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 한국어판(전 2권, 이창식 옮김, 창해)은 소설 자체의 명성 이외에 한국에서는 오역으로도 악명 높다. 여기서는 직접 찾아낸 오역, 또는 어색한 표현들을 골라내 본다.
[제 1 권]
p. 23 손을 보여줘
→ 원문은 "Show me your hands."이다. (공격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손을 내밀거나 들라는 의미이다. 손을 '보여주다'는 말은 너무 단어 그대로의 해석으로 보인다.
p. 33 부서간 사격대회 소총 부문, p. 34 반자동 소총
→ 여기서 소총은 권총(pistol)의 오역. 스탈링이 쓰는 반자동 권총은 과거 미국 군·경찰 제식 권총이던 콜트 M1911A1 45구경 권총, 속칭 콜트 거버먼트이다.
p. 56 순간 보이게 될 수치스러움을 예방하기 위해
→ 수치스러움이란 보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 '수치스러운 곳을 보이지 않도록' 정도로 옮긴다면 좀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p. 65 평화롭게 체포
→ 원문은 "A peaceful arrest."이다. 도주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었다는 뜻이다.
p. 98 범죄성 정신이상자
→ Criminally Insane만 따로 옮긴다면 이보다는 '정신질환 범죄자(또는 수감자)'가 더 적당할 것이고, The Baltimore State Hospital for Criminally Insane과 같이 병원 이름의 일부분이니 '볼티모어 주립 범죄자(또는 수감자) 정신병원'이라고 옮기면 될 것이다.
p. 100 그리스도의 교회
→ Church of Christ는 기독교나 그 신도(카톨릭, 개신교, 동방 정교회 등 모두를 포괄)를 가리키는 일반 명칭이다. 원문에서 이 뒤에는 Nazarene(나사렛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는 비기독교인이 기독교 신도를 경멸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Church of Christ와 대구를 이룬다.
pp. 100∼104의 스탈링과 아이넬 코리의 대화
→ 둘은 심문/피심문의 관계이고, 스탈링은 아이넬을 이름으로 부르는 반면 코리는 Miss Starling으로 부른다. 이런 둘의 관계를 볼 때 스탈링의 말투는 너무 공손하다.
말투에 대해 말하는 김에 같이 언급하면, 첫 장(chapter)에서도 남자들은 모두 스탈링에게 반말을 쓴다. 브라이엄은 제자뻘인 스탈링에게 반말을 할 수 있다 쳐도 나머지도 모두 그러는 것은 성차별적 번역이다.
p. 132 종합법
→ synthesis가 논리학 용어로 종합법이라는 건 맞지만 옮긴이 주를 달아주면 좋을 뻔했다. 한편 synthesis에는 변증법의 정-반-합(thesis-antithesis-synthesis) 중 합이라는 뜻도 있고 여기서도 그런 의미일지 모른다.
p. 169 <불가촉천민>
→ 영화 <언터처블>의 오역. <언터처블>은 마피아 영화로서, '불가촉천민'이라 할 때 연상하기 쉬운 인도 카스트 제도의 등외 계급과는 관계 없다.
p. 192 인습적인 보강
→ 원문은 "Dr. Lecter does not require conventional reinforcement."의 conventional reinforcement이다. 여기서 reinforcement는 심리학 용어로 강화, 즉 조건반사를 쉽게 일어나게 해주는 수단이다. 즉 여기서는 '통상적인 강화 (수단)'이다.
p. 214 점쟁이와 손금쟁이의 딸이자 손녀
→ 원문은 daughter and granddaughter of spirit readers and palmists이다. spirit reader는 점쟁이라기보다는 무당이나 영매사(靈媒士)가 적당할 것이다(참고로 mind reader는 독심술사). 어느 부부의 딸이면서 동시에 손녀일 수는 없으니 영매사 (부부)의 딸이자 손금쟁이 (부부)의 손녀(혹은 그 반대)와 같이 옮겨야 맞지 않을까 한다.
아니면 여기서 daughter는 문자 그대로 딸이라기보다는 '후손'이라는 의미일지 모른다. 이것도 직접적인 후손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러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의 기질을 이어받았다는 비유일 수도 있다.
p. 235 은퇴한 나치
→ 나치 잔당, 과거 나치 활동 경력자
p. 267 유다 이스카리오트
→ 통상 '이스카리옷의 유다', '가룟 유다' 같은 표현으로 쓴다. 이런 표현은 비기독교인들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므로 옮긴이 주도 별로 필요 없다.
p. 320 뱀장어
→ 원문에서 eel이 맞기는 하나, 뱀장어가 잉어를 뜯어먹는다거나,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어 eel은 뱀장어와 같은 종류의 물고기를 통칭하는 단어로 여기서 eel은 뱀장어목(目)에 속하는 곰치이다.
