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대체로 고상한 말을 쓰려는 약점이 있습니다. 나 스스로 그걸 자책하지 않는 바도 아닙니다. 고급 양말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발이 더럽지는 않다는 건 나도 압니다. 하지만 고상한 말은 포플린 천처럼 피부병을 감추는 일이 허다하거든요. 어쨌든 말투가 서툴다고 해서 반드시 청정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자위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에 대해선 한마디면 족할 겁니다. ‘당시의 인간은 간음을 하고 신문을 탐독했다.’ 이렇게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나면 더 이야기할 거리가 없을 겁니다.
브라질의 강에 사는 조그만 어족(魚族) 이야기는 물론 들어보셨겠지요? 멋모르고 그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에게 떼로 달려들어 쏙쏙 쪼아서 삽시간에 해골만 새하얗게 남겨놓는다는 물고기 이야기 말입니다. 저들의 사회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청결하게 살기를 원하느냐, 모든 사람처럼?” 하고 물으면, 물론 “네” 하고 대답하지요.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좋아. 너를 깨끗하게 처치해주마. 자, 직업이다, 가족이다, 정기 휴가다.” 그러고는 조그만 이빨들이 살을 물어뜯어 나중엔 뼈만 남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선 공정하지 못하군요. 저들의 사회라고 말할 게 아니지요. 그건 결국 우리 사회의 조직이니까요. 누가 먼저 남을 청산하느냐?
어떤 말투에 놀란다는 것은 사실 이중으로 당신의 교양을 증명하거든요. 첫째로 당신은 그런 말투를 알아듣는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것이 당신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것이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