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그들은 다수파의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어버리는가. 아마 그들은 서른 명쯤만 모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정당성이 있다고 믿기만 하면 어떤 악한 짓이라도 서슴없이 저지르지 않을까. 그것이 인간성이 아니라 기계적인 시스템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누군가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껴안는다, 누군가와 스쳐 지나간다…. 그게 산다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수많은 농담을 했고 수없이 웃었고 수없이 서로를 매도하고 수없이 서로를 존중했다.

하지만 어느 누가 잘못한 우리를 비웃을 수 있을까.


  마지막 회가 정해진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끝이 정해진 만화는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이 예고된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그것을 믿으며 살아왔으리라. 그렇게 배워왔으리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라고 믿었다.


  그녀는 또 웃을까, 소설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읽었다고?


  웃음을 사도 상관없다.


  마지막까지 꼭 읽고 싶었다. 그리고 읽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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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사랑한 것은 그의 명랑과 기품이었다. 루시를 보고 있으면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이 느껴졌다. 앳되고 아름다운 생명만이 누리는 독특한 광채가 있었다. 꽃이 핀 정원에 해가 뜨면 처음 한두 시간쯤 목격할 수 있는 그런 광채였다. 

 지적이고 느긋한 녹갈색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렇게나 즐거운 세상인데, 왜들 그렇게 애를 쓰시나?’ 

그는 매일매일 한결같이 즐기며 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씩 정원의 꽃을 가꾸었다. 목욕을 한 뒤 어디 다녀올 데라도 있는 것처럼 신중하게 셔츠와 넥타이를 골라 옷을 입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질 좋은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단 한 순간도 담배의 풍미를 놓치지 않으며 마을로 걸어갔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집을 떠나기 전에 코트에 꽃도 한 송이 꽂았다. 건강과 단순한 즐거움, 푸른색과 금색이 섞인 음악대 유니폼을 제이컵 게이하트보다 기꺼워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쩌면 그는 해버퍼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리라.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카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했다. 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바깥세상이 어둡고 끔찍한 곳인 것만 같았다.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그라면 세상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이 행동할 것 같았다. 분명 많은 것을 겪어보고 많은 것에 능숙한 사람만 지닐 수 있는 담백함이 있었다. 그의 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속 깊은 종을 두드리는 듯해서 듣지 못하는 것까지 전부 느낄 수 있었다.

“있지요, 이 작은 빨간색 깃털이 길 위로 동동 떠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참 좋더라고. 부러 찾아본답니다. 안 보이면 정말이지 실망스러울 거예요. 루시는 추운 거리를 걷는 게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인 것 같은 얼굴이던데. 어느 책에선가 몽테뉴가 그랬지. 앳된 청춘기에는 생의 기쁨이 발에 있다고. 루시를 보고 있으면 그 구절이 생각나요, 루시. 잊고 살았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매력을 칭찬하면 끔찍한 효과가 발생한다고 믿었기에) 절대 진심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 루시를 웃겼다. 

그는 삶을 편안하게 즐기는, 어쩌면 삶을 즐김으로써 참아내는 사람 같았다.

다만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더욱 충실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자기 것을 취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거부할 힘을 찾아낸 듯했다.

해리는 일종의 정신적 근시가 있어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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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5-1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적 근시’ 를 저도 밑줄 그었습니다.

치니 2024-05-17 11:31   좋아요 0 | URL
역시!
 
[eBook] 재생의 부엌 - 도쿄 일인 생활 레시피 에세이
오토나쿨 지음 / 유선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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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예민함에 질려서 읽다 책을 덮어버렸다는 리뷰를 쓰신 분도,
이런 류의 에세이 중에 최고라고 쓰신 분도,
둘 다 이해가 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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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쿄에선 단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어
바이구이(by92) / 중앙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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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탄탄한 맛집 안내서. 설사 취향이 달라 막상 먹어보면 별로일지언정 하나 하나 찾아간 데 대한 후회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구석구석 알차고 버릴 게 없는 내용. 문장도 간결하고 설득력이 있어서 읽는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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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려면 멀었는데 이런 제목부터 눈에 띠는군.

