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그를 뽑은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단돈 얼마쯤을 보냈다. 돈을 준 사람은 국민들밖에 없으니 두려울 것도 국민들밖에 없다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선거 따위에서는 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내 친구들은 기세 좋게 건배를 외치며 생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그날 저녁 그 맥주집에서 승리를 만끽하는 테이블은 우리 뿐이 아니었다. 탄핵 위기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처럼 화가 났고 퇴근길이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었으며, 둘레에 나같은 사람이 그토록 많다는 것에 뜻모르게 들떴다.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잦은 말실수(라고 생각되는 것들) 때문에 나는 그를 미워했고 심지어는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런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나 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이 어지럽다. 그래도 버텼어야지, 자기가 뭐라고 죽어버리는 거야. 돈 없고 빽 없으면 대통령까지 되었다 해도 끝이 이렇다고--거봐라 하고 누군가들은 좋아할 거 아냐. 아니다, 우리는 왜 그를 뽑았을까, 이토록 정치적이지 못한 사람을. 이런 바보를. 이 바보야, 그냥 구차하지, 그냥 뻔뻔하지, 왜 죽어버린 거야.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몰라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니 밥을 먹으면서도 울고 잠을 자면서도 울고 CSI를 보면서도 울고 미사시간에도 울었다. 왜 우는지 나도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에게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만 같다. 당분간 무얼 읽고 무얼 써야 될지 모르겠다. 이런 일에도 교훈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현자든지 그것을 알려준다면 위로를 삼을 텐데. 우리 모두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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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09-05-2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글을 보고 눈물이 마구 나와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자기가 뭐라고 죽어버리는거야..." 이 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네꼬 2009-05-28 22:37   좋아요 0 | URL
쟈니님, 저는 이 댓글을 보다가 울었어요.

rainy 2009-05-2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구차하지.. 그냥 뻔뻔하지..
아무래도 나에게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만 같다..
네꼬님..

네꼬 2009-05-28 22:38   좋아요 0 | URL
rainy님, 정말 길고도 긴 한주였어요.

paviana 2009-05-2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이 울어요.손 꼭 붙잡고요.

네꼬 2009-05-28 22:39   좋아요 0 | URL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같이 울어줄 사람이에요. 손을 잡아줄 사람.

2009-05-25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8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9-05-2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무기력해집니다. 그냥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 집니다.
'그냥 살았어야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을텐데요.
참으로 참으로 허무합니다.

네꼬 2009-05-28 22:40   좋아요 0 | URL
세실님. 이런 일에도 교훈이 있을까요? 허무도 참 커다란 허무예요.

지누션 2009-05-28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멀리 있구나. 친구야. 여기서 인터넷 기사를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니, 내 무릎에 있던 진우가 "엄마 대통령 계속 보니 졸려."하면서 잠이 들더라. 아.. 아.. 멀리서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 아무 것도 하기가 싫구나.

2009-05-28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9 0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