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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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팬데믹을 가상하여 쓴 소설이다. 이름하여 '선 열병' 

 

"선이디오이데스라는 균이 선전 지역에서 생겨난 이후 중국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중략) 선 열병은 중국 내 경제특구인 제조업 밀집 지역의 공장에서 우연히 변종을 일으킨 진균 포자가 온갖 화학 물질이 과하게 뒤섞인 혼합물을 통해 증식한 결과였다" (342쪽)

 

소설의 중심 무대는 미국 뉴욕이다. 인구가 대다수 밀집 되어 있는 거대한 도시 뉴욕을 배경 삼아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이 사람들에게 침투하여 이성을 잃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주인공 캔디스 첸은 이민자 2세다. 성경을 판매하는 직업을 가진 그녀는 중국과 홍콩 등지를 오고가며 성경이 잘 인쇄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본사는 당연히 미국 뉴욕에 있다. 소설의 스토리 전개는 중첩되어 진행된다. 선 열병에 감염되어 살아남은 소수의 미국인들이 마지막까지 생존하기 위해 이쪽 저쪽을 옮겨다니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 열병이 감염되기 전의 장면들을 주인공 캔디스 첸의 발걸음에 따라 이야기가 소개된다. 감염병이 창궐하여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과 감염병이 막 시작되었을 때 반신반의하며 일상의 생활을 유지해 가는 장면들이 번갈아 가면서 소개된다. 

 

가상 상황을 전제로 씌여진 소설이긴 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은 팬데믹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아직도 우리가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2년 넘게 아니 앞으로 3~4년 정도까지 거뜬히 지속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비추어 볼 때 감염병은 이제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피부로 와 닿는 관심사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과거에 있었던 흑사병, 콜레라, 독감, 사스가 옛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며 미래의 이야기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소설 속 가상의 감염병인 '선 열병' 조차도 그저 상상 속의 질병이 아닐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피난가지 않고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목숨의 위태로움을 미리 깨닫고 가족들과 함께 일치감치 안전 지대로 옮기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대한 대도시가 서서히 죽음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이성을 잃은 걸어다니는 시체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 섬뜩함을 넘어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하게 된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패션의 일번지이라 원활한 경제 중심지였던 뉴욕이 약탈의 중심지가 되고 폐허가 되리라고는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감염병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그렇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눈에 보여지는 전쟁보다 보여지지 않는 감염병이 더 무서운 세상이다. 

 

감염병을 이슈로 다른 소설이지만 내게는 또 한 가지 소재가 눈에 들어왔다. 성경을 인쇄하는 과정 속에 불공정한 과정들이 개입되고 있는 상황을 그려낸 부분이다. 

 

"우리가 당신네 나라의 유럽-미국 기독교 이념을 선전하기 위한 상징적인 텍스트를 제작하고 있는데 당신네와 당신네 고객들은 이 일에, 이 중요한 과업에 드는 제조 단가를 한 푼이라도 줄이려고 공격적으로 협상을 하고 있고, 인쇄 건마다 납품은 재촉하면서 인건비는 매년 삭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140쪽)

 

작가는 어떤 의도에서 이런 부분들을 소재로 가져 왔을까? 공정무역에 관한 부분이다. 성경을 인쇄하는 과정에서 인건비가 제대로 책정되고 있지 않는 부분, 제조 단가를 줄여 이익을 챙기려는 부분, 협상이라는 이름으로 인건비를 삭감하는 부분들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물건 값이 무조건 싸다고 해서 좋은 것 아닌 것 같다.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는 물건을 만드는 데 소모된 인건비를 제대로 보상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인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마저 선 열병에 감염되었다. 공장을 운영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성경 인쇄도 중단되었다. 이처럼 감염병은 최악의 경우 모든 경제를 올스톱할 수 있음은 엿볼 수 있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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