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면 ‘음악은 말이 아니다’라는 레토릭은, 음악을 종교 없는 시대를 구제하는 새로운 종교로 삼으려는 세력과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급 청중을 상대로 음악으로 장사를 하려는 세력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데서 생겨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이 독일 낭만파에 의해 일종의 종교체험으로까지 드높아지면서 동시에 음악에서 ‘침묵’이 점점 신성시된다. 비평 또한 말의 무력함을 웅변적으로 내세우는 레토릭으로, 침묵하는 청중 형성에 가담한다. 나아가 바야흐로 분업의 시대에, 음악 행위가 ‘하는 것(작곡가/연주가)’과 ‘향유하는 것(청중)’과 ‘말하는 것(비평가)’으로 점차 분화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태어난 음악산업에는 청중이 자기주장을 별로 하지 않고 조용히 있어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음악은 말할 수 없다……’라는 레토릭에는 다분히 19세기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있었던 셈이다. 1장에서도 시사했듯이 말을 초월한 음악 체험은 존재한다. 그러나 음악 속에서 특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추구할 때 어쩌면 우리는 전전세기의 사상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지도 모른다.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철두철미하게 언어적으로 영위하는 것이다.


유려한 음악은 사실 말로써 음미하고, 숙고하며, 수정을 거쳐 방향을 잡은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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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함과 물불을 가리지 않는 통제의 욕망, 무력한 분노가 바로 그 반응이다. 특히 우리는 무력한 분노를 대부분 타인에게 투영시키면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 자신의 무력한 분노가 아니라 주변 환경이라고 느끼게 된다. 

무엇을 질병으로 불러도 되는지를 주입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해서 죽겠다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에 시달린다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할 수 없어 괴롭다고, 술을 마시고 싶어 미치겠다고, 직장이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허용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질병의 표현 형태로 가능한 온갖 것들을 들먹인다.


  그럼에도 불면과 음주와 직장에 대한 불만 토로는 세기의 질병의 다양한 측면에 불과할 뿐이다. 세기의 질병, 즉 인생의 무의미함은 인간이 사물로 변한 데 그 원인이 있다.

피곤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피곤할수록, 절망에 젖어 있을수록, 염세적일수록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 ‘열정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퇴보에 빠지지 않고 전진하고 진보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독립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의 이 오래된 명언은 자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친다. 예부터 자기 인식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숙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잠재적으로 우리인 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예술가만큼 객관적인 수단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 혹은 좀 더 훈련할 필요가 있지만 — 예술가와 같은 자발성을 갖춘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처지는 정말 곤란하다. 성공한 예술가의 개성이나 자발성만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작품을 파는 데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미친놈’ 아니면 ‘신경증 환자’ 취급을 받는다. 이때의 예술가는 혁명가와 비슷한 처지이다.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인이 되지만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는 범죄자다. 

게다가 어른들은 타인의 적대감과 거짓을 인식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은 타인에게서 부정적 속성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고, 어른들과 달리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별 이유도 없이’ — 그들이 뿜어내는 적대감이나 거짓을 아이들이 알아챈다는 아주 타당한 근거를 제외하면 —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이런 반응을 몰아낸다. 아이가 평균 성인의 ‘성숙도’에 도달하여 예의 바른 인간과 악당을 구분하는 타고난 능력을 상실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도 악당이 만천하에 드러난 범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악당을 찾아내지 못한다. 


또 한편으로 교육은 아주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결코 ‘자기의 것’이 아닌 감정을 느끼도록 가르친다. 특히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무비판적으로 친절하며 미소를 지으라고 가르친다. 그래도 미처 교육이 다 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사회적 압력이 해결해 준다. 웃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눈에 ‘상냥한 사람’이 아니다. 웨이트리스, 세일즈맨, 의사가 되어 서비스를 팔려면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체노동 말고는 팔 것이 없는 사회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 사람들과 제일 꼭대기 사람들만이 특별히 ‘상냥할’ 필요가 없다. 친절과 명랑, 그밖에 미소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전기 스위치처럼 켜고 끄는 자동 반응이 된다. 

