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 In The Mood For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좁고 어두운 계단이 이어지고, 그 위에 같은 날 첸과 차우가 이사온다. 
 

이사하는 날의 분주함과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는 따뜻한 이웃집 사람들..

하지만, 첸에게는 그녀와 따뜻한 시선을 주고 받을 남편은 없다. 차우도 마찬가지로, 항상 일로 바쁘다는 아내는 차우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영화는 외로움 속, 무료하게 살아가는 첸과 차우의 일상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은 식당에서 함께 마주보고 있다.

이 영화는 ‘바라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불길했던 얘감대로, 두 사람의 배우자들은 첸과 차우를 서서히 외롭게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에도 그들의 남편과 아내에게 그 사실을 꺼내 말하지 않는다. 첸은 차우를 남편으로 가정하고, ‘애인이 있는지 솔직히 말해보라’고 추궁하지만, 결국 ‘있다’는 대답을 듣고 무너진다. 그녀는 자신이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남편의 외도가 현실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이에 실제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차우 역시, 부인의 외도를 느끼지만,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는 말해지는 순간, 그들 현실에서의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관계가 깨져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그 안에서 첸과 차우는 더욱 외로워진다.

이렇듯, 말할 수 없는 첸의 외로움은 눈물로 간직된다. 남편의 잦은 출장과 그의 차가움 속에서 첸은 샤워기를 틀어놓고, 흐느낀다. 일상에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녀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제 외로움으로 조그마한 스침에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어두운 계단을 혼자 오르내릴 때, 문을 돌아 나설 때, 그녀의 손이 난간이나 벽을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외로움으로 흔들리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그녀의 떨림이다. 이후, 그녀는 차우와의 ‘이별연습’에서 다시 혼자 남겨지게 될 두려움에 그에게 기대어 겉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환영이 지나간 듯, 그와의 작업실에서, 오랜만에 찾아간 예전 집의 창문 앞에서, 혼자인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기대어 울 수 없는 눈물을 삼킨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에서 차우는 말하고 싶어한다. 그는 이웃의 작은 훈계에도 민감해하며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망설여 하는 첸 앞에서, 그녀에게 함께 하고 싶음을 말한다. 또, 결국 다른 사람들의 외도와 그들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고, 첸에게 헤어짐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 ‘헤어지자’는 선언을 하지 못하고, 그녀와의 이별연습에서 그녀가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꺼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는 그녀와 실제로는 헤어질 수 없다는 그의 설정인 것이다.

하지만, 둘의 외로움은 다시 어느 순간 그들에게 일상이 되어 있다. 그는 그녀와의 순간들을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그가 쓰는 기사처럼 공개되거나 순간 회자되다가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차우는 그녀와의 사랑을 비밀스럽고 영원한 것으로 남겨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이야기를 앙코르왓의 한 담벼락 구멍에 대고 말하고, 흙으로 메워 버린다. 일상을 초월한 공간 속에 그들의 사랑은 이야기되고, 간직된다.

서로에 대한 ‘바라봄’.. 그 시선은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은 욕망지지만, 함부로 다가설 수  는 안타까움 자체로 남겨졌다. 첸은 싱가폴의 그의 방을 찾아가, 그의 물건을 손으로 만지고, 그에게 전화를 걸지만, 끝내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녀는 건네지 못한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수화기를 들고 한참동안 가늘게 떤다. 그리고 차우는 그녀와의 이야기를 양코르왓에 묻어둔 뒤, 터널처럼 길고 어두운 사원을 빠져 나온다. 마치 그들이 처음 만나고 스쳐가곤 했던 좁고 어두운 계단을 빠져 나가듯이. 이렇듯 차우가 그녀와 함께 했던 홍콩을 떠나 먼 곳까지 와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담에 기대어 이야기를 담아내던 모습은 일상 속에 둘 수 없었던 그의 떨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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