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여성 생애의 3분의 1 혹은 심지어 절반에 달하는 시기를 자궁과 난소의 기능에만 결부해서 설명하는 것은 여성혐오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남성의 노화를 설명할 때 성기능 감퇴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완경기menopause continuum는 이때부터 여성들에게 심장 질환이 생길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주의를기울여야 한다는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들에게발기부전erectile dysfunction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많은의료 전문가들은 발기부전을 남성의 심장 건강에 있어서 ‘탄광 속의 카나리아’로 여기고 있다.우리가 남성들이 ‘완발기erectopause‘를 겪고 있다고 말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납득이 갈 것이다.
의학에서 남성들은 온화한 완곡어법과함께 나이를 먹는 반면, 여성들은 ‘더는 섹시하지 않은 곳’으로 느닷없이 추방된다. 수 세대에 걸쳐 의학 전문가들은 이러한 언어를 가지고 훈련받았고, 많은 전문가들이 환자들과 대화할 때 여전히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우리는 완경 이후에 난소들이 ‘기능을 상실한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이러한 믿음 중 일부는 완경 이후의 여성들 신체 안에 있는매우 낮은 수치의 에스트라디올, 테스토스테론, 그 외의 여러 호르몬을 측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초 내가 수련의로 일할 때, 지금의 내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한, 완경 이후에 난소들이 죽는다는 틀린 생각은 여성의 주요 가치가 그의 생식력에 있고 그러므로 생식력이없어지는 것은 여성이 죽음의 사신이 호출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을의미한다는 오래된 믿음에서 기인하기도 했다. 완경 이후 난소가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이 관습적 ‘상식‘으로 통용된다면, 이미 알고있는 사실‘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연구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다.우리는 이제 난소들이 완경 이후에도 호르몬 생성에 참여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록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적은 정도일지라도 말이다.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음악이 기념비나 유적이어서 선곡가의 손을 잡고 가이드 투어를 받으면 좋을 것 같다. 좋은 선곡가를 만나는 건 음악을 만든 크리에이터를 직접 만나는 것보다유익하다. 좋아하는 음악인을 직접 만나봤자 음악이 아닌 별의별 이유로 실망할 위험부담이 정말 크다. 그의 음악마저 싫어지는 건 수순이고. 내 말을 믿어도 좋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 게 하나 있다. 주위에 신뢰할 만한 취향 가진 사람을 다수 둬야 한다는거다. 나만 해도 누군가를 통해 접하게 된 인생 책이나 인생 음악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다. 오직 자기만 신뢰해서는 결코 좋은 취향을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이라는 부제가 왜 달렸는지 책의 말미에 가서야 약간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와 작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재로 한 글들은 어쩐지 내 이야기 같기도 해서 자주 뜨끔하고 자주 공감한 한편, 그 어렵고 복잡한 감정을 이렇게 서술할 수 있다니, 역시 작가란 다르구나 생각하기도. 개인으로는 담백한데 시인으로서는 시에 대한 각성과 사유가 이전의 작품들에서보다 훨씬 치열하게 묘사된 느낌이라 전체적으로 묘한 대비를 이룸.
쉼브르스카는 누구에게 말을 거는 듯한 시를 쓴다. 그러니까 쉼보르스카는 쓰기를 말하기와 겹쳐서 행한다. 시를대화를 위한 입술처럼 사용하는 듯하다. 말을 건네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쉼보르스카에겐 있다고 느끼게 한다. 말을건네고 싶다는 마음에 미리 전제된,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는 간절함은 쉼보르스카의 시를 성의 있게 다 읽고 나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 어떤 비극을 바라보고 발화해도 쉼보르스카의 시가 어딘지 모르게 다정해지는 이유이다.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감의 말을 걸어와주기를 고대하며 사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질감의 대화를나누지 않는 한, 숱하게 사람을 만나고 숱하게 대화를 해도외로움은 더해지기만 한다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허기는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쉼보르스카와 대화를 하고 싶어 시집을 펼친다.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넨다.
그녀는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누군가를 인내하려고 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애정이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마음만이 유일하게 진실되다고 여겨진다며 내 생각을 물어왔다. 그녀의 발언 때문에, 한 사람이 그녀를 다그쳤다 했다.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누군가를 인내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모독이라고, 감정을 실어 토로했다고 했다.
‘무심코‘라는 ‘아무런 뜻이나 생각이 없는‘ 행위 속에 깃든 무시하는 태도. 무시를 가능하게 만든 무지. 이러한 무지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는 것도,당연히 망가질 준비를 하게 된다는 것도, 하나하나 되짚으며 온몸으로 알아갔다.이제야 알게 된 것들은 여태껏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어째서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내어 알아야만 하는 것이 되는 걸까. 단지 근사한 트랙 운동장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곳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좋아 보여 나도 달리는 것을 시작했을 뿐인데. 내가 육체를 정성들여 돌보게 된 자그마한 계기가 그 여름에 시작되었다. 오래 홀대해온 것들을 더 이상 홀대할 수 없게 되었다. 걷는 일이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다면, 달리는 일은 육체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다. 잘못 사용해온 영혼이 걷는 일로 어느 정도 회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 잘못 사용해온 육체는 달리는 일로회복에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