우리 시대는 죽음을 아주 간단하게 부인함으로써 삶의 기본적 측면을 부정한다.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자각을 삶의 가장 강한 동력으로, 인간적 연대의 토대로, 기쁨과 열정에 강도와 깊이를 선사하는 경험으로 만드는 대신 이런 경험을 억압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억압하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비합법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부인하려 애쓰지만 죽음의 공포는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하지만 억압되었기 때문에 번식력은 없다. 다른 경험들의 깊이가 부족하고, 우리의 삶이 불안하고 초조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 정신분석학자들 역시 — 결코 너무 슬프거나 너무 분노하거나 너무 흥분하지 않는 ‘정상적’ 인격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유아적’ 혹은 ‘신경증’과 같은 단어를 이용해 ‘정상’인의 전통적 모델에 맞지 않는 인성 유형이나 특징들을 비난하였다. 이런 식의 영향은 대놓고 욕을 하는 예전 방식보다 더 위험할지 모른다. 예전에는 비난을 받는 사람이 자신을 거부하는 어떤 사람 혹은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그에 반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누가 ‘과학’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인간 내면의 강인함은 자신에 대한 진리를 아는지의 여부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환상은 지팡이와 같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은 되지만 그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온전하게 완성할수록, 다시 말해 ‘자신을 잘 꿰뚫어볼수록’ 더 강해진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인간의 힘과 행복을 목표로 하는 기본 계명이다.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싶은 것을 갖는 데 쏟는다. 그런 행동의 전제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묻지 않는다. 전제 조건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현대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정말로 스스로 원하는 것인지를 고민할 시간을 내지 않는다. 학교에 다닐 때는 좋은 성적을 받고 싶고, 어른이 되어서는 성공의 사다리에 더 높이 오르고 싶고,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싶고, 더 좋은 차를 사고 여행을 하고 싶다.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원하는 게 마땅한 것만 원한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이는 인간이 해결해야 할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이다. 완제품으로 제공된 목표를 우리의 것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악착같이 회피하려는 바로 그 과제인 것이다. 

현대인은 모두가 ‘자신의’ 목표라고 우기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모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지만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고 자기 자신의 목표를 정하는 데에는 심각한 공포를 느낀다. 혼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증거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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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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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 수록 약간 뻔해지는 감은 있으나, 가독성도 좋고 주치의 제도가 없는데 진료 상담 시간은 턱없이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궁금증 해소에 도움되는 부분도 많다. 도움되는 운동이나 식단 같은 건 기억했다가 바로 실천하면 좋을 실용적인 책이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애쓰신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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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에 나와서 알게 된 분이었으면 아예 읽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 그전에 트위터에서 보여주신 모습들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머릿말 좋고, 본문 시작도 마음에 든다. 기대!


태어난 날로부터 65년 또는 780개월이 지나면 노인으로 갑자기 분류되는 이 사회의 통념은 여러모로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결과로 벌어지는 일이 좋든 나쁘든 이렇게 분류하는 자체가 인종주의나 성차별처럼 연령주의인 것이다.

즉, 경제적 부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노화 속도에도 양극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미래에는 숫자 나이보다는 사람의 내재역량이 더 중요하게 되며, 특히 노년기에는 내재역량의 정도가 경제적 부를 넘어서는 가치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만성질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내재역량 관리는 이미 노쇠가 생기기 시작한 노년기에도 충분히 가능하고, 다면적인 생활 습관 개선이 이루어지면 10~15년치의 신체 기능 개선을 이뤄내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세상일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생명체의 노화는 함수 자체의 특성이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복잡계이므로 상황과 조건에 따라 투입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정상적으로 높은 농도의 활성산소에 노출되는 것은 세포에 해로운 정도의 유전적 이상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정상적인 세포에서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것이 개체의 건강을 향상할 수 있음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토호메시스mitohormesis라고 하여 통상적인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활성산소 노출은 노화의 기전을 억제하고 비정상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 단백질(세포 내의 노폐물이라고 생각하면 쉽다)을 청소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예로, 노인에게서 근육단백질 합성을 촉진할 수 있는 ‘류신’을 포함한 단백질을 젊은 생쥐에게 과량 투여하면 노화를 가속 시킬 수도 있다. 

흔하지만 간과되기 쉬운 또 한 가지 문제는, 종아리 근육이 약해져 다리에서 심장으로 혈액을 올려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후에는 다리가 붓고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그제야 부종이 상체로 돌아오면서 수면 초반부에 서너 번씩 화장실을 가게 된다. 

