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 끝내야 내가 사는 독성관계 심리학
권순재 지음 / 생각의길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인간의 정신에 독성을 퍼뜨리는 관계를 저자는 독성관계(Toxic Relationships)라고 정의하며 많은 사람들이 가정, 학교, 직장 안에서 독성관계에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들이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써 그동안 상담해 왔던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사례로 든 첫 번째 이야기도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더나아가 주변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읽으면서 부지불식간에 주고 받는 말과 행동에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는 독성을 전파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치과의사이자 가정을 이룬 한 남성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지내야하는 삶의 이야기가 아주 특별한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옥죄오는 불안, 불편, 압박, 폭력 등이 결국 독성임을 인지하고 스스로 대항하지 못한다면 주변에 도움을 청해서라도 독성의 늪에서 빠져 나올 것을 강조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개구리를 잡아 서서히 온도가 높아지는 물에 넣어 두었을 때 처음에는 물의 온도가 그다지 높지 않으니 유유히 헤엄치면 개구리가 자신도 모르게 물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체감하지 못한 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말이다. 사람 관계도 이런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특히 사람들의 관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정, 학교, 직장, 모임 안에서 말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나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일들이 생각이 났다. 가정 안에서 독성관계의 주도자가 되었던 나의 모습말이다. 자녀들을 키우면서 지나고 나니까 이런 일들이 자녀들에게는 정신적 억압이었고 신체적 폭력에 길들이는 하나의 과정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깊은 곳까지 후회하고 반성하게 된다. 책에 나온 사례처럼 육아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았으니 아비로써 당연히 해야 할 도리였지 않나라고 자신 스스로 합리화를 했던 적이 있다. 이런 마음 결단 등이 자기방어 기제였음을 깨닫게 된다.

독성관계를 퍼뜨리는 주도자는 외부로 시선을 향하게 되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내부의 시선이 닫히게 된다. 반면 독성관계로 희생을 당하는 자는 외부로 시선을 향해 당당히 저항하고 잘못되었음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신에게 스스로 채찍질을 가하면서 자신의 부족함만 보게 한다. 이렇게 독성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여우와도 같은 역할을 하며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 나가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강조한다.

 

독성관계의 예로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상하수직적인 복종 시스템을 많이 언급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ROTC 34기로 임관하여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 O.B.C 과정에 입교한 적이 있다. 4개월 간의 초급 장교 과정이다. 40~50명 가까운 인원이 한 개의 교육대를 구성하여 동고동락을 하는 시스템 속에 이들을 훈육하는 지도자들이 있었으니 일명 구대장으로 불리운 이들이었다. 계급으로 치자면 말그대로 한 끝차이다. 나와 같은 교육생들은 소위였고 2~3명의 구대장들은 중위였다. 다이아몬드 한 개 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당시 느꼈던 힘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구대장들이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해야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격적인 수치감과 신체적 폭력, 말도 안 되는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하나 항변할 수 없었다. 지금의 군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교육을 받으면서 왜 말도 안 되는 얼차려를 받아야했을까 생각해 보니 교육생들의 인식 속에는 군대 안에서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박혀 있었던 것 같다. 전쟁을 위해 준비되는 곳이 군대이고 초급 장교를 양성해야 하는 교육기관이기에 당연히 강인한 리더십을 위해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견디어 내야 하는 훈련이 필요함을 필요하다고 본다. 단, 이런 과정들이 고스란히 학습되어 후배 장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가될 수 있는 요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독성관계는 건강한 조직을 좀먹는 벌레의 역할을 한다. 건강한 힘을 내야 하는 관계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건강한 소통을 방해하게 되니 결국 손해는 조직이 떠 안게 되는 꼴이다.

 

직장 안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민주적 관계로 많이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항상 힘의 위력으로 관계를 누르려는 현상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독성관계가 더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학교 안에서도 일어나는 학생 간 따돌림 현상에도 보이지 않게 은근히 하는 행위들이 치명적인 관계로 변질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 보이지 않게 퍼져 있는 독성관계는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눈치를 보게 하는 분위기는 분명 독성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게 하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컵안의 물을 오염시키는데에는 한 방울의 잉크만 있어도 족하다. 독성 관계도 이와 같다. 많은 말이 필요 없다. 힘으로 누르려는 따가운 눈총 하나면 충분하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