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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 -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이주희 지음, EBS MEDIA / Mid(엠아이디) / 2017년 7월
평점 :
일 년 중 3분의 2가 지나간다.
밤새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다짐한 계획은 반도 달성하지 못했고, 하루하루 같은 생활 속에서 시간만 흘려보내는 기분이다.
매일이 같지만 또 다른
하루를 보내면서 지나가는 시간을 돌아 볼 때마다 늘어나는 고민은 걱정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개운함보단
풀리지 않는 피로에 하루하루 지쳐만 간다.
대한민국에서 서른이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다니면서도 매일을 불안 속에서 보낸다.
또 많은 사람들은 취직을 위해 오늘도 '공부'에 매달린다.
살아간다는 것은 끝없는
배움과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서른 살이 목숨 건 '공부'와는 너무 다르다. 지금 보다 조금은 어렸던 시절 어른들의 이야기는
'대학만 가면~'으로 시작해서 '대학'이라는 환상을 심어 줬다. 그땐 '대학'이 마법의 단어였다.
자유와 낭만이 있다는
'대학', 하고 싶은 건 그때 가서 다 할 수 있다는 '대학'
그 목표에 도달하고 나니 '대학'이란 환상에 지쳐버린 아이들이 가득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늦었지만 '나'를 고민하기 시작하던 때. 선배들은 '취업'이란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말한다. 그래서 '나'를 찾기보다는 '취업'을
위해서 남들이 해야 한다더라는 모든 것들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또 수없이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
모든 걸 다 끝내고,
'취업'마저 포기하고 더 이상 무엇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이 하나 없는 서른이란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야 '나'를 조금 생각하게 된다.
흘러가 버린 시간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수 없이 많이 해봤다.
그 생각의 끝은 이미 지나간 시간들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란
생각으로 이어지고 답을 찾지 못한 밤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어느 날은 너무 늦은 것 같은 생각이 하루 종일 괴롭히고, 또 어느 날은 그럼에도 뭐라고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란 생각에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게 보내버린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우연히라고 해야 할까? 갑작스럽게 취미와 특기를 물어보는 인터넷 페이지에선 몇 시간이나 커서만 깜박이다 결국 창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체 30년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고 서른이 되었구나.
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하고 서른이 되었구나.
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고
난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지 못했다.
공자는 이립이라 하여 기초를 확립했다고 하던데 난 기초는커녕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이란 시간
대한민국 사회에선 '생존'이란 과제로 삶을 눌러 버린다.
아직도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했냐며, 뭐라도 좋으니 뭐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지금 당장은 '생존'해야 할
때라고 한다.
'생존'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은 '나'를 생각해 본다. 어떤 능력이 있는지, '생존'하기 위한 능력은 있는지.
'생존'을 넘어 사람답게
살아갈 무언가가 내게 있는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최고로 치는 것은 역시 금력과 권력, 그리고 인맥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세
가지는 없다.
그다음은
학력으로 시작되는 스펙이다.
이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전무'하다.
해외 유학 경험도 없으며,
정기적인 봉사활동도 하지 않았다.
국제 대회는커녕 국내 대회 수상 경력도 없으며, 사회적활동도 하지 않았다.
성적도 우수하지 않다,
외국어 특기도 없다. 다양한 알바 경험도 없다.
코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다.
색채감각이나 패션 감각 등
예술적 소양은 평범 근처에 가지도 못한다.
오히려 음치에 박치, 미적 감각이라 하면 단순한 직선이 편하고,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 하나.
옷은 청바지에 같은 티셔츠만
번갈아 가며 입는다.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시작을 했지만 끝은 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해 보니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생존을 위해선 무언가 내게
있는 것을 찾아야 할 텐데 도무지 알 수 없다.
한땐 엉뚱하고,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생각들을 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억으론 초등학교 이후론 내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중학교 땐 감추는 법을 고등학교 땐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어떤 물건도 이것저것
조합해서 새로운 걸 만들길 좋아했던 것 같다.
확신은 없다. 어릴 땐 누구나가 다 그러니까.
아! 시간이 흘러도 새로운
것,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물건들을 만나면 즐겁다.
설명서는 나중에 읽어 보고 물건에 먼저 집중해서 이것저것 만져본다.
책이라고 할까 '독서'라고
해야 할까 텍스트라고 해야 할까.
초등학교 땐 만화, 중학교 땐 과학, 고등학교 땐 판타지 무협소설
대학에선 문학, 군에선
인문, 복학하고 나선 사회 정치, 지금은 예술과 에세이, 역사까지 책을 사고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글은 잘 못쓴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내 생각을 정확히
정리하는 게 힘들다고 할까. 아니 그보다는 생각이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니까.
치맥이 유행하기 전부터
치킨을 좋아했다. 치킨만 있다면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다만 치킨이 사라지면 다시
어색해 질지도 모르겠다.
아이유는 좋아하는 것을 노래로 만들어 냈는데
난 이렇게 나열하는 것도
벅차다.
또 더 이상은 생각나는 게
없다.
이런 걸로 '생존'은 할 수
있을까? 걱정만 늘어난다.
이주희는 <생존의 조건>이란 다큐와 책을 통해서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았던 철학자들.
아니 선비라고 해야 하나? 학자라고 해야 하나? 사상가라고 해야 하나?
뭐라 하든 그들의 삶과 사상
철학으로 어떻게 생존했는지,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소개해 준다.
그리고 역시 혼란스러운 지금 그들의 사상, 철학처럼 우리도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남고 살아가기 위해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살아 남고,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은 같은 고민에서 머물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미련은 버리더라도,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선
여전히 '알 수 없음'이다.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세상.
스스로
찾아야 하는 생존의 길.
조금 더 어렸을 때 스스로 길을 찾는 법을 배웠더라면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지금이라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야 하지만.
너무
두려워서 한 걸을 내디딜 수 없다.
한 번 잘못 내딛는 발걸음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젠 단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삶을 만들어 갈 것을 알기에.
신중 또 신중할 수 밖엔 없는데. 그 신중한 단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힘을 내고, 용기를 낸다고
될 것 같지는 않다.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길래 아무 생각 없이 잠자고,
아무 생각 없이 놀아도,
그냥 가만히 멍 해저도
이 책 괜히 읽었나 싶은 생각만 든다.
그럼에도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듯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사람의 기준에서 나온 불공평한 척도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하려 한다면
그럴수록 오히려 불공평해지고 말 것이다.
인간이 만든 불확실한 기준으로 모든 것을 확실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인간이 만든 확실함이란 자연에서 보면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책 중에서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된다.
확실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