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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을 리뷰해주세요.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오만한 투로 글을 쓰는 사람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만하게 된 데에는 실력이라거나 자신감이 무척 높은 수준이라 자기도 모르게 그래졌을 경우와,
스스로 의식하면서 부러 오만을 떨어서 강력한 아우라를 가지려고 하는 경우가 있을텐데,
뭐 둘 다 크게 거부감이 드는 경우들은 아니니까.
그리고 오만한 글은 지나치게 빈정대지만 않는다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통쾌함을 선사할 때도 자주 있으니까.

그러나 오만 불손은 싫어한다.
키타노 다케시의 그것은 오만한 필체인지 오만 불손한 필체인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독설가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글에 대해 남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식이 아주 노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젊지 않은 나이에 독설을 뿜어내는 것은, 자칫 노인네 똥고집이나 망발로 보일 수도 있다.
책은 정치,문화,연예,스포츠 계의 인사들을 열라 까대는 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과연 일본“학”씩이나 되는 수준인 지는 모르겠다.
이 책 이외에 일본학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
그 중 스포츠 이야기는 사실상 읽었어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는 선수 이름이 이치로 야구선수 하나 뿐이었기에, 그가 왜 칭찬하고 왜 비난하는지 맥락을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적어도 작가로써 이런 내용으로 책을 내려면, 그것도 외국 사람이 본다는 경우의 수를 고려한다면, 인물에 대한 호오를 천명하는 것 뿐 아니라 그 배경도 적절히 알아먹게 써주었어야 했다. 이런 말을 해봐야 독설가 키타노는 콧방귀도 안 끼고, 그럼 책 보지 말아라 그러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하자면 , 다케시 아저씨 그냥 영화와 개그만 하고 책은 쓰지 마세요, 라고 전하고 싶다. 영화들은 모두 좋았는데, 쩝.

부러운 점은 딱 하나.
전직 정치인들 뿐 아니라 현직 의원이나 대통령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도마 위에 올려다놓고 험상 궂은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사는 자유가 부럽다.

우리는 바로 금서 목록에 올라갈텐데.
역설적이게도 키타노는 일본이 자유로워져서 이 모냥 이 꼴이 되었으니 모두 군대를 보내고 옛날처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하니 참, 세상은 요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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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9-05-1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노 다케시의 오만한 표정이 싫지만은 않지만, 간혹 이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없다, 쿨한 척하면서도 뭔가 음흉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혹은 진정한 악인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가워서 무서울 때도 있고.
이 책 살짝 궁금하던 건데, 치니 님이 잘 설명해주셔서 더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감사. ㅋㅋ&^

치니 2009-05-15 13:1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그리고 그 음흉스러움조차도 뭔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용 중에 여자는 개똥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미야자와 겐지랑 닮았고, 극우적인 생각도 일부 있어서 미시마 유키오랑 닮았다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맨 마지막에 일본의 위인 50명에 둘 다 넣었더라구요. ㅋㅋ

로드무비 2009-05-1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몇 편은 꽤 매력적인데 책은 읽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럴 줄 알고?ㅎㅎ

치니 2009-05-16 16:55   좋아요 0 | URL
헤, 이쯤 되니 다케시 아저씨에게 좀 미안하네요.
그래도 우리 모두 영화는 매력적이라고 했으니까...

로드무비 2009-05-17 16:16   좋아요 0 | URL
치니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기회가 되면(도서관에서) 한 번 읽어볼까요?
왠지 미안시러버서.ㅎㅎ
영화 리뷰 혹시 올리셨나 슬쩍 들렀다 갑니다.

2009-05-17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8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리뷰해주세요.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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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배우다가 중, 고등학교에서는 '윤리' 과목을 배웠다. 또 대학 입시에 '논술'이라는 과목이 추가된 시점에 대학 입시를 치루기도 했다.  

도덕이고 윤리고 논술이고 배운답시고 배우고 (아니, 외운답시고 외운 거겠지만) 시험을 치뤄 대학에 갔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도덕과 윤리 이외에도 '철학'이라던가 '미학'이라는 걸 교양으로 더 배워야 했다. 그런데 이런 걸 배우자니 대학 수업에서 이전의 수업에서처럼 그저 선생님이 정답이라고 알려준 걸 달달 외운다고 시험 결과가 잘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 이외에도 많은 책들을 읽어야 되겠다는 강박은 생기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고 습득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심정이 들자 더욱 답답하기만 했다(답답하다는 핑계로 철학을 논한답시고 모여서 술만 먹었지).

