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브르스카는 누구에게 말을 거는 듯한 시를 쓴다. 그러니까 쉼보르스카는 쓰기를 말하기와 겹쳐서 행한다. 시를대화를 위한 입술처럼 사용하는 듯하다. 말을 건네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쉼보르스카에겐 있다고 느끼게 한다. 말을건네고 싶다는 마음에 미리 전제된,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는 간절함은 쉼보르스카의 시를 성의 있게 다 읽고 나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 어떤 비극을 바라보고 발화해도 쉼보르스카의 시가 어딘지 모르게 다정해지는 이유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감의 말을 걸어와주기를 고대하며 사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질감의 대화를나누지 않는 한, 숱하게 사람을 만나고 숱하게 대화를 해도외로움은 더해지기만 한다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허기는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쉼보르스카와 대화를 하고 싶어 시집을 펼친다. 그녀는 내게 말을 건넨다.

그녀는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누군가를 인내하려고 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애정이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마음만이 유일하게 진실되다고 여겨진다며 내 생각을 물어왔다. 그녀의 발언 때문에, 한 사람이 그녀를 다그쳤다 했다. 어금니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누군가를 인내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모독이라고, 감정을 실어 토로했다고 했다.

‘무심코‘라는 ‘아무런 뜻이나 생각이 없는‘ 행위 속에 깃든 무시하는 태도. 무시를 가능하게 만든 무지. 이러한 무지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당연히 망가질 준비를 하게 된다는 것도, 하나하나 되짚으며 온몸으로 알아갔다.
이제야 알게 된 것들은 여태껏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어째서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내어 알아야만 하는 것이 되는 걸까. 단지 근사한 트랙 운동장을 발견했을 뿐인데, 그곳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좋아 보여 나도 달리는 것을 시작했을 뿐인데. 내가 육체를 정성들여 돌보게 된 자그마한 계기가 그 여름에 시작되었다. 오래 홀대해온 것들을 더 이상 홀대할 수 없게 되었다. 걷는 일이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다면, 달리는 일은 육체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었다. 잘못 사용해온 영혼이 걷는 일로 어느 정도 회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 잘못 사용해온 육체는 달리는 일로회복에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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