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1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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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웅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안중근이 태어나 30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아간 당시 대한제국의 시대상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안중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극적인 장면만 따로 떼어서 인물을 바라보면 자칫 한 점의 흠결도 없는 신인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안중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아니 구한말 대한제국의 국민으로 나라를 잃고 비분강개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초라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다만 조부때부터 이어져내려오던 가풍이며 황해도 일대에서 제법 위세를 떨친 가문의 명성의 후광으로 타고난 기질을 펼칠 수 있었던 가정적 배경은 충분했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아버지 안태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씨 가문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써 집안 대소사 뿐만 아니라 지역 일대의 호족으로 왕권을 흔드는 동비(동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에 대항하여 지역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민초들을 괴롭히는 지방관들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지역 어른으로 살았기에 안중근은 맏아들로써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치적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된 안태훈은 당시 치외법권으로 여러 가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주교 신부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추락한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편으로 천주교를 활용하기도 했다. 안태훈의 신앙적 열심이 안중근과 그 가족들에게 전파되면서 안중근이 살았던 청계동 일대는 천주교 신심이 두터운 장소로 바뀌게 된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한 두번째 측면은 바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천주교 신앙이다. 아버지 안태훈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떨결에 신앙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교리를 전파하고 열심으로 임했던 이가 안중근이다. 그의 호는 다묵, 토마스다. 천주교 신부의 영향으로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어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열심도 천주교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삼흥학교, 돈의학교에 재정적 기부를 힘에 겹도록 도왔다. 

 

이문열 작가의 장편소설 『불멸』1권에서는 구한말 대한제국의 흔들리는 국가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아관파천, 굴욕적인 한일협약 등 근대사를 흔들었던 아픈 역사들이 안중근이 살았던 그 시대에 일어났다. 동학운동이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안중근의 생각은 왜 안씨 가문이 사비를 털어 동비들과 전면전을 선포했는지 이해가 간다. 한성에서 멀직히 떨어진 황해도 지역에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그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일임을 알고 고민했던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일례로 민영익이라는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상해로 망명을 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고 서상익이라는 거상은 자신이 먹고 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투로 말한다. 나라를 걱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양분되어 살아가는 시대가 바로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였다. 

 

누군들 편안하게 부를 누리며 살고 싶지 않을까. 안중근을 영웅이라 부름은 을사오적이라 부르는 명민하고 지식인이었던 그들이 초개처럼 나라를 버린 이들과 완전히 다른 편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도 한 인간으로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술과 춤추기를 좋아했던 20대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안중근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문열 작가를 통해 바라본 안중근의 모습이 다른 여타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 안중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기 위한 작가의 치밀한 배경 설명들이 1권에서 무려 400여쪽이나 할애하고 있다. 무장 독립운동에 뛰어들기 전 안중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지난 옛일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구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문열 작가가 쓴 기억해 둘 만한 문장을 초록해 둔다.

 

견수(함께 걸을 때 반걸음쯤 뒤처져 걸어 예를 표한다는 뜻으로 곡례에 따르면 다섯 살 위의 연상에게 표하는 예)_121쪽

 

중근은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아버지의 내면에서 피 흘리고 있는 의식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무력감으로 상처받은 자부심이 그랬고, 낡은 구조와 급변하는 시대에 끼어 있는 가문과 자신을 지켜 내야 하는 신흥 호족으로서의 번민이 그랬다. _151쪽

 

먼저 내 영혼을 구원하고 아울러 이 몸도 해방하고자 천주 야소(예수)의 가르침에 투탁하려 합니다._203쪽

 

효도를 넘어 거의 신앙과도 같은 존숭으로 아버지 안태훈을 따르는 중근은 누구보다 열심히 천주교의 교리를 익혔다. _206쪽

 

이제 천주학은 우리 가문이 함께 걸을 길이 되었다. _221쪽

 

스물 살 때부터 중근은 언제든 빌렘 신부의 부름만 있으면 복사 안 다묵으로 그를 따라 황해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천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_282쪽

 

천주교의 세력에 기대 행패를 부리거나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는교인들을 특히 자세 교인이라고 불렀다. _286쪽

 

천주교 또는 천구교인들과 기존의 전통 사회와의 충돌을 일컫는 교안은 원래 서양 신부나 선교사들이 새로운 전교지로 갈 때 지역민들이 전교를 방해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력 사태와 이 전교된 곳이라도 새로 교당을 지을 때 교당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목적으로 일으키는 소동에서 비롯되었다. _325쪽

 

중근이 내디딘 사회 활동의 첫걸음은 아버지 안태훈의 호족 활동을 계승하여 동학군과 싸운 일이었다. 그 뒤 자신의 호족 활동을 비호해 줄 세력으로 천주교를 선택한 안태훈은 일가를 이끌고 천주교의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호족 활동은 곧 호교 활동을 거쳐 호민 활동으로 발전해 갔고, 중근도 그 길을 따라 걸어왔다. _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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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리포트 - 소설로 읽는 안중근 이야기
유홍종 지음 / 소이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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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다!