이 책을 읽고보니 순서가 잘못 되었던 게 문제인 듯 하다. 

도덕이나 윤리는 '철학'이라는 학문의 한 부분이고 그 도덕이나 윤리라는 것이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것처럼 사회 규범을 익히는 것이라기보다는 많은 사고와 토론이 필요한 과제였던 것이니, 우선 철학의 역사를 배우고 도덕이나 윤리라는 가지를 들여다보아야 그나마 사색이라는 걸 할 수 있었겠는데, 거꾸로 배운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가. 내가 알기로는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는 방식은 제목만 '바른 생활'로 바뀌었을 뿐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 학생들에게 미리 정답을 가르쳐주고 무슨 무슨 철학자의 유명한 말은 이것이다 라는 식으로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도 그대로인 것 같다. 

이런 답답한 교육 현실 속에서 철학은 개념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수염을 기르고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두꺼운 알의 안경을 쓴 사람의 이미지를 한 채 '어렵다'라는 수식어 속에 갇혀 있는 상태이고, 저자인 황상윤씨는 그 점이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일상에서 소소한 철학의 의미를 찾아내어 철학에 많은 이들이 친근하게 다가서고 이로 인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똘레랑스를 일상화 하고 연대를 일상화 하는 이상향을 꿈꾸는 분인 듯. 

소박한 목적을 가지고 소박하게 씌였다 해도, 그리고 유쾌한 철학이라는 단서를 달은 만큼 우중충한 느낌 보다는 산뜻한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해도, 내용의 가벼움은 철학 좀 안다는 분들이 읽었을 때 아무래도 헛점으로 지적될 수 밖에 없고 범람하는 '가볍게 철학하기' 류의 책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 같지도 않아서 좀 아쉽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대학에서 그 유명한 마르크스의 책 한 권 조차 독파하지 못한 탓에 짤막하게 정리해 준 각 철학자들의 이론과 그것이 현대에 미치는 영향이 나름 조리 있게 적혀져 있어 내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 16세인 아들조차도 '에이, 이건 우리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해준 거랑 다른 게 하나 없어서 뻔하고 재미 없어'라고 했으니 조금만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 없는 책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 

철학, 질문만 있고 정답은 없는 학문. 소소한 일상에서 어떻게 대입하고 살아갈 지 역시 황상윤씨가 정답을 주는 건 아니니, 가볍거나 신선하지 않다고 너무 타박할 수만은 없는 것, 다만 이왕지사 이런 책이 자주 나오는 시대니 조금 더 신선하고 알차고 재미난 철학 책들이 다수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생각할 꺼리는 많은데 생각하기도 싫고 우선 배가 고파서요,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철학 씩이나, 라면서 철학을 무조건 피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잘 하는 것이랑 배가 고픈 것이랑 별개는 아니라는 점을 자상하게 알려준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만화로 표현한 니체의 사상 축약집 정도 되는데 참 재미나고 유익하게 읽었다. 철학을 가까이 하고 싶어도 너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죄송하지만) 황상윤씨 책 보다는 이 책이 더 효과 만빵일 듯.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건방진 내 아들은 저 따위로 말했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는 일독의 가치가 있을 거 같아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해당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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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1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1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1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2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Vicky Cristina Barcelon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이다. 이 원제는 영화 내용에 딱 맞게 참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만 우리 말 제목을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너무 길다는 의견이 있을 법도 하다. 

그렇다고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가 뭐냐. 으이그, 으이그. 그냥 우디 알렌 표 영화라는 걸 홍보 타이틀로 걸고 "바르셀로나에서 생긴 일" , "바르셀로나의 연인" 따위 식상한 제목을 쓴다면 반감은 없었을텐데. 

이런 제목은 외워지지도 않는다, 내 남자의 아내가 좋아 였는지 내 아내의 남자도 좋아 였는지...  

아무튼 우디 알렌 식 영화 중에서 그나마 쉽게 이해 되고 볼 거리가 많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 이 영화는 어딘가 모르게 홍상수가 빠리에 가서 찍은 영화 <밤과 낮>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본토를 떠나 외쿡으로 나가서 그 풍경을 열심히 영화에 삽입해주는 것은 나름 관객에 대한 (재미에 대한) 도리 정도로 보인달까. 그 이전에 배경이라고는 방, 길, 식당 정도로 두고 배우들의 입담으로만 영화를 채워넣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제는 좀 범 세계적으로 시원하게 볼 거리를 주는 것도 해주자, 라는 식의 도리. 

