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단 한번의 진정한 사랑으로 쌓아올린 제멋대로의 순수성에 상처를 입어 다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이 되고 마는데, 이것은 본인의 탓도 아니요,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의 탓도 아니요, 사랑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환각상태 때문이렷다.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랑을 엿장수에게나 주라고 하면서, 스스로 차라리 타락하겠으니 그 와중에 남을 구제할 방법은 없노라고 하지만, 새로운 사랑에 몸을 기대고, 다시 환각상태에 빠지는 것은 도리어 쉽기도 한지도 모를 일이렷다.

 

일요일 오후에 늦잠을 자고나서 읽는 [타락]은,

그 몽롱한 기운 때문인지,

도무지 내 현실의 것일 거 같지 않은 열락으로 치솟다가 또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않는 고통으로 곤두박질하는 그 이야기의 격렬한 서정성이 버거운 편이었는데,

다행이 나는, 그 이전에 읽었던 것을 모두 까먹고 있어서,

다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충격도 금세 까먹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만,

청년이 어떤 인간과도 나눌 수 없는 마음을,

라일락 나무하고 밖에 나눌 수 없었던 그 심정을 알겠어서 잠시 눈물이 나고,

내가 모르는 오랜 시간 동안에 ,

내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그 오랜 시간 동안에,

나도 그 청년처럼 라일락 나무 아니면 모를 이야기를 겪어서,

그래서 이모냥으로

어거지 '거리두기 격정'에 휘말려 살고 있는 모냥이라고.

 

한숨 섞인 생각을 하고,

고양이처럼 늘어져 누워,

겨울 희미한 햇살 속에서,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깊은 슬픔에 출렁출렁.

해보았다.

 

그래서 우습게도,

이제 , 라일락 향기를 또 맡아도, 출렁이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해봐야 소용없는 다짐도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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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er 2005-12-1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멋진 라일락!

치니 2005-12-1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니어님, 길에다 손을 대면 쩍 하고 달라붙을거 같이 추운데, 거기는 더하겠죠. 아프지마시고, 따듯하게 지내세요...

rainy 2005-12-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찡하잖아 ..

sudan 2005-12-1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 그거였어요. 찡..

치니 2005-12-2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니,수단,엔도님,
으앙.
 

그랬다, 늘.

문제는,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생각하는 것.

미리 생각해봐야 좋을 고민거리나 묵지근한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런 종류의 것들은, 그저 막상 그날이 닥쳐왔을 때 , 혹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 하는 편이 낫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사는 그렇지가 않다는게, 이사가 미워죽겠는 이유요, 최강 구차니즘 유발 포인트렷다.

누가 밀어내지도 않았는데, 내 발로 죽어라 죽어라 이사를 해보겠노라고 말로만 떠들어온 게 어언 10개월 여가 된거다. 그래 막상 집도 구하고, 빠직빠직 벌어야만 겨우 들이밀겠는 월세에 대출 이자도 걱정된다고는 해도, 그렇게 10개월 여를 노래 불렀으면, 좀 더 성실하고 기쁘게 수행했어야 옳다만.

사람이란게 어디 그런가.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도 , 이 추운 날씨가 어찌나 원망스럽고, 그 모든 일들이 어찌나 먹구름 속에 가려 꿈쩍도 않아 뵈는지. 신경 끝의 털 하나 하나가 다 곤두서는 거 같았다.

마침내 어찌 어찌 끝을 내고난 일주일.

공간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가재도구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너른 거실을 보면서 밤마다 생각한다.

마치 내게는 이 거실이 황량하고 서걱한 모래가 휘날리는 사막의 고원지대 같다는 그런 생각.

이렇게 횡 하고 바람에 무언가 쓸려 갈 거 같은, 고작 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그토록 대롱대롱 안달 냈던가 하고.

나를 그리도 안달 내게 했던 구속들과 거추장스러움은 어디서 유발했으며, 누구가 제일 컸으며, 어떤 생활이었길래 ...라는 생각을 한다.

좀 따스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내려면 어째야 할까 , 잠깐 생각을 하다가도, 예의 거추장스러움 부분에 얼핏 이르면, 도리도리 고개를 젓게 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치였던가본데.

최종적 근원은 나.

그랬다 , 늘.

