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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 Let It Rai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인 아네스 자우이의 <타인의 취향>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재미있었는데, <룩앳미>는 그에 비하면 좀 귀엽다 싶을 정도의 재미만, 이번 <레인>은 그녀의 독특하고 예리한 감수성이 많이 퇴색되었나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반짝이는 감수성이 눈에 띄지는 않는 영화였다.
게다가 이미 전작들에서도 써왔던 클래식, 그것도 중세 교회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클래식 음악이 묘하게 내용에 어우러지는 그 장점이, 이번에는 세번째 반복되자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연이어 세번을 보는 남주인공 (대머리 아저씨, 이름은 모르지만 타인의 취향에선 내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의 얼굴도 지겨워지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각본,감독,여주인공을 겸하고 있는 아네스 자우이가 그냥 욕심꾸러기 같아 보일 뿐 멋져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본은 여타의 영화들에 비해서 여전히 빛나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조금 안심되는 점이다. 특히, 영화 속 다큐멘터리 감독 2인조 중 하나인 카림(아랍계 프랑스인으로 나온다)의 대사들은 제3세계 출신으로써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애환과 그들에 대한 유럽 혹은 프랑스 인들의 이중적인 잣대와 무의식적으로 계급을 내려 보는 태도를 절묘하게 꼬집어내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프랑스 전역에서 페미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는 언니에 비해 일개 주부로 살아가면서 만날 '키에르케고르'의 시나 읽어주고 밤이면 자기랑 안 놀고 책 읽는다고 징징대는 소심한 지식인 남편이랑 사는 동생이 비록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부모가 남긴 아름다운 정원과 넓직한 시골집에서 궁시렁 대는 사이, 이 두 철없는 여자를 아기 때부터 길러오면서 유모 역할을 하고 온 집안 살림을 보는 식모 역할까지 해 온 이방인, 카림의 어머니는 카림과는 달리 월급도 스르르 안주고 실컷 부려먹으면서 가족입네 하는 이 프랑스인들에 대하여 별 불만이 없다.
그저 싸바 싸바 (불어로 괜찮아 라는 뜻)라고 하면서, 이 사회의 부조리함과 계급사회의 모순에 진저리 치는 아들을 오히려 딱하게 여기며 없는 처지에도 용돈을 쥐어줄 뿐.
포스터를 보고 한여름 바캉스철 시골에서 우연찮게 일어나는 삼각관계 로맨스를 기대하고 가시는 분들에겐 몹시 지루할 영화, 그러나 나 같은 관객에게는 그래도 이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게 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