참고로 하얼빈은 만주어로 '그물 말리는 곳'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원래는 한적한 어촌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들은 일본측이 기록한 문서에 많이 의존해 왔다. 이번 <하얼빈 리포트>는 최근 개방된 러시아 역사문서, 외부 유출이 금지되었던 해외자료들를 근거로 작성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는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되는 고종 황제 직속 군사 첩보기관 '제국익문사' 비밀요원이었다!

 

고종 황제는 일본에 의해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비밀리에 첩보기관을 운영한다. '총독 김두성' 이라는 이름으로 비밀 요원들을 국내외에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한다. 일본에 의해 군대도 해산되었기에 대한독립을 위한 의군들을 모집하고 의군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도 독일, 홍콩에 있는 영국 은행에 예치를 해 두었으나 강대국들의 횡포로 출금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고종 황제가 예치해 두었던 황실 내탕금은 대한독립을 위해 모인 의군 1만명에게 최신식 총기를 구입해 줄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902년 6월, 고종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황실 직속 군사 첩보기관 '제국익문사'를 출범시켰다. _140쪽

익문사는 오늘날의 국정원이나 미국의 CIA에 해당ㄷ하는 정보기관이다. _142쪽

익문사의 통신원은 실제로 모스 전신이라는 빠른 통신수단이 있어서 멀리 미국이나 연해주에서도 대한의군 총사령관과 명령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_144쪽

 

당시 고종황제의 비자금은 해외차관이나 특수상품의 판매대금으로 충당되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액수는 영국의 홍콩은행 상하이지점에 예치된 중국 내의 홍삼 판매대금이다._172쪽

 

조선통감부 친일매국노들은 예금주인 고종도 모르게 이토 통감의 지시로 황실의 내탕금 인출을 문서위조로 빼낸 것이다._220쪽

당시 독일은행의 조선 황실 비자금 부정인출사건은 그 후 1945년 한국이 해방된 후에 방문한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이승만 정부에게 독일 채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본의 이토가 허위 인출서를 작성, 금융사기로 돈을 탈취해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_220쪽

 

하얼빈 거사는 일본 후쿠시마 파견된 한국계 출신 익문사 소속 요원 마사코가 수집한 극비 정보에서 시작되었다.

 

그녀가 수집한 극비정보는 즉각 샌프란시스코의 국민회 총장 정재관의 귀에 들어갔다. _247쪽

 

이토가 하얼빈에 온 이유에 대해서, 책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주를 분할통치하고 있던 러시아와 일본은 구미 강국들이 만주철도부설권의 입찰에 뛰어들자, 이토는 서구 세력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러일회담을 제안한 것이다._251쪽

 

안중근 의사가 우리 민족의 원흉으로 지목한 이토는 1890년대 초기부터 중국을 지배하겠다는 장기전략을 수립했고 그 중간단계로 대한제국을 침략한 것이다. 최초 일본군은 동학 농민군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조선 침략의 교두부를 확보하기 위한 비밀 전략이었다. 명성황후를 시해(여우사냥)하기 위해 모인 일본인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경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 신문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편집장 고바야카, 기자출신의 기구치, 주한 일본공사 서시관 스기무라, 하버드대 출신 중의원 작가 시바시로, 도쿄대 법학부 출신 호기쿠치. _103쪽

 

똑똑하다고 해서 모두 다 제대로 된 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일본 안에서 당대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한 나라의 국모를 처참하게 살해하는 일에 자진해서 가담했다니. 극우 성향을 지닌 일본 우익 세력들의 행동에 혀를 내두를수 밖에 없다. 

 

한 때 일본의 세력들을 견제하고자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관에 임시로 옮겨가 있기도 하고 러시아 측에 비밀문서를 통해 군사적 협조 요청을 했었다. 그러나 러시아도 겉으로는 돕는 척을 했으나 내심으로는 일본의 견제를 막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일례로 스탈린이 집권하고 수 많은 연해주 등지의 독립운동가들이 처참한 학살을 당하고 강제 이주를 당해야했다. 