사람 따위 별로 그립지 않은 듯 살아갔지만, 술김에 재워주세요 부탁으로만 데리고 갔던 게 아니라, 마침 그날따라 혼자인게 무척 싫어서 집에 데리고 온 사람들도 꽤 되고, 그런 날이 수일만 지속되어도, 이유 없이 그러구 안가는 그 사람이 무조건 미워져서 속으로 혼났던 기억도 꽤 된다.

이런 모순 때문에 늘 그 모양인 것이다.

혼자 오래, 아주 오래, 외롭지만 단순하게 지내는것을,

해보지도 못했고, 잘되지도 않는데,

자꾸만 마음은 그렇게... 황량하고 건조한데로만 흘러가는게,

그런 모순이,

이상한 신경증만 뾰족하게 더 갈아내서 죄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다. 이 세상 누구와의 관계가 되었든, 꼭 내가 필요한 그 순간에만 나랑 있어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사라져주는 식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의 필요에 의한 잠시 잠깐의 동거는 낙락하게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엔 눈꼬리가 치켜지는게, 참. 내 성질 밭이 고르지도 못할 뿐더러 맘보도 곱지가 못하다.

아무튼 이제...

언젠가 따스한 그 무엇을 꿈 꿀 때 까지는 혼자서만.

오롯이 혼자서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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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12-1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그렇다고 하던데. 쓰다듬어 달라고 할 때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할퀴고, 쓰다듬어 달라 하지 않을 때 쓰다듬어 줘도 할퀸다나. 어미를 잃고 배고파하는 고양이를 주워다가 길러본 적이 있는데요. 그건 좀 틀린 말이에요. 고고해 보이는 고양이도 사람하고 정이 들면 외로워하고 사람 손을 타고 그러더라구요.
이사한 집은 마음에 드시는지. 참. 저도 이사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게 어언 육개월이에요. -_-

rainer 2005-12-16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하 십오도는 쉽게 넘기는 북부의 날씨, 벌써 이곳에서 이 년이나 살았습니다.
집을 내 놓은지 두 달째인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마냥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사를 하셨군요. ^^

치니 2005-12-1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dan님 / 아 고양이. 영물이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가 많은 고양이보다는 좀 맹 ~ 해보이는 강아지 쪽이 제 성향인데. 푸후. 어쩌다보니, 고양이스러워진 요즘인가보네요. 이래도 할퀴고 저래도 할퀴다니... 이사한 집은 마음에 들어요.
육개월이라면 뭐...헤헷, 저는 10개월이었는걸요. 천천히...하시고 또, 하게 되면 마음에 드시길.

레이니어님 / 으 추운건 정말 쥐약인데. 이년 동안 넘기는 겨울은 어떠할 지 짐작도 잘 안되네요. 이제 다시 서울 근방으로 오시는건가요...? (쓸데없는 궁금증 ^^;) 왠지, 레이니어님이 북부로 가시고나서는 글도 뜸해지는 것만 같아서요...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에 별 주저없이 기내도서관에서 고른 책.

기내도서관이라서 다행이다.

구매 욕구를 부추길만한 건덕지가 없으니.

그나마도 처음 몇장을 넘기면서 혹시라도 이 작가가 영혼에 대한 이야기보다 내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내세를 위해 현세에서 죄짓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확 가버릴까봐 걱정을 한 것에 비하면, 최종적으로는 조금 나았다고 봐야하지만.

역시, 나에겐,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살지 않고,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어떤 세상을 생각하면서, 아니 통찰해가면서 조율하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했다고 생각하는 덕행이 덕행이 아닐수도 있겠고,

내가 오늘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 누군가에게 피를 보게 하는 결과도 만들 수 있겠다.

누구도 아니라고 말 못할 만큼 증거는 많다.

하지만, 쏘우 왓?

그렇다고 , 그걸 미리 안다고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보다는 , 소박하게 아침을 맞고 하루를 마감하는 단순한 일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게는.

그리고 , 솔직히, 할 수만 있다면, 매일 매일 조금씩만 나아지고 싶다.

보이지 않게 조금씩이라도,

다른 세상에 갈 때 미련을 두지 않을 정도로는, 작은 일들에 최선을 다해나가고 싶다.

어떻게 해야 그래질 수 있을까.