‘방광약’으로 개발된 약은 가급적 몸의 다른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방광에 있는 M3라는 수용체에만 달라붙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람 몸의 여러 수용체는 구조가 비슷비슷하고,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은 하는 일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세틸콜린은 인지 기능에도 중요한데, 대표적인 전문치매약물은 뇌 속의 아세틸콜린 양을 늘리는 방법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방광약처럼 아세틸콜린 신호에 영향을 주는 약(항콜린 약물이라고 부른다)은 머리로도 들어가서 인지 기능을 약간이라도 떨어뜨린다. 아세틸콜린은 장운동과 침ㆍ눈물의 분비에도 중요하다. 그래서 항콜린 약물들은 소화 장애를 유발하거나 변비를 악화시키기도 하고, 입이 마르거나 눈을 뻑뻑하게도 한다. 


이렇게 머리가 계속 멍해지고 일상에서 실수가 늘자, 김복순 씨는 ‘경도 인지 장애’ 판정을 받고 전문치매약물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이 전문치매약물, 소위 ‘치매약’은 굉장히 유명한 부작용이 있다. 바로 방광과 위장관의 예민성을 올리는 것.  


임신부에게 사용하면 안 되는 약이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소아에게도 성장에 영향을 주는 약들은 주의한다. 마찬가지로 노인에게 인지 저하, 섬망, 낙상, 전해질 이상, 콩팥 기능 저하, 위장관 출혈 등 다양한 합병증을 잘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하는 약을 ‘잠재적 노인부적절약제potentially inappropriate medications in older adults’라고 한다.


김복순 씨의 사례처럼 증상을 개별 질환으로 보고 방광약, 치매약, 변비약, 식욕 촉진제, 우울증약, 수면제 이런 식으로 약을 더하면 약의 부작용을 또 약으로 막게 되는 무한의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 경우 환자는 약을 먹을수록 점점 나빠지게 된다. 이 현상을 처방연쇄prescribing cascade라고 하는데, 노인의학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증상마다 개별 진료과를 전전하는 의료시스템의 특성상 아주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이러한 처방연쇄가 발생했을 때 그 메커니즘을 밝히고 악순환을 반대로 풀어내는 일을 탈처방deprescribing이라고 한다. 

부유한 사업가가 막대한 비용을 건강에 쏟아붓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앞으로 빈부 격차가 더 큰 건강 불평등을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사람의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와 의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얻은 노화 역전의 효과는 아주 적은 돈과 약간의 생활 습관 교정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30대 중반부터 두 번째 시기가 시작된다. 여러 호르몬이 점차 가라앉아 가면서 기초 대사량이 줄고 서서히 ‘물만 먹어도 찌는 몸’이 되어간다. 하지만 몸의 변화와 달리 우리의 식습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더 길어지기 때문에 대사 과잉에 시달리고 체지방이 쉽게 늘어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시기부터 초기 노년기까지 몸이 경험한 대사적 과잉의 총합이 곧 노화의 액셀러레이터에 가해지는 압력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노화 과학자들은 일생동안 대사 과잉을 견디느라 활성화되었던 인슐린의 총량이 결국 노화 정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로 지금까지 실험동물의 수명을 개선하고 노화 속도를 제어할 수 있다고 알려진 대부분의 조작(약물이나 생활 습관 변화 등)은 이 시기의 대사 과잉을 최소화하는 것의 변주곡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몸을 일찍부터 만들면 나이가 들더라도 근육이 빠지는 현상도 덜하고, 식욕이나 소화력, 배뇨 배변 기능도 가파르게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이 시기는 대사 과잉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전략이다. 

