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로드 뷰 별숲 동화 마을 36
전성현 지음, 오승민 그림 / 별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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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왜 급식소에서 밥을 먹지 먹지 못하고 급식소 밖 계단에서 밥을 먹을까?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던 태우는 왜 직접 뛰지 않고 구경만 할까?

태우는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볼 때마다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윤지는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 

 

세 친구는 모두 소라읍에 살았던 친구들이다. 지금은 새로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 중이다. 세 친구 모두 아픔을 지니고 있다. 어떤 아픔일까? 모두 지진이라는 공포스러운 광경을 직접 경험한 친구들이다. 엄마를 잃어 버린 수아, 집 안에 갇혀 있다가 뜨거운 라면 국물에 화상을 입은 태우, 현관문이 열리는 않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갇혀 버려 폐쇄 공포증을 앓고 있는 태우,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구 공장이 온데간데 없이 무너져 삶의 터전을 몽땅 빼앗겨 버린 윤지. 세 친구 모두 말 못할 아픔을 지닌 친구들이다. 새로 옮겨진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지진 때문에 이주한 아이들이라는 꼬리표, 상대방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자신들이 겪지 않았다는 안도감으로 가볍게 던지는 불편한 위로, 그들이 앓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지진에 대한 공포 휴유증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에 세 친구들은 고향을 더욱 그리워한다. 

 

강원도에서도 몇 년 전 큰 산불로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이 지금까지 임시 거처에서 불편하게 생활하는 모습들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다. 수해로 피해를 잃은 분들도 금방이라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살아왔는데 정부의 미온적 대처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된다. 언론에서는 천재지변 당시에는 피해를 당한 이들을 취재하며 아픔에 동참해 달라고 방송을 끊임없이 흘려보내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의 일처럼 여기는 듯 하며 정부의 다양한 보상 대책 방안들도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피해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재민들의 고통을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없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아픔을 감내해 내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년전 로드뷰>의 세 친구들도 일년 전 자신이 살았던 소라읍을 다시 찾아간다. 일년 전 끔찍하게 경험했던 지진의 현장을 찾아간다. 모두가 외면해 버린 지진의 현장을. 세 친구들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 자신이 다녔던 학교, 학교 운동장에 묻어 두었던 학급 보물상자를 찾아 나선다. 태우는 잃어버린 축구공을 찾는다. 수아는 뜻밖에 선물인 고양이 까망이와 재회한다. 까망이는 유일하게 수아 엄마가 담장에 깔린 체 누워 있는 것을 끝까지 곁에서 지킨 장본인이다. 윤지는 소중하게 자신이 쓴 편지를 찾아낸다. 폐허가 된 곳에서 자신들의 추억이 담긴 현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로드뷰' 사진 때문이다. 로드뷰는 일년 전 자신이 살던 마을의 골목골목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태우가 학교에서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볼 일을 보는 모습은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태우의 지진 휴유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아는 엄마의 부재를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 없는 애라고 놀림 받을까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학교 안에서 우리가 알 지 못하는 다양한 아픔을 지닌 아이들이 있다. 며칠 전 한 교실에 수업을 하러 들어갔다. 맨 앞에 친구들 보다 키가 작은 아이가 앉아 있다. 수업에 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색종이 접기 시간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비행기를 접더니 나에게 날린다. 색종이로 집게 모양의 종이를 접더니 내 팔을 꼬집 듯 접근해 온다. 그 아이의 반응에 리액션을 크게 해 주었더니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반응을 내게 보인다. 좁은 교실 안이지만 짧은 시간을 내어 술래잡기도 했더니 나를 종종 쫓아온다. 그리고 뭔가 내게 이야기를 하고 연필을 가져와 내 이름을 적어 달란다. 공부하자고 할 때에는 고개를 숙이고 풀 죽어 있던 아이가 놀이 시간에는 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아이는 전에도 학교 교문 앞에서 등교할 때 본 적이 있다. 엄마랑 손을 붙잡고 매일 등교하는 아이다. 등교할 때도 기운 없이 걸어오던 모습이 생각나다. 교실에서 몇 번 만나면서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삶을 들어보지 않고서는 아이가 보인 행동의 원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코로나 시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결국 교실 안에서 아이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방법 밖에 없다. 말 문을 닫아 버리고 입을 떼지 않는 아이라면 입을 떼는 뭔가의 접촉점이 있을 때 그 순간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아이에 맞게 다가서야 한다. 교실 안에 담임 선생님들이 힘과 에너지를 뺏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 밖 사람들은 꼬맹이 얘들 가르치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하는데 모르는 소리다.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들 모셔다가 교실 안에서 일주일 정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라고 한다면 모두 두발 두손 다 들며 차라리 일하는 게 낫다라고 할 것이다. 그만큼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생활하는 일은 엄청난 힘이 드는 일이다. 아이들이 눈높이에서 하나하나 맞춰가야하니까 말이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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