그렇게 배경은 달라졌으나 내용은 예전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 하겠고. 후후. 

쓰잘데기 없는 비교는 이제 관두고, 영화 내용을 살펴보자면, 사정은 이러하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 사람이 극의 중심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전 부인과의 극렬한 사랑과 싸움에 지친, 이성문제에 우유부단한 호색한 예술가. 그는 여느 남자가 그러하듯 참으로 심플한 사람이라 등장하는 세 여자를 고루 탐하기는 하지만 그 세 여자들의 욕구를 고루 충족시키는 방법도 잘 모른다. 다만 탐하고 취할 뿐. 

여자들은 다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을 뿐 아니라, 내 남자가 싫었다가 좋아지기도 하고 질투를 하기도 했다가 쿨 해지기도 하고, 안정을 원하다가 곧 바로 모험을 원하고, 때로는 자신만의 영역으로 숨고 싶기도 하는, 극적이고 예상 불가한 마음의 변화가 그야말로 갈대와도 같다. 

비키는 헛 똑똑이.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을 행하기 보다는 자기가 되어야 하는 - 혹은 가져야 하는 - 것에만 중점을 두고 그에 맞춰 살다가 조그만 우연이라도 생기면 어쩔 줄을 모른다. 안정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욕망을 채우고 싶은데, 세상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이런 사람이 까딱 잘못하면 진짜 날라리들보다 쉽게 패가망신 하는 케이스. 

크리스티나는 무엇이든 불만족스러운 걸 찾아내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어떤 연인과의 관계도, 어떤 일도, 만족스러운 상황이 찾아올 리 없다. 이런 사람 세상에 의외로 많다. 오 불행을 자기 안에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여, 삼가 위로를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전 부인인 마리아 엘레나. 얼마 전 읽은 '스타는 미쳤다'에 나오는 '경계성 성격장애'의 지존 되시겠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진저리를 칠 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측 불가능한 난동을 시도 때도 없이 부리지만, 예술적인 천재성은 누구나 인정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매력으로 가득차 결국 버릴 수 없는 여자. 페넬로페 크루즈가 이 역할을 맡았고 크리스티나로 나온 스칼렛 요한슨은 함께 연기하는 모든 씬에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굴욕 씬이 줄줄이 나온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미안해요, 요한슨)  

다 보고나니, 순이 생각이 난다. 순이는 우디 알렌 아저씨랑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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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5-11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정말 심하지요. 원제 그대로 들여오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건 지나쳐요... 영화는 아직 못봤는데, 예고편만 봐도 스칼렛 요한슨이 불쌍했어요. 페넬로페 크루즈 옆에 있으니 너무 존재감 없더라구요.

치니 2009-05-11 09:12   좋아요 0 | URL
Kircheis님도 동감하시는군요, 흐흐. 예전부터 궁금한 것 중의 하나에요, 이상한 영화 제목들은 대체 누가 결정 내리는 건지...
페넬로페는 섹시미,지성미,야성미,연기력 모두 골고루 요한슨 코를 그냥 납작하게 해버리대요. 에구 요한슨, 어째.

니나 2009-05-1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도 잼있게 봤어요. 진짜 요한슨은 빛을 잃고... ㅋㅋㅋ 대문사진 페넬로페가 담배물고 있는 사진으로 바꾸고 싶었다는 ㅋㅋㅋ
비키에 대해서 쓰신 말-이런 사람이 까딱 잘못하면 진짜 날라리들보다 쉽게 패가망신 하는 케이스- 우우 예리하신데요. 그렇게까진 생각못했어요. 그리고 전 아무래도 크리스티나의 저 만족못하는 병에 공감했달까요 흐흐

