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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 이야기 ㅣ 동화는 내 친구 65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고경숙 그림 / 논장 / 2011년 8월
평점 :
초등학교 2학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열 때문에 처음으로 조퇴를 했다. 나는 집에 가는 길이 너무 낯설어서 놀랐다. 그게 지금 나다니는 어린이가 나밖에 없기 때문이란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왠지 잘못을 저지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한편 이상하게도, 누군가 너 왜 밖에 나와 있니, 물어봐주었으면 했다. 저 조퇴한 거예요, 선생님이 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눈치가 보이는 동시에 당당했던 것이다. 몸에는 기운이 없고 머리에 찬 바람이 꽉 찬 것처럼 눈과 코가 매웠다. 산동네에 있는 집까지 가는 길은 당연히 그날 더욱 멀었다. 집에 가려면 긴 계단 두 개를 거쳐야 했는데, 첫 계단을 다 오른 다음 나는 꼭대기에 걸터 앉아 여태 온 길을 바라보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시간도 풍경도 낯설었고, 너무 아픈데 혼자 있었다. 그 사실이 무서웠고,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동화들은 그런 이상한 순간들을 기록했다. 「목초지에 있던 나무」에서 리키네 옆집 목초지에는 거대한 고목이 있다. 너무 당연한 풍경이어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굵은 가지들이 불시에 떨어지자 사람들은 나무를 베기로 한다. 제 방 창문 밖으로 언제나 나무가 있는 풍경을 보아온 리키는 나무가 없는 목초지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나무가 쓰러지는 광경은 볼만 할 것 같아서, 평소 어울리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결국 사내아이 여섯은 어쩌다 직접 이 나무를 쓰러뜨리게 된다. 어른들에게 꾸중을 듣고 몸살까지 나지만 아이들은 뿌듯해하고 저녁엔 몰래 자기들이 쓰러뜨린 나무 위에 나란히 서서 승리의 노래도 부른다. 리키는 바람대로 친구 패거리에 든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평범하게 좋은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리키는 '지옥의 벌채꾼' 패거리가 된 것을 기뻐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신이 흘린 눈물 때문에 잠이 깬다. 까닭 모를 슬픔이 그를 깨운 것이다. 리키는 아마 나무를 쓰러뜨린 개선 장군이 된 기쁨만큼 나무에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삶에 대한 감각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악동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삶이고, 고목이 쓰러지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언젠가 불현듯 깨달을지도 모른다.
도시에 사는 사촌동생을 위해 조개를 잡아 임시로 가두었지만, 바닥을 파고드는 조개를 보면서 왠지 놓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댄(「프레시」), 어렵게 나선 작은 모험에 이웃집 동생을 달고 가면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동생을 챙기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팻(「운 좋은 아이」)도 그런 갈등을 겪는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다시는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싸우면서 얻은 양철 상자를 벽난로 위에 두고 "나는 양철 상자를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백 살까지는 거뜬히 살 것 같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나'(「다시 물 위로」)를 보라. 이 아이는 결코 물에 들어갈 때와 같은 아이가 아니다.
골목 끝 계단에 걸터앉아 현기증을 느꼈던 어린 날 한 순간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는 설명할 방법을 몰랐지만 아마 나는 고독했던 것 같다. 그 시간과 공간을 짧으나마 오롯이 혼자 차지했다는 자부심 때문일까? 어떤 교훈을 주는 것도, 달콤한 추억을 남긴 것도 아닌데 그때가 떠오를 때면 이상하게도 조그마한 용기가 생긴다. 『우리 이웃 이야기』가 일깨우는 고독도 그런 종류의 것이다. 섬세한 문장을 침착하게 따라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린이나 어른 누구나 읽어도 좋을 걸작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