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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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당신의 이웃입니까? " 

 

이 땅의 퓨즈는 감염병이 창궐할 때 가장 먼저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 장기간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사회 밑바닥에 있는 약자들,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닭장처럼 비좁은 곳에 근무하는 콜센터 직원들. 이들이 감전이라는 전기 사고를 막는 '퓨즈'라고 저자 신영전 의사는 말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료민영화, 의료영리화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가 일반인들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쏠린 것을 틈타 야금 야금 추진하고 있는 의료계의 악법인 규제샌드박스법, 데이터3법, 규제프리존에 대해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완전한 의료보장을 주장하는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전문가로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의료인이 아니면 당장 내게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일이라면 사실 모를 수 밖에 없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공중보건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데에 있다. 

 

선진국에 비해 공공병원의 침상 확보률이 극히 낮은 우리나라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픈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나라가 과연 국가인가' 라고 공약했던 진보 정권의 두 대통령마저 높은 의료정책의 장벽 앞에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공약을 폐기해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탐욕스러운 자본의 위력과 고삐 풀린 과학의 힘 앞에 대통령이 아닌 그 이상의 권한을 가진 이도 감히 감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이실직고하고 있다. 

 

오늘날 영리 의료 산업은 매일 새로운 질병을 양산해 내고 있다. 의료 산업은 병을 만들기 위해 몸을 다시 구성하고 있다. 개인의 신체 정보마저 기업에게 넘겨주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선거 공약은 위선임에 분명하다. '100만원 개혁' 처럼 어떠한 질병 앞에서도 환자의 진료비는 100만원을 넘지 않겠다던 지난 대선의 공약은 정책의 첫 삽을 펴보기도 전에 속절없이 시간만 지나가고 있다. 의료적 재난 때문에 가난의 수렁으로 떨어지는 가정들이 한 해만 하더라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국가가 나서서 의료비를 보장해주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긴 질병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주는 나라가 진정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무상급식, 무상교육도 보편화 되었듯이 이제는 '무상의료'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정치권을 흔들어야 할 때다. 

 

저자는 신종 감염병의 유행의 원인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박쥐, 비위생적인 사람들에게 돌릴 것 아니라 욕감의 정치를 따르는 과학, 무분별한 삼림 파괴, 현격한 빈부 격차를 만든 정치 권력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힌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인간이 만들어 낸 빠름의 욕망때문이다. 공장식 가축사육, 속도전을 방불케하는 대규모 국경 이동, 생태 파괴는 코로나19에 이어 코로나n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한다. 인간의 탐욕이 깊은 동굴 속에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의 벌집을 건드린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재난처럼 다가올 대규모 감염병 유행 앞에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저자는 의료만큼은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역행하여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이웃' 인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퓨즈'와 같은 이들을 돌볼 수 있도록 공공성을 강화하고, 갑자기 찾아온 질병 앞에 의료적 가난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완전한 의료보장'을 국가가 감당해 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가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보장제도에는 당연히 도덕적 해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정부 예산이 지금 보다 더 많이 투여해야 한다. 국미의 절대적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민의 건강을 가지고 검증 없는 규제 완화는 섣부른 정책이다. 

 

과학적 기반에 의해 실험적 검증을 거친 획기적인 치료법은 언론의 지지를 받으며 기정사실화 된다. 대표적인 것이 발진티푸스균의 발견, 결핵, 콜레라 균을 발견한 과학자들에게 대다수 사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철저한 위생으로 균을 막을 수 있고, 에방 접종을 통해 항체를 형성하면 치사율을 줄일 수 있다는 과학적 예방법에 가려져 당시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역사는 지적한다. 치명적인 균들로 사망률이 높았던 이들은 다름 아니라, 궁핍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질병이 단지 균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양, 주거 상태, 정치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회피했다. 이것을 주장한 페텐코퍼 학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병은 외부 효과를 가진다. 개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상의료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등한 것이 이득이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도 달성해야 하는 당위성을 공공의료에서 찾을 수 있다. 장하준 교수는 복지는 공동구매라고 한다. 북유럽의 국가들이 높은 의료비를 지불하더라도 의료 공공성을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어는 누구라도 높은 의료비로 빈곤의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부자들은 민간 보험회사를 통해 자구책을 만들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료비 지출이 과다할 경우 생계가 막막해 질 수 있다. 

 

지금의 펜데믹이 백신으로 막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수 많은 돌연변이가 실시간 나타나고 있고, 수십 년 전 죽지 않고 잠들어 있든 숨어 있든 잠자코 있던 바이러스들이 또 다시 활동을 재개할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퓨즈만이 희망이다' 라고 외치는 저자의 외침 속에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이웃이 되어야 이 문제를 대응할 수 있음을 의사의 소견으로, 오랫동안 공공의학을 전공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라는 말처럼 저자는 참여정부에서 문재인 정부까지 각 정부에서 실시한 의료 정책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면 비판하고 있다. 잊혀졌던 보건 정책들을 다시 소환하며, 관심 밖으로 밀어냈던 공공의료를 수면 위로 다시 올려 놓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기에 시의적절한 책이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야 할 영역이기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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