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 문학의 즐거움 60
문경민 지음, 레지나 그림 / 개암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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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어린이들도 어른처럼 아픈 상처를 오래동안 간직하고 살아간다. 상처가 일찍 발견되어 치유되고 회복된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상처는 썩을대로 곪다가 터지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 건우 엄마(책 속 등장인물)같은 분이 계신다면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겠건만 점점 단절화되어가는 현대 문화 속에서는 좀처럼 따뜻한 이웃을 만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픔 없이 자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이상 모두가 작은 아픔이든 큰 아픔이든 간직하면서 살아간다. 혜나(책 속 주인공)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겪지 말아야 할 큰 아픔을 경험한 아이다. 그 후유증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선택적 함묵증인거다. 말을 할 수 있으나 아픈 기억과 상처로 좀처럼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말 하지 않는 것이 익숙해진 아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딸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었다. 한창 재잘재잘 거리며 말을 해야 할 자녀가 말하지 않고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만하더라도 안쓰럽고 가슴이 메어온다. 혜나는 아빠와 엄마를 일곱살에 잃었다. 경비행기를 타러 갔다가 바다속에 빠진거다. 혜나만 간신히 구출되어 살아나온 것이다. 어린 나이에 받았을 충격을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제나 말하고 있어!

 

혜나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제나 말을 하고 있다. 자주 창가로 날아드는 박새 누디, 학교 운동장 울타리에서 만나는 고양이 가샥코, 건우네 집 강아지 웅우리(복실이), 아빠가 키우던 천연기념종 팜 코카투 와루. 혜나는 이들과 언제나 말하고 있다.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을 뿐 새, 고양이, 개와 의사를 소통한다. 

저자가 책에 소개하고 있는 혜나와 같은 아이를 3년 간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혜나처럼 수업 시간에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말을 붙여 보았지만 3년 동안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교사인 나 뿐만 아니라 같은 친구들도 들어보지 못했단다. 그 아이는 혜나처럼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모든 활동을 소화한다. 과제도 잘 해 온다. 수업 시간에 교사의 말을 듣고 곧잘 메모도 잘 한다. 말 귀를 알아 듣고 집중해서 그날 하루의 일과를 잘 해낸다. 말하지 않는 그 아이의 특성을 친구들이 잘 알고 쉬는 시간에도 함께 놀아준다. 그 아이의 부모를 만나본 적이 있다. 집에서도 말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고. 의사표현은 표정으로, 느낌으로 한다고. 그 아이의 엄마를 잠깐 뵌 적이 있는데 엄마가 참 얌전해 보였다. 담임교사가 아닌 교과 전담교사라 더 깊이 나눌 수 없었지만 전담교사이기에 3년 동안 줄곧 지켜볼 수 있었다. 매년 그 아이를 담임하는 교사는 그 아이의 특성에 대해 학교에 오래 남아 있는 나에게 물어본다. 그럴때마다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원래 그랬다는 정도일 뿐 더 이상 구체적으로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라는 책을 읽고나서 2021년 올해 그 아이의 담임을 맡게 될 교사에게 꼭 이 책을 추천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제나 말하고 있어요' 라고.

 

이른 시기에 상처와 아픔을 겪은 사람은 일찍 철이 든다고 한다.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거다. 나이는 어린앤데 행동하는 거나 마음 씀씀이나 어쩜 그렇게 성숙해 보일까? 이런 아이를 일컬어 '애늙은이'라고 말한다. 혜나는 열두살이다. 할아버지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가 과거의 기억을 다시 찾은 뒤에는 분노와 미움으로 바뀌고 다시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서는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시키기보다 자신이 감내해내야 하는 기억으로 승화시킨 혜나의 모습을 통해 좌충우돌하며 자라가는 우리 집 세 아이의 모습이 스쳐간다. 그리고 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저자가 이야기 속 배경으로 삼은 곳이 강원도 탄광촌 읍내다. 아마 추측컨대 삼척 도계읍 또는 강원도 정선 쪽이 아닐까 싶다. 내 고향도 삼척이다. 집에서 걸어서 5분이면 바닷가인 어촌 마을이다. 예전엔 어촌 마을로 들어온 이주민 모두가 상처가 가득한 이들이었다. 오죽했으면 배타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을까. 내가 어렸을 적 뱃사람들은 오만군데 돌아다니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뱃일이었다. 당시 뱃일이란 생사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상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돌변하는 바닷 날씨로 일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촌 마을에는 과부들이 많았다. 한 부모 가정이 많았다. 아빠 잃은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의 혜나가 이주해 온 탄광촌 마을도 비슷했다. 건우네 아빠도 탄광 갱이 무너져 목숨을 잃었다. 석탄을 채굴하다보니 폭우에 산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혜나와 혜나 할아버지도 산산태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물론 혜나네 집은 온데간데 없이 휩쓸려온 흙더미니에 자취를 온전히 감춰버렸다. 혜나 할아버지는 빵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신다. 인적이 드문 탄광 마을에서 얼마나 수익이 났을까 싶다. 

 

강원도 시골 산간오지 학교, 상처를 보듬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책 속 주인공 혜나와 건우가 다니는 학교는 2개반이 전부다. 4학년에서 6학년까지 세 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배운다. 일명 3복식이다. 요즘은 학력 보장을 위해 3복식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2복식은 존재한다. 학년 상관 없이 2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책 속 정도현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를 찾아본다. 나도 5년 동안 2복식을 담임한 적이 있다. 하루에 버스가 두 대가 다니는 깊은 산골 마을 학교에서. 모두가 도심지로 이사가고 남은 가구수는 얼마되지 않는 마을이다. 해 맑게 살아갈 듯 싶은 아이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가 없는 아이가 없다. 엄마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집, 농사는 짓지 않고 맨날 술독에 빠져 지내는 집, 아궁이에 장작을 피우며 한 켠에서는 소 여물을 먹이는 집, 상수도가 깔리지 않아 산에서 내려 오는 물을 파이프로 연결해 받아 먹는 집, 승용차로써는 도저히 올라 갈 수 없는 높은 지대에 살고 있는 집. 걸어서 삼사십분을 걸어서 오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천진난만한 모습 뒤에 꽤 어른스런 애늙은이의 모습들이 보였다. 부모의 마음으로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한 곳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안다. 중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삶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의 삶과 동떨어진 교육은 껍데기뿐이라는 사실을. 교사라면 모두가 동감할게다. 아이들은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언제나 말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교사의 몫이다! 어른들이 할 일이다! 문경민 작가의 책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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