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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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처럼 스즈메의 남편은 전화상에서만 존재한다.

그것도 '거북군에게 밥줬어?'가 전부라니.

('거북군'이란 표현 정말 귀엽다. 귀여운 장면으로는 영화초반, 
아파트 베란다에서 던져진 거북이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던 장면.. ^ㅁ^)

이때부터 나는 유쾌해지기 시작!

일상의 무료함 속, 그녀 자체가 느릿느릿 어항 속 갇혀있는 거북이처럼 느껴질 때,
엉뚱, 우연하게 마주하게 되는 스파이 모집 스티커!

엽기적인듯, 만화 속 캐릭터 같은 특징있는 인물들. 대사 한 마디에, 표정에 영화를 보며 즐거워지다.

욕설이나 성적인 요소로, 아님 과도한 휴머니즘으로 이끌어가는 듯한 우리나라 코미디영화의 느낌에 비해 일본 영화는 통통 튀는 소소한 인물들과 발랄한 감성이 기분좋게 버무려져 있는 듯.

스파이가 되기 위한 원칙은 단 하나!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어중간하게, 살아야 한다는 설정!

하지만, 언젠가 스파이 역할을 할 거라는 상상은 겉으로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그녀의 일상을
기분 좋은 상상과 행복감으로 이끈다.

튀고 싶어 말많고 이미지 넘실대는 요란한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발상이라니. ^^
 

그리고 영화를 본 친구들은 이 웃음소리를 잊지 못할지니. 바로 이것!

휏휏휏휏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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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들 - The Dreamer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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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고 싶지 않은 꿈.

그러나 깨질 수밖에 없던 꿈.

기운에 안 차는 세상과는 달리 그들은 꿈꾸고 싶어했고, 달라지고 싶어했고, 순수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바탕은 얼마나 나약한 것이였나.

자신들만이 구축한 세상에서, 그들의 세상이 드러날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


그리고 세상에 뛰어들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까지.


감독은 솔직했고, 용기 있었다.

이상화된 68혁명에 대한 관념을 찬찬히, 솔직히 고백하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에디뜨 피아프 노래가 엔딩 부분에 깔리듯, 어쩔 수 없이, 자기 청춘에 대한 향수를 버릴 수는 없다는 감정의 아이러니.


원래 청춘이라는 건 이것이 아닌 저것을,

이곳이 아닌 저곳을 욕망하는 시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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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 In The Mood For Lov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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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어두운 계단이 이어지고, 그 위에 같은 날 첸과 차우가 이사온다. 
 

이사하는 날의 분주함과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는 따뜻한 이웃집 사람들..

하지만, 첸에게는 그녀와 따뜻한 시선을 주고 받을 남편은 없다. 차우도 마찬가지로, 항상 일로 바쁘다는 아내는 차우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영화는 외로움 속, 무료하게 살아가는 첸과 차우의 일상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은 식당에서 함께 마주보고 있다.

이 영화는 ‘바라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불길했던 얘감대로, 두 사람의 배우자들은 첸과 차우를 서서히 외롭게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에도 그들의 남편과 아내에게 그 사실을 꺼내 말하지 않는다. 첸은 차우를 남편으로 가정하고, ‘애인이 있는지 솔직히 말해보라’고 추궁하지만, 결국 ‘있다’는 대답을 듣고 무너진다. 그녀는 자신이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남편의 외도가 현실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이에 실제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차우 역시, 부인의 외도를 느끼지만,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는 말해지는 순간, 그들 현실에서의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관계가 깨져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그 안에서 첸과 차우는 더욱 외로워진다.

