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정의 내리는 주체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사진기의 셔터가 찰칵 하는 순간이어야 맞다. 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최대한 물러선 자리에 시가 들어와야 한다고.

이런 생각이 낡은 생각이며 전혀 참신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낡음과 참신함 같은 것들의 가치는 제쳐둘 만하다는 걸 이제는 우리가 인정했으면 해서 감히 입 바깥으로 꺼내 적어본다. 망설임은 어떻게 끝낼 수 있는 것일까. 망설임은 언제고 덜 중요한 것들을 뿌리침으로써 겨우 끝낼 수 있는 것이었다는 걸, 이 중요한 것을 나는 자꾸 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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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이 고장에서 저녁은 우수에 젖은 휴식과도 같았을 것이다. 오늘은, 풍경을 전율케 하면서 천지에 넘쳐 나는 태양 때문에 이 고장은 비인간적이고 기를 꺾어 놓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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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 현재의 일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니 알아맞히는 게 당연해. 하지만 여기서는 그걸 이용해 미래의 일, 다시 말해 예언의 정당성을 과시하는 셈일세. 사실 점술사란 미래를 예지할 수 있어야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지, 다 지난 일을 알아봐야 의미가 없네. 하지만 뒤집어서 말하자면 내일 있을 일 따위는 알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하든 판단할 수가 없지. 판단 기준을 과거나 현재에 둘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일세. 그러니, 과거와 현재의 일을 잘 알아맞히는 점술사는 신용할 수 없네.



심령술이란 설명하기 어려운 〈영(靈)〉이라는 관념에 편의적으로 형태를 주는 작업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신비롭고 비과학적인 힘을 가리키는 게 아닐세. 따라서 무녀나 주술사가 내일의 일을 알 수 있을 리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는 것이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를 수집하는 특이한 능력과 효과적인 정보공개의 방법론일세.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가장 효과적인――이것은 제삼자에 대해 효과적이라는 뜻이네만――형태로 공개함으로써 그 후에 행해질 기적에 신빙성을 부여하는 셈이지.”



“그러니까 미래의 일 따위는 영능력자와는 관련이 없는 걸세. 영능력자는 점술사와 달리, 내일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네. 굿을 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항아리를 사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하는 거지. 굿을 하거나 항아리를 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경우에도, 마음가짐이 나쁘다, 공양이 부족하다 등 얼마든지 이유는 있네. 즉 빗나갈 일이 없지. 영능력자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전하는 게 아니라 내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거든.”



무엇보다 불교 교단에서는 사실 굿도 하면 안 된다네. 기본적으로 불교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사이언스는 원래 지식이라는 뜻이니, 오컬트 사이언스는 감추어진 지식이라고 번역해야 하네. 과학과는 상관이 없는 거야.



상자라는 건 말이지, 뚜껑을 열고 안을 확인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그런 게 아닐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거야. 상자에는 상자로서의 존재 가치가 있는 법이거든.”



오컬트는 라디오인데, 이건 특별히 구조를 모르더라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구조를 모른다는 이유로, 안에 작은 귀신이 있어서 사람의 목소리로 나니와부시[浪花節]48)를 읊조리고 있다는 바보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규탄하기 위해서 라디오 자체를 규탄하고 있었던 것이 되는 셈이로군. 이것은 번지수가 틀린 거지. 그 경우 라디오를 비판할 필요도, 라디오 뚜껑을 뜯어 안의 게르마늄을 꺼낼 필요도 전혀 없고, 작은 귀신의 바보 같은 존재만을 떼어내어 증명하면 된다. 뚜껑을 열고 게르마늄을 보아 버리면 작은 귀신이 없다는 것은 간단히 증명할 수 있지만, 흐르는 노랫소리 또한 전기의 속임수라는 걸 알고 흥이 식어 버리니까. 따라서 라디오 자체에는 손을 대지 마라, 뭐――이런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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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 P99

인내와 체념,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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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미인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녀가 그랬다. 총기 있는 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성격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어떤 말도 허투루뱉지 않는, 잠시라도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 때문일 거라고. 인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혼돈과 희미한 것, 불분명한 것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있었다. - P44

젖은 아스팔트 위로 눈이 내려앉을 때마다 그것들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보인다. 그럼・・・・・・ 그래야지………… 라고 습관적으로 대화를 맺는 사람의 탄식하는 말투처럼,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눈송이들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흔적없이 사라진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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