이야기 전체로 보면, 사족이였겠지만, 선경과 그의 옛 남자친구(류승범)가 그녀의 집에서 싸우던 장면 역시 둘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기억에 남는다.)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얼떨결에 채현의 고향집에 들어간 경석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밥을 먹다가 채현이 무신과 미라를 향해 '엄마들, 나 밥 좀 더 줘'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던 장면.

다시 말해, 이 영화가 남다른 것은, 관객에게 '가족의 탄생'을 강요하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는 것과, 그 표현에서 섬세함이 소소한 장면들마다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더 큰 생각의 자리를 관객들에게 조용히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이다.

사족이지만,

주말에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갔더니,
열개 가까운 스크린 수 중 한 두 상영관을 빼고는 모두 헐리웃 영화가 몇개 관씩 차지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경우는 더 심해서,
종일 상영이 아니라, 특정 시간에만 상영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 역시 이날 이 영화를 '운이 좋아' 볼 수 있었다.

순간,
이제 곧 한 달 후면, 스크린 쿼터는 축소되는 게 불보듯 뻔한 일이라는데,
우리 감독들이 공들여 찍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겠구나라는 생각.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일상에서 보는 관객들의 불편함과 씁쓸함, 획일화를 낳게 될 거라는 생각이 번져갔다.
여전, 박스 오피스에서는 '다빈치 코드'와 '미션 임파서블'이 '매진'이라는 글자가 가득했다.

마치 어쩔 수 없는 큰 힘이 있어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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