이렇듯, 말할 수 없는 첸의 외로움은 눈물로 간직된다. 남편의 잦은 출장과 그의 차가움 속에서 첸은 샤워기를 틀어놓고, 흐느낀다. 일상에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녀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제 외로움으로 조그마한 스침에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어두운 계단을 혼자 오르내릴 때, 문을 돌아 나설 때, 그녀의 손이 난간이나 벽을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외로움으로 흔들리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그녀의 떨림이다. 이후, 그녀는 차우와의 ‘이별연습’에서 다시 혼자 남겨지게 될 두려움에 그에게 기대어 겉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환영이 지나간 듯, 그와의 작업실에서, 오랜만에 찾아간 예전 집의 창문 앞에서, 혼자인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기대어 울 수 없는 눈물을 삼킨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에서 차우는 말하고 싶어한다. 그는 이웃의 작은 훈계에도 민감해하며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망설여 하는 첸 앞에서, 그녀에게 함께 하고 싶음을 말한다. 또, 결국 다른 사람들의 외도와 그들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고, 첸에게 헤어짐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 ‘헤어지자’는 선언을 하지 못하고, 그녀와의 이별연습에서 그녀가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꺼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는 그녀와 실제로는 헤어질 수 없다는 그의 설정인 것이다.

하지만, 둘의 외로움은 다시 어느 순간 그들에게 일상이 되어 있다. 그는 그녀와의 순간들을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그가 쓰는 기사처럼 공개되거나 순간 회자되다가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차우는 그녀와의 사랑을 비밀스럽고 영원한 것으로 남겨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이야기를 앙코르왓의 한 담벼락 구멍에 대고 말하고, 흙으로 메워 버린다. 일상을 초월한 공간 속에 그들의 사랑은 이야기되고, 간직된다.

서로에 대한 ‘바라봄’.. 그 시선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은 욕망지지만, 함부로 다가설 수  는 안타까움 자체로 남겨졌다. 첸은 싱가폴의 그의 방을 찾아가, 그의 물건을 손으로 만지고, 그에게 전화를 걸지만, 끝내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녀는 건네지 못한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들고 한참동안 가늘게 떤다. 그리고 차우는 그녀와의 이야기를 양코르왓에 묻어둔 뒤, 터널처럼 길고 어두운 사원을 빠져 나온다. 마치 그들이 처음 만나고 스쳐가곤 했던 좁고 어두운 계단을 빠져 나가듯이. 이렇듯 차우가 그녀와 함께 했던 홍콩을 떠나 먼 곳까지 와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담에 기대어 이야기를 담아내던 모습은 일상 속에 둘 수 없었던 그의 떨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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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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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은 짐캐리, 케이트 위슬렛, 커스틴 던스트 등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 실제 영화 개봉시에는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영화매니아들 사이에서는 ‘2005년 최고의 영화’로 얘기되면서, 입에서 입으로 매력 있는 영화로서 회자되고 있다. 얼핏 보면,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 이별, 다시 만남을 얘기하는 낡은 스토리인데도, 이 영화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서 매력적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과거와 현재, 현실과 내면을 변화무쌍 넘어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들에게 낯선 느낌을 준다. 여느 영화처럼 영화 전반에 대한 소개자막은 건너뛰고 침대에 누워 있던 한 남자가 순간 깨어나는 장면에서부터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클레멘타인과의 만남이라는 꽤 긴 내용 전개까지 영화 전반에 대한 소개 자막은 등장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주인공 조엘의 우연한 여행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는 이야기까지는 순조롭게 따라오지만, 이후 갑자기 비내리는 배경과 차 안에서 울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또 낯선 장면들로 이어진다.

이후, 이야기 전개는 영화 중반까지 두 남녀가 익숙해지는 러브스토리가 보여질 것 같지만, 이를 무시하듯, 클레멘타인을 위해 선물을 준비한 조엘이 그녀가 일하는 서점으로 찾아가지만,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는 황당한 장면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처음부터 관객들이 조엘의 초점에 맞춰져 영화를 보게끔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상황에서 당황하는 조엘과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함께 동일시되어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후 친구를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고, 이후 이야기는 두 남녀가 사랑을 진전시키는 내용들은 생략된 채, 조엘이 그녀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녀와 자신이 사랑을 나눌때의 기억도 잊으려고 하는 설정으로 넘어간다. 이후, 이 설정은 이야기가 기억을 지우는 과정을 실행하는 라큐나 회사의 직원들의 실제 상황과 조엘의 머릿 속에서 진행되는 환상적인 연상 장면들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는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탁월한 발상이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단선적으로 이야기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영화는 후반부에서 최근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우연히 만났을 것이라는 상상을 전복시키고, 2년 전에 이미 둘은 연인이였음을 알려줌으로써, 관객들을 감탄시킨다.