 

『하얼빈 리포트』의 시작은 노후의 빌렘 신부와 마샤 김이라는 익문사 비밀요원이 프랑스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빌렘 신부는 적극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해 주었던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안태훈의 독립운동 행적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토의 저격 후 안중근 의사하면 하얼빈으로 통하지만 사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한 부분들도 적극적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육사업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노력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의 가문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일정도로 대부분의 가족들이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쳤다.

 

『하얼빈 리포트』를 통해 하얼빈의 안중근이 있기까지 수 많은 이들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기록해 놓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종황제의 노력, 첩보기관 익문사의 존재, 러시아 사람으로 고종황제의 손발이 되어 주었던 손탁 등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안중근을 다룬 영화 <영웅>을 깊게 감상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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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용기가 되어 - 초등학생이 궁금해하는 시민운동 이야기
레베카 준 지음, 시모 아바디아 그림, 김유경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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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용기와 힘이 모이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세상도 바뀐다!

 

어떤 사람은 뉴질랜드 열대 우림 푸레오라 숲을 구하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고, 영국에서는 선거권을 얻기 위해 진흙이 묻은 치마를 입고 행진했고 , 기후 위기를 위한 평화 시위, 아프리카 라이베리라에서는 전쟁 종식을 위해 여성들이 침묵 시위를, 볼리비아에서는 영토를 지키기 위한 원주민들의 평화 행진, 서독과 동독을 가로질렀던 침묵의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기도회, 러시아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노래로 축제를 열었던 에스토니아 등 연합과 협력이 기적을 만든 사례들이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언제나 고여 있는 물은 섞기 마련이듯이 권력은 부패하고 만다. 부패한 권력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 최대한 권력에 접근하는 세력들을 짓밟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하며 자신만의 권고한 성벽을 높이 세워간다. 그 뿐인가.

 

인간과 환경이 서로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기본 상식인데 돈에 눈이 먼 이들은 기후 위기라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돈벌이에만 혈안되어 있다. 이들을 향해 청소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평화 시위를 하며 오래된 나무 위에 올라가 벌목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행동에 나타낸다. 이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아름다운 지구를 그나마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른이 깨닫지 못하는 바를 어린이의 눈으로 보여주며, 사회의 기득권층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약자라 분리되는 이들이 직시하고 있다.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권력은 사유화되고 힘 있는 자들의 도구로 전락 당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환경을 환경답게 보존하는 것은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연합의 정신이고 협력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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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학습자를 위한 문해력 - 천천히 생각하는 아이가 읽고 이해하고 쓰기까지
박찬선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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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학습자라 함은 기본적으로 학습이 더디고 한 번에 많은 내용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의미한다." 

 

느린 학습자는 학습이 더딜뿐만 아니라 혼자서 공부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학습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다. 소위 기본 학습이 뒤쳐진다고 해서 학습지를 반복해서 투입하는 방법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독서 경험을 최상위 목표로 둔다. 문해력을 통해 글쓰기를 병행할 것을 강조한다. 

 

문해력은 독해력과 달리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이해한 것을 활용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느린 학습자에게 문해력은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학습에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해력을 점진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독해력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읽기의 유창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읽기 유창성이 되지 않은 느린 학습자들에게 유창성 텍스트를 제시하고 유창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기준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반복해서 읽기를 지속해 간다.그리고 느린 학습자의 특성에 맞춰 읽는 책의 수준을 높이며 적절한 책을 읽어갈 수 있도록 교사 또는 학부모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느린 학습자들이 독해력에 어려움을 겪는 주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기초적인 국어 문법의 미습득임을 밝히고 있다. 느린 학습자들이 문장을 읽더라도 이해하는 수준이 떨어지는 주 원인이 문법 미습득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육과정 안에서 일부러라도 국어 문법 학습을 지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문법 지식이 탄탄하게 갖추어 질 경우 느린 학습자들의 읽기 수준은 맥락을 관통하는 힘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맥락을 살펴보는 힘이 생기면 읽기가 즐거워지고 읽기가 쉬워지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길러진다. 생각하는 힘은 글쓰기로 표현된다. 느린 학습자에게 글쓰기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 과한 욕심이 아닌 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최종적인 목표인 문해력은 천천히 생각하며 읽고 이해하고 쓰기까지 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영상과 게임에는 반응 속도가 빠르지만 유독히 학습에 흥미를 잃고 더디게 참여하는 느린 학습자에게 알맞은 처방법이 필요한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느린 학습자들에게는 양적으로 학습양을 늘리기 보다 교사 대 학생 즉 1:1 지도가 필요하며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기간 안에 문해력이라는 도달점에 이르게하겠다는 목표는 교사 또는 어른의 과한 욕심으로 보인다. 느린 학습자에게 필요한 것은 체계적이면서 함께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느린 학습자와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느린 학습자를 이해하기 위한 교사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에 『느린 학습자를 위한 문해력』을 모든 어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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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하얼빈의 11일
원재훈 지음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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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영웅적 인간에게 그의 본모습보다는 자기 생각에 맞는 부분만을 확대하여 어울리지도 않는 동상을 만들어 세운다. 어설픈 동상이나 정치적인 외침보다는 안중근의 한마디를 되새기는 정신이 필요하다" (338쪽)