너무 직설적이라 발랄하고 가벼운 톤으로 쓴 맛집 소개 책인 줄 알았는데 웬 걸, 초반부터 자못 진지하다.

그리고 대부분 몰랐던 내용이라 흥미진진.


지구과학과 미식을 연계한 책 다쓰미 요시유키(巽好幸, 지구과학자·고베대학 객원교수)의 <와쇼쿠는 왜 맛있을까(和食はなぜ美味しい)>에는 ‘와쇼쿠의 핵심인 재료의 맛은 지진 및 분화와 맞바꾼 결과물’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화산 분화로 생긴 화산재(火山灰)가 스민 땅은 비옥해서 농작에 유리하다는 이야기인데요.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화산재토(火山灰土)는 특히 배수성이 뛰어난데, 양배추, 파, 무 등의 농작물이 자라기에 최상의 토지라고 합니다. 실제로 화산재토가 대부분인 간토(関東) 평야(도쿄 및 주변 6현에 걸친 일본 최대의 평야로 일본 농지의 4분의 1을 차지함)의 작물은 그 풍미가 유난히 좋습니다. 또한 근채류 농사에 적합한 적황색토(赤黄色土)가 있고, 수박, 토마토, 우엉, 시금치, 콩, 감자 등의 야채 농사에 최적인 사질토(砂質土)가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는 등 다양한 성질의 토양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 

다시마에서 최상의 우마미를 우려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물에 있습니다. 다시마의 성분을 추출하기에 가장 좋은 물이 연수(軟水)인데, 일본의 물은 대부분 연수입니다. 어찌 보면 우마미는 주어진 자연 조건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얻게 된 맛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와쇼쿠의 필수불가결 요소인 이 우마미는 ‘Umami’로 영어 사전에 등재되며 단맛, 신맛, 짠맛, 쓴맛과는 구분되는 일본 고유의 맛으로 세계 요식업계에 통하고 있습니다. 

생선구이를 먹는 팁 하나. 생선구이에는 반드시 간 무가 함께 제공되는데요. 무 위에 간장을 살짝 뿌린 후 생선 위에 올려서 먹으라는 뜻입니다. 맛 때문만이 아닙니다. 무에 소화작용을 돕는 디아스타아제가 들어있어서 생선과 곁들여 먹는 것입니다. 무는 생선의 탄 부분에 남아있을 수 있는 미량의 발암 성분을 없애주기도 해 와쇼쿠에서 생선구이를 먹을 때는 반드시 간 무를 곁들인답니다.

뎀뿌라라는 이름은 포르투갈 템페로(Tempero, 양념·조미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 어찌 되었든 지금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뎀뿌라가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에도 시대(江戸, 1603~1867) 중기쯤으로 봅니다.


  기름이 귀했던 나라 시대까지만 해도 상류층 음식이었던 뎀뿌라는 에도 중기부터 대중에게 확산되었습니다. 물류가 원활해짐에 따라 각지의 생산물이 에도로 집중되었고 재료와 기름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스시, 소바, 우나기(鰻, うなぎ, 장어)처럼 뎀뿌라도 야타이(屋台, 본래는 서서 먹는 이동식 작은 가게. 포장마차와 유사)에서 파는 대중음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카레라이스를 처음 일본으로 전한 나라는 인도가 아닌 영국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인도가 영국령이었던 메이지 시대(明治, 1868~1912)에 인도요리를 기반으로 한 영국의 ‘커리드라이스(Curried Rice)’ 혹은 ‘커리 앤 라이스(Curry&Rice)’가 일본으로 전해지며 일본 카레라이스의 원형이 되었다는 것. 일본 카레라이스는 대개 며칠간 뭉근하게 끓이는 방식으로 조리하여, 인도 커리와는 달리 상당히 걸쭉합니다. 예전 영국 해군함 식당에서 배의 흔들림에 대비해 카레를 덜 흘리게끔 조리한 방법이 그대로 일본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베규는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난 고기입니다. 미국 NBA의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iant)의 이름이 ‘고베’의 영어식 표현인데, 코비의 아버지가 고베규의 맛에 반해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깃사텐은 얼핏 우리나라 카페와 비슷해 보이지만, 영업시간, 메뉴, 주 고객층 모두 우리가 아는 카페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르면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곳이 많고, 대개 아주 공을 들인 강배전(원두를 오래 로스팅한) 커피와 토스트를 제공합니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깃사텐에는 여전히 도쿄의 근대적 낭만이 흐르고 있다는 것. 집기와 인테리어 모두 근대부터 유래된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깃사텐은 원래 오스트리아 빈과 프랑스 파리 등 서구의 카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 가구, 조명 등을 일본풍으로 재해석하고, 일본 고유의 메뉴와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 마음을 다하는 극진한 대접)를 더해 지금의 깃사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 문호가 활짝 열린 개화의 시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카페를 일본식으로 변주하여 문을 열었던 것이 깃사텐의 시작입니다. 


