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령 당신이 죽어야만 당신의 생각, 당신의 성실성, 당신의 심각한 괴로움을 알아줍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그 처지가 모호하고, 기껏해야 사람들의 회의(懷疑)의 대상이 될 뿐이에요
모호하기를 그치려면 그저 존재하기를 그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친구가 자살을 한 건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지······.” 아아, 여보세요, 인간의 생각이란 참 빈약하기 짝이 없어요. 한 가지 이유로서 자살을 하게 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안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러니 자진해서 죽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기에 대해서 남이 가져주었으면 하는 그 관념에 자신을 희생시켜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입니다. 당신이 죽어버리고 나면 녀석들은 당신의 행동에 어리석은 동기, 아니면 저속한 동기를 붙여서 이야기할 겁니다. 여보세요, 순교자는 결국 잊혀져버리든지, 비웃음을 받든지, 이용당하든지, 그중 어느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남이 자기를 이해해준다는 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심판을 회피하는 겁니다. 벌을 회피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심판 없이 벌을 받는다는 건 견딜 수 있으니까요. 그것에는 더구나 우리의 무죄를 보증해주는 한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불행이란 이름이지요.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와 반대로 심판을 방지하는 것, 심판받는 일을 피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절대로 판결이 언도되지 않도록 하는 게 문젭니다.
성공의 겉모습은 남의 눈에 잘못 띌 경우엔 당나귀 같은 놈의 비위라도 건드리게 되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행복이나 성공을 너그럽게 나누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걸 용서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행복해지려면 너무 남의 일을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꼼짝 못하게 되고 마니까요. 행복을 붙들고 심판을 받든지, 용서를 받고 비참하게 살든지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공격을 막아내는 유일한 길은 짓궂게 구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심판받지 않으려고 황급히 남을 심판하는 겁니다. 하는 수 없지요.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 마치 인간 본성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듯 천연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자기에겐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노력 덕분에 총명해지고 관대해진 것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어도, 그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의 관대한 천성을 찬탄해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를 겁니다. 또 그와는 반대로, 어느 죄수에게 그의 과오는 그의 타고난 천품 탓도 성격 탓도 아니고 오직 불행한 사정 탓이라고 말해주면, 정말로 감사히 여길 것입니다. 그런 말을 변론 중에 한다면 그 녀석은 그 대목에서 눈물을 흘릴 겁니다. 그렇지만 천성이 정직하거나 총명하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될 것이 없고, 천성을 죄인으로 타고났다고 해서 사정 때문에 죄인이 된 것보다 책임이 더 무거운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염치없는 놈들은 특사를, 다시 말하면 책임 안 지기를 바라고, 뻔뻔스럽게도 천성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모순된 것이라도 사정을 구실로 삼은 변명을 붙이려 든단 말입니다. 요는 자기들에게는 죄가 없고, 자기들의 덕성이 선천적이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그리고 자기들의 과오는 어쩌다가 닥친 불행으로 야기된 것으로서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솔직하다는 게 어떻게 우정의 조건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사코 진실을 애호하는 버릇은 아무것도 용서함이 없고, 그것에는 아무것도 저항할 수 없는 일종의 광증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고질이어서 때로는 편리하기도 하고, 또는 에고이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 당신이 그런 경우에 부닥치거들랑 서슴지 마세요 — 솔직히 말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나서 될 수 있는 대로 거짓말을 늘어놓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의 깊은 욕망에 응하고 그들에 대한 당신의 우정을 이중으로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본적 진리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모든 진리 뒤에 발견되는 진리를 말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