치니 2009-05-11 15:35   좋아요 0 | URL
솔직히 (여기 요한슨이 절대 안 올거니까 하는 말인데요 ㅋㅋ) 요한슨이 헐리웃 최고의 스타가 될 만큼 매력지수가 높은지 잘 모르겠어요. 얼굴도 몸매도 제 눈에는 별루 안 이뻐서...헤.
페넬로페의 영화 속 사진들은 다 휘파람 불고 싶어지는, 뇌쇄적인...으.
(심지어 다리를 쫙 벌리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담배 피는 모습도 넘 멋져!)
비키에 대한 건 제멋대로 속단해서 쓴 거여요, 태클 들어오면 책임 못질 말. ㅋㅋ
니나님도 예술적인 표현 욕구가 많아서 그럴 거에요, 자자 어서어서 표현해주세요 ~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를 리뷰해주세요.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오래 전에 유행했던 코메디에서는 고독을 "씹는다"는 표현을 썼다. 혼자가 되는 시간의 처절한 고독감을 견딘다는 것보다 잘근잘근 씹어서 만신창이가 되고 단물이 쪽쪽 빠지는 껌 같은 걸로 묘사한 건데,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그 묘사가 참으로 그럴 듯 하다 싶다. 

유독 여성의 고독으로 여성의 심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혼자 세상에 태어나서 혼자 떠난다는 사실을 놓고보면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 즉 모든 것에서 떨어져나와 일부러 고독을 즐겨야 하는 시간은 남녀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고독은 어떻게 즐겨야 하고 고독을 즐겼을 때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긍정을 얻는다는 믿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시종일관 (조금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그 방법과 당위성을 주입한다. 

여러가지 방법적인 측면의 이야기들 중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는 것, 특히 여자가 자기 삶의 정체성을 남자에게서만 찾으려 하고 혼자임을 두려워하는 것은 극복해야 할 문제이고 이것을 극복하는 순간 새로운 삶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혼자일 때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정신적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그저 혼자 지내면 될 일이지만, 소위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파트너를 운 좋게 만난다면 굳이 혼자 지낼 필요는 없다. 저자가 몇 번 언급했듯이 혼자가 되는 상황 자체를 무조건 피한다면 자신의 삶만 일그러질 뿐 아니라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지, 이상적인 파트너가 존재하는데도 굳이 물리치라는 건 아닌 듯 하다.  
그럼에도 '혼자여야 한다 vs 혼자가 아니어도 좋다'의 양쪽 균형감에 대한 설명은 다소 부족해보인다.

예컨대, 한 아이의 엄마로써 내가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은, 여성이 사랑을 경유하지 않고 모성을 획득하거나 자기 삶의 부족한 2%를 채우는 퍼즐 맞추기의 일환으로 아이를 갖는 것도 본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대안이라는 식으로 묘사된 부분이 그러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서 원하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힘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충일감을 높이려면 아이만은 갖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간절하다고 해서, 정자은행에서 기여 받은 아이를 갖는 것이 마치 좋은 해결책인 양 착각한다면? 이 책의 어떤 파트에서는 이런 식의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한 소지가 발견되는 걸 보면, 저자가 좋은 심리치유사일 지는 몰라도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시킬 수 있는 글쓰기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는 조금 의심스러워진다.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알아들을만 한 대목에서 재차 관련 사례들을 이것저것 언급하여 내 머릿속에는 사라와 제니와 다니엘....누구누구가 그랬대, 그래서 여자는 그렇게 살면 안된대 정도의 수다만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적도 많다. 한 마디로 읽다가 중심을 자꾸 놓친다는 것. 

아무튼 혼자건 둘이건 셋이건, 인생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행복해야 살 만한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자, 이제 가슴을 활짝 펴고 고독이 찾아오면 당당히 씹어주고 함께인 것이 좋을 때는 그 공감대를 확실하게 누릴 수 있도록 평소에 마음 수련을 열심히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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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그녀와 함께 볼만한 한권의 책
    from 새우깡소년, Day of Blog 2009-05-19 23:28 
    연애를 하면서도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또 오래갔으면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처음에는 남자인 나로써도 혼자서 커피 마시고, 쇼핑하고,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걷는 등의 모든 일상등이 처음에는 낮설었지만 솔로였을때는 그러한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나를 위한 치유 방법을 몰라 허우적 거릴때는 그야말로 혼자서 푸는 방법, 남자이니깐 그러한 것들을 묵히면 될꺼야 라는 식의 방법으..
 
 
로드무비 2009-05-1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멋집니다요.ㅎㅎ

치니 2009-05-16 16:56   좋아요 0 | URL
흐흐, 감사합니다.
 