가장 흔히 보는 사례로는 70대에 여러 만성질환 약을 복용하며 근육이 축나고 노쇠가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튜브에서 본 당뇨에 좋다는 식단을 읊어가며 소식, 잡곡밥, 하루 2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다. 30년 전에 실천했더라면 당뇨가 생기지 않았을 식단을 이미 근육이 빠지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실천해 근육이 더 빠지는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는 지금은 노화도 있고 당뇨도 오래되었으니 충분히 먹고 근력 운동을 꾸준하게 해도 근육량이 쉬이 늘지 않는 몸이 되셨다고 설명한다. 매일 근력 운동을 실천하고 세 끼를 충분한 단백질과 함께 먹으면서 적정 체중을 회복하면 당뇨도 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억지로 줄이고 있는 전체적인 열량은 몸의 대사 과정을 일종의 대사적 토포torpor 상태로 만든다. 토포란, 동물이 체온과 대사 속도를 극도로 낮추며 무기력 상태에 돌입하는 습성을 일컫는다. 이 상태에 빠진 동물은 전반적으로 활동을 멈추게 되고,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상태에서도 낮은 대사율 덕에 장시간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몸이 마치 기아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되어 음식의 에너지를 들어오는 족족 사용하지 않고 지방의 형태로 저장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의 경우 아직 획일적으로 몇 시간 동안 먹고 몇 시간 동안 굶어야 한다는 것이 확정되어 있지 않고, 획일화할 수도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최소 12시간 정도 속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 제한 다이어트는 간헐적 단식, 1일 1식의 개념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를 오해하고 한 끼에 몰아서 먹는 식으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1일 1폭식을 하는 것은 몸에 좋을 리가 없다. 

심지어 많이 걸으면 ‘소모품’인 무릎이 닳아버려서 나중에 오히려 아프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제대로만 걷는다면 현대인이 일상에서 걸을 수 있는 양으로 무릎을 고장 내기는 어렵다. 현재 인류가 수렵 채취 사회에서 걸었던 만큼 걷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평균보다는 더 많이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예 걷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좋은데, 이런 과학적 근거를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하루 2,500~4,000보만 걸어도 전혀 걷지 않는 것에 비해 여러 가지 질병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전혀 걷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지 2,500보만 걸어도 모든 질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 이상 걸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무릎관절이 망가진다는 통념과 달리 신체 활동량이 많은 사람은 오히려 관절염을 앓을 가능성이 적다. 신체 활동량이 많은 이들이 관절 주위 근육이 튼튼하며 비교적 체중은 적게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릎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량을 과도하게 줄이는 것은 그다지 유익한 의사결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걷기만 했는데 어딘가가 나빠졌다는 사람의 문제를 깊이 파헤쳐 보면 대개 유연성(특히 고관절, 견관절과 흉추) 부족, 코어core 근육의 약화, 둔근의 취약성에 그 원인이 있다.  


또한 척추와 골반, 복부를 지탱하는 몸의 중심부인 코어 근육이 약해지면 몸의 안정성과 균형이 떨어져 걷는 동안 몸이 불안정해진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허리, 무릎, 발목 등에 부상을 유발한다. 


결국 본인의 몸이 운동으로써의 걷기를 견딜 수 없을 정도, 즉 근골격계의 내재역량이 부족한 상태로 역량 이상의 걷기를 감행하면 어딘가에 탈이 나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 자세를 펼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자신은 운동하는데 왜 아프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운동을 통해 고착된 자세를 풀어주는 것은 분명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하루는 24시간이고, 우리가 하루 중 운동을 하는데 쓰는 시간은 길어야 1시간 30분 정도이다. 8시간의 움츠러든 자세는 운동 1시간의 노력을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노년기 삶의 질을 위해 중요한 근육은 많지만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하는 것은 코어와 둔근이다. 코어는 흔히 복근으로 아는 분이 많은데, 사실 복근과 횡격막, 등 근육, 골반저 근육을 포괄하는 근육 그룹으로, 자세 유지, 균형, 그리고 몸 전체의 움직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둔근은 엉덩이 부분의 큰 근육으로, 걷기, 뛰기, 앉기, 서기 등 대부분의 움직임에 깊게 관여한다. 이 두 근육 그룹은 우리 몸의 근력 및 안정성의 핵심이며, 이를 강화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기능성과 움직이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모든 운동이 더 효과적이게 만든다. 이 두 근육 그룹이 취약하면 달리기, 골프, 테니스, 수영 등 개별 운동 종목을 연습하는 데 시간을 들여도 연습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이 두 근육 그룹을 먼저 강화하는 것은 전체적인 근력 개선과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된다. 

더불어 ‘편안한 불편’이라는 개념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편안함을 잠시 포기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불편이 4~6주 지속되면 그때부터는 습관으로 굳어져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알람 없이 일어나 커피 등 각성제 없이도 활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자는 것이 충분한 수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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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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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만 세 권 정도 내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그럴 만 하다. 자신만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재능이 있는 분이고 필체도 구축했다. 다만 이번 책은 온통 가족 이야기라서 가족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면 느끼는 불편한 마음이 종종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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