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야기는 계속 [행복에의 의지]이다.
만의 다른 단편에서 이미 [행복에의 의지]라는 제목을 썼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행복하냐 아니냐에 골몰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며, 재테크를 하건 문화생활에 열심이건 술을 마시건 담배를 피우건 여행을 떠나건 일을 미친듯이 하건,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행복해보고자 안간힘을 쓰는 의지의 일환이라고 한들,
별로 과장이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인게다.
간혹 행,불행에 초연한 듯, 부러 무심한 듯 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속으로는 좌절할까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에 대해서 초연하다는 것도 그래서 본의 아닌 거짓말이기 일쑤이다.
니가 나를 얼마나 아는데 그런 말을 하니,
라는 말은 예의 그 초연한 사람이 더 자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반증이다.
인간은 모두 일정 부분 어릿광대 노릇을 하며,
이 어릿광대 노릇을 얼마나 잘해내느냐에 따라,
원만한 인간관계 뿐 아니라,
사랑받고 사랑하는 인간관계에도 이르고,
자신감과 우월감 사이에서 행복 비슷한 경지까지도 이르게 되지만,
그래놓고,
나 자체를 다른 사람이 온전히 알아주기를 바라는 순간에,
행복은 불행으로 곤두박질 친다.
온전히 안다는 것은 명백히 몽상이다.
더구나 사랑을 한답시고 그래버리면 끝장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은, 자신이 깬다 결국.
남들이 어째서가 아니다.
언제나, 혼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그리고 깬 것, 그리고 다시 만들어 놓은 것,
그런 모든 것들은 아무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 역시, 나만큼, 자기 일에 골몰하는 시간이 인생의 팔할 이상일게다.
제발 , 알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거나, 알아주기를 열망하지 말아라.
그런건 이 세상에 단 하나, 당신만이 안다.
그것만 인정하고 살면, 적어도 자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