덧붙여,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후의 슬픔으로 이 기억을 지우려 했다는 설정은, 다시 그녀의 기억을 지우지 않기 위해, 그녀 만나기 이전의 조엘의 어린 시절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정을 통해 시간의 복합성을 한층 갖게 만들고, 유년기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재기발랄한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유쾌함까지 선물하고 있다.

* 참고로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외적으로 구현되는 서사의 분절은 아래와 같다.
1. 조앨의 그저그런 아침의 일상
2. 몬타우크에서의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만남
3. 빙판 위에서의 신혼여행  

4. 비가 내리는 창밖, 차 안에서 조엘의 우는 모습 + 영화 소개자막
5. 조엘의 선물 준비  

6. 조엘에 무관심한 클래맨타인 (서점에서)
7. 조엘은 친구를 통해 그녀에게서 자신의 기억이 지워졌음을 알게됨.
8. 그에 대한 배신감으로 자신에게서 그녀의 기억도 지우기 위해 라큐나 주식회사를 찾아감
9. 병원에서 사전 수술로, 조엘의 머릿 속, 그녀와의 기억을 지우기 시작
10. 조엘의 집에서, 저녁, 패트릭과 스탠은 조엘과 클래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 시작
11. 기억을 지우던 과정 중, 치명적 문제가 발생함
12. 박사 하워드가 급히 조엘의 집을 찾아옴
13. 가까스로 문제를 수습함.
14. 1번 분절과 같은 장면의 반복
15. 2번의 반복
16. 클레멘타인이 잠시 집으로 들어가 어떤 봉투를 들고 나옴.
17. 차에서 이동중, 테잎에서 클레멘타인이 과거 기억을 지울때 기록했던 내용들이 흘러나옴
18. 화가 나고, 당황한 조엘과 차에서 내리고 집에 돌아오는 클레멘타인
19. 클레멘타인이 조엘의 집에 찾아오고 상황을 파악함.
20. 서로가 상처 때문에 아팠음을 깨닫고 다시 연인의 관계로 이어갈 것임을 암시하며 엔딩

2. 다양한 사랑의 상처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다.

영화는 중반까지는 어쨌든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중심으로 다루는 듯 하다. 하지만, 중반 이후, 남들의 아픈 기억을 지우는 일을 의뢰받은 사람들 내에서도 -하워드와 메리 사이- 아픈 사랑의 기억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는 결국 메리가 자신의 회사에서 기억을 지운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이유가 되고, - 결국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이야기는 전개될 힘을 얻는다- 주인공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를 수 있었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난다. 나아가 이는 ‘인간은 누구나 사랑에 대해 행복하고 아픈 기억들을 갖고 있는 존재’임을 관객들이 느끼게끔 유도한다.

관계의 유사성
조엘 - 클레멘타인 - 페트릭
하워드 - 메리 - 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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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어줘 - Be with M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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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는 처음으로 칸에 입성한 에릭쿠 감독의 이 작품은 지금까지 연장 상영이 되면서 입에서 입으로 스크린 앞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옴니버스 구성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는 회사 내 여성을 짝사랑하는 어느 남성의 이야기, 
채팅으로 알게 된 한 여자친구를 좋아하고, 그 마음이 떠난 데에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여학생 재키의 이야기, 부인과의 사별로 슬픔 속에 놓여있는 한 노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얼핏 보면, 그저 몇개의 픽션들이 하나의 영화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실존인물- 그녀는 청각, 시각 장애자로 평생을 살아 온 인물- 테레사 첸 여사의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논픽션적인 살아있는 힘을 느끼게 하고,이는 특히 영화의 후반부로 가서, 그저 수평적으로 전개되던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중첩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내곁에 있어줘'라는 말은 우리들의 내밀한 고백이자,
외롭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간절한 외침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에서, 테레사첸은 그녀의 에세이의 내용 전개를 빌어,
'내 삶에서 진정한 사랑은 존재할까' 라는 물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 나에게서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내곁에 있어줘'라는 말을 남긴다.

