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윌리엄 H.맥닐 지음, 허정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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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전염병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옛 역사의 한 조각으로만 생각되었던 전염병의 공포를 경험하며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가 다시 재조명 받고 있다. 『페스트』문학전집이 독자들에게 다시 읽히기 시작되었던 것처럼.


이 책의 목적은 55쪽 하단부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근대의학의 발전에 따라 질병 전파에 관련된 각종 요인이 분명하게 밝혀지기 이전에 인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말로 이 책이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도 최근 들어 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갖게 되었듯이 역사 이전 시대에는 전염병에 대한 어떠한 역학적 조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문헌에 조차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 윌리엄 H. 맥닐은 인류의 문명사 전체를 '전염병의 역사'로 재조명하고 있다. 인류 전 문명의 흥망을 전명병의 역사로 기술하고 있어 참신한 주제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600명이 채 안되는 부하를 거느리고 멕시코 원정에 나선 '코르테즈'는 인구가 수백만 명이 있는 아즈텍 제국을 정복했다.  '피사로'에 의한 잉카제국 정복 또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하지만 근대의학의 발달에 의해 밝혀진 사실은 치사율이 높았던 천연두의 전염성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거대한 제국을 무릎 꿇렸던 것은 총과 칼이 아니라 '바이러스'였던 것이다. 당시 원주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리가 없었을 것이다. 전염병은 이렇게 면역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유럽도 위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14세기 페스트의 유행, 19세기 콜레라의 대유행은 인구 감소를 초래했고 사회적 기반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아무런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숙주에서 숙주로 지체없이 감염을 일으키는 전염병(결핵, 홍역, 천연두, 수두, 백일해, 이하선염, 인플루엔자)은 오늘날에도 잘 알려져 있다.


저자 윌리엄 H. 맥닐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돼지고기 금식 또한 전염병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서아시아의 시골 촌락에서는 돼지가 일종의 거리 청소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돼지고기는 제대로 조리해서 먹지 않으면 많은 기생충(특히 선모충증)을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기에 감염의 위험성을 감소하고자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나병환자를 철저히 격리시킨 이유도 피부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전염을 막기 위한 제도로 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는 문명의 중심지에는 전염병이 퍼질 수 밖에 없다. 즉 도시 생활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수많은 위험을 지니고 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비말(飛沫)이 날아가 사람으로부터 전염되는 질병이 촌락보다 도시에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역사장 거대 문명의 중심지로부터 전염병의 위력이 단단히 나타났던 사례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전염병의 역사임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인도문명에서는 각종 질병이 침범되지 않게 하려는 동기에서 카스트 신분 차별 제도가 발생되었다고 본다. 고온다습한 지역인 인도 문명지에서 기생충의 공격으로부터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접촉을 최소화하는 일이었고 카스트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인도 문명과 비슷한 환경에 놓였던 메소포타미아에서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끄는 군대가 패배한 이유도 전염병의 역사에서 찾고 있으며 문자로 기록된 자료인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쉬' 서사시에도 대홍수보다 전염병의 재앙을 잘 묘사하고 있다. 중국 황하문명에서 강대한 나라들 조차도 중국 중남부 지역을 함락할 수 없었던 이유를 질병이 창궐하기 최적 기후였던 지역적 특성 때문임을 강조한다.


유럽의 암흑기는 질병의 역사라고 본다. 질병이 창궐한 시기에 기독교가 오히려 급속도로 전파될 이유를 아래의 역사적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도들이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서운 전염병들이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에서도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일종의 종교적 의무로 간주한 점이다" (137쪽)


전염병의 유행으로 인해 기존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붕괴했지만 기독교의 교세와 교회는 강화되었다. 기독교는 고난과 질병, 그리고 혼란의 시대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사상적, 정서적인 체계를 갖고 있었고 무서운 전염병에 대한 기독교의 포용력은 기독교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과학의 발전은 전염병의 전파 속도를 앞당겼다. 1870년대 이후 급속하게 발달한 기선의 항로망을 따라 배의 속도가 빨라졌고, 만주에 새로 건설된 철도를 따라 전염병은 사방으로 퍼지게 되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확산은 전염병의 역사에서 의미있게 보아야 한다. 식량이나 전리품을 실은 말안장에 숨어든 감염된 쥐나 벼룩은 신속한 몽고군의 이동을 따라 이 병의 전파에 장애가 되었던 바다나 강도 쉽게 건너게 되었다.


"페스트는 유행이 끝나더라도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없었다.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몇 번씩 유행" 한다. 코로나19의 유행은 단시간에 끝날 사건이 아니다. 유럽의 전염병의 역사를 보더라도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유럽이 페스트의 충격으로부터 완전회 회복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100년~130년이었다고 한다. 의학의 발달로 그정도까지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죽음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게 될 것이며 그동안 통용되어 왔던 일상생활의 습관이나 규제는 붕괴되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페스트의 휴유증으로 인해 라틴어 대신 여러 가지 세속적인 말이 공식문서에 쓰였던 것처럼 코로나19  이후 전 사회적인 제도들 또한 재편될 것은 분명하다. 계층별로 심한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고 임금과 가격구조가 뒤흔들리는 것을 보면 전염병에 따라 역사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증거가 되고 있다. 교회의 전통적인 예배 형식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촉진 시킨 것도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한 사람들의 전통적인 교회 의식이 바뀐 것으로 분석한다. 페스트의 죽음 앞에 기존의 교회에서 가르쳤던 하나님의 정의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많았기에 기존 교회에 대한 반교권주의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일 뉴스에는 코로나19 확진자 수 통계가 보도되고 있고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른 교회의 소모임과 행사가 금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종교 탄압이라고 말하기도 하다. 전염병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전염병은 사라졌던 시대는 없었다. 단지 주춤거렸을 뿐이다. 현재에는 팬데믹으로 선포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에 대한 심각성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교회 뿐만 아니라 교육, 경제, 문화 등 전 영역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최대한 전염의 고리를 끊기 위함이다. 대다수의 인구가 감염되고 면역이 생겨야 전염병의 기세가 꺽인다는 의학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가 전염병의 역사라는 이야기가 뼈 속 깊이 들려온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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