※ 메이슨 버저의 말투
→ 메이슨 버저는 한니발 렉터 때문에 입술과 코 등 얼굴 여기저기를 개에게 물어뜯긴 것으로 나온다. 우선 입술이 없으므로 p, b, m, f, v처럼 입술을 많이 쓰는 발음이 잘 안 된다고 추측할 수 있고, 코가 없으므로 비음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어느 발음이 안 되나를 생각하면(뒤쪽에 가면 '파열음은 모두 알아듣기 힘들다'와 같은 단서가 나온다) 실감나게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제 2 권]
p. 16 투투
→ 프랑스어에서 나온 것이므로 표준 표기는 '튀튀'. 아니면 옮긴이 주를 달 필요 없이 그냥 (여자용) '발레복'으로 옮기는 게 낫다.
p. 17 한니발 ∼ 살아남았다.
→ 어순은 그냥 두고 단어만 옮긴 듯한 문장. "대포와 기관총의 포화로 인해 부모도 죽고, 숲도 황폐해지고, … 살아남았다." 정도만 되어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p. 66 총검전시회
→ 그냥 총검이라고 하면 영어로는 bayonet이고 보병이 소총 끝에 부착해서 백병전에 쓰는 칼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여러 종류의 총과 칼이 나온다. 원문은 Gun and Knife Show이니까 '총포 및 도검 전시회'로 옮기면 적당할 것이다. 하기야, 칼이 전시된 곳에는 총검도 있을 수 있겠지만.
p. 100 <심슨 가의 사람들>
→ 마르탱 뒤 가르의 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을 연상시키나 실제로는 별 관계 없는 이 말은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을 옮긴 것이다.
p. 101 하지만 마고는 … 약하기 때문이다.
→ 여기서는 왼팔이 약하다고 했는데, 1권에서는 오른팔을 다쳤다고 나온다. 혹시 작가가 실수한 것인가 했는데 원문에는 모두 left로 나온다.
p. 130 피타고라스 정의
→ 정의는 정리로 바꾸는 게 옳다. 한국의 소위 전문 번역가들이 취약한 분야 중 하나가 수학이나 과학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기본적인 것이다. 정의(定義)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거나, theorem을 사전에서 안 찾아봤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p. 143 사람들의 눈엔 가시격인
→ '눈엣가시'라는 관용구가 있다. 이건 한국어 실력 문제다.
p. 147 면도날머리
→ 원문은 razor haircut, 또는 razor cut이다. 사전에는 면도칼로 깎은 머리라고 나오는데 이 머리를 한 사람이 기자임을 감안하면 아래를 면도날로 바짝 친 상고머리로 보인다.
p. 182 특별올림픽
→ Special Olympics는 장애인 올림픽을 말한다. 패럴림픽(Paralympics)이라고도 한다.
※ 원문의 이탤릭체 부분
→ 이를 한국어판에서도 이탤릭체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던데, 영어와 달리 한글에서는 그리 멋이 나지 않는다. 이탤릭체에 해당하는 글자체가 글자만 기울인 것뿐이기 때문. 강조나 인용 등의 용도로 쓸 때는, 민음사 같은 출판사에서 하는 것처럼 고딕체로 표기하는 게(본문을 명조체로 쓸 경우) 적당해 보인다. 아니면 글자 크기를 바꾸거나, 문장부호를 활용하거나.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못한 표현이 자주 눈에 띄고, 대강의 의미를 해독하는 이상의 것을 못 보여준다. 스릴러치고는 긴박감이 떨어지는 문장이 남발되고, 영문은 해독되었으나 적절한 우리말 표현을 못 찾은 듯한 경우도 종종 보인다.
특정인을 폄하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나, ≪한니발≫ 한국어판이 발행될 무렵 창해 출판사에서는 이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던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들을 재발행하였다. 이 중 ≪양들의 침묵≫(이전판은 고려원에서 발행)은 한국 최고 번역가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이윤기 씨가 번역하고 ≪레드 드래곤≫(고려원), ≪블랙 선데이≫(출판사 불명), ≪한니발≫ 등을 이창식 씨가 번역하였는데 둘 사이의 번역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
번역이라는 것이 단순히 두 언어를 일대일로 바꾸는 것이 아닌 한 좀더 장르의 특성이나 배경 지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출처- http://kin.naver.com/open100/r_entry.php?rid=5011#6
추가정보- 디지털 포트리스 번역 문제 심각.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02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