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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 - 교통안전과 학교생활 안전 ㅣ 어린이안전 365 2
박은경 글, 김남균 그림, 한국생활안전연합 감수 / 책읽는곰 / 2009년 3월
평점 :
TV에서 '엄마가 케어할 수 있다'는 모 공기청정기 광고 카피를 들을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시골의 공기조차 기계로 복제할 수 있다는 식의 오만한 컨셉은 그렇다 치고) 그게 가능하냐 이거다. 정말 슈퍼울트라 판타스틱하게 기능이 좋은 공기청정기라서 집 안을 맑은 공기로 채운다고 치자. 그래서 평창 부럽지 않은 명품 공기 속에서 아이가 곱고 깨끗하게 잘 자란다고 치자. 그럼, 학교에서는? 학교 가는 길에는? 친구네 집에서는? 학원에서는? 버스에서는? 응? 그런 것도 다 '엄마가 케어할 수 있다'고? 집에서 꼭 끌어안고 바깥의 나쁜 공기를 막아주면 그 아이는 괜찮을까? 설령 (오천만 번 양보해서) 괜찮다고 치자. (학교와 집과 학원과 차를 잇는 거대한 공기청정터널을 공사한다고 치지 뭐.) 그런 케어가 진짜 케어일까? 게다가 그 말에 보호가 아닌 '관리'의 의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아무튼 못마땅하다.
아이들은 집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다. 별다른 사연이 없는 한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고 학교에 가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집 밖으로는 나가게 마련이다. 언제나 부모 또는 그에 준하는 보호자가 아이를 따라다니며 돌볼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렇다 한들 그게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아이가 제 스스로를 지키게 해야 한다.
이름도 귀여운 '책읽는곰' 출판사에서 지난 1월부터 내기 시작한 '어린이안전 365' 씨리즈는 말 그대로 어린이에게 '안전' 교육을 시키는 참 쓸모있는 책들로 꾸려지고 있다. 이 씨리즈의 첫 권은 『소중한 내 몸을 위해 꼭꼭 약속해 』로 유괴, 유아성폭력 등 끔찍한 범죄로부터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상한 매뉴얼을 제공하였다. 이 책은 단지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돼요' 하는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예문('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는 중이니 내 차에 타서 알려줄래?' '강아지를 찾는 중인데 나랑 같이 가줘' '나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데 우리집에 가서 편지 좀 읽어줘' 같은 이가 갈리는 말들)과, 낯선 사람과 꼭 말을 해야 될 때는 다섯 걸음을 물러나 있어야 된다거나 엄마랑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믿고 따라가면 안 된다는 등의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어 나를 감동시킨 바 있다. (심지어 만일 유괴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나와 있다. "무서워서 밥이 넘어가지 않더라도 힘이 빠지지 않도록 뭐든 먹어두어야 해요"부분에서는 그만 목이 메었다.)
이번에 나온 『학교에 갈 때 꼭꼭 약속해』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부터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골목골목에서, 학교 구석구석에서 조심해야 될 것들을 알려준다. '어린이는 몸집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으니까 운전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밝은 옷을 입어요' '어린이는 눈에 잘 띄지 않으니까 반드시 손을 들고 건너요' '내가 길을 건너는 동안 움직이지 말라는 뜻으로 운전자를 계속 보면서 건너요.' (아아 어린이로 사는 것은 정말 눈물겹게 치열하구나!) (교실에서) '무거운 물건에 매달렸다가 물건이 쓰러지면 깔려서 크게 다쳐!'(그래, 아이들은 이 사실도 알려주어야 알게 되지!) '공을 주우려고 담장을 넘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안돼요. 그럴 때는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해요.' (공을 잃어버리게 그냥 두라는 게 아니라 도움을 청하라는 말씀!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라는 말씀!) 이번 책에서 나를 감동시킨 안내는 이것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없는지 잘 살피고, 문을 꽉 잠그고 들어와요. 집에 아무도 없더라도 "다녀왔습니다!" 하고 크게 외쳐요.' 이 문장을 쓴 사람이 얼마나 어린이를 사랑하고 염려하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아이를 씩씩하게 만들고 싶어하는지 단박에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나는 이 책들을 다른 자리에서 보고, 조카에게 주기 위해 따로 구입했다. 언니에게 책을 보내면서 꼭 조카와 함께 여러 번 읽으라고 말해줄 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른들이 다 헤아리지 못하는 어린이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신발 끈이 풀리면 밟아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꼭 묶어야 된다는 것을, 어린이는 '누군가 가르쳐주어야' 알 수 있다. (답답해하면 안된다. 우리도 다 그렇게 컸다!) 책은 잔소리를 하지 않고 다정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아이들의 생활 속 안전수칙을 알려준다. 세상은 너무 위험한 곳이니까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된다고 겁을 주지도 않는다. 읽고 나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리고 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되는지(응?) 알게 된다. 어른들은 이 책을 반복해서 읽히고, 반복해서 읽자. 아이들은 엄마 혼자 '케어'할 수 없다. 사회도 노력은 해보겠지만 냉정히 말해서 완전히 책임질 수는 없다. 아이는 스스로 자기를 지켜야 한다. 그럴 수 있게 우리는 도와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