<스타는 미쳤다>를 리뷰해주세요.
스타는 미쳤다 - 성격장애와 매력에 대한 정신분석 리포트
보르빈 반델로 지음, 엄양선 옮김 / 지안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고교시절에 알았던 K라는 친구는 참 특이한 친구였다.
전학생이었던 그 애의 첫 데뷔 모습을 묘사하자면, 긴 머리를 양갈래로 나눴는데 그 머리의 끝은 소위 구루프(요즘 말로 하면 고데기?)를 말아서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있고 그걸 묶은 왕방울 구슬은 총천연색, 의상은 공주 삘이었고 치마는 고교생이 입기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만큼 짧은데다가 그 아래 신은 스타킹이나 구두도 반짝반짝하고 컬러풀한 것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외모만으로도 특이하다는 느낌이 충분했다.
엄청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꾸미고 치장한 덕분에 – 그것도 이후 매일 – 항상 가십거리에 올라 있던 그녀는, 당연히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일 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고, 그 친구 역시 그걸 부인한 적 없었다. 아니 부인은 커녕 부추겼다.
그런데 전학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집은 우리 학교가 위치했던 잠실의 연탄을 쓰는 작은 서민 아파트고 부모님은 평범하기 그지 없으며 늘 자랑하던 ‘쫓아다니는 남자애들’의 존재도 한껏 부풀려진 것이라는 걸 온 학교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일관 당당했다. 또한 하나의 거짓말을 하기 위해 필요한 부수적 거짓말을 하루하루 늘려가느라 바빴다. 그녀가 아무리 바빠도 두어달이 지난 뒤 그녀의 말을 믿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거짓말만 했으면 불쌍하다고 하고 말았을 것을, 애꿎은 친구 한 명(H)을 희생양으로 삼아 시기와 질투를 일삼았는데 그 친구는 길에 나서면 바로 하이틴 잡지에서 스카우트를 당하느라 곤욕을 치룰만큼 미모가 뛰어났고 정말로 집도 부유했으나 단지 무척 나이브한 편이라 매번 K에게 당하고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에 상응하는 복수나 치밀한 대응 작전을 짤 수 없었다.
나로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그 둘의 사이에서 카운셀링도 아닌 애매한 들어주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H보다는 K가 불쌍했다. 우는 건 H이고 K는 늘 나에게 아무 문제 없다는 식으로 웃으며 거짓말을 철철 쏟아내고 있었지만, K의 그 안간힘이 자꾸만 불쌍해지는 것이었고 어린 나로서도 그런 K는 분명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 거였다. 물론 그 정신적 문제는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흔히들 갖다 붙이듯이 가정적 문제가 있겠지 했는데 우연히 가서 뵌 그녀의 어머니는 참 자애롭고 정상적(?)이었으니 더 이상은 당최 모르겠다,로 늘 맺는 결론이었다.

그렇게 저열한 호기심과 어설픈 동정심에 그들을 짦은 기간이나마 친구랍시고 만났던 고교시절은 막을 내리고 나는 그 친구들을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흘러 들은 이야기로 추측하자면 둘 다 아주 능력있는 남편에게 시집을 가서 잘 나가는 강남 아줌마로 지낸다는 정도만 알고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실은 K를 떠올렸다. 그 당당하고도 아슬아슬해보이던 나르시즘, 어이가 없어도 한편 동정심을 느끼면서 그녀가 더 커서 남자를 찍었다 하면 당할 남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매혹의 씨앗, 도와주고싶어도 도와줄 수 없을만큼 깊을 것 같던 그녀만의 고독과 공허의 아우라, 항상 웃고 떠들고 화려하지만 어쩐지 믿을 수 없던 그녀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나오는 스타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친구도, 차라리 연예계로 나섰다면 그 모든 것을 발산하고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H에게 한 것과 같은 나쁜 짓을 덜 하고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다른 누구보다도, 스타들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면서 연예계로 나가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꿈을 가진 수많은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읽혀져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도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정신 차리는데 약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가십 잡지의 내용에 의학이나 심리학으로 살짝 옷을 입힌 – 결국에는 그래봐야 가십 잡지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하는 – 책일 수 밖에 없다. 읽으면서 심리학자들(심리치유사들)은 어쩌면 연예인들이나 스타들의 휘장 아래서 떨어지는 고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되니 말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이전에 몰랐던 심리학적인 정보를 조금 알게 되기는 하지만 추천할만한 지 모르겠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 " 이라는 책을 예전에 읽었는데 팬심이 많이 사라지더라, 이 책 역시 스타에 대한 환상을 깨준다는 맥락에선 그 맥락을 같이 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위에 말한대로 헛된 꿈을 쫓는 부나비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생각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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