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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어줘 - Be with 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싱가포르에서는 처음으로 칸에 입성한 에릭쿠 감독의 이 작품은 지금까지 연장 상영이 되면서 입에서 입으로 스크린 앞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옴니버스 구성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는 회사 내 여성을 짝사랑하는 어느 남성의 이야기,
채팅으로 알게 된 한 여자친구를 좋아하고, 그 마음이 떠난 데에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여학생 재키의 이야기, 부인과의 사별로 슬픔 속에 놓여있는 한 노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얼핏 보면, 그저 몇개의 픽션들이 하나의 영화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실존인물- 그녀는 청각, 시각 장애자로 평생을 살아 온 인물- 테레사 첸 여사의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논픽션적인 살아있는 힘을 느끼게 하고,이는 특히 영화의 후반부로 가서, 그저 수평적으로 전개되던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중첩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내곁에 있어줘'라는 말은 우리들의 내밀한 고백이자,
외롭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간절한 외침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에서, 테레사첸은 그녀의 에세이의 내용 전개를 빌어,
'내 삶에서 진정한 사랑은 존재할까' 라는 물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내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 나에게서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내곁에 있어줘'라는 말을 남긴다.
이는 영상으로는 영화의 끝에서 손의 아버지인 한 노인이 테레사 첸 앞에서 외로운 일상의
무게로 깊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집약되고 있다.
이 영화에 접근할 때 키워드로 나는 음식을 만들거나 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람들간에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는 모습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먼저,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밥을 먹는 행위가 강조되고 있다.
이를테면, 집의 식구들이나 회사로부터 모두 소외당하고, 하찮은 취급을 당하는 남자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은 먹는 행위이다.
그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식욕을 갖고 있고, 이는 그가 살아가는 데 유일한 즐거움이자 휴식이다.
반면, 부인과 사별하는 노인에게 음식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행위로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의미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두 소녀들의 이야기에서는 위의 인물들만큼 크게 설정되어 있진 않지만,
연인과 가볍게 웃음을 나누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실존인물인 테레사첸에게는 그녀의 장애로 인해,
소박한 음식을 장만하는 자체가 큰 모험이다.
영화에서는 지난 그녀의 삶이 그녀의 요리하는 장면을 쭉 보여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힘들게 음식을 만들고, 누구도 없이 혼자 밥을 먹는 테레사첸의 모습은
외로움이 필연인 우리들의 모습을 조용하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세 이야기에서는 모두 누군가를 향한 외침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다가감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뚱뚱한 남자의 경우는 직장동료를 짝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함으로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두번째로, 재키의 경우는 그녀의 친구와 채팅과 핸드폰 문자를 통해 소통한다.
이는 앞서 남자의 경우보다는 좀 더 친밀한 형태일 수 있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이 현실 속에서 커가지 못함으로서 한계를 드러낸다.
다음으로, 노인의 경우는 부인과 사별했음에도, 그녀가 자신의 옆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려 하고, 이는 영화에서 실제 부인이 있는 것처럼 후반까지 그려진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잡을 수 없고, 그녀를 몸소 느낄 수 없다.
이에 그가 만들어 낸 부인의 환영도 결국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테레사 첸의 경우는 일일이 손으로 더듬어야 소통할 수 있다.
그녀는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만짐으로써 아이들을 마음으로 느끼고
집에 찾아노는 '손'- 노인의 아버지이자 테레사첸의 번역을 맡고 있는 인물-을 맞이하고,
대화한다.
결국, 영화는 누구든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감과 외로움, 사랑의 감정을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조용히 관조하며 비춰주고 있다. (극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설정하여 관객들에게 자극을 주려는 의도는 거의 없다. 남자의 죽음은 가장 극적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 역시, 그가 짝사랑했던 여자가 아침에 신문을 보면서 그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덤덤히 일상에서 지워진다.)
오히려 관객들은 노인이 테레사첸의 집에서 생전에 병원에서의 부인과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당황하고, 또 영화 막바지까지 이끌려온 그 외로움의 색채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평론가들이 말했듯,
'가공할 만한 침묵의 힘'이고, 이 영화가 여러 사람들의 내면에 호소력을 갖게 하는 부분인 것이다.
이제 막 성숙해가는 사람이든, 그저 외양적으로 미련해 보이는 사람이든, 이미 얼굴은 검버섯이 피고 굳은 주름이 가득한 사람이든, 그 누구든 사람은 자신 옆에 누군가가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는 존재이며, 그 존재가 부재할 때의 슬픔은 가장 근원적인 아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