 

『안중근, 하얼빈의 11일』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안응칠 역사」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생애에 대한 일대기를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지만 그가 이토를 저격한 후 순국하기 전까지남긴 말 한마디, 가족들(어머니, 동생들, 아내)에게 쓴 편지, 뤼순 형무소에서 검사와 간수에게 남긴 대화의 흔적들을 통해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정신과 삶의 목표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얼빈에서의 11일 간은 숨막힐 정도로 긴장감이 도는 기간이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거사를 성공적으로 해내야 했던 안중근 의사에게 있어서는 하루 하루가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금이 없어 창춘행을 포기하고 다시 하얼빈으로 돌아와야했던 사연, 거사를 위해 지인(김성백)에게 돈을 빌려야 했던 사연, 거사일 당일 이토를 어디에서 저격해야 하는지 등의 모든 결정은 오로지 안중근 의사 본인에 의해 진행되어야만 했다. 거사 후에도 그가 자결하지 않았던 이유도 명백하다. 세계 만방에 대한 독립의 정당성과 동양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했기 때문이다. 순국하는 그날까지 안중근 의사는 죽음과도 싸워야했던 나날을 보내야했다.

 

이토가 저지른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내가 이토를 동양 평화의 적으로 삼게 된 결정적 단초였다. _27쪽

 

나는 이제 도마(안중근의 호) 안중근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것이다. _28쪽

 

장소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 안중근에게는 하얼빈이 그러했다. _60쪽

 

만주 벌판에 떨어지니 한 인간의 존재가 신과 연결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_66쪽

 

로맹 롤랑은 영웅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 라고 했다. _92쪽

 

이순신 장군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를 미리 알고 준비를 하는, 즉 이겨 놓고 싸우는 그 정신이다._104쪽

 

역사란 참으로 사소한 일로 위대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_140쪽

 

상하이에서 안중근은 두 개의 큰 벽을 만나게 된다. 안중근의 눈에 비친 중국에 사는 동포들은 조국의 운명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먹고살기에 급급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조국은 '먼 나라' 일 뿐이었다. _210쪽

 

문은 걸어 잠그면 벽이 된다. _ 202쪽

민영익과 같은 고관대작이 결코 문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고 길을 떠났다. _203쪽

 

 

뤼순 지방법원으로 결정한 이유는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점령한 뤼순이 국제 여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단독판사 제도를 시행한 탓에 일본 정부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_210쪽

뤼순은 일본과 멀리 떨어진 곳이고 단독판사가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안중근 사건을 일본 정부의 뜻대로 끌고 갈 수 있었다. _211쪽

뤼순 감옥은 안중근 의사와 더불어 민족의 선각자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이 옥사한 곳이기도 하다._241쪽

 

삼흥학교(안중근 의사가 가산을 팔아 진남포에 세운 학교)는 훗날 오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_231쪽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은 다른 옥사에 비해 매우 특별한 장소였다. 형무소장의 집무실과 거의 같은 규모였다._244쪽

일본에서 특수 제작된 호송용 마차가 바로 일제가 안중근 의거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물이다._260쪽

 

두려움은 욕심에서 오는 거지요. 내가 동양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과 이어집니다. 욕심을 버리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_264쪽

위이불맹,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다. 정치를 하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논어. _264쪽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는 친일파와 하루하루 살림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무관심에 안중근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외로웠다. _276쪽

 

단지 동맹을 정천 동맹이라고 명명하고. 1909년 3월 5일이었다. 당시 엔치야 하리 마을에서 결성된 '바른 하늘 아래 맹세'인 '정천 동맹'은 대부분 의병 출신 동지들이었다. _279~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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