....


단 하나 달갑지 않은 점은, 흡연에 너그러운 깃사텐에는 남녀 불문 애연가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식사 중 담배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이 고역이지만, 이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 매력 넘치는 공간인 것도 사실. 

빵이 최초로 일본에 들어온 것은 1600년경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서였습니다. 본격적인 제빵은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했지만, 빵의 역사는 수백 년에 이르는 셈입니다. 빵이 가정의 식탁에도 오르게 된 것은 1900년대 초부터입니다. 1947년 학교 급식의 시행, 1960년대 고도 경제 성장기 등을 거치면서 빵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시장이 커짐에 따라 제빵 기술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 제빵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경수(硬水, 칼슘 이온이나 마그네슘 이온이 많이 들어 있는 천연수)가 주류인 유럽이나 북미지역과는 달리 일본은 거의 대부분의 물이 연수(軟水, 칼슘 및 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 이온이 들어 있지 않은 물)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선 연수에 맞는 밀가루를 개발하기 위해 새롭게 밀을 개량하고 재배하기도 합니다. 최고의 빵 맛을 내기 위해 수입 밀가루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본의 물에 맞는 밀가루를 만들어내기까지 한 것입니다. 맛의 차별화는 원재료의 차별화에서부터 출발한 것. 일본의 제빵 강국 타이틀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시는 기원전 4세기경 동남아시아 산간 지방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민물고기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찌거나 삶은 쌀 등의 곡류(주로 쌀)로 절여 발효시켜 먹었는데, 이것이 나라 시대에 쌀 농사법과 함께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소금을 뿌린 생선 살과 쌀밥을 번갈아 나무통에 겹겹이 쌓은 뒤 그 위에 누름돌을 올리고 발효시킨 ‘나레즈시(なれずし, 熟れ鮨)’가 그것. 당시 나레즈시의 주재료는 붕어와 은어였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나레즈시가 있지만, 특유의 발효 향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번 나레즈시 맛을 알면, 다른 스시는 먹지 않게 될 정도로 중독성 있는 맛입니다. 마치 홍어회 맛을 아는 사람이 그 맛을 제일로 치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스시는 에도 시대 말기 에도에서 유행한 야타이에서 탄생했습니다. 밥을 손으로 쥐고 와사비와 생선을 올려 곧바로 손님에게 건네주는 ‘니기리즈시(握り寿司, ‘니기리’는 손으로 쥔다는 뜻)’입니다. 이 니기리즈시가 현재 세계 각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스시입니다.  

이곳의 스시 장인인 시미즈 구니히로(清水邦浩)는 수년 전 미쉐린의 별을 정중히 사양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유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결의한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유는 “스시쇼쿠닌(스시 장인)으로서 보람을 느끼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만든 스시에 대한 대가를 받고 그것으로 먹고 살아갈 뿐, 스타도 훌륭한 사람도 아닌데 과도한 관심은 일에 방해가 될 뿐이니 사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지금과 같이 격식을 차린 스시야가 아닌, 1인당 3,000엔쯤 하는 아주 작은 다치구이스시야(立ち食い寿司屋, 서서 먹는 스시집)를 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스시 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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