그 숙제를 먼저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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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1-27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틀거리가 너무 작위적이어서 적응이 잘 안 돼요. 미치 앨봄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팔렸죠? 우엑.(별 셋 주신 거라 맘 놓고 씹어 봅니다.)

sudan 2005-11-2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역시나 안 읽은 책이에요.(namu님 오늘 여러번 뵙네요? 반가워요.)
하지만, '공경희'라는 번역자가 낯이 익다 싶어 생각해봤더니, [호밀밭의 파수꾼]의 번역으로 저한테 미운털 단단히 박힌 그 분이었군요. 크크.

치니 2005-11-27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쯤에선 얼굴에 화아 하고 웃음이 퍼져버렸습니다.
두분이 이렇게 나란히 연달아... ^----^
저도 역시 이런 작위적 틀거리 영 아니네요.
그리고 공경희, 저에게도 이번에 단단히 찍혔습니다. -.-

2005-11-29 0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5-11-2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속삭이신 님, 예 , 그래주시면 더욱 감사 ! 합니다.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이런 작가들의 한계는,

세련된 감각 이라고 표현되는 이 시대의 허망한 포장을 확 걷어내주지 못한다는데에 있다...고 한다면 너무 야박한걸까.

누군가의 ,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꾸려서 단편집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마치 여기저기 끄적여둔 메모집을 길게 늘인 것 같다고 해버리면,

작가는 화를 내겠지.

하지만 안 느껴지는걸.

누군가가 죽고, 그 죽음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외롭고 단절된 삶을 회복해보려 애쓰는 이야기 속 사람들에게, 폐부를 찌르는 고통보다는, 후...하고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리는 걸.

 

어쩌면, 내가, 연애 감정이란 걸 제대로 쏘옥 빠져들어 구경하기엔 이미 글른걸지도 모르겠다.

처음 손을 잡는 것,

한 눈에 반해버리는 것,

필연을 가장한 우연에 굴복하는 것,

각자 갈 길을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미칠듯 망설이다, 또 먼저 손을 내밀고야 마는 것,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지겨워 보이는 것은, 작가의 감수성보다는 내 감수성의 문제인걸까.

 

모르겠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이제 이런 책은 심심풀이로라도 집게 되진 않을 거라는 것과 내 돈 주고 사지 않아서 다행이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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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1-2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망한 포장인 줄 알면서도, 그 포장지에 자주 현혹된답니다. 실은 포장지와 알맹이를 구별 못할 때도 많아요. 무서운 일갈에 뜨끔.

sudan 2005-11-2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작가들의 한계는'이라는 말에는 정확히 공감해요.
어우. 좀 더 책을 많이 읽어야 할까봐요. 남의 리뷰를 보고 감탄만 할게 아니라.

치니 2005-11-27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 저도 그렇답니다. 이번엔 포장이 아니라 뭐가 있겠지, 계속 기대해요. 그리고 같은 작가라도 처음 느낌과 두번째 느낌이 다르니 원. 무서운 일갈이라뇨.. 에헷. 그냥 재미없는 책 연속으로 읽으니 답답해서 그랬어요. ^-^;;
sudan 님 / 이 책, 안 읽어보셔도 될걸요. ㅎㅎ 저도 수단님 방에 가서 오랜만에 실컷 놀다 왔답니다. 그리고 저도 수학을 재미있어 하고 싶어요. 한권 권해주세요.
 
잉여인간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
손창섭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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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신문인가 기내지에서인가 후천성 기억력 결핍증(AMDS: Acquired Memory Deficiency Symtom)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무릎을 쳤다.

이런 거다 말하자면.

잉여인간, 이라는 책을 무척 읽고 싶어하다가 결국 지인에게서 빌려 읽었는데,

그장소가 하필이면 먼 나라로 떠나는 , 긴장되고 피곤한 비행기 안이었고,

그래서인지 아니면 저 AMDS 때문인지

내용이 도무지 가물한 것이다.

필체와 문장력에 대해 으음 하고 감탄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어떤 어떤 내용의 단편들이 소소하게 책을 구성하고 있었는지는...기억이 안난다!

약간은 애매한 심정으로 별 네개를 누르고,

언젠가 누렇게 바래버린 손창섭씨의 기억을 되살릴지 울적한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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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11-27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핫!
웃으면 안되는데, 너무나 공감가는 나머지.

blowup 2005-11-27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좋아했는지 아닌지만 기억하고, '왜'에 관해서는 감감한 적이 많았던 저로서도 심히 공감 모드.

치니 2005-11-27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앗! 정말 두분도 그렇단 말?! 최고의 위안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