이는 영상으로는 영화의 끝에서 손의 아버지인 한 노인이 테레사 첸 앞에서 외로운 일상의
무게로 깊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집약되고 있다.

이 영화에 접근할 때 키워드로 나는 음식을 만들거나   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람들간에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는 모습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먼저,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밥을 먹는 행위가 강조되고 있다.
이를테면, 집의 식구들이나 회사로부터 모두 소외당하고, 하찮은 취급을 당하는 남자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은 먹는 행위이다.

그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식욕을 갖고 있고, 이는 그가 살아가는 데 유일한 즐거움이자 휴식이다.

반면, 부인과 사별하는 노인에게 음식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행위로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의미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두 소녀들의 이야기에서는 위의 인물들만큼 크게 설정되어 있진 않지만,
연인과 가볍게 웃음을 나누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실존인물인 테레사첸에게는 그녀의 장애로 인해,
소박한 음식을 장만하는 자체가 큰 모험이다.

영화에서는 지난 그녀의 삶이 그녀의 요리하는 장면을 쭉 보여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힘들게 음식을 만들고, 누구도 없이 혼자 밥을 먹는 테레사첸의 모습은

외로움이 필연인 우리들의 모습을 조용하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세 이야기에서는 모두 누군가를 향한 외침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다가감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뚱뚱한 남자의 경우는 직장동료를 짝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함으로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두번째로, 재키의 경우는 그녀의 친구와 채팅과 핸드폰 문자를 통해 소통한다.
이는 앞서 남자의 경우보다는 좀 더 친밀한 형태일 수 있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이 현실 속에서 커가지 못함으로서 한계를 드러낸다.

 
다음으로, 노인의 경우는 부인과 사별했음에도, 그녀가 자신의 옆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려 하고, 이는 영화에서 실제 부인이 있는 것처럼 후반까지 그려진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잡을 수 없고, 그녀를 몸소 느낄 수 없다.
이에 그가 만들어 낸 부인의 환영도 결국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테레사 첸의 경우는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야 소통할 수 있다.
그녀는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만짐으로써 아이들을 마음으로 느끼고
집에 찾아노는 '손'- 노인의 아버지이자 테레사첸의 번역을 맡고 있는 인물-을 맞이하고,
대화한다.

 
결국, 영화는 누구든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감과 외로움, 사랑의 감정을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조용히 관조하며 비춰주고 있다. (극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설정하여 관객들에게 자극을 주려는 의도는 거의 없다. 남자의 죽음은 가장 극적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역시, 그가 짝사랑했던 여자가 아침에 신문을 보면서 그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덤덤히 일상에서 지워진다.)

 
오히려 관객들은 노인이 테레사첸의 집에서 생전에 병원에서의 부인과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당황하고, 또 영화 막바지까지 이끌려온 그 외로움의 색채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평론가들이 말했듯,
'가공할 만한 침묵의 힘'이고, 이 영화가 여러 사람들의 내면에 호소력을 갖게 하는 부분인 것이다.

이제 막 성숙해가는 사람이든, 그저 외양적으로 미련해 보이는 사람이든, 이미 얼굴은 검버섯이 피고 굳은 주름이 가득한 사람이든, 그 누구든 사람은 자신 옆에 누군가가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는 존재이며, 그 존재가 부재할 때의 슬픔은